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괜찮은 글, 좋은 글의 기준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그리고 재미.라는것도 생각해보구요.
장르소설에서 '재미없는 글'이 과연 좋은글, 괜찮은 글이 될 수 있을까요?
..또한
필력(이것도 저마다 모호한 기준처럼 보일때가 많았습니다만)좋은 글, 좋은글, 괜찮은 글이 막상 '재미는 없다' .. 말이 되는걸까요?
정말로 뛰어난 필력이란, 서술된 문장을 보는 자체만으로도 '재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는 같은 것 하나를 두고 묘사,서술하더라도 가슴에 확 와닿고 머릿속에 금새 그림처럼 떠올리게 만드는 유려한 명문들은 그 자체를 즐길 수가 있더군요.
일단 순수문학에서는 기본적인 문장력(필력)을 바탕으로 작가 나름의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며 이름을 얻기도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체와 스토리에서 모두 재미를 주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만 무라카미 류의 경우엔 스토리는 막상 떠올려보자면 재미있달 수 없지만 특이한 문체와 표현력만으로도 팬 층을 확보한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용,스토리보다는 문장 구절 구절이 기억에 더 남습니다.
(..같은 무라카미라 그런지 전 이 둘이 자꾸 비교가 되더군요 -ㅅ-;;)
뱀파이어 연대기,마녀연대기를 집필한 앤 라이스는 스토리 주제로 보아 분명히 장르문학작가입니다. 그러나 화려하면서도 유려한 문장 서술력으로 인해 앤 라이스의 소설들은 순수문학 위주인 대학 영문학과의 수업에서도 쓰입니다.
그런데 소위 '필력'은 그렇게나 좋은글이 재미가 없는 경우,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순수문학 뿐 아니라 장르소설에서두요.
반면 장르소설에서 필력(?)은 없지만 '재미'는 있는 경우는 제법 봤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우혁님 소설들이 제겐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이우혁님 팬분들께서는 미리 울컥하지 말아주세요 ㅠ.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 이우혁님 광팬입니다; 괴수급 스토리텔러라고 존경합니다..)
퇴마록부터 왜란종결자,파이로매니악,치우천왕기에 이르기까지..차기작으로 넘어갈수록 더욱 문장이 단정해지고 발전되는 느낌은 받았지만, 한결같이 소설적 멋이나 묘미는 느껴지지 않는 단조로운 문장을 사용하시지요.
논문..그러니까 설명문이나 논설문에 사용되는 문장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건조한 문장인데, 이우혁님의 소설들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기,승,전,결의 흐름. 발단,전개,절정,결말의 연출을 아울러 독특한 소재를 끄집어내고 그것으로 엮어가는 스토리에 감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십이국기,
이건 번역본이라 예로 들 수 있을지 좀 망설여집니다만, 전형적인 일본어체가 난무하고 오타와 비문까지.. 문장 자체는 읽는게 가끔 고역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전 이 소설이 광적으로 좋아서 일본어를 제대로 배워 원서를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완결 안난 뒷부분이 궁금해서 작가 찾아가 목이라도 짤짤 흔들며 제발 좀 쓰라고 닥달하고 싶을 정돕니다.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마찬가지로 스토리와 세계관, 담백하면서도 짜임새 있고 정곡만 여지없이 찔러주는 캐릭터 심리분석, ..순수문학에서 높이 사주는 문체며,문장력,서술력..글쎄요.. 그런것 없이도 술술 잘 읽힌다! 재미있다!는 느낌은 얼마든지 크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두 경우는 유려하다,멋지다 할 정도로 필력을 '손꼽을 정도'는 아닐 뿐, 글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튀지 않을 정도의 평이한 문장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어색한 문장, 난무하는 비문과 오타, 촌스럽기까지 한 서술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연출이나 흐름만으로 끝까지 '재미있게'읽을 수 있었던 장르소설들도 많았습니다.
재미만 쫒는다..글쎄요.
장르소설에서 가장 높이 사는건 전..'재미'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일단 '재미'가 있어야지요, 달리 어떤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장르소설을 읽을까요? 재미를 챙긴 이 후에 부수적인 어떤것들도 장점으로 지니고 있으면 좋은것..아닌가요?
