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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아빠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선라이즈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어머니와 세 살짜리 동생은 매일 울었다.

여섯 살 이었지만 난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허기가 졌다. 허기를 달래려고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정신을 추스르고 우리를 키우려고 일을 시작했고 동생도 울음을 그쳤는데 나는 계속 배가 고팠다. 그 참을 수 없었던 허기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 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정확히는 6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고 3일이 지난 날, 나는 이 세상에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목격했다는 게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사람이 하늘을 붕붕 날아다녔다.

주먹에 맞지도 않았는데 커다란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고, 발그림자가 스쳐지나가면 아름드리나무가 수수깡처럼 부러 졌다.

싸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 지 눈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6년 전,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도 역시 21세기.

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하고 로켓이 우주를 왕복하는 시대라는 정도는 초딩인 나도 안다. 그리고 여긴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 노원구 중계동 뒷산. 제법 가파른 절벽의 뒷사면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곳이긴 하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말도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날도 나는 학교가 파한 후 친구들의 눈을 피해 학교 뒷문으로 몰래 나와 뒷산을 올랐다.

졸리기도 하고 배도 출출했지만 이 시간에 집으로 가다간 친구들을 만날 확률이 높았다. 말이 친구지만 그 놈들은 한시도 날 괴롭히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악마같은 놈들이다.

그 놈들은 지금 우리 집 가는 길 근처를 지키고 있을게 뻔했다. 날 괴롭히려고.

그렇다. 나는 소위 이야기하는 왕따였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 이렇게 친구들의 눈을 피하는 것이 전부인......

동네 뒷산을 오르는 입구에 매점이 있어 빵을 샀다. 다행이 날씨가 따뜻해져서 어두워 질 때 까지 시간보내기도 좋았다.

험한 산자락 뒤쪽으로 깎아지른 벼랑이 있는데, 그 벼랑 바로 아래의 암석군 사이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제법 넓직한 바위틈이 있었다.

우연이 그 곳을 발견한 후, 난 그 곳을 비밀 아지트로 삼아 힘들거나 쓸쓸 할 때 혼자 찾아와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운명의 그 날, 그날도 난 그 비밀 아지트에서 우유 1000cc 짜리 하나와 단팥빵을 열 개나 먹고 따스한 초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잠이 들었었다.

한 참을 잤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그때 내가 잠에서 덜 깬 상태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 가 의심했다.

그 엄청난 싸움 광경을 처음 본 기분이란......

그랬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귀신들 이었다. 검은 망토 같은 옷을 걸쳐 생긴 것도 마치 귀신같은 다섯 사람이, 귀신이 허공을 부유하듯 움직이며 흰 옷을 걸친 건장한 50대 중, 후반쯤 되어 보이는 사람 한 명을 에워싸고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시퍼런 칼과 쌍겸(낫)을 비롯 쇠막대기와 가시달린 곤봉까지 휘두르며 흰 옷의 남자를 공격했는데, 그 움직임이 너무 빨라 마치 검은 그림자만 번뜩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치 검은 유령들의 움직임처럼 움직이던 그들은 저희들끼리, 그리고 흰옷의 사내를 향해 소릴 질러 댔는데, 비록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언제가 영화에서 들었던 중국말 같았다. 흰옷의 사내는 위태위태하게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차갑게 눈을 빛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위태롭게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던 흰옷을 입은 사내의 모습이 어느 순간 내 눈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서 그들의 공격을 피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보법이 바로 그 유명한 소림사의 금강부동신공金剛不動神功이란 절기였다.

흰옷의 사내는 자신에게 덤벼드는 검은 망토에게 한번 씩 주먹을 내질렀는데 그 속도가 마치 번개가 무색하리만큼 빨랐다. 그리고 그가 주먹을 내 지를 때마다 마치 공기가 압축되었다가 터지듯 팡!팡! 울림소리가 퍼졌고, 그때 마다 다섯 중 한 명은 반드시 뒤로 튕겨 나왔다가 급하게 다시 자기가 있던 자리로 뛰어 들어가곤 했다.

싸움이 벌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인근의 나무들은 부러지고 바위가 박살나버려 제법 커다란 공터가 만들어졌다.

한동안 그렇게 실랑이하는 것 같더니 다섯 사내가 저희들끼리 무어라 소리치더니 비장한 눈빛이 되어 흰옷을 입은 사내를 둘러싸고 그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서서히 흰 옷의 주변을 돌던 다섯은 그 속도를 점점 빨리하더니, 마침내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빨라지면서 흰옷사내를 마치 거대한 돌개바람에 가두어 버렸다. 그 흰 옷 입은 사내의 옷과 수염 그리고 머리카락은 마치 폭풍 속에서 휘날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일순간, 그 다섯 명의 검은 유령들이 마치 포탄처럼 한꺼번에 다섯 방위를 점하면서 흰옷사내를 향해 덮쳐갔다. 파아아아!

착각이었을까, 순간 흰옷사내의 눈가에 웃음이 맺혀지는 것 같더니 두 손이 들어 올려졌다.

순간, 그 펼쳐진 흰옷사내의 두 손바닥에서 커다란 용이 고함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크아앙!

