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산의 신고식
이산은 강 중령에게 인간 비아그라였다. 이산이 배속되어 온 이후로 강 중령의 고개는 빳빳하다 못해 뻣뻣한 경직성 목뼈 세움증 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크롬웰 장군은 조금 전 끝난 파병대장 회의에서 강 중령의 그 빳빳함에 배알이 꼴리고 아니꼬워 미치는 줄 알았다. 이제서야 고개 숙인 남자의 아픔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본회의가 끝난 후 티타임에서의 저놈의 너구리는 말은 얼마나 공손하고 나긋나긋하게 하던지 너구리 영어에 기름이 저렇게 좔좔 흐르는지는 오늘 에서야 알았고 느끼해서 속이 느물느물했었다.
다 좋다 뻣뻣하던 빳빳하던. 우라질 그런데 이제 본격적인 승리의 청구서를 저 너구리가 내미는 둘만의 이차전을 생각하니 자기의 고개도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로
“사령관님! 이제 둘만의 좋은 만남의 시간을 가져야하지 않겠습니까?”
또또 기름이 넘친다 너구리의 입에서
“알았어 알았고, 나 아직 사령관 아냐 부사령관이라고” 퉁명스럽게 톡 쏘는 말에
“아이! 무슨 말씀을 이미 내정이 됐고,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닙니까? 크롬웰 사령관님!”
하 정말 밉다 오늘은 유난히 더 밉다 말이라도 못하면 덜 미울텐테
“그래! 청구서 내밀어 봐!”
“무슨 말씀을 청구서라니 말도 안되는 얘깁니다. 그냥 부탁드리는 겁니다, 부탁”
너구리가 펄쩍 뛰는 시늉을 한다, 하! 자신도 너구리라는 별명이 있고, 자신이 강 중령에게 너구리라고 했지만 이럴 때는 자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너무 별명을 안성맞춤으로 지어 주어서
“그래! 그래! 알았고, 그 부탁이란 거 말해봐”
“물론 부탁입니다만 사령관님의 훌륭하신 인품으로 볼 때 제 부탁을 들어주실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라며 펄쩍 뛰었던 너구리가 내려오면서 못을 박아 넣는 게 아닌가? 햐! 세상에 청출어람이라지만 이젠 작은 너구리가 큰 너구리를 잡는구나 잡아
“흐흐흠! 그러니까 뭔데 그래?”
터져나오려는 욕을 참느라 간질간질한 목구멍을 헛기침으로 잡으며 눈으로 있는 욕 없는 욕 다 쏘아 보냈다.
이크! 여기까지다. 더가면 오버를 넘어 밍크가 된다. 큰 너구리의 저 눈빛은 여기까지라는 위험신호다.
“저! 사령관님 저희 얘들이 그동안 외곽근무로 고생을 심하게 해서 근무지를 당분간 만이라도 좀 변경을 해 주십시요”
예상했던 요구조건이지만 일단은 빼고 볼일이다.
“흠! 근무지조정이라? 강 중령도 알다시피 근무지 조정이란 워낙 각 국가간 첨예한 문제라서”
한발 빼니
“그러니 이렇게 사령관님께 부탁드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두 걸음 밀고 들어온다. 약속한 게 있으니 근무지 조정을 안 해줄 수는 없지만 최대한 적게 하고 뭔가를 얻어와야 꼬인 배알이 좀 풀릴 것 같았다.
“이것 참 곤란하네, 안 해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무 명분도 없이 덜컥 바꿔버리면 존슨이나 나케야마 등이 난리를 칠 거고 이걸 어떻게 한다” 하며 웃음기 있는 눈으로 강 중령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 저 너구리가 또 시작하는구나 햐! 정말 한번을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구나’
“그럼 사령관님의 좋은 생각은 무엇입니까?” 라고 살짝 꼬리를 흔들며 한자락 깔았다.
“그것 참 그렇다고, 내가 우리 강 중령에게 못할 짓을 할 수는 없고”
역시 큰 너구리다. 깔아 논 자락에 쉽게 안 걸려든다.
“강 중령은 좋은 아이디어 없어? 떠벌이들 조용하게 하고 스무스 하게 넘어가는”
야 이젠 역공까지
“글쎄 말입니다. 제일 쫄따구에다 머리도 별로 좋지 않아서”
기름 바르고 빠져나왔다.
햐~ 저넘의 기름 주둥이를 탁 때려주고 싶었으나 자신의 노림수를 아직은 깨달을 정도까진 아닌 손오공이란 생각에 속마음을 감추고 시치미를 뚝 떼며
“그럼 이렇게 하지, 근무지 조정을 하는 대신 강 중령이 나에게 명분을 만들어 주는 기브앤 테이크로”
참 징한 너구리다 끝까지 밀당이다.
“테이크는 알겠는데 기브라시면?”
이건 정말 모르겠다. 저 너구리가 뭘 원하는지
“참! 어디를 맡고 싶다고 했지?”
휴우 졌다 진짜 진을 빼고 있다.
“다운타운입니다.”
