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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찬 님의 서재입니다.

사내 이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지찬
작품등록일 :
2022.01.02 22:13
최근연재일 :
2022.07.11 13:55
연재수 :
82 회
조회수 :
216,567
추천수 :
4,975
글자수 :
427,558

작성
22.02.04 15:46
조회
3,293
추천
59
글자
7쪽

8. 하얀 분노

DUMMY

잠시 후 정밀수색을 마치고 마을 공터에 모인 1팀 조장들은 조사내용을 이혁수 중위에게 보고하고 미군을 기다리며 대기하기 위한 각 조의 위치를 정한 후 조원들에게 돌아갔고, 삼조는 공터를 벗어나 마을 초입으로 들어오는 산등성이 쪽으로 이동 퇴로를 확보하기로 하였다.


마을외곽 수색을 마친 알파팀, 베타팀과 합류해 팀장회의를 마치고 이번 작전의 지휘관인 스미스 대위의 보고와 본분의 지시를 끝으로 철수하기로 한 대원들은 1팀을 선두로 베타 알파의 순으로 헬기 착륙장소로 이동, 헬기 도착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잠시 후 도착한 헬기안에서 이 중위는 “이번 탈레반의 공격에 사망한 마을 주민은 80여명이고 납치된 사람들 수는 확인할 수 없으며 부상자는 없었다. 공격한 탈레반의 흔적은 찾았으나 산속으로 도주, 우리의 병력과 화력만으로 추격 섬멸은 오히려 적의 매복 공격에 당할 우려가 있어 철수를 본부에서 결정한 것이다. 수고들 많았다” 라고 피해상황과 철수이유를 설명하였으나, 이산의 머리에는 들어오지 않고 오직 현장에서 느낀 분노와 인간에 대한 온갖 생각들이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기지로 귀환하는 헬기와 귀환해서도 이산은 온통 처참한 광경과 인간에 대한 각종 상념에 개인 정비시간에도 동료들과 단절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산의 이러한 모습을 헬기 안에서부터 유심히 살피던 최 상사가 이산을 불렀다.


“이 하사!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할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살짝 놀라며 생각에서 깨어나 이산이 “아! 네!”하며 최상사를 따라 나섰다. PX에서 맥주를 두 캔씩 손에 쥐고 그늘 벤치를 찾아 앉은 두사람은 잠시 말없이 시원한 맥주를 들이킨 후 말했다.


“나도 이런 참상은 처음이야, 이곳에서 지낸 6년동안 크고 작은 민간인 피해와 군인들 간의 전투로 인한 희생은 봤었지만, 마을 한곳을 완전히 말살해버린 경우는 처음이라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감당이 안되는군”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이 하사! 자네는 자네에게 살이 있다는 큰스님의 말씀과 빨리 돈을 벌어 할아버님과 한의원을 차리고 싶어 여기로 지원해 왔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은 어떤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이산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답했다.


“제게 살이 있어 그것을 풀어야 된다는 큰스님 할아버지의 말씀은 모르겠습니다. 워낙 크신분이라 그분의 뜻을 감히 제가 헤아릴 수가 없어서입니다. 그러나 돈을 벌어 가겠다는 제 생각은 정말 철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곳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닌 삶과 죽음을 보고 인간의 악함을 보는 곳이지 돈을 버는 곳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의 악함이라! 자네 인간의 악함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해 봤나?”


“글쎄요, 아마 욕망이 아니겠습니까?”


“맞네! 인간의 욕망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지, 욕망이란 괴물은 인간을 좀비로 만들지, 욕망의 좀비, 끝없이 소유하고 탐하며, 남들을 지배하고 탄압하며 평화와 공존을 없애고 침략과 전쟁을 일으키지, 이곳의 불행 또한 그러한 맹신적인 믿음의 욕망이 만들어 낸 비극이고, 이러한 인간이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겠나? 개좆 같은 소리지 한마디로”


자조 섞인 말로 끝맺음 하며 손에 든 맥주를 단숨에 들이킨 최 상사의 말에 이산은 충격을 받았다. '욕망의 좀비'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말이고 생각이었다.