그 거대한 용은 덤벼드는 다섯 명을 번개처럼 덮치며 지나갔고, 동시에 그들은 비명과 함께 날아온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져 버렸다. “크아악!”, “크악!”. “컥!”

피를 화살처럼 뿜어내며 날아간 그들은 사정없이 바닥에 팽개쳐졌고, 꿈틀대다가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그제 서야 흰옷의 사내는 고개를 들어 내가 숨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여 숨으려고 했었다.

흰옷사내는 그때서야 울컥! 입으로 피를 한 모금 토해내더니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내 눈에 흰옷사내의 뒤로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놀라 흰옷 사내를 향해 소릴 지르려 했다.

그러나 그 보다 빠르게 흰옷사내의 눈이 크게 떠졌고, 그의 입으로 핏물을 화살처럼 뿜어져 나오며 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풀썩!

언제 당했는지 그의 심장근처에는 시퍼런 칼날이 튀어나와 번뜩이고 있었다.

그리고 주저앉은 그의 뒤에는 널브러진 다섯 유령보다 더 귀신처럼 생긴 노인이 한명 새롭게 나타나 섬뜩하게 웃고 있었다.

그 장면에 놀라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버렸다. “엄마.....!”

내 비명이 놀란 듯 새로 나타난 귀노鬼老는 내가 있는 곳을 쳐다보았는데, 그때 주저앉았던 흰옷사내가 번개처럼 일어나면서 돌아서더니 손바닥으로 귀노의 심장부위를 때렸다. 퍼억!

그 자염은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내가 어떻게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어쨌든 그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인해 귀노는 입으로 피를 쏟아내면서 흰옷사네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더니, 곧 철천지한이라도 맺힌 듯 나를 노려보고선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쿠당!

그와 동시에 흰옷사내 역시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버렸고.

나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 싸움터로 내려가서 쓰러진 흰옷사내에게 다가갔다.

싸움흔적과 시신이 뒤엉키고 흥건하게 흘러내린 핏물 속에서 그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도 의식하지 못한 채.

흰옷사내는 겨우 목숨은 건진 듯 했지만 부상이 너무 심각했다. 죽어가는 중이었다.

눈앞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있었고, 또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이 하나 없었다.

그러나 왠지 흰옷사내의 죽어가는 모습만큼은 결코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흰옷사내를 살리고 싶었다. 무언지 모르지만 그를 살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나는 생각 끝에 죽은 사람들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싸움은 그동안 내가 보아왔고 알고 있던 싸움이 아니다.

그 것은 TV나 영화 같은 것에서도 구경하지 못했던 무섭고 살벌했지만 또한 화려했고 또 신비가 가득한 그런 싸움이었다.

나는 그들이 싸우면서 보여준 모든 것이 전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언젠가 보았던 소설 속에서처럼, 그들은 언제나 심각한 부상을 당할 것이란 생각에 치료 약품을 가지고 다닐 것이다. 라고 생각 했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나는 시체들의 옷과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죽은 귀노의 속곳에서 비밀스럽게 기워 숨겨놓은 주머니를 발견했다.

난 거기서 신비로운 향기가 풍겨나는 은박지로 싼 우황청심원 같은 단환을 발견했고, 생각할 것 없이 그 약을 죽어가는 흰옷사내에게 먹였다.

그냥 먹이려니 받아먹질 못해 내가 조금씩 입으로 씹어서 침과 함께 입으로 넣어주었다.

그 도중에 그가 갑자기 신음을 내 뱉으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절반 정도는 내가 그냥 삼키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 약을 먹인지 얼마 되지 않아서 흰옷사내는 스스로 일어나더니 힘겹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선 무어라 웅얼거리더니 곧 전신으로 투명하며 흐릿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난 어지간히 회복한 그는 품에서 화골산이란 약품을 찾아서 시신들을 깨끗하게 처리해 버렸다.

그리고 그가 다시 일어났을 때, 그의 몸을 순식간에 늙어버린 듯, 머리는 하얕게 쉬어 버렸으며, 그 큰 덩치가 거의 1/2은 줄어 든 것처럼 왜소해 졌으며, 얼굴과 손등에는 주름살로 가득 했다.

이후 난 그를 부축해 우리 집으로 데려갔고, 그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기를 애원했다. 그가 애원을 한지 사흘이 지나서야 그에게 겨우 반승낙을 얻어 냈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설득해서 그와 함께 외가댁이 있는 강원도 오대산 근교로 내려갔다.

나의 오대산행을 완강하게 반대하던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겪고 있던 지긋지긋한 왕따 생활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해주자 그때서야 눈물을 흘리며 허락을 해 주었다. 그것도 딱 3년 만 있다가 서울 엄마 곁으로 올라오기로.

그리고 난 초등학교 6학년을 한 학기 남기고 오대산으로 내려가 지옥 같은 3년을 보냈다. 그리고 약속대로 중학교 마지막 한 학기만을 남기고 사부님과 함께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내가 서울로 떠난 후, 산군山君이 떠났다며 오대산 인근의 멧돼지들이 잔치를 벌렸었다는 소문이 돌았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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