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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가 너무 많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N.J.
작품등록일 :
2021.05.12 13:31
최근연재일 :
2021.05.21 16:0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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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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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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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 N번째 회귀자(2)

DUMMY

예린의 안내를 따라 인근의 산으로 올라가는 수호의 머리는 복잡했다.


과거로의 회귀. 만약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라면, 그의 상식선으로는 자신이 먼저 그 사실을 밝히지 않는 이상 남들이 알 방법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내 옆의 친구가 사실은 100살까지 살다가 죽은 할아버지가 회귀했다는 것을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거의 다 왔습니다.”


계속 앞만 보고 걷는 예린의 대답을 들은 그는 고민했다. 이대로 그녀를 따라가는 게 옳은 판단인가?


도망가는 것을 생각했던 수호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변변한 특성 하나 없는 무능력자. 그런 그가 빙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쪽지를 보낸 사람은 한국에서 가장 강한 레기온이라는 평가를 받는 황제의 주인. 그가 아무리 머리를 써도 휘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들뜰 게 아니었어.”


멍청했다. 과거로 돌아왔다고 여동생의 얼굴을 보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 왜 참지 않았지? 왜 돈을 버는 대신 수진이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어차피 보게 될 얼굴, 덕수 아저씨의 말대로 먹을 것을 살 돈을 버는 쪽이 훨씬 나았다.


약한 것은 죄가 아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까다로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약하고 가난한 것은 죄가 된다. 문제의 정답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한정되기 때문이다.


“다 왔습니다.”


그녀가 얼마 남지 않은 산의 정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임무는 여기까지였는지 고개를 살짝 까닥이고는 몸을 돌려 내려갔다.


“감사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힘을 써서 강제로 데려오는 것이 아닌 것만으로도 그녀는 그에게 감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짐꾼을 하면서 하도 다양한 헌터를 만났기 때문이다.


“감사를 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고개를 돌려 대꾸한 그녀는 고개를 숙인 뒤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얼마간 바라보던 그는 정상으로 향했다.

갈 수밖에 없다면, 비굴하게 가지는 않겠다. 그렇게 다짐한 그는 한 번의 심호흡 후에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발을 뗐다.


“왜 당신들이···.”


당당해지고자 마음먹었던 수호는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각오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강한 헌터라도, 저들을 눈앞에 두는 순간 저절로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혼자가 아니었어?”


그가 생각했던 인물은 휘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 이름도 없는 산의 정상에 한국을 대표하는 일곱 개의 레기온. 그것들의 주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실비실하게 생겨서, 고블린 한 마리라도 죽일 수 있겠어?”


뒤로 묶은 긴 레게 머리에 길게 자란 덥수룩한 갈색 수염.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에 전투복을 입고 있고,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처럼 몸 곳곳에 무기를 부착하고 있는 거한. 캐리온(Carrion)의 주인인 김칠두였다.


“그렇게 따지면 휘 님보다 던전 공략 수가 딸리는 당신은 혹시 퇴화한 겁니까?”


단발에 검은 안경,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입었고 사서나 학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비스의 주인, 다윈이 안경을 만지며 말했다.


“귀찮으니까 퍼뜩 치우고 가자. 어차피 이번에도 실패한다니까.”


심하게 벗겨진 머리, 불룩 튀어나온 배. 코는 항상 붉게 달아올라 있고, 하와이식 반바지와 메리야스 위에 반팔 남방을 걸친 중년 남성. 오른손에 소주병을 들고 있는 그가 블랙스미스의 주인이다.


“뭐가 됐든 괜찮아. 신만 믿으면 돼. 있지, 너는 신을 믿어? 안 믿으면 나를 믿는 건 어때?”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혼혈 여성. 그녀는 사시사철 수녀복만을 입고 다니지만,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는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레기온의 이름은 빌헬름, 전원이 그녀를 신이라 믿는 신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5분 후에 지호와 약속이 있어서. 나는 현철 아저씨의 의견에 한 표.”


머리를 길러 입을 제외한 얼굴을 가린 채 평범한 운동복에 캔버스화를 신고 있는 남자. 고금을 통틀어 가장 잘생긴 남자라 불린다. 정작 당사자의 얼굴을 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레기온의 여섯 주인이 입을 모아 말하니 대중은 믿을 수밖에 없다. 데테스타시온의 주인이며, 그의 레기온에 가입한 헌터는 전원 남성이다.


