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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안테나 님의 서재입니다.

푸른하늘의 학교 파괴 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TV안테나
작품등록일 :
2021.06.14 01:27
최근연재일 :
2021.06.20 09:0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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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8,752

작성
21.06.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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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7. 푸른하늘과 혁명단.

DUMMY

7. 푸른하늘과 혁명단.


“푸른..하늘...? 설마 그게 이름이야?”

참으로 의미를 알기 쉬운 독특한 이름 탓에 나는 반사적으로 아린에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설마 성이 푸른, 이라는 건가? 그런 성이 존재했던가?

“후훗, 왜? 또 내 말이 믿기지 않아?”

“아, 아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내 이름이랑 조금 비슷하기도 해서...”

“네 이름? 청호?”

“응. 내 이름이 푸른하늘이란 뜻이야.”

내가 어머니 얼굴도 기억 못 할 정도로 어릴 적, 어머니가 나에게 남기고 간 것은 이 이름 석 자뿐이다. 할머니 말로는 어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로 언제부턴가 하늘 바라보기를 너무나 좋아하여 온종일 흰 구름과 하늘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탓에 나의 이름도 하늘과 연관되어 지은 것이 분명하다며 할머니가 은연중에 말씀하시곤 했다.

“호오, 그거 꽤 특이한 우연이네.”

서걱!! 기우뚱...!!

“....!!”

갑작스레 조회대가 정확히 대각선으로 두 동강 나면서 나와 아린의 발치가 일부 무너져내렸다.

“으아아아..! 뭐야! 뭐가 날아온거야?!”

“검기야..! 푸른하늘이 휘두른 목검의 검기가 이쪽으로 날아온 거야. 팔이든 다리든 잘리고 싶지 않으면 조심해!”

피할 틈도 없이 조회대가 옆으로 기울며 넘어간다. 허둥지둥 근처의 난간을 붙잡고 조각 난 조회대의 잔해 속에 묻히는 건 겨우 면한 나였지만 아린과 쿠요미는 이런 상황에서도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서 있었다.

“후우, 자리를 옮겨야겠다. 쿠요미!”

우득! 우드득..!!

아린의 부름에 따라 말없이 그녀의 어깨에서 내려온 쿠요미가 두 눈을 번쩍인다. 그리곤 한순간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과 함께 자신의 몸을 울긋불긋하게 만들어낸다.

“...뭐, 뭐야? 잠깐만! 으아아아~!!”

콰과광!!

장렬히 무너지는 조회대 근처에서 진짜 야생의 곰처럼 육중해진 쿠요미는 나와 아린을 양손에 품은 채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그 와중에 나는 거꾸로 뒤집혀 안긴 탓에 위아래가 반전된 상태로 꼴사납게 나아간다.

그리하여 무사히 운동장 구석진 어느 지점에 착지하지만, 쿠요미는 나를 머리부터 그대로 바닥에 떨궈놓는다.

“크윽...! 이게, 대체 무슨 고생이야.”

어느새 원래대로의 자그마한 곰 인형 모습으로 돌아간 쿠요미가 아린의 어깨에 다시 올라선다. 아린은 운동장 한편의 가장 낮은 철봉 위로 올라가 앉는다.

“오호, 비록 전에 있던 곳만은 못하지만, 여기도 나름 특등석인데?”

기역 모양으로 구부린 손을 이마에 붙이고 잔뜩 신이 난 아린의 모습은 역시나 철부지 소녀의 모습이었다.

후욱! 콰앙~!

사투 속에서 빠르게 옆으로 돌아선 학생부장 선생님이 무협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동작처럼 내지른 짧은 주먹이 푸른하늘에게 적중한다. 푸른하늘은 그 충격으로 발이 끌리며 뒤로 밀쳐지지만, 그 매섭던 공격의 순간에도 정확한 방어로 충격을 완화시켰다. 자연스레 거리가 벌어진 틈에도 서로가 다시금 빈틈을 노리기 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춰 보였다.

웅성웅성.

어디선가 군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서부터 이곳의 큰 소란에 반응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던 학생들이 나와 아린과는 정 반대편에 빼곡히 모여들고 있었다.

이렇게 어수선하게 만들어서 푸른하늘이 노리는 건 대체 무엇일까?

“후후훗,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네. 걱정하지 마. 이제 사람도 충분히 모였으니 시작할 거야.”

“....대체 뭘 말이야?”

“이렇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왔을 때 외쳐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게 있지!”

나의 질문에 아주 살짝 흥분한 아린이 기세등등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선,전,포,고!”

“무슨 말도 안 되는....응?”

굳이 학교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에 딴지를 걸려는 순간, 정말 푸른하늘은 아린의 말대로 몰려든 사람들을 의식하며 자신의 목검을 하늘 높이 치켜든다.

“학교는, 이미 그 의미를 잃었다!! 타락하고 변질되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으며, 경쟁과 이익만을 중시하는 이 학교엔 더한 음모와 비리만이 넘쳐난다!! 성과를 위해 윤리마저 벗어던진 이곳은 이제 학교라 부를 수 없다! 이곳에 남은 건 고통과 광기뿐이라는 걸, 너희들도 알 거다!!”

당당하고도 비장한 모습으로 푸른하늘은 주변 모두에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다그친다. 그녀는 최대한 엄격한 말투로 소리쳤지만 나긋나긋한 대화에 어울릴법한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이런 분위기에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넓은 운동장에서 모두가 숨죽이고 푸른하늘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그녀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자신감과 위압감 때문일 것이다. 푸른하늘의 기운이 바람에 실려 온다는 느낌까지 받게하며 그녀가 계속해서 소리쳤다.

“나는 이 참상에서, 너희들에게 묻는다! 나의 의지와 뜻에 동조하는 사람이 이곳에 있는가?!!!”

나의 몸에서 짧고 굵은 전율이 일었다. 갑작스레 과거의 학교에서 느껴왔던 절박함과 비참함이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오버랩된다. 거기다 은은하고도 투명하게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이 자연스레 나를 사로잡는다. 그녀는 비가 그치고 난 뒤 온 세상을 선명히 비추는 푸른 하늘처럼 화사했으며, 나와는 그 깊이가 다른 우월적 존재처럼 느껴졌다.

“너희들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너희들은 움직이지 않는가!! 이 썩어빠진 학교는 바뀌어야 한다! 진실은, 전해져야만 한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겠다면 나, 푸른하늘이 모든 걸 부수겠다!! 세상 모두가 날 막아서더라도..!!”

목검을 허공에 한 번 휘두르던 푸른하늘이 비장한 모습으로 자신의 언변을 마친다. 입술까지 깨물며 서 있는 그녀를 통해 나의 가슴이 뜨겁게 벅차오름을 느꼈다. 스파크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한 줄기의 긴장감이 나의 심장박동 소리를 더욱 세차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학교를 