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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안테나 님의 서재입니다.

푸른하늘의 학교 파괴 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TV안테나
작품등록일 :
2021.06.14 01:27
최근연재일 :
2021.06.20 09:0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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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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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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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쪽

10. 삼각관계.

DUMMY

10. 삼각관계.


한 바탕의 부 가입 소동이 있고 난 후, 다음 날이 찾아왔다.

“야, 뒤에서 밀지마!!”

“그건 내가 할 말이거든!!”

“우리 부에 들어와! 지금 들어오면 파격적인 조건으로..!!”

“거기, 새치기하지마! 줄을 제대로 서란 말이야!”

어제의 연장선이 이어졌다. 등교부터 오전 수업시간의 쉬는 시간마다 학교 내 수 많은 동아리 부원들이 나를 영입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래도 어제와 다른 게 좀 있다면 그들도 깨달은 게 있었던 탓인지 나름의 줄을 세워서 질서있게 찾아온다는 것인데...

“그...그만!! 무슨 학교에 부가 이렇게 많은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 수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반을 넘어서 복도 끝까지 이어진 줄이 나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전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눈치 봐야 할 것도 많은데, 자칫 학교 내 동아리에게 밉보인다면 그건 이미 끝난 목숨이나 다름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을 맞이했다.

“자, 이거 봐봐. 우리 부에 들어오기만 하면 학생회와 직접 이어질 수 있어. 너의 학교생활이 한결 편해질 수 기회라고!”

“아, 근데 그쪽으로는 내가 관심이 없어서...”

“처음엔 나도 그랬어! 하지만 잘 생각해봐 우리 부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콰앙! 우당탕!

“다들 적당히 해!!”

“....??!!”

거칠게 밀어붙인 책상과 뒤로 나자빠진 의자가 반 전체에 울려 퍼졌다.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린다.

그곳에 모든 이의 시선을 받으며 서 있는 사람은 No.509 하 신선 이였다. 갈색 머리에 싹수없을 정도로 거칠어 보이는 그는 처음 내가 3반에 왔을 때에도 학생부장 선생님께 퉁명스럽게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했었던 친구였다. 처음부터 날 바라보는 눈빛 또한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 보였고, 누가 봐도 다혈질 속성임이 분명했다.

“맨날 전학생, 전학생, 전학생, 전학생...!! 지겹지도 않냐? 저 녀석이 처음 왔을 땐 서로 미친 듯이 경계하더니 상점 하나에 이 악물고 달려드는 꼴이라니. 정말 헛구역질 나온다!”

술렁술렁

신선의 모습에 사방에서 웅성거리며 서로의 귓가에 작게 수군거렸다.

“자기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9클럽 애들처럼 양아치 꼴로 웬 훈계지?”

“꼴불견이야.”

꽝!

“쫑알거리지 마, 이것들아! 불만 있어?!”

수군거리는 소리에 신선은 아무렇게나 책상을 걷어찼고, 분위기가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저 녀석, 설마 같은 반인 나를 위해서...? 저 녀석, 어쩌면 괜찮은 녀석일지도...

“너희들이 그토록 원하는 전학생은 내가 박살 낼 거다!”

“....?!!!”

“학번승부다, 전학생!”

신선의 손가락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나를 가리켰다. 감격하던 나의 눈이 한순간에 휘둥그레졌다. 분명 그의 손가락이 나의 미간을 향하고 있음에도 현실부정을 시도하던 나는, 나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승부..? 나랑...???”

웅성웅성.

이런 뜬금없는 상황에 내가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는 건 주변 모두가 일제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들떠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이곳의 정신상태는 되먹지 못한 게 분명하다!

“설마 전학생을 상대로 학번대결을? 이건 꿈에도 몰랐는데?”

“오오, 대단하다! 신선~!”

“설마 전학생의 학번대결을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이제는 모두가 그를 지지하며 싸움을 부추기는 형국이 그러졌다. 어이없게 떠밀린 이 상황에서 난 자그맣게나마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 어정쩡하게 일어섰다.