“나도 우리 설운이 피아노 연주 들어야 해.”


정수리를 중심으로 반은 빨강, 반은 파란색으로 바뀌는 신비한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노출을 싫어하기에 긴 원피스나 청바지에 후드티를 즐겨 입는 그녀가 InF의 주인인 설화다. 불과 얼음을 다룰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이중 특성의 보유자다.


“묻겠다.”


이 개성이 강한 여섯 명의 실질적인 리더. 한국 헌터들의 구심점인 붉은색과 금색의 오드 아이를 가진 남자, 휘가 입을 열었다.

레기온 황제의 주인이자 가장 강한 헌터라 불리는 그의 말에 수호는 뒷걸음질 쳤다.


“회귀자 수호, 너는 죽는 순간에도 몬스터를 한 마리라도 더 데리고 갈 각오가 되어 있는가?”

“예?”


몬스터를 죽여? 고작 고블린 한 마리에 손목을 뜯긴 내가? 말도 안 돼!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지.”


휘가 감정이 하나도 실리지 않은 눈동자로 그를 응시했다. 고작 그것뿐인데, 수호는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미래의 결과를 안 채로 과거에 돌아왔으니 앞으로는 탄탄대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같은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 자리에서 버려라.”

“···그러면 안 됩니까?”


용기를 쥐어짠 수호는 간신히 제대로 말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제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살면 안 됩니까?”

“된다.”

“네?”


휘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에게 바라는 것이 뭔지 종잡을 수가 없어졌다.


“네게 그럴 자격이 있다면.”


그가 허공에서 큐브를 하나 꺼냈다. 예린이 쪽지를 건넬 때처럼. 인벤토리. 특성이 발현되면 생기는 시스템의 기능 중 하나다.


“11형!”

“그래. 회귀자인 네가 모를 리 없지.”


휘의 특성은 웨폰마스터. 특성에 걸맞게 그는 총 열두 개의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 저마다 종류와 성능이 다르다. 열한 번째 무기인 저 스페이스 큐브는 던전을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큐브를 사용해 수호의 바로 뒤에 던전으로 들어가는 포탈을 만들었다.


“들어가라. 그리고 살아서 나와. 그러면 너는 네가 원하는 삶을 살 자격을 갖게 된다.”

“저는 무능력자입니다!”


부끄럽다.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 숨고 싶다. 하지만, 사는 것이 먼저다. 살 수만 있다면, 수진이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체면이고 명예고 다 시궁창에 버릴 수 있다.


“고블린 한 마리를 잡는데 제 손목과 자살용으로 지급된 독약을 사용했습니다.”

“짐꾼이었나?”


김칠두가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빛냈다. 하지만 휘에게 시선이 향해 있는 수호는 보지 못했다.


“그런 제가 던전에 들어가면 죽습니다. 죽을 거라고요!”

“그럼 죽어라.”

“···뭐?”


휘가 큐브를 인벤토리에 넣고 한 번 더 말했다.


“죽으라고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몬스터를 잡을 의지가 없는 회귀자 따위 이 사회에 필요 없어. 네 머리에 든 것으로 감당할 수 없는 나비효과를 일으킬 바에는 죽는 게 나아.”


빌어먹을, 과거로 돌아온 지 한 시간도 안 됐다고? 수진이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을 수는-.


“싸울 생각인가?”


휘의 짧은 말에 그의 전의가 말끔히 사라졌다. 저들은 일곱 레기온의 주인. 능력도 없는 그가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근성 없는 놈.”


김칠두가 허벅지의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 수호의 발 바로 앞을 맞췄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총기 및 화약류의 취급을 허락받은 레기온이 캐리온이고 그는 캐리온의 주인이다. 권총 따위 소음기를 달지 않고 막 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남자라면 근성을 보여.”


탕! 탕탕!


조금씩이지만 그가 맞추는 곳이 수호에게 가까워졌다. 그는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섯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을 때 그는 떠올렸다. 등 뒤에 무엇이 있는지.


“개 같은 새끼들.”

“좋은 표정이야. 조금은 근성이 보이네.”