물론 욕망이 다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개인과 인간 세상 발전의 동기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욕망이 불러일으킨 불행한 일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 지금도 진행중이지 않은가?


개인은 개인대로 집단은 집단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끝없는 욕망의 충족을 위해 미친듯이 상대를 물어뜯고 죽이며, 또다른 상대를 찾아 물어뜯어 죽이지 않는가? 경쟁이란 포장을 두르고 말이다. 경쟁의 기본전제는 공정인데 공정한 경쟁이란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그림 같은 얘기고 전설이지 현실은 어떤가? 자신의 대학 선후배들도 금수저, 흙수저 하며 침 튀기며 술집에서 울분을 토하지 않았던가?


이산이 자신의 말에 무언가를 느낀 듯 깊은 생각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본 최 상사는 새 캔맥주를 따 한 모금 마시고 자신도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어갔다.


나에게 이 땅 아프카니스탄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 무엇 때문에 6년간이나 이 땅에 있는가? 보이는 건 황량한 땅들과 전쟁의 삶에 찌든 사람들의 얼굴, 총과 칼, 폭탄에 죽은 시체들만 있는 이 땅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또 찾고 있는가? 자신이 생각해도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는 최 상사였다.


돈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기 여자를 사귀거나 여기 사람들과 인연을 길게 맺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연민 때문인가? 이 사람들에 대한 연민.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석양이 지는 이곳의 지평선을 보고 있고 저녁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에서 따뜻하면서도 애잔해 눈가가 촉촉해지는 마음이 떠오르곤 하고 한국에 잠깐 있을 때도 그게 그리 보고 싶어 다시 이곳으로 와 수년간을 더 보내고 있지 않은가?


아마 삶에 대한 연민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문득 최 상사의 뇌리에 떠올랐다. 우리들 모두가 어깨가 무너지고 등이 휘도록 무거움을 짊어지고 가는 삶의 과정들이 이곳에서는 생존과 죽음이란 극단적인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어 자신의 가슴에 무언가를 던져주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사람이 각자의 생각에 깊이 빠져든 만큼 밤도 깊어져 하늘에는 별이 밤에만 피는 들판의 야생화들처럼 피어나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두사람은 각자의 생각에서 벗어나 밤하늘에 핀 수많은 야생화를 보며 최 상사가 말했다.


“참 아이러니하지 낮의 땅에는 피와 죽음이 피어났었는데, 밤엔 이리도 많은 아름다운 별의 꽃이 피어나니, 같은 곳인가 싶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누가 믿겠습니까?” 이산 역시도 촉촉한 마음을 드러냈다.


“자연은 이처럼 아름다운데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왜 욕망의 좀비가 되었는지?” 답답한 마음이 묻어나는 최 상사의 마음만큼이나 이산의 마음도 무거워지는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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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9. 칸다하르의 전설이되다 22.02.07 3,308 60 17쪽
» 8. 하얀 분노 22.02.04 3,294 59 7쪽
14 8. 하얀 분노 22.02.02 3,468 54 10쪽
13 7. 두번째 격투를 하다 22.01.31 3,515 67 24쪽
12 7. 두번째 격투를 하다 +1 22.01.28 3,550 64 11쪽
11 6. 지독한 전쟁을 보다 22.01.26 3,560 65 11쪽
10 6. 지독한 전쟁을 보다 +1 22.01.24 3,672 63 10쪽
9 5. 전쟁이 만든 세상 – “캠프 다운타운” (3) 22.01.21 3,749 63 15쪽
8 5. 전쟁이 만든 세상 – “캠프 다운타운” (2) 22.01.19 3,875 77 16쪽
7 5. 전쟁이 만든 세상 – “캠프 다운타운” +1 22.01.17 4,092 83 17쪽
6 4. 전장(戰場)을 보다 +1 22.01.14 4,393 9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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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크레이그의 도발 그리고 이산 +2 22.01.10 4,358 98 10쪽
3 2. 크레이그의 도발 그리고 이산 22.01.07 4,467 93 11쪽
2 1. 전장에서 격투경기를 보다 22.01.05 4,925 95 14쪽
1 1.전장에서 격투경기를 보다 +3 22.01.03 5,794 97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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