“이봐, 난 아직 그 승부에 응할 생각이...”

이때 어디선가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 하나가 빠르게 끼어들었다.

“하 신선, 전학생과의 학번 대결은 한 달간 금지야.”

구세주처럼 등장한 목소리의 주인인 부반장이 딱딱하게 자리에 선 채로 신선을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

“뭐? 난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어!”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신선이 부반장에게 따졌지만, 그녀는 전혀 꿀리지 않는 기세와 냉혈한 눈빛으로 덤덤히 반론했다.

“이건 전학생이 전학 오기 전 신설된 규율 항목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어. 딱히 규율 신설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현재 전학생과의 학번대결은 엄연히 교칙 위반이야.”

“....진짜냐, 젠장!!”

오, 잘한다. 부반장~! 파이팅! 파이팅!

시원시원한 부반장의 언변에 속으로 격렬한 응원의 퍼포먼스를 펼쳤다.

감정적으로 굴던 신선은 결국 부반장의 말에 수긍하여 허공에 짜증만 내뱉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한쪽 입꼬리를 의미심장하게 추켜올린 신선이 기세등등하게 나를 노려봤다.

“그래도..! 너를 정식으로 혼쭐을 내주는 거에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엉? 이번엔 또 뭘 하려고?”

“너를 남들 앞에서 박살 내는 게 최고지만, 그게 안 된다면 망신살 정도는 뻗치게 해 줘야지. 전학생, 나와 내기 승부다!”

“내.기.승.부?!”

그건 또 무슨 짓거리야...?

“그래, 자고로 남자라면 자신 있는 운동이나 재주 정도는 있겠지? 학번대결을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냥 학생으로 내기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지. 안 그래, 부반장?”

확신과 더불어 즐거움에 가득 찬 신선이 반장을 의식하자, 반장은 나와 신선을 번갈아 보고선 어쩔 수 없다는 듯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좋아! 이곳에 왔으면 누가 위아래 인지 확실히 구분해주지. 잘난 체하는 것도 거기까지다. 전학생.”

왜 나를 악당 취급하며 오글거리는 대사를 남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로선 이 이상 뭔가에 엮이고 싶지가 않았다.

“아, 미안하지만 그런 거라면 그냥 내가 아래를 할...”

“더할 것도 없어! 오후 부 활동 시간에 A동 운동장에서 각자 자신 있는 종목의 스포츠로 일 대 일 대결이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관심이...”

“우오오오오오!!”

“대박이다!!”

“대특종이야!”

귀가 찢어질 듯한 함성, 이미 이곳에서 나의 자그마한 의견에 귀 기울여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확정 난 듯이 모두가 열광의 도가니였다. 단순히 치기 어린 학생들의 내기 같은 것일 텐데 어째서 이리도 환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습관성 짙은 한숨에 처량하게 자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부반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무언가 내게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눈치였지만 이내 나에게서의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모습에 난 불길한 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 채 정규수업이 끝나고 오후의 부 활동 시간이 찾아왔다. 그냥 냅다 도망쳐서 천체관측부의 현정이에게 도움을 구할까도 했지만, 이런 일을 떠넘기는 건 내키지 않았다. 너무 무책임한 일이었다.

“전학생, 꾸물거리지 말고 밖으로 따라와.”

“....”

끝까지 자기 마음대로다. 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양아치에게 불려 끌려가는 느낌으로 신선을 따라나섰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구경꾼들이 바다를 가르듯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자연스레 길을 터줬다.

“전학생, 오전에 말한 것처럼 종목은 나와 너 쪽에서 각각 하나씩 정하는 거다. 생각해 놓은 건 있겠지?”

“별로, 생각 못 했는데...”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얼굴을 구기지만 그가 매섭게 웃어 보였다.

“네 녀석, 자신 있다 이거지?”