요놈이 이제 손을 드는구나 라는 흐뭇함에
“아 그렇지! 다운타운 경비, 야 이거 벌써부터 떠벌이 존슨이 꿍시렁이 안들어도 오디오네 오디오야”
당신은 비디오에 오디오까지 쌍디오요 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으나 부하들 얼굴이 떠올라 꿀꺽 삼켰다.
“왜? 어디 안좋아?”
이젠 드리블까지 나왔다.
“아닙니다. 드릴 게 없는 제가 뭘 드려야 사령관님 고민을 풀어드릴 지 걱정이돼서 그렇습니다”
야 이놈도 역시 보통 놈이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빈틈을 노리니. 하지만 자기의 의도는 눈치 못챌 것이니 이쯤에서 풀어줘야 겠다고 생각한 크롬웰 장군은
“다운타운을 6개월간 맡되, 거 왜 누구야? 그 친구 있잖아?”
“네? 그 친구라면? 혹시 이산을···”
“아! 그래 그 친구 우리 빅죠를 꺾어 나를 이렇게 곤혹스럽게 만든 친구, 이산? 음 그 친구를 당분간 파견해 주는 걸로 하지?”
“아! 그런데 어디에 근무시키시려고?”
“응! 개인 전술훈련 교관 쪽을 맡길까 하고, 무술실력이 정말 뛰어나더군”
“네에! 그런데 사령관님 몇 개월정도를 생각하십니까?”
“어! 일단 6개월, 근무 조정기간과 동일하게 하지 뭐 어때?”
“네! 잘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근무지 조정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라며 경례를 한 후 크롬웰 장군의 사무실에서 나오는데 뭔가 찝찝한 게 꼭 응가 하고 뒤를 안 닦은 것 같은 기분에 강 중령은 자기가 뭘 빼먹었거나 당한 것 같아 근무지를 조정을 받았음에도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일단 자기의 직속상관인 한국군 특수전 사령관인 채필영 소장에게 보고하고 이유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한국군 막사로 돌아왔다
다음달부터 다운타운 경비업무를 맡고 미군 합동지원 업무는 6개월간 없다는 소식에 한국군인들은 난리가 났고 그 이유가 이산의 승리로 강 중령이 크롬웰 소장과의 내기에서 근무지 변경을 내 걸어 관철시켰다는 것을 알고 모두들 다시한번 이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이산은 강 중령의 호출을 받고 대대장실로 갔다.
경례를 마친 후 대대장과 일중대장 그리고 팀장인 이혁수 중위와 함께 의자에 앉은 이산에게 말했다.
“이 하사! 크롬웰 사령관이 우리 부대 근무지 조정을 해주면서 자네를 6개월간 파견해 달라고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응했다. 근무는 미군 특수전 개인전술 교관으로 한다고 하는데, 그건 확실하지 않고 일단 자네가 가면 별도의 명령이 있을 것이니, 따르면 된다. 아무리 상명하복의 군대라지만 다른 나라 군대로 파견을 나가는 건 얘기가 달라. 자네의 의중을 먼저 물어보는 게 도리에 맞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 이였다는 걸 이해해 주길 바란다. 미안하다” 강 중령의 마음이 담긴 얘기에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근무하고 오겠습니다” 라며 이산은 마음 쓰지 않았다.
강 중령을 보내고 크롬웰 소장은 쓴맛을 다셨다. 다운타운에 대한 근무조정은 이미 캠벨을 통해 어느정도 자락을 깔아 놔서 별 문제없지만 한국군을 전장에서 더 활용하고자 했던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국군은 여기에 온 다국적 군인들 중 가장 정예였다. 물론 영국군과 프랑스군도 강했다. 하지만 그들은 용병이란 한계가 있었고 한국 군인들은 훈련과 실전에 임하는 자세부터 달랐다. 자신이 강 중령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부하들에 대한 자부심과 아끼는 진심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 역시 수많은 부하들을 아끼고 그들의 희생을 최대한 막아야 하는 지휘관이었기에 한국군의 활용도를 높이고자 했으나 계획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모든 게 그 놈, 그 괘씸한 놈 때문이었다. 쪼만한(?)놈이 빅죠를 이기는 바람에 자신의 계획이 무산되어 모든 게 꼬인 거였다. 그래서 그 놈을 조금은 아주 쪼금은 혼내 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속마음은 이산을 곁에 두고 관찰하고 싶어서였다. 한달 전, 켐벨을 시켜 받아 본 이산의 인사기록카드를 보고 정말 놀랐었다. 모든 훈련 성적이 최상급 이상인 특급으로 나와 있었고, 한국군의 관리대원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전미 군인들 통틀어서도 동급수준의 대원들은 몇 안될 수준이었다.
자신은 한국 특수부대원들의 훈련이 얼마나 지독하고 엄정한지 잘 안다. 미군보다 더하면 더했지 전혀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고, 훈련수준을 측정하는 기준 또한 놀랄 정도로 높았다.
생각 같아서는 미군으로 어떡하든 데려와 옆에 두고 싶지만 한국군의 카운터 파트너인 채 장군의 여시 같은 머리에 안 걸릴 뾰족한 방법이 아직은 없어 일단 파견을 근무지 조정의 반대급부로 요구했던 것이다. 이산 생각에 사람 욕심이 겁나 많은 크롬웰 소장은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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