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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찬 님의 서재입니다.

사내 이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지찬
작품등록일 :
2022.01.02 22:13
최근연재일 :
2022.07.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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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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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558

작성
22.01.2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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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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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글자
11쪽

6. 지독한 전쟁을 보다

DUMMY

시 외곽의 황량한 마을을 지나 하차지점에서 승차를 한 일행들 모두는 숨막힐것 같은 깊은 침묵속으로 빠져들었다.


대원들의 깊은 침묵의 원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대로 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 최환일 상사는


“너희들의 충격과 심리적 갈등을 모르진 않지만 이대로 넘어가는 것은 결코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질 않기에 한마디 한다. 우리는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군인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군인의 길을 지원해서 여기 와 있다. 오늘 우리가 보고 대면한 현장이 너희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 충격의 순간이 우리에겐 오늘 너희들이 마주한 죽음의 모습을 만들었던 적들에게 기회의 빌미를 줄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잠시 충격에 빠졌었고, 지금 무척 반성하고 있다. 나의 충격에 의한 방심이 나만의 위기가 아닌 우리 동료 전체의 위기를 부를 수 있다. 아니 꼭 그렇게 된다. 오늘 우리는 하늘의 도움으로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군인이고, 여기는 전쟁터다, 모쪼록 마음의 결단과 빠른 회복 바란다.”


최 상사의 말이 머리속으로는 백프로 맞는 말이라 수긍이 가지만 마음과 감정으로는 받아들여지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산 역시 다른 대원들과 비슷한 마음과 감정이었다. 만일 그 현장에 숨어있던 탈레반들이 충격 받은 한국군에 공격을 가했다면 자신을 포함한 전 대원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아마 전멸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현장들을 보는 순간 오늘 충격을 마치 아무렇지 않게 이겨내고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여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출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었다.


군인도 사람이다. 죽음을 곁에 두지만 그렇다고 두렵지 않고 초연할 수 있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곁에 있어 더욱 두렵고 공포스러워 그걸 이겨내기 위해 웃음을 만들어 내지 않는가 말이다.


꼬리를 무는 상념들이 이산의 머리속을 어지럽힐 때 팀장인 이혁수 중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임하사님 말씀이 백 번 맞다, 지금 감정상 마음속으로는 쉽게 못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 안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하지만 나 역시 여러분을 통솔해야 하는 지휘관의 입장을 잠시나마 잊고 충격에 빠졌던 거 자책하고 있다. 감정과 현실의 차이를 직시했으면 한다. 우리는 감정을 갖고 있지만 현실에서 살고 있고, 이곳은 사람이 무수히 죽어 나가는 전쟁터다, 총 한방에 죽으나 폭탄에 터져 죽으나 똑같은 죽음이고 죽음 앞에 깨끗함과 더러움의 차이란 없다. 우린 모레 다시 이 현장으로 온다. 아니 다음달에는 더한 현장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게 현실인 이곳은 전쟁터다. 부디 충격을 빨리 추스리길 바란다. 그리고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 하자!”


이 팀장의 말이 이산의 가슴에 박혔다. 깨끗한 죽음도 더러운 죽음도 그냥 죽음일 뿐이란 팀장의 말이 이산의 머리와 가슴을 울렸다.


큰스님 할아버님이 뭐라 하셨던가?


육신은 우리가 입는 옷일 뿐이고, 삶과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닌 같은 것이라 하셨지 않았던가? 맞다, 죽는건 그냥 죽는거다. 총 한방에 죽던 폭탄에 죽던 그냥 죽음일 뿐이다. 그리고 늙어 죽나 병들어 죽나 모두가 하나, 죽음일 뿐이지 우린 눈에 비친 모습이 다르다 해서 다른 종류의 죽음은 아니지 않던가? 죽음의 모습, 즉 형태만 다를 뿐이다.


옷이 헌옷, 새옷, 정장, 캐쥬얼 모두 다르지만 결국은 모두 옷이듯 말이다.


이산은 조금씩 충격에서 벗어나 나름의 정리를 하고 있었고, 큰스님 할아버지의 말씀과 그 동안의 명상호흡법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음을 작게나마 정리하고 있었다.


귀대 신고와 보디캠의 상황실 반납을 마친 대원들은 이혁수 팀장과 최환일 상사를 제외하고 전원 내무반에 들어왔으나 이 곳의 분위기도 차량내부의 연장이었다.


“휴”


“휴우”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나온 한숨이 순식간에 전염병처럼 퍼져나가 내무반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자


“자자! 씨발, 고민도 밥 먹고 하자, 라면에 밥 말아 얼큰하게 속 풀고 고민을 하든 고민을 때리든 하자고”하며 고참인 정 중사가 무거움을 깨어내려 하자 단짝인 조 중사가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아, 거기다 건의해서 맥주도 한잔 하면 금상첨화고, 가자고” 하며 일어나 식당으로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대대장 강재범 중령이 중대장 박 대위와 이 팀장, 그리고 최 상사를 대동하고 들어와 선임인 정 중사의 경례를 받은 후 말했다.