딱히 여태까지 어느 한 스포츠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던 거지만, 굳이 입 아프게 신선의 반응에 말을 정정하진 않았다. 굳이 대결이니 승부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당장에라도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전부터 서로 경쟁하고, 상처받고, 상처입히며 두려움과 경멸 섞인 눈을 마주하는 건 지겹도록 겪어본 일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신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근데 말이야. 그 내기란 걸 하기 전에 하나 물어보자. 왜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야? 딱히 너한테 밉보인 건 없잖아.”

“....모르는 거냐?”

“....???”

나란히 복도를 걸어가는데 신선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었던 나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 나 또한 심각하게 나의 모습을 짚어보았다.

그리고 잠깐 진지하게 침묵을 지키던 신선이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네 녀석, 아린이랑 무슨 관계야?”

“아린...? 설마 이 아린?? 그냥, 아무런 관계도 아닌데?”

“아무런 관계도 아닌 놈이 그렇게 붙어 다녀?!”

뒤를 돌아본 신선의 눈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의 눈빛처럼 희번덕거렸다. 짙은 불신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에서 이미 온갖 욕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너, 혹시...? 야, 아무래도 네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전학생한테 아린을 빼앗길 순 없어. 뭐 때문에 아린이 너 같은 놈을 좋아하는진 몰라도 확실히 보여주겠어. 무엇보다 내가 네놈보다 훨씬 더 잘난 놈이란 걸!”

와, 이 녀석 찐이다....

아무리 봐도 나와 아린의 사이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더욱이 사람 말은 듣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린과 엮어서 피해를 본 사람은 난데, 애먼 곳에서 뺨을 맞게 생겼다.

“어떻게 아린의 인정을 받아냈는지는 몰라도 난 참을 수 없어. 이참에 누가 더 아린에게 어울리는 존재인지 확실히 겨루자.”

“그건 도저히 내 알 바가 아닌데?!”

“그러니 대충할 생각하지 마라. 이건 좋아하는 여자아리를 위한 남자의 승부다!”

신선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신이 나다 못해 난리가 났다. 가망이 없다 판단한 나는 말로 해결하는 걸 포기해버렸다.

이런 얄궂은 상황에서도 복도 창밖의 풍경들은 한없이 드넓고, 그 위의 하늘은 그 높이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푸르고 평화로웠다.

A동 운동장은 내가 있는 교실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다른 학교의 운동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모습이었고, 오후의 뜨거운 햇살을 가득 머금고 있었지만 넓은 운동장 한가운데 올라서니 오히려 가슴이 뻥 뚫린 듯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네가 종목을 정하지 않았으니 내가 정한 걸 먼저 하겠다. 내가 정한 건 야구, 1:1 피칭대결이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이미 야구부원에 의해서 준비해 놓았는지 배트와 글러브 그리고 헬멧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실, 신선이 야구시합을 걸어올 거라는 건 예상된 결과였다. 실제로 그는 야구부 소속에 투수와 타자의 능력을 모두 겸비한 에이스라는 걸 미리 전해 들었다.

“.....”

관중석처럼 운동장을 넓게 둘러싸고 있는 그늘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평범한 학생무리와는 다르게 운동장 조명 꼭대기에서 큼직한 양산 하나를 펼치고 앉아있는 아린의 모습은 우연히 찾아낼 수 있었다. 멀리서도 분명하게 나와 눈이 마주친 아린과 쿠요미가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모든 일의 원흉. 하지만 당장에 그녀에게 무어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몇 가지 도움을 직접 받았기 때문이다.

“신선, 잠깐만. 굳이 딴지 걸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넌 야구부 소속인 만큼 이 종목에 상당한 우위를 지니고 있잖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핸디캡 정도는 당연히 줄 생각이었으니까. 승부는 각자의 피칭에서 타석에서 가장 많은 유효타를 친 사람이 이기는 거다. 여기서 난 5회, 넌 10회의 기회를 갖게 해주지. 그리고 난 오직 스트라이크 한가운데로만 던질 거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 심판의 판정하에 내 투구가 가운데를 벗어난다면, 그것도 유효타로 쳐 줄게.”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거절할 일 없는 후한 조건이었다. 아린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한몫 크게 작용한 듯싶었다. 하지만 이 조건으로도 내가 지금의 승부를 결정짓는 것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말을 꺼내야만 했다.

