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아... 자신이 즐거우면 될뿐... 여유를...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면 오히려 하지 못하다는 말 처럼... 무협에 한 없이 빠져드는 사람을 보는 경우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문피아 사이트가 폐쇄 됬을 대 일거리가 손에 안잡힌다고 하는 사람 들 경우를 보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만약 무협이라는 소설 자체가 교훈을 주고 지적인 카타르시즘을 남긴다면 해가 되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쾌감 그거 뿐이라면... 시간 낭비가 아닐런지도 모릅니다. 사실 무협이라는 것을 읽고 스트레스용으로 단순히 가볍게 읽는 것도 하나의 방책일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무협 5년 생활에 있어서.. 그렇게 이 하나의 장르를 가볍게 취급하기엔 그렇군요... 따라서.. 제 결론은 저는 실력이 없지만.. 부디 좋은 작가분이 나타나서 여타 일반 장르를 능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곰곰히..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글을 남겨 주길 바라는 겁니다.
와유킹//하지만 영웅문이 명작이라고 해서 한무는 김용 작품과 비교하면 모두 쓰레기다, 수준 이하다 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와유킹님이 모를 뿐 김용의 작품에 필적할만한 한무도 이미 나타났거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그 작가가 좀 더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사장되거나 은퇴할 뿐입니다.
와유킹님이 한국무협을 가리켜서 교훈이 없다, 불쏘시개일 뿐이다(좀 심하게 결론을 요약하자면) 이라고 말하시는 건 성급하신 판단 같습니다. 현존하는 한무 중에서 사람들이 제대로 인정한 것을 모두 읽었다고 자신하실 수 있는 겁니까?
와유킹님 말씀에 일리가 있다 생각합니다. 쾌감 이상으로 무언가를 주기에는 무협이라는 장르가 부족할 지도 모릅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 그리고 느끼는 것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 쾌감만으로 무협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천도룡기, 동방불패가 제 무협소설에 시작이었습니다. 만화를 주로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남자답고, 강하고 아름다우며 멋진 모습을 보며 저는 전율 이상의 재미를 느꼈습니다.
시중에 많은 책들이 나오고 학교에 나오는 문학이 저에게 쾌감을 준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안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따분하고 외우기를 반복하던 그런 글이 제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겁니다.
재미의 관점은 다양합니다. 저 역시 철학책 경제학책을 읽으면서 재밌다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TV의 유치한 쇼같은것에도 재미를 느끼고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개그에 재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단지 여자가 벗은 장면이 1시간동안 계속되는 외국어 동영상에서 재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지적인 쾌감도 재미라고 할 수 있지만 말초적인 쾌감역시 어떤 면에서는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차원은 다르겠지요. 뇌의 이성영역이 반응하는가 아니면 감성영역이 반응하는가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이 자신이 보내는 시간을 '아 즐겁다'라고 느낀다면 저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교훈적인 재미를 주는 작품도 있어야 겠고 말초적인 재미를 주는 작품도 잇어야 됩니다. 그 둘 사이에 골라서 읽는 것은 순전히 취향차이겟지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고 뭐가 뭐보다 수준 높고 낮다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지만 먹고 싸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시장의 반응과 작품이 개인에게 주는 즐거움의 정도는 분리해서 생각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둘을 연관짓다보면 현실에 많은 실망을 하게 되니까요.
글의 종류에는 여러가지가 있죠.. 크게는 운문과 산문..
어느글이든.. 나름 각각의 목표와 의미를 담고있죠..
저희가 보는 판타지 무협 소설도 각각 작가분들의 목표와 의미가 닮겨 있죠.
그게 깊고 얕고를 떠나서.. 그 글에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게
정확히 전달 되었다면.. 그 글을 읽고 독자가 즐거움을 얻었다면 거기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요? 티비의 개그프로그램또한 그렇습니다.
