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그냥 검색하다가 찾았는데...<흠정만주원류고>가 만선사관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거라네요..흐음..
<내일을 여는 역사>라는 책에서 발췌된건데.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전략). 또 주변 민족들이 독자적인 사서를 편찬할 때도 중국 기록을 그대로 인용하였고, 이것이 다시 중국에 전달되어 잘못된 역사상을 확대 재생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이 형성된 전통적인 '동북관'이 현재까지 은연중 계승되고 있는 예가 드물지 않다. 오늘날 공간된 동북공정 관련 고구려사 및 동북지방사 연구 성과물의 상당수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고구려사는 어떻게 지켜왔는가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시도가 비단 오늘의 일만은 아니었다. 18세기 중국의 정복왕조 청은 두찬(杜撰: 전거가 불확실하거나 격에 맞지 않는 시문)으로 평가되어온 <요사>계통의 사료를 저본으로 하여 <흠정만주원류고>를 간행하였는데, 이것은 만주를 중심으로 한국사를 만주족의 역사로 편입시킨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당시 실학자 안정복, 정약용, 한치연은 우리 역사가 독자적인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 민족사의 영역을 한반도로 국한시켰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들의 역사인식이 영역의 공간을 스스로 제약했던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하지만, 독자적인 민족사를 주장하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 역사를 만주사의 하나로 보는 대표적인 역사인식은 20세기 초부터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에 부응하여 구축된 만선사관이었다. 이는 <흠정만주원류고>의 인식과 달리 만주사를 중국사에서 분리시켜 조선사와 더불어 한 체계에 묶음으로써, 중국의 만주 영유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부정함을 그 목적으로 하여 정립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선사를 만주사에 종속시켜, 조선사의 독자성, 자주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등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우리의 전통적 문화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민족사 인식의 지평을 확대시키고자 노력함으로써....(하략)"
결국, <흠정만주원류고>는 청나라애들이 만주 중심으로 쓴 거고...일본애들은 청나라애들한테 만주 뺐으려고 만주와 조선을 한 데로 묶는 만선사관을 만들되, 주체를 만주로 두었다는 얘기인 거 같네요...췌.
결국, 신백강씨의 주장은..대충 "흠정만주원류고는 너네 사관으로 쓰였음에도 백제가 요서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최소한 요서는 백제땅이다..." 쯤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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