“확실히 파격적이네. 근데 미안하지만, 5회로는 안 될 것 같은데...”

“뭐야, 전학생. 나랑 조건이 2배나 차이 나는데 더 줄여달란 거야?”

“하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네가 다섯 번의 기회만으로 날 이기기에는 너한테 너무 불리하다는 말이었는데?”

“뭐...?!”

신선이 눈썹을 과도하게 치켜세웠다. 시큰둥하게만 굴던 내가 자신의 자존심과 같은 종목에서 당당히 도발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그럴 만했다. 일그러진 그의 표정과 눈빛에서 분노 이외에도 무언가 타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때다 싶어 나는 정점을 찍었다.

“미안하지만 괜히 우세하다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도 자존심은 있어서 말이야. 똑같이 10대10 물리기 없는 단판 승부로 하자.”

“.....”

깔끔하게 들어간 나의 도발에 신선은 차분함을 잊고 본능적으로 거칠게 나올 거로 생각했지만 신선은 의뢰로 반대였다. 일그러진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무언가 환희에 가득 찬 모습으로 나를 정확히 노려봤다.

이건, 성공했다고 해야 하는건가...? 좀 애매하군...

시간이 갈수록 온기를 머금은 운동장과는 별개로, 신선이 몸에서 뿜어대는 열기 탓에 딛고 있는 운동장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푸른하늘과 학생부장 선생님과의 대결만큼은 아니지만 역시나 학교 내 대부분의 학생이 운동장을 지켜보는 가운데, 각자 간단한 준비 운동 후 본격적으로 피칭대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세트, 마운드에는 신선이, 타석에는 내가 먼저 위치했다.

“후우....”

뭘까, 딱히 관심 없을 거라 여기고 긴장하나 없을 줄 알았지만 일단 타석에 들어서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래도 마운드에서 상상 이상으로 진지하고도 신이 난, 신선에게서 분위기를 옮은 듯했다.

움켜쥔 방망이를 가볍게 휘둘러본다. 묵직한 느낌이 꽤 괜찮은 방망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야구를 별로 해본 적은 없었다. 물론 룰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단순히 친구들과 터놓고 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친구라는 건 한순간 지나가는 바람밖에 되지 않았기에...

“야, 신선!”

괜히 비장해진 표정과 함께 친근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졌다고 질질 짜지 마라!”

지금의 말을 꺼낸 건 내가 그에게 정정당당히 맞서주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직 지금 나의 승리플랜에 필요한 것이 도발이었기에 마지막까지 있지도 않은 허세를 부린 것이었다.

“.....”

빠직.

근엄하던 그의 얼굴이 성난 황소처럼 변했다. 이걸로 변수는 줄었다. 이 승부,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건방진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네 같은 놈은 철저히....”

와인드 업.

자세를 잡은 신선이 강렬한 아우라와 함께 강렬하게 팔을 휘두른다.

“죽여버리겠어!!!”

상당히 잔혹한 대사로 괴성을 지르며 던져진 공이 일그러졌다고 보일 정도로 재빠르게 나의 옆을 지나쳐 갔다.

퍼억!!

미트를 대고 있던 포수의 팔과 몸에 강렬한 공의 기운이 뚫고 지나간 걸 확인할 정도의 투구였다. 초구임에도 미트가 터질 듯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나름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던 건데도 나의 팔과 방망이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이 정도면 살인구 아냐? 뭐, 도발은 확실한 모양이네.”

유효타는커녕 컷트 조차 어려운 판국이었다. 거기다 실제로 눈앞에서 이런 무지막지한 공과 대치할때의 압박감도 장난이 아니었다.

