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제대로된 우리말을 보려면 할머니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고전소설을 읽어 보세요. 저를 포함해서 모르는 사이에 쓰는 번역투 문장이 너무 많습니다. 먹물 많이 들 수록 더 심하지요. 아마 번역투로 써야지 권위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주 보는 예: 회의를 가졌다. Have a meeting의 직역
--에 다름 아니다. 70년대에는 보지 못하던 것입니다. 전형
적 일본어 번역 투
--에의: 일본말 흉내낼 때, --노 --노 하지요? 그 노
가 "의"아닙니까. "의" 95%는 없어도 충분히 말이되
는데 일본말과 영어 물이 들어 자꾸 씁니다.
엥? 겸손한 면모를 보여주었다가 수동태라뇨?
수동태란
~한 것으로 보여졌다
~에 의해 보고되었다
~임을 당했다
등등 능동태의 주어가 대상이 되는 문장형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목적어인 '겸손한 면모'가 주어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예: 겸손한 면모가 보였다) 이 문장이 수동태라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의미상 비슷하다고 해서 원래 문장이 수동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이 두 문장 (겸손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겸손한 면모가 보였다)의 주어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이구요. (누군가가) 겸손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우리 말에서의 수동(피동)은 피동접미사가 붙어서 파생됩니다. '-어지다'(되어지다), '히'(잡히다) 등등이 이런 표현이지요. 어휘적으로 피동 표현이 되었을 때 '어휘적 피동'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만 '보여 주다'가 이 경우는 아닙니다.
고추장국님께서 '외국어문법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어식이라는 이야기인가요? 그렇다면 영어 문장으로는 이 표현이
(Someone) showed a modest attitude (behavior) 정도 될 거 같은데, 이런 문장형이 우리말에는 원래 없었고 영어 번역투라는 말씀이신가 보군요. 뭐 이렇게 열심히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저도 사실 이런 문장들 보면서 그렇게 이상하단 생각 한 적도 없고 많은 분들도 마찬가지이신 것 같은데, 다음부터 이런 비평을 하실 때는 어디 어디가 문제인지를 말씀해 주셔서 모르는 사람도 좀 알 수 있게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언어학 전공자로서 한 말씀 드리자면, 언어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순수한 언어' 또는 '순수한 한국어'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물론 학교문법주의자들은 다르게 생각하겠습니다만). '순수한 한국어적 표현'이라는 것이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를 좀 더 생각해 보면 그 허구성을 알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 및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 창제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심지어 그 이후에도) 대다수의 문헌들에서 한자를 썼고, 따라서 한문을 언해한 문헌들의 문체는 거의 완전히 한문투, 즉 중국어투였습니다. 물론 이후 각종 서간문이나 한글 소설들, 그리고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언문일치 운동으로 말하는 대로 쓰는 방식이 도입되었지만,우리가 말하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문장이 이미 한문투 문체의 영향을 받았음은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개화 과정, 일제 식민지 시대, 그 이후 영어 및 외래어의 유입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미 우리말은 일본어, 영어 등 외국어의 영향이 뿌리깊이 박혀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아야만 할까요? 외국어의 영향을 받은 표현이라도 그것을 우리 식으로 다듬고 쓰면 그게 우리말이 되는 거 아닌가요? 원래 어떤 언어든 완전히 순수한 것은 없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변화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언어의 매력이 아닐까요?
물론 남의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주는 것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바르고 고운 말'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옳게 인식하는 범위도 다른데, 무조건 '짜증난다'라고 하고 보면 작가분들도 짜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도 전공자로서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러지 않도록 노력중이랍니다.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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