김칠두의 웃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수호는 완전히 포탈에 빨려 들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휘가 혀를 차며 말했다.


“특성이 없다잖아. 여태껏 회귀한 놈들은 특성이 있었는데, 그에 맞는 어드밴티지를 줘야지.”


김칠두가 휘에게 바짝 다가가 말했다. 그리고 그를 내려다봤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그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솔직히 나는 너희 괴물 새끼들보다 쟤가 더 마음에 들거든. 불만 있어?”


권총으로 배를 조준하는 김칠두의 행동에도 휘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있다면?”

“한 판 붙자. 안 그래도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네 얼굴, 수류탄 다섯 개 정도 먹여 주고 싶었거든.”

“죽고 싶었던 건가?”


휘가 손잡이밖에 남지 않은 검을 손에 쥐며 말했다. 김칠두는 벨트에 차고 있는 수류탄의 안전핀에 손가락을 걸었다.


“있지 다들, 이번 당번은 나거든? 귀찮은 일 벌이지 말고 그만 꺼져 주지 않을래?”


둘 사이에 빼꼼 얼굴을 들이민 설화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고 하지 않았나? 바꿔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휘의 말에 그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음악 앱을 켜 그에게 보여 주었다.


천재 피아니스트 설운이의 첫 번째 완주곡 – 2020. 03. 20.

천재 피아니스트 설운이의 두 번째 완주곡 – 2020. 04. 01.


파일 중에 평범한 노래는 단 한 곡도 없었다.


“···미친년.”


김칠두는 혀를 차며 권총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자신의 중지가 얼마나 굵은지를 자랑하며 산에서 내려갔다.


“그럼 부탁하지.”

“응, 응. 얼른 꺼져.”


설화가 벌레를 쫓듯 두 손을 휘휘 내젓자 다섯 명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내려갔다. 모두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얼음으로 의자를 만들어 그 위에 앉았다.


“어디 보자. 오늘은 어떤 곡을 들을까?”


그녀는 행복한 고민을 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수호는 기겁했다. 특성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시스템의 메시지가 보이는 것은 포탈형 던전의 특징이었으니까.


“젠장, 젠장!”


회귀자 전용 인스턴트 던전

난이도 : ???


“난이도가 측정 불가?”


던전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던 수호는 설명란을 확인했다.


- 던전을 클리어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던전의 중심부에 있는 핵을 부수면 된다. 만약 이 던전조차 공략할 수 없다면 그냥 이곳에서 죽는 게 나을 거다.


휘. 그 사람의 말투였다. 당연하다. 애초에 이 던전을 그가 만들었는데.


“이건 너무-.”


-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역시 죽어라. 우리 모두 던전을 클리어하고 살아남았으니까.


“빌어먹을.”


- 던전은 반드시 클리어되었을 때의 보상을 마련해 놓는다. 수고했다는 한마디가 전부는 아니니 노력해 보도록.


“보상?”


그는 조금 더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보상 : 당신의 특성에 가장 적합한 것이 지급됩니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특성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보상이라는 게 특성에 가장 적합한 것이라니.


“이건 애초에 깨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거잖아.”


할 수 없어. 죽는다. 무조건 죽는다. 고블린 네 마리를 이기지 못해 동생의 복수도 완벽하게 하지 못한 머저리 같은 내가, 난이도도 제대로 측정되지 않은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총?”


그의 옆에 소총이 한 자루 놓여 있었다.


“김칠두. 그 사람이 준 건가?”


던전에 원래 놓여 있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포탈에 총을 던져 주었다는 건데. 왜?


“잘 쓰겠습니다.”


어쨌건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에게 감사를 표할 수밖에. 그에게 이 총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손으로 총을 쥔 그는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너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잖아.”


그래. 이곳에서 우울함에 빠져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어떻게든 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수진이를 지켜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철컥.


그의 발이 땅 안으로 움푹 들어갔고, 버튼이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퍽.


“아아악!”


화살이 그의 왼쪽 다리에 박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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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빌런 번호 24601(2) 21.05.16 27 0 12쪽
6 2. 빌런 번호 24601(1) 21.05.15 33 0 13쪽
5 1. N번째 회귀자(5) 21.05.15 3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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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N번째 회귀자(3) 21.05.13 5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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