다시 신선이 폼을 잡는다. 아까와는 한층 더 커진 동작이었다. 이후, 손을 떠난 공은 그 전보다 더 날카롭고 매섭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쐐액~!

“...지금!”

딱!!

“.....!!”

번트. 타격 자세에서 잽싸게 자세를 바꿔버린 나는 날아오는 야구공에 방망이만 가져다 대었고, 다행히도 배트가 공을 아슬아슬하게 쳐 낸다. 아무리 매서운 공이었다지만 번트로 튕겨낸 공은 유효타가 되지 못하고 내야를 굴러갔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번트로는 유효타를 칠 수 없다는 거 몰라?”

“아, 걱정하지마.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자, 이제라도 어디 한번 잘 던져 봐. 내가 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칠 테니까.”

“....이 녀석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삼구, 사구, 그리고 오구에도 나는 무조건 번트만을 해댔다. 이런 노골적인 번트를 지속할수록 신선의 공은 작정한 듯 점점 더 매섭게 그리고 강렬하게 날아들었다.

저릿저릿.

아무리 내가 요령이 없다지만 번트로 공을 받아냈다고 손이 저렸다. 그 정도로 신선의 공은 빠르고 막강했다. 그렇다고 번트를 멈출 순 없었다. 조금만 더 이대로 가야만 무난히 작전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사실 무턱대고 내가 이 대결에 응한 건 아니었다. 뭐, 아주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지만 그건 오전 수업 중 찾아온 아린의 곰 인형 쿠요미가 승부에 대한 묘책을 건네주기 전까지였다.

따악! 쩌저적.

나무로 만든 방망이가 어느 순간 움푹 파이더니 속 어딘가 갈라지는 소리를 내었다.

따악~!

의미없는 번트에 답답한 건 신선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와 신선을 지켜보는 수많은 학생들에게도 지금 이 싸움은 의문투성이일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아무런 장단도 맞춰 줄 마음 없던 내게 이 정도라도 하는 걸 감지덕지하길 바랐다.

따악~! 딱!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자신들만의 잣대로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론 잔뜩 경계하는 무례함에 이 정도 화답이 어울린다 생각했다.

따악!!! 쩌저적!!

어차피 내 인생이 싸우는 게 운명이라면, 그냥 내키는 대로 할 거다!

서로 간에 노려보는 나와 신선의 눈동자에서 강렬한 불꽃이 오갔다. 마치 서로의 속마음을 읽고 지금 순간에 전력을 다하여야 함을 깨달았다.

“신 청호, 무슨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후회하지 마라!!”

터져나갈 듯 묵직하게 공을 쥐어 잡은 신선의 팔이 허공을 갈라 하늘 높이 올라간다.

지금이다..!

그리고 나는 이에 맞춰 노골적인 번트 자세에서 자연스레 자세를 바꾸었다.

우지끈.

그때, 쥐고 있던 배트가 그간의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위태롭게 버텨주던 목재의 나무 방망이 자체를 내가 스스로 두 동강 냈다. 그 순간을 바라보던 모두의 표정이 충격과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반 토막보다 조금 더 부족한 크기로 부러진 배트를 한 손만으로 젖힐 때쯤, 이미 신선의 손을 떠난 공이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 하나 들지 않았다.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듯 나의 푸른 두 눈에 야구공의 궤적, 회전, 모양과 움직임이 아주 또렷하게 들어왔다.

조잡해진 야구방망이의 주변에도 눈동자와 같은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쿠웅!!

맞받아낸 공과 배트에서 평범하게 들릴 수 없는 굉렬한 소리가 퍼져나갔다. 몰아치는 비바람처럼 일궈진 바람이 전신을 휘감았다.

“크악, 이거 제대로 된 거 맞아?”