무조건 풍자적인,시사적인 내용을 닮지 않아도 삶의 여유 정도를
줄수있다면 그 1차적인 목표를 이룬거겠죠.
그들은 독자,청취자들이 웃는것에서 만족을 느낄겁니다.
쌍방향이 만족하는 글,프로그램은 찾기가 힘든 이 사회에서
이만큼 유쾌한일이 어디있을까요..
와유킹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솔직히 한국무협의 방향성을 모르겠습니다.
제가본 소위 명작이라는 것들도 단지 카타르시스의 차이일뿐
깊이를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재미'만을 향해가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게다가 그 '재미'의 방향도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그런방향으로 진행되어가니... 읽으면 읽을수록 마이너스 요인이 될뿐 플러스 요인이 되지 않습니다. 읽고나서 남는게 없습니다.
남는게 없는것을 넘어 있는것 마져 가져갑니다.
요즘 확실히 무협을 읽으면서 감성이 무뎌졌다는것을 느낌니다.
순수하고 서정적인것이, 지루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지고, 자극적인것만 찾게 됩니다. 또 그뒤에 그 것을넘는 자극적인것을 찾아 해맵니다.
목적성없이 단지 '재미'만 추구하기떄문에, 어떻게하든 재미만 있으면 되기때문에, 점점 질이 떨어져가는듯 합니다.
책을 읽고 감동을 느끼거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거나, 대리 만족을 얻거나.. 하는 것처럼 책을 읽고 어떤 것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은 책을 대하는 독자의 자세에 더 큰 영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 서적을 단지, 감동을 느끼거나 대리 만족을 얻기 위해서 읽지는 않을 겁니다. 그 책을 읽고 얻어야 할 목표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무협이나 판타지와 같은 장르 소설의 목적도 분명합니다만. 그 목적이 경제학 책와 같은 전공 서적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얻고자 하는 목표가 다른 책을 읽으면서 같은 효과를 얻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김용의 소설 중에서도 소오강호는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별써 수십 번 읽었을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그 시작은 분명히 대리만족과 흥미였습니다. 그 안의 인간 혹은 세력의 상관 관계나 배경, 그 이면의 사실, 역사와 소설의 내용의 관계 등을 생각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잘된 영지 발전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그 소설을 읽음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경제 혹은 건설, 사회적 지식은 한정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해당 학문에 대한 흥미 유발 효과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전문 서적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는 효율과 깊이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장르 문학이 명작이라고 불리려면, 물론 지적 호기심의 충족도 좋습니다만. 얼마나 그럴 듯 하게 세상을 보여 줄 수 있느냐, 인과 관계가 얼마나 잘 짜여져 있고, 그 안의 등장인물의 개성을 잘 살리면서도 조화를 이루느냐 이런 면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읽고 감동 받으면 그게 명작입니다. 세간의 기준에 너무 얽매일 필요 없습니다. 무협소설은 소재가 대두분 가상의 고대 중국이라는 점이 다른 소설과 특이할뿐 나머지는 일반 소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독자 중 일부가 현실도피 차원에서 무협에 매몰돼 일상생활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도 무협에만 국한되는 부작용은 아닙니다. 게임, 오락 등 모든 부문이 부작용은 있게 마련입니다. 내가 선택해서 무협소설을 읽고선 시간낭비 책임을 무협소설에 돌린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무협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는 기본적으로 이런 부류입니다. "강호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어른이 될수록 삭막해지게 마련인데 가슴 한 구석에 나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봅니다. 작가 여러분은 자부심을 갖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무협 입문 만 31년을 목전에 둔 강호인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면 맹자나 논어를 읽을 것이고 삶의 지혜가 필요하시면 잠언이나 전도서를 읽고 의학적인지식이 필요하면 의학서를 읽고 경제학을 알고싶으면 경제서적을 읽으면 됩니다. 무협은 재미를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이외의 것이 동반된다면 좋겠지만 하나의 쟝르문학으로서
무협자체의 재미를,, 그것때문에 읽는다고 생각합니다...고로 존재하는 것은 다 존재가치가 있고 취사선택의 문제는 본인의 문제이지요,
물론 무협은 허구의 세계이고 황당한 곳이지요, 지풍이 바위를 뚫고 물위를 걸어가고 장풍으로 바위를 쪼개고,, 하지만 하나의 쟝르로서 존재하면서 많은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으니,, 저는 무협이 허망하다는 말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으 흠 이런논의기 활발하게 이뤄진다는게 기쁜 사실이네요.
