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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찬 님의 서재입니다.

사내 이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지찬
작품등록일 :
2022.01.02 22:13
최근연재일 :
2022.07.11 13:55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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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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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5
글자수 :
427,558

작성
22.03.1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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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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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글자
13쪽

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DUMMY

죠, 토니와 즐거운 수다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이산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깊은 상념에 빠져 들어갔다. 큰스님 할아버지인 현각 대사가 자신에게 살이 있으니 풀어야 하고, 군에 입대하면 알게 될 거라고 하시던 말씀이 무슨 뜻 이였는지 궁금했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을 가도 한 명의 사람도 안 죽이는데 자신은 정확하진 않지만 2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 아무리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이고 동료들을 구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서 였지만 살인은 살인이었다. 자기는 그냥 할아버지와 한의원을 차려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은 23살 청년일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휴우’하며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나왔다.


무엇이 자기를 여기까지 이끌었고 몰고 왔는가? 정말 현각 할아버지 말씀대로 운명인가? 운명이라면 그럼 또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산의 상념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운명 앞에서 어떻게 해야 되나? 문득 어제 꿈에서 할아버지에게 들은 현각 할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다.


‘얽매이고 집착하지 마라’


이산은 한의학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동양철학에 빠져들었고 스님 할아버지들 때문에 불교철학의 영향도 조금은 받았다. 그래서 현각 스님의 화두 같은 말씀에 깃든 심오한 뜻의 형상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할아버지께서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라고 말씀해 주셨던 ‘솔직하고 성실해라 그리고 존중하고 배려해라’라는 말씀도 떠올랐다.


그래, 운명이란 것이 알려고 매달리고 집착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맞서 싸우려 해도 싸울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솔직하고 성실하며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내 운명이 이랬었구나 라는 한자락이라도 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가자 라며 상념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좀 가벼워진 마음으로 몸을 풀려고 하는데 문이 열리며 크롬웰 소장과 캠벨 중령 그리고 담당 군의관인 제시카 대위가 들어왔다. 흠칫 놀라며 바로 경례를 하는 이산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경례를 받고 가볍게 포옹을 한 크롬웰 소장은


“산! 미안하고 정말 고맙네, 내 자네를 평생 마음에 둘거네” 라고 칭찬하자 이제는 영어 길이가 조금은 길어진 이산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할 일을 제가 했을 뿐입니다” 라며 겸손의 반응을 하자, 이산이 더욱 마음에 들고 기분이 좋아진 크롬웰 소장이


“누구라도 할 일은 아니지, 자네였으니까 가능한 일 이였고, 안 그래? 캠벨”


“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그런 일을 누가 합니까? 아니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냅니까? 그 불가능한 일을”


더해지는 칭찬에 쑥스러워 어색해하는 이산을 보며 제시카 대위는 아니!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일을 했기에 이 난리지? 정보과 존슨과 사귀고 있는 릴리 중위를 통해 알아봐야 겠네 라고 생각을 굳혔고, 그 생각이 그녀와 이산의 일방적인(?)만남의 시작이었다.


“산!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자네의 얼굴도 보고 감사와 사과의 인사도 전하고, 미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자네에 대한 보상을 알려주기 위함이네”


보상이란 말에 놀란 이산이


“제가 무슨 보상받을 만할 일을 했다고···.”


이산이 당황해하는 반응에 기분 좋은 미소를 띄운 크롬웰 소장이


“그럼 미 병사 3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20명이 넘는 적을 혼자서 전멸시킨 젊은 영웅을 모른 체하면 미 국민이 나중에 난리가 날 거야, 부사령관과 사령관은 물론 대통령까지도 청문회에서 추궁당하게 될 꺼야, 안 그래 캠벨?”


“아마 저는 직위 해제될 겁니다. 부사령관님”


캠벨 중령의 한술 더 뜬 맞장구에


“들었지? 그리고 미국은 감사를 알고 갚는 나라네, 비록 자네가 한 일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비해 작을지 몰라도 내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으니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하고, 부족한 것은 내 개인적으로 보답하겠네”


몸둘 바를 모를 정도의 칭찬과 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미 정부가 보상을 준다는 말에


“제가 이런 칭찬과 보상을 받아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감사드리고 특히, 부사령관님께서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라는 진정을 담은 이산의 감사에 크롬웰 소장뿐 아닌 캠벨과 이제야 어느정도 이산의 공적을 눈치챈 제시카조차 감탄하며 다시한번 이산의 인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크롬웰 소장은 이산이 마음에 든 정도가 아니라 이뻐서 미칠 지경이었고, 이놈을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작업을 시작했다.