바들바들 떨려오는 손목에 나머지 손까지 부여잡은 채, 충격에 맞서 힘겨루기를 해보지만, 공의 회전력은 좀체 떨어지질 않았다. 강렬한 공은 오히려 방망이를 태워버릴 것 같이 뜨거워졌다. 나도 공도 절대 밀려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신선은 지금 이 상황을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나도 확신하지 못한 상황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정확히 지금의 승부가 있기 전, 그냥 모든 걸 포기한 채 수업도 듣지 않고 신선과의 대결을 기다릴 때, 남몰래 창밖으로 쿠요미가 찾아왔었다. 그것도 비장의 수를 가지고...

“뭐..? 방망이를 부러뜨린 뒤 쳐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쉿, 진정해라. 다 이유가 있어서니까.”

쿠요미가 솜털처럼 부드러운 앞발로 내 입을 다급히 막았다.

“읍...므슨 이유?”

“너의 어머니, 그러니까 최초로 학교의 정점에 올랐던 초대 전교 회장의 능력을 넌 알고 있나?”

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어머니의 능력이란 대체 뭐였을지 짐작조차 하고 있지 않았었다.

“어렵사리 얻어낸 과거의 학생기록부에 따르면 그녀의 특수 개성은 단도라고 알려져 있지. 쉽게 말해 단도 하나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잘 다뤘다는 거다.”

“단도...?”

“그녀의 핏줄인 네가 이전의 싸움에서도 잘 보여줬던 모습이지.”

커터칼을 들고 사람들과 맞붙고 제압하던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때 나는 스스로가 품어왔던 의문 하나가 풀렸다. 그것은 그간 커터칼을 쥐는 순간에만 푸른 눈의 능력이 발동한다는 조건에 대한 의문이었다. 다른 무기나 도구에는 반응조차 할 수 없었지만 커터칼에만 무의식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휘둘러야 하고 어찌해야 상대에게 능숙히 맞설 수 있는지를 귀신처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모든 게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단도’라는 특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구배트를 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그러니 기회가 된다면 부러뜨려서 짧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기만 한다면 물려받은 너의 개성은 확실히 가동하겠지.”

“하지만 야구방망이는 검이 아닌데, 쿠요미 네가 분명 ‘도’라고 했잖아.”

나의 입에서의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쿠요미는 한껏 포즈를 잡고 멋있는 척을 했다.

“학생기록부의 말을 그대로 맹신한다면 그렇지. 하지만 푸른하늘이 이렇게 말하더군.”

쿠요미는 푸른하늘의 모습을 따라 하듯 팔짱을 꼈다.

“초대 수석의 진짜 능력은 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에 있는 것이라고.”

“단에..있다?”

“그저 ‘일정길이’를 가진 물체라면 무엇이든 너의 ‘푸른 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

능력을 쓰면서 여태까지 몰랐던 능력에 대한 비밀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여기까지 오자, 좀 더 흥미진진하게 쿠요미와 이야기를 나눠 신선과의 승부에 대한 비책을 듣고 싶어졌다.

“하지만,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해서 이 승부에서 이길 거란 보장이 없잖아.”

“허허, 소년. 이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서 꼭 정면으로 맞설 필요가 없다.”

“....?”

“어떻게든 능력만 발휘한다면 그 뒤론 승리를 위해 최선의 방법을 고르면 된다. 자, 잘 들어라.”

잔뜩 주위를 경계하던 쿠요미가 승부를 결정짓기 위해 행할 작전이란 거에 대해 나의 귓가에다 조심히 속삭였다.

속닥속닥.

....이걸 하겠다고?!

귀를 의심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말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저 태연한 쿠요미의 모습에 일단은 수긍하였다. 쿠요미는 뿌듯한 모습으로 행운을 빈다는 말과 함께 다시 창밖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결국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거, 이젠 물릴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해낼 뿐이었다.

“.....”

그런데 푸른하늘은 어떻게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 알고 내게 조언을 해준 걸까? 혹시 만난 적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도 만나고 있는 건가?

