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좀 예전 무협들 중에 도가계열 주인공들이 나오는 작품들 중에 '착한' 주인공들이 여럿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나름의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일관되게 남을 돕고, 때로는 징치하고는 했었죠. 이런 경우야 우직하게 선을 행하는 일에 호쾌한 맛은 좀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납득이 안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착한 주인공'들의 경우에는 그 착하다는 게 어떤 기준이나 사상이 있어서가 아닌 케이스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냥 주변에 있는 사람이니까, 가족이니까 하는 이유로 무한 퍼주기를 시행하고(능력도 좋아서 주는 것도 많죠), 주변에서 배신을 해도 착하니까 봐주고, 엄청난 피해를 입을 뻔 했어도 봐주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죠.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이 주인공은 능력을 얻고 상식을 잃은 것인거냐 하고 짜증을 내게 되고, 개연성 없는 전개에 질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남녀 주인공이 동반해서 착한데.. 욕 엄청 먹었습니다. 주제파악 못하고 오지랖 넓다는 둥, 착한게 아니라 모자라다는 둥, 선민 사상 쩐다는 둥.. 또 뭐라드라..
호구도 아니고 퍼주는 것도 아니고 남들 억지 부리는 거 받아주지도 않고... 제 딴엔 나름 정당성 부여해서 진행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안좋게 보는 분들 많더라고요. 물론 그 정당성의 근거가 약하다고 느껴서 그렇겠지만(이 점에는 별로 동의 안합니다 근데.)
솔직히 열받아서 한동안 손놓기도 했습니다만.. 뭐 어차피 모든 분들 가치관에 딱 맞는 인물을 그릴 수는 없으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아니다.. 지금 다시 곱씹으니 또 열 오르긴 하네요 또 ㅋ
어쨌든 저는 글을 읽고 희망이나 긍정을 느끼는 게 좋아서 반대로 악인이 주인공인 글에는 전혀 손을 안댑니다. 욕심껏 살고 내멋대로 살아도 결국 승리하는 건 나, 이런 글 읽고나면 인생이 암담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요. 그리고 또 그렇지 않은 글을 쓰려고 하고요. 설령 모지리로 보이거나 외면당할 지언정.
저도 착한 주인공은 선호하지 않습니다. 일단 주인공 만능주의인 경우가 대다수 인데다가 주인공을, 혹은 주인공의 행위는 무조건 선한 것이라고 포장할려다 보니까 소설이 인위적이고 위선적이 되는 경우가 많죠. 특히나 이런 경우 윗분께서 언급하셨듯이 주인공이 도가계열(무당, 화산, 청성 등)일때 두드러 집니다. 또한 이때의 주인공은 최고위 항렬의 노고수의 제자여서 문파 안이나 속세에서 호칭을 뒤죽박죽 만들어놓으며 히로인을 붙여놓기 위해 속가제자로 되는 경우가 상당히 높죠.
그래서 전 소설제목이 무당00, 화산00 이런식이면 좀 기피하게 됩니다.
didn님과 터베님, 뒹골보노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공감할만한 기준도, 이유도 없이 호구짓을 하는 착한 주인공은 아무래도 읽다보면 화가 나죠. 주인공에 몰입도 되지 않으니 재미도 느끼기 어려워지고요.
악당이 주인공인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의 행동양식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고, 기준도 없이 내키는대로만 살아가는 주인공의 경우엔 그리 매력이 없지요.
결론은, 악당이 주인공인 경우엔 그의 성격과 행동을 납득시킬만한 배경설명(빈약하더라도)이 있는 경우가 많고, 선역의 경우엔 그렇지 않아서 착해빠진 주인공에 매력을 못 느낀다는 말이 나오는게 아닌가 합니다.
어.......굉장히 나쁜 주인공만 아니라면 글이 주인공 그자체로 파멸할 일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어차피 세상이 더 썩어 있다든가 하면, 주인공은 그냥 그 안에 살면서 적당히 현실적인 선택을 하다 보니 나빠지는 것뿐.
반대로 호구처럼 선해도 이야기가 굴러가는 까닭 역시 주인공이 이야기 자체를 쥐고 흔드는 일종의 먼치킨(?)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나의 굉장한 차캄으로 이 세계관을 지배하겠다!' 같은 느낌이랄까........현실에선 착하고 싶어도, 나쁘고 싶어도 주변환경의 제약으로 어느 정도 선을 유지하게 된다면 소설에서는 아무렇든 주인공보정으로 뭐든 할 수 있으니까요.
개연성(필력)이 있으면 착한 주인공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스텐다드한 설정이 싫죠. 예를 들어 주인공의 가족은 꼭 희귀병에 걸리고 주인공이 희생해야 겨우 살 수 있으며, 그래서 가족에게 무한 퍼주기.... 희귀병이란 것 자체가 천명중 한명, 만명중 한명이 걸리는 드문 병인데 꼭 주인공 가족이 걸립니다.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말하는 앞집오크 뒷집 엘프 산엔 미스릴광맥 동굴엔 기연 식으로 개연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덮게 됩니다.
티비에서 막장드라마의 막장 설정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천의 하나 만의 하나의 경우를 주인공 삼으면서 개연성(필력)이 없으면 보기 싫어지죠. 다만 필력이 좋아서 개연성을 부여하면 그런 경우도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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