“그건 됐고, 내가 산 자네에게 양해를 구할 것이 두가지 정도 있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다름이 아니고 정부에 보상을 신청 하려하니 자네의 영어이름과 후견인이 필요해서, 내가 자네의 영어이름을 마틴으로 지어서 올렸네, 산이란 이름이 영어로 마운틴이라 해서 마운틴은 좀 그래서 마틴으로 했는데 좀 그런가?”


“아닙니다, 너무 마음에 들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이산이 마음에 들어하자 속으로 흐믓해하며


“그리고 후견인도 내가 섰네, 내가 조금 그렇긴 하지만 ···.”


크롬웰 소장의 속마음을 전혀 모르는 이산은 너무나 감사해서


“제가 괜히 부사령관님께 많은 신세를 지게 되어서 죄송스럽습니다” 라며 몸둘 바를 몰라 하자, 대어중의 초왕대어를 낚아 올린 크롬웰 소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무슨 소리! 그렇게 고마워해주니 내가 기쁘지”


듣고 있던 캠벨 중령은 혀를 내둘렀다.


‘생도시절부터 독일전차로 불리던 부사령관이 야전밥 35년이 넘더니 너구리 독일전차가 됐네’ 라며 지금까지 채장군과의 통화부터 샌더스 사령관에게 한 마틴이란 이름과 대자 관계까지를 모두 한 화살에 엮어버리는 크롬웰소장에게 감탄을 하며 자기가 15년 동안 이양반을 띄엄띄엄 봤구나라고 인식하였다.


옆에서 두사람의 대화를 듣던 또 한사람 제시카 대위는 도대체 저 한국 군인이 뭘 얼마나 했기에 미군 소장이 저리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얘기하고 또 그 보상이란 것이 뭐기에 이러나 하는 궁금증이 좀 전 릴리를 통해 이산에 대해 알아보려는 마음에 조급함을 더했다.


“그럼 앞으로는 마틴으로 부르지, 괜찮지?”


“네!”


“자! 그럼 마틴과의 얘기는 잘 됐고, 옆방에 있는 죠 하사와 토니 병장을 봐야 할 텐데, 이 방은 좁고 어디 좀 넓은데 없나? 우리 모두 모여서 커피도 한잔 하면서 얘기할 곳?”


“회의실이 어떻습니까? 부사령관님” 제시카의 권유에


“흠, 너무 딱딱하니 휴게실은 어떤가? 제시카 대위”


“그럼 거기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가지, 마틴 자네도 함께 가자고”


마틴이란 생소한 호칭에 잠시 주춤하던 이산이


“네, 알겠습니다” 하며 따라나섰다.


제시카 대위의 사전통보로 휴게실 한편에 준비된 널찍한 자리에는 미리 도착해 있던 죠와 토니가 일어서 부 사령관에게 경례를 하고 악수를 마친 후 모두가 의자에 앉았다.


“자, 준비된 커피를 들면서 얘기하자고, 우선 죠 하사와 토니 병장 그리고 아직 회복중인 빌리 병장에게 고맙고, 고생 많았다는 위로의 말을 샌더스 사령관님을 대신하고 또 내 마음을 담아 전하네, 살아 돌아와서 정말 기쁘다. 물론 이번 작전에서 돌아오지 못한 많은 희생자들 때문에 정말 가슴이 아프지만, 그들과 자네들의 희생 덕분에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전사자 전원과 자네들에게 은공 무공훈장과 일계급 특진의 포상을 수여할 것이다. 단 한국군인인 이산 하사는 그가 보여준 영웅적인 희생과 혁혁한 공적에도 미국 군인이 아니라 포상이 아닌 별도의 보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상이 공식적인 정부의 방침이다”’


크롬웰 부사령관의 공식적인 포상발표를 들은 죠와 토니는 기쁜 마음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가 감사한 마음에 이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게 이산이 없었으면 불가능했고, 자신들은 이자리에 올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의 감사의 눈빛을 본 이산은 ‘축하해’ 라는 입술모양을 만들며 싱끗 웃었다.


“공적인 딱딱한 얘기는 끝났으니, 죠와 토니, 살아 돌아온 기분이 어떤가?”


관등성명을 대려는 두사람을 손짓으로 만류하며 크롬웰 소장이 묻자


“기쁘다기 보다는 감사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저희는 살아서 돌아온 게 아니라 구해주어서 같이 왔을 뿐입니다. 부사령관님”


죠의 진심어린 감사의 말에 가슴이 움직인 크롬웰 소장이 ‘저놈도 물건이네’하며 죠를 잠시 응시하다


“토니는?”