화통한 재미, 잔잔한 재미, 지독하게 웃기는 재미, 지독하게 슬픈 재미, 추구하는 재미야 다르겠지만 장르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일단 '재미'를 가장 원하고 쓰는 사람들도 일단 '재미'있는걸 쓰는거 아닙니까.
지루하고 재미없다면 왜 쓰고 뭐하러 읽을까요..;;설혹 스토리는 별거 없는데 문장력과 서술력만 훌륭하다..라면 그 능력을 높이 사주는 시장이 벌써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열려있습니다. 바로...순수문학이지요. 쓰는 사람들은 그쪽을 노리면 될테고 읽는 사람들도 그것을 최우선으로 친다면 순수문학쪽에서 찾으면 될일입니다.
전 '재미'가 없는 글은 장르소설로서의 가치는 없는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장소를 잘못 찾았달까요.. 중국집 자장면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스파게티 같은거죠.
물론 그 특이함과 희소성에 눈길을 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장면 먹으러 온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생뚱맞게 보일 뿐이겠지요.
전 문피아 베스트 순위안에 든 글들은 최소한 다수의 취향을 맞추는 '대중적 재미'를 잡았기에 장르소설로서 일단의 자격을 갖추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보게 만들고 재미를 줄 수 있다는것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인기를 얻지 못하고 묻혀있는 글들은 '운'을 타지 못해 널리 알려지지 못했거나 다른 부수적인 요인들도 있을 수 있지만...그것도 아닐 경우엔 역시 '재미'에 따른 호응도 문제 아닐지요.
다수가 재미있어하느냐, 소수가 재미있어하느냐,하는 차이.
..
언젠가는 꼭 다양한 연령대와 취향을 아우를 수 있는, 재미의 폭이 큰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긴 주절거림을 접습니다.
(저도 많이 고민하는 문제다보니...'0';;;;너무 긴 댓글 달아 죄송합니다아)
저는 이영도 님이 정말 글 잘 쓰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드래곤 라자 이후로는 전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제가 좀 더 대중적인 재미를 원하는 독자이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그 후의 작품들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만, 퓨처 워커나 폴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등등은 장르문학에서도 순수문학 쪽에 가까운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정석적인 판타지의 계보를 밟으면서도 한국적인 언어유희의 재미를 제공한 드래곤 라자에 비해 장르문학의 특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거든요.
물론 풍부한 상상력, 치밀한 설정, 인물의 심리 묘사 등등은 여전히 감각적이고 날카로운 대 작가의 풍모를 갖추고 계시지만요.
하지만 드래곤 라자를 먼저 쓰시지 않고 갑자기 폴라리스 랩소디나 퓨처 워커부터 쓰셨다면, 지금처럼 인기가 있었을 지는 의문입니다. 둘 다 좋은 글임에도 말이죠. 아마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약간 더 매니악한 소수의 인기를 더 얻으셨을 거 같아요.
장르 문학이 재미가 중요하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장르 문학도 어디까지나 문학의 일종이에요. 이영도 작가님이 왜 대한민국 최고의 장르문학 작가로 꼽히시는 걸까요. 장르 문학이 순수 문학으로는 표현 불가능한 요소를 포함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 장르 문학의 새로운 길을 여셨기 때문이죠.
드래곤의 경우, 순수 문학에서는 연출하기 힘든, 절대 불가침의 권위자라는 요소를 완벽하게 표현가능한 요소입니다.
엘프의 경우, 순수 문학에서는 자칫하면 위선자로 표현될지 모르는 절대선을 완벽하게 표현가능한 요소지요.
순수 문학에서는 그저 회상씬으로만 표현해야하는 요소조차 장르 문학에서는 '신비'라는 요소로 표현 가능합니다.
폴라립스 랩소디, 눈마새, 피마새, 드라, 퓨처워커, 전부 사서 봤지만 드라는 두번째부터는 손이 가지를 않더군요. 하지만 폴라립스 랩소디와 눈마새, 피마새는 여러번 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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