그동안 충분히 양적으로 성장해온 한국 무협이 이젠 그 내용에서도
지적쾌락을 추구할만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합니다.
저변이 확대된 만큼 독자들의 욕구도 다양해졌겠죠.
지금껏의 무협이 일탈과 즐기기위한 도구였다면 이젠 교훈과 교육
의 도구로서의 가치도 지녀야 하지 않을까요...
썬데이 서울이나 사건xxx 등속이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 것처럼, 이를 벗어나려면 즉물적인 쾌락 이상의 뭔가를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독자와 작가들을 양산해 낼 수 있는 이때야 말로 잡지로
폄하되는 무협의 가치와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합니다.
홍명희 같은 분이 지금 이세대에 태어나셨다면 어떻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도 해봅니다.
괭이줄 님 말에 동의 합니다
모든 물건에는 그것의 특징이 있습니다
소설이나 글 종류도 모두 특징이 있지요
그 틀을 넘었을때는 이미 그건 그것이 아닌것이지요
의자를 의자 아니게 만들어 놓고 의자다 할수 없듯이
(예를 들어 테이블을 만들고 의자다 하면 비슷하긴 하지만 둘은 다른거죠 용도가 다르니까요 용도에 따라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의자와 테이블은 모두 다리가 네개지만)
와우킹님이 말한 한계라고 말하는것은 다르게 말하면
본질이라고 볼수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이 발달하면서 퓨전이라는 것이 더욱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학에서도 그렇구요.
결국 와우킹님이 원하시는것은 무협과 다른 문학과의 만남으로
다른 장르가 생기기를 바라는것 같은 뉘앙스로 말하고 계신거 같아요.
그런건 시간을 두고 볼일입니다.
다른것 2개가 만나 틀을 만나 하나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뭐 어떤 장르고 그 장르를 뛰어넘는다는 문학 작품이라던지 예술이라던지는 있겠죠.
그 장르를 뛰어 넘었다는 말을 들어도 결국 그 장르의 작품입니다.
그런 작품은 누대에 걸쳐 사랑을 받습니다.(현세에 그럴만한게 나타날수있을까요?
제가 보기론 이 세대에는 수 많은 인구가 교육을 통해 전반적으로 뛰어나기때문에 예전 1900년대 이전 천재다 불후의 명작이다 라는 것들이 나오기는 글렀다고 생각됩니다.
전에 천재가 한세대에 한명 나온다면 지금은 한세대에 적어도 몇백명도 넘을수있을겁니다.
그정도로 높은 안목들을 뚫고 누대에 걸친 명작들이 나오기는...
앞으로 더욱 똑똑해지고 안목이 높아지는 세대들의 목마름은 채워주기 더욱 힘들겠죠)
우리 나라 한무 작가님들이 못난게 아니라 그런 작품은 몇세기에 걸쳐 한두번 나오고 만다는거죠.
그런걸 원하고 계신 듯 말씀하시는건가요?
그냥 무협이란 장르가 더욱 지적인 어떤 장르로 탈바꿈하길 바라시는거죠?
작가들은 글을 쓰지만 독자들은 작가를 키웁니다 .
작가들이 그 틀을 벗어던질수있게 열렬한 지원을 해줄수있는 독자층이 형성 되어서야 그런일이 일어날수있지 않을까요?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그러하게 될수있지 않을까요?
점점 내용하고 안맞게 횡설수설하려고 해서;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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