죠의 말을 들으며 엊그제 지옥의 현장을 잠시 떠올린 토니는 이산을 보며


“저는 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이산 하사가 저를 필요로 할 때 그 옆에 있을 뿐입니다”


크롬웰 소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두 사내가 주는 울림을 즐겼다. 참 좋았다. 나만 알고 이기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세상에 이런 기분 좋은 울림이 주는 감동은 정말 오랜만이고 그래서 좋았다.


캠벨 역시도 정말 오랜만에 사내들의 얘기를 들은 것 같아 뭉클해진 마음에 군인의 길을 20년 가까이 걸어온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고, 옆에서 두 사내의 얘기를 들은 제시카는 왠지 엄숙하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조용히 이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죠와 토니의 예상치 못한 뭉클한 감사의 말들에 이산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굴을 붉히며 딴 곳을 보고 있었다.


이산의 순진한 모습에 즐거운 웃음이 절로 나온 크롬웰 소장은 얼굴이 붉어진 이산을 더 놀리고 싶은 짓궂은 생각에


“그런데 마틴이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하던데, 그 뭐라더라 ‘컴위드, 고우위드’ 라던가? 머리에는 안 들어오던데 어쩜 그렇게 가슴에 와 박히던지, 내 놀랐어 마틴” 하며 이산을 놀리자 안 그래도 약간 붉으스레 하던 얼굴에 노을이 내려앉았다. 마틴? 마틴이 누구지 하고 궁금해하던 죠와 토니는 금방 이해를 하고 웃으며 이산의 노을 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부사령관님, 영어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며 머리를 긁적이자,


“내 놀리려고 한 말이고 실은 궁금한 게 있어서, 마틴” 크롬웰 소장의 부르는 소리에 쳐다보니


“만약 적들을 섬멸하지 못했으면 자네들 모두다 죽었을 텐데, 그럼 어떡할 뻔 했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해봤나?”라는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던 이산이 싱끗 웃으며


“그것도 ‘컴위드 고우위드’아니겠습니까?”라는 투박하지만 묵직한 대답에 죠와 토니는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크롬웰소장은 ‘저놈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선수구먼’ 하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캠벨 역시도 이산의 답에 ‘크롬웰 부사령관이 정말 아끼고 반할 수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하며 어느덧 자신의 가슴에도 뚜렷하게 자리잡는 이산을 다시 보았다.

컴위드, 고우위드의 의미를 모르는 제시카는 무척 궁금했지만 자신과 이산을 제외한 모두의 표정에서 보이는 감동 어린 비장함에 ‘정말 궁금한 사내네, 저 사람은’ 하며 입술을 살짝 씹었다.


이산은 역시나고, 죠와 토니에게도 마음이 간 크롬웰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 같아서는 자네들과 오늘 한잔 하고싶지만 자네들 몸상태가 아직 그러니 몸이 좋아지면 빌리까지 해서 내 자리를 마련할 테니 그때 한잔 하기로 하자, 다시한번 감사하고 고맙다 제군들, 아, 일어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있어” 하며 캠벨 중령, 제시카 대위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크롬웰 소장 일행이 떠나자 남은 세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사와 축하 그리고 빌리가 회복된 후 같이 하고싶은 것들에 대한 즐거운 수다로 시간을 보내다 각자의 병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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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15. 이어지는 인연과 이별 22.04.13 2,652 7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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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22.03.18 3,159 79 12쪽
» 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22.03.16 3,251 71 13쪽
31 13. 회상 ; 꿈을 꾸다 22.03.14 3,108 63 11쪽
30 13. 회상 ; 꿈을 꾸다 22.03.11 3,038 74 11쪽
29 13. 회상 ; 꿈을 꾸다 22.03.09 3,097 69 10쪽
28 13. 회상 ; 꿈을 꾸다 +1 22.03.07 3,116 67 10쪽
27 13. 회상 ; 꿈을 꾸다 22.03.04 3,203 66 10쪽
26 12. 전투 ; 전설이 되다. 22.03.02 3,262 67 22쪽
25 12. 전투 ; 전설이 되다. 22.02.28 3,141 62 17쪽
24 12. 전투 ; 전설이 되다. 22.02.25 3,199 66 12쪽
23 11. 인연이 시작되다 ~ 12. 전투; 전설이 되다. 22.02.23 3,151 6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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