푸른하늘과 어머니에 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떠들썩해지지만 이내 단념했다. 먼저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앞서 놓여진 문제를 헤쳐나가기로 마음먹었다.


“....!!”

짧은 회상의 순간에서 나는 다시 현실로 되돌아왔다. 공과의 힘겨루기는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그치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밀릴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으아아아...!!”

이제 내가 계획한 진짜 승부를 보여줄 차례였다. 유효타? 관심도 없었다. 푸른 기운이 나의 몸을 휘감고 냉담히 부서진 방망이는 푸른 섬광을 발했다. 이어서 부릅뜬 두 눈의 시선이 오직 신선에게로 고정됐다. 지지한 두 다리의 뒤꿈치가 들리며 거칠게 바닥의 흙뭉치들을 양껏 밀어냈다.

자, 이제 공수교대다! 어디 한번 받아봐라!

“으아아아~!”

투쾅!!

신선의 강력한 투구에다 나의 힘을 더해서 있는 힘껏 공을 밀어냈다. 그리고 그 공은 정확히 신선에게로 돌풍과도 같은 위력으로 뻗어 나갔다.

이것이 내가 노리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정정당당하지 못한 건 미안하지만 이대로 신선을 녹아웃 시키는 게 나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실이 많은 방법이었다.

“이, 괴물자식~!!!!!”

콰가가가가각~!!

나의 타구가 정확히 신선의 복부에 꽂혀 들어갔다. 뒤이어 후폭풍으로 몰아치는 모래바람과 충격파로 신선은 바람 앞의 낙엽처럼 허망하게 수 미터를 튕겨 날아갔다.

“....”

이 모습을 지켜본 모두가 상상치도 못한 전개에 얼어붙었다. 자칫 과격하다고 비난받을지 모르지만, 야구에서 투수 쪽에 공이 날아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거기다 원래 상식 밖의 능력자들이 모인 곳인데 이 정도 사고는 다반사라고 쿠요미에게 전해 들었다.

“하아하아, 어찌됐든 나의 승리다.”

거칠게 몰던 숨을 정리하고 떨려오는 손에 쥐고 있던 방망이를 바닥에 떨구었다. 땀으로 범벅된 이마를 팔로 닦아내곤 그대로 양팔을 축 늘어뜨린 채 쓰러진 신선을 바라보았다.

그는 누워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마 위험한 상황에 놓인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건 아니었다.

“.....하아, 진짜 괴물은 따로 있는데?”

자신의 복부에 놓인 글러브에 야구공이 안착해있었다. 무서운 녀석이다. 자신에게 공이 날아오던 그 순간에 자신의 글러브로 막아낸 것이었다.

꿈틀.

신선의 몸이 가볍게 미동하기 시작했다.

“설마, 바로 일어날 수 있다고? 진심이야..?”

좀비처럼 축 늘어진 몸이었지만 그는, 확실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시 움켜쥔 공을 금방이라도 으스러뜨릴 듯이 쥐어 잡은 채 신선이 고개를 들었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얼굴, 그리고 온몸에서 살기만을 내뿜으으며 초점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음, 기권할게.”

하지만 다행히도 방금 투구를 마지막으로 정했던 10회는 끝이 났다. 치사할지라도 여기선 나의 안전을 위해서 기권을...

스윽.

그때, 신선이 다시금 자세를 잡으며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것은 명확히 투구동작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저기, 미안한데 이미 10번 다 던졌는데...”

“....”

그는 말이 없다. 아니, 분명 말 한마디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죽여버리겠다, 라고..

충격으로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모양이다. 결국, 계획은 실패했다. 지금 여기서 다시 승부수를 던지기엔, 내가 쓰던 방망인 이미 검게 타들어 가 쓸모가 없어졌다.

표정 하나만으로 살인예고를 선언하는 신선의 모습에 나는 누구보다 어색하고도 상냥한 미소로 그를 진정시켜보지만, 무광의 아우라와 함께 그의 팔뚝에 핏줄만이 더욱 선명해졌다.