“오늘 전투현장 보고와 동영상을 보고 나를 포함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하물며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제군들의 충격을 미루어 충분히 짐작간다. 나 역시도 이곳으로 와 여러분들을 지위하며 파견대장 회의를 통해서 많은 참상과 사고현장을 직접 보기도하고 동영상으로 보기도 했지만, 오늘의 참상은 보기 드문 경우여서 좀 놀랐다. 길게 얘기 않겠다. 그 참상의 주인공이 우리가 될 수도 있다. 그게 전쟁의 현실이다. 하지만 잊어라, 안되면 묻어라도 두어라. 곱씹고, 되씹으면 정신과 마음의 병이 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스스로 이상을 느끼면 주저말고 상담을 받아라 너희는 군인이기 전에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부디 빠른 시간안에 벗어나길 부탁한다. 그리고 이 지랄 같은 전쟁이 빨리 끝나길 기원하자, 이상!”


중대장 박상철 대위의 경례를 받고 일일이 대원들의 어깨를 다독여 준 대대장과 중대장이 돌아간 후, 이 팀장의 “식당에 우리 팀 만을 위한 음식들이 대대장님 지시로 마련될 예정이니 개인 정비 후 6시 30분까지 식당으로 오도록” 하는 말에 무거움이 약간 걷히는 느낌이 들며 내무반은 개인 정비로 약간 부산해졌다.


1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에 12명만을 위한 위로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각자의 자리위에는 캔맥주가 놓여 있었다.


“이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은 음식도 술도 아닌 대대장님의 마음이고 우리가 이자리에서 풀어야 할 것도 슬픔도 기쁨도 아닌 우리들의 마음이다. 대대장님 말씀대로 우선은 묻고 천천히 잊어가도록 가자, 힘들었고 수고들 했다. 잊자!”


“잊자!”


이 팀장의 선창에 모두들 무거우며 나지막한 소리로 복창하며 한모금의 맥주를 마신 후, 점심도 걸렀지만 배고픔도 몰랐던 상황들에 대한 각자의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파병 전 교육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는 동영상을 보았다면 못 왔을 것 같아” 라는 운전병 안 중사의 말에


“나도 그랬을 거야, 정말 눈뜨고는 못 보겠더군” 기관총사수 지병문 중사가 고개를 흔들며 보태자


“야! 너희는 차량안과 위에서 봐서 좀 떨어져서 봤잖아, 나는 가서 코앞에서 보니 코로는 피냄새가 찔러오지 눈앞에는 잘려진 머리, 팔, 다리와 터져나온 내장과 각종 오물들, 정말 영화장면이라도 눈을 돌렸을 것들을 눈앞에서 보니, 꿈에서라도 볼까 끔찍하다” 2조 강일채 중사의 핀잔 아닌 핀잔이 들렸다.


“난! 솔직히 다리가 떨리고 온몸에 힘이 빠져 주저않을 뻔했어” 조 중사의 솔직한 마음표현에


“저는 창피하지만 게워냈습니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변 중사였다.


이렇듯 알코올을 빌어 조금씩 그 순간들을 돌이켜 본 창피한 군인답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작으나마 웃음소리도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 하사한테 좀 놀랐어, 솔직히 나보다 낫던데” 선임하사님의 칭찬섞인 소리에 대원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겨 있었던 이산이 얼굴을 돌리며


“아닙니다, 저라고 달랐겠습니까? 다만 산속에서 오래 살아서 감정표현이 좀 느리고 무뎌서 그랬습니다” 라고 답하자


“그게 그거지 뭐, 침착하고 냉정하다는 얘기잖아, 조 중사 봐봐, 바지에 지릴뻔 했다잖아” 하며 웃으며 분위기를 살짝 띄웠고


“야! 정 중사 지릴정돈 아니고 살짝 샐 정도였어” 라며 맞장구를 놓자


“그럼 안됩니다, 우리 팀 소문나요 소문나” 강 중사가 웃으며 말리는 시늉을 했다.


팀원들의 조금은 의도적인 노력들을 보면서 이산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어떤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있고 다른 사람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있는 경우는 허다했다. 그렇다면 그 두 사람은 한사람은 죽음을 보고 있고 다른 사람은 삶을 보고 있는 것인데 만일 그 두사람이 동일인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라는 생각과 그 생각 중에 작은 깨달음의 느낌을 얻게 되었다.

삶과 죽음은 우리 손의 손등과 손바닥 같아서 나누거나,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닌 하나 라는, 그래서 큰스님 할아버지가 생과 사는 같다 라고 말씀하셨구나 라는 작은 느낌의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깨달음의 느낌일 뿐 깨달음 자체는 아니었다.


누군가 전쟁을 창조를 위한 파괴라 했다. 참 개나발이다, 그런 소리를 한 놈이 전쟁의 참상을 겪어 봤는지 의문이다.


전쟁은 불행이다 그것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지독한 불행이다.

더욱 비참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 불행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여인이나 어린아이 등 가난하고 힘없는 노약자들에게 가장 많은 피해가 일어나고 힘있고 빽있는 사람들은 전쟁 중에도 기득권을 누린다. 많은 돈과 인맥을 이용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갔다가 상황이 안정되면 다시 들어와 잠시 놓았던 기득권을 찾아 약한자들의 피와 눈물을 희생삼아 찾아온 평화위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다시 시작한다.


전쟁의 역사가 지금까지 그것을 증명하고 있고, 여기 아프카니스탄도 예외는 아니다.


전쟁은 힘없고 돈 없는 자들만의 서로 죽이는 게임이다. 그리고 여기는 전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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