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개인적으로는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 스토리가 권선징악이던 그 반대이던 캐릭터의 성향 문제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얼마나 개연성있는 스토리를 얼마나 매력있는 캐릭터들로 전개해서 흥미를 이끌어 갈수 있느냐가 재미있는 글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흐름이 라이트해지는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글 즉 활자를 매개로 하는 소설은 오히려 라이트해지는게 발을 옧죄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라이트한걸 원하면 말씀하시는대로 영화나 TV,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찾아볼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소설 즉 장르문학은 라이트해지는게 능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킬링타임용의 소설들 같은 경우는 막장 드라마와 같은 거라 이 이야기와는 다르지만요.
장르 문학에서 이야기가 흥미로워 지는 요소는 다음 두 가지죠. 매력있는 케릭터(감정이입) 흥미로운 전개(대리만족).
무겁고 가볍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벼운 이야기들도 감정이입과 대리만족이 부족하다면 '노잼'으로 평가될 뿐이란 거죠. 당연히 무거운 이야기도 감정이입과 대리만족이 잘 된다면 재미있다고 평가될 것이고요. 그점에서 벽안님과 제 생각은 일치하는 군요.
장르 문학에서 진중함은 굉장히 잘 쓰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장르 문학의 적은 노잼일뿐이죠. 저는 그저 대중적인 재미의 요소를 분석했을 뿐입니다. 데리다나 들뢰즈의 책 전혀 인기 없잖아요? 괜히 인문학의 위기란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장르 문학의 인기 요소는 오로지 대리만족으로 평가받습니다. 아무도 판/무 소설을 펼치며 철학책을 기대하지 않으니까요. 독자가 그걸 기대하면서도 책을 사 본다면 그 책의 작가는 이영도님처럼 아주 유명한 자일 뿐일 겁니다.
나머지 장르 소설들에선 성찰적인 요소는 대리만족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구성 요소로서 사용될 뿐이란 거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성찰요소는 밑으로 내려가는 욕망 생성 장치입니다. 너무 많이 쓰면 독자들이 지루해하죠. 하지만, 적절히 쓰면 욕망의 크기 자체를 더욱 크게 높여줄 수 있습니다.
장르 작가분들이 이 점을 자주 놓치시더라고요. 항상 위로만 치솟다가 끊임없이 강적을 생성해내고 그러다보니 개연성이 무너지고 결국 신을 죽이고 뭘 하지? 이런 상황에 옵니다. 그리고 강해진 자신의 힘에 대한 자각도 부족하다보니 더욱 더 개연성이 무너지고 독자의 공감도 무너집니다. 신의 힘을 가졌는데 3살짜리 어린아이가 되어버리죠. 그런 상황에선 대리만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감정이입과 대리만족이 흥미와 재미를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장르문학의 지향점이며 이것만이 인기를 끌수잇는 요소라고 하는건 납득하기 어렵네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건 상관없겠습니다만 그걸 마치 법칙인것 마냥 말씀하시는건 오만한게 아닌가 싶네요.
장르문학이라는 류 자체가 소비층과 생산층이 동일한 영역대의 비이상적인 문화이고 그 중 소비자의 대부분이 어린 10대인것은 맞습니다만은
오로지 대리만족과 감정이입만이 장르문학의 모든것이라 말한다면 그건 작가 스스로가 나는 자위용 글을 쓰는데 만족한다고 인정하는게 되버리겠죠.
대리만족과 감정이입은 흥미와 재미를 불러 일으키기 쉽습니다. 독자층을 생각한다면 쉽고 빠른 방법이겠지요.
하지만 흥미와 재미 그리고 그 모든것을 관통하는 읽고싶어지는 욕구는 꼭 대리만족과 감정이입이 아니더라도 가능합니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그건 결국 자신의 실력과 가치가 결국 그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공감합니다. 벽안님의 말대로 둘을 융합하기는 굉장히 어렵죠. 흑과 백을 섞어서 바둑판을 만드는 것과 회색이 되어버리는 것의 차이입니다. 대단한 실력이 있어야 회색이 아닌 바둑판을 만들 수 있겠죠.
오해의 여지가 있을 거 같아 약간 말을 덧붙였지만 늦었군요. 제가 굳이 장문의 글을 적은 것은 끊임없이 올라오는 독자들의 불평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며 문학성 따위 내던지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상품성 있는 장르 소설을 쓰고 싶은 분들을 위한 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 자위용 글을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보다는 그렇게 될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탓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감당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죠. 아무 보상도 없으니까요.
제 글이 오만하게 느껴지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래서 상품 소설들에선 개연성이 무너집니다. 유태인 노인 부부의 악랄함을 그려서 독자들의 양심도 편하게 만들어줘야 하니까요. 그 무너진 개연성을 얼마나 환상으로 덧칠하여 독자를 잘 속이느냐가 관건이죠.
뒹굴보노님이 말씀하신 것을 조금 확장해 주장해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거의 모든 권력의 작용엔 주변부가 피해를 입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를 위한 힘의 작용 또한 마찬가지죠. 소상인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면 대형마트에 입찰해 있는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죽어나가죠.
그래서 수많은 먼치킨 소설들은 그걸 독자들이 떠올리지 못하게 해야 하는 슬픈 사명을 지니고 있죠. 하지만, 작가분들이 그거까지 못 떠올리기 때문에 대부분 그냥 묻어서 좋게 좋게 지나가곤 합니다.
결국 감정이입이 지속적으로 잘 될만큼 매력적으로 살아움직이는 캐릭터들과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소설속의 여러 다양한 사건들이 얼마나 개연성있게 잘 어우러지는가의 문제이겠네요.
설정의 오류, 개연성의 붕괴, 케릭터의 단순화, 이런것들이 맞물려 결국 재미라는 큰 물고기를 놓치게 되는 거니까요.
'빨리 다음 장면을 보고 싶다!'
독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글이 좋은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안에 작가가 지니고 있는 사상들을 기가막히게 녹여놓는다면 명작이 탄생하는 거겠죠.
뭐든지 알지만 실제로 해보면 막상 잘 안되는게 우리네 삶인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비밀 댓글입니다.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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