“전학생, 내 어깨와 팔을 못 쓰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어.”

“....오, 제발.”

“넌 그냥, 죽어라~!!!!!”

후욱, 퍼엉!

신선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총성과 같은 소리를 내며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공이 나의 얼굴로 향했다. 순식간에라는 감상조차 느낄 틈 없이 공은 나에게...

쿠웅~!!

“....!!!”

하지만 그것보다 더 짧은 순간, 단발에 짙은 검은 머리의 여학생이 나타나 나와 공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정확한 타이밍에 팔을 치켜든 그녀는 단 한 손으로 공을 막아냈다. 하지만 신선의 공을 한 번의 가드로 멈출 순 없어 그녀의 작은 몸이 위태롭게 바닥에 끌리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버텨냈다. 그런 와중에 그녀가 나의 안위를 확인하듯 힐끗 뒤를 돌아봤다.

“...부반장?!”

여학생의 정체는 부반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덤덤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정면을 응시했다.

“어째서...그 팔, 다친 팔이잖아..!”

반장이 신선의 공을 막아낸 팔은 항상 통깁스를 두르고 다니던 왼팔이었다. 아래팔의 중심에다 정확히 공을 받아내고 있던 통깁스는 공의 마찰에 하얀김까지 만들어내고 있었다.

설마 단순히 캐스트의 경도를 믿고 저러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깁스가 단단하다고 해도 고작 나를 위해서 이렇게 나서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쩌저적! 콰직!

“그만해 부반장! 깁스에 금이..!”

석고 형태의 깁스가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갈라지는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반장은 특유의 차가운 얼굴 그대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

콰지직!

한순간, 반장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아래팔을 감싸던 캐스트가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그리고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석고 조각들을 보며 반장을 위해 뭐라도 해보기 위해 다급하게 일어섰지만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솨아아악!!

깁스가 부서진 찰나에 드러난 반장의 왼팔에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섬뜩한 검은 아지랑이들이 무차별적으로 퍼져 나왔다. 으스스한 느낌의 검은 기운이 이내 반장을 중심으로 감싸며 정돈되기 시작하는데, 뒤에서 지켜본 그 모습에서 나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

팔을 중심으로 강렬히 휩싸인 검은 기운 탓에 신선의 공은 부반장에게 닿지 못하고 허무하게 그녀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잡은 공은 검게 타들어 가 반장의 손에서 한 줌의 모래처럼 으스러졌다. 이 모습을 넋 놓고 지켜본 신선이 힘겹게 소리쳤다.

“부반장! 지금, 고작 전학생 한 명 구하겠다고 그 왼팔을...사용해?”

“...살의를 가지고 승부에 임한 순간, 교칙에 따라 이 내기는 너의 패배야.”

“치잇...정신나갔구나...이젠, 네가 어떻게 살아남으려고...그런...짓을...”

풀썩.

늘어진 어깨를 부여잡고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신선이 말을 잇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무래도 내게 받은 충격과 마지막으로 던진 공에, 가진 체력을 모두 소진한 모양이다.

“하아하아.”

나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반장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한순간이었지만 어두운 기운이 나의 눈앞에 아른거렸을 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순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그렇게나 지독할 정도의 어둠을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그것은 마치 어둠밖에 없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반장의 주변을 감싸던 어둠이 바람에 흩날리듯 옅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곤 몸을 틀어 멍하니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승부에서 이긴 거 축하해.”

“어? 어어. 이긴 건가..? 아, 구해준 거 고마워...”

반장은 평상시와 같은 차가운 얼굴로 대뜸 축하한다고 말하곤 다시 고개를 돌려 나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대뜸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확실한 건 그녀가 날 구해준 은인이라는 것이었다.

“응..? 근데 마지막에 혹시 웃고 있었던 건가?”

반장이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리기 전, 마지막으로 보이던 입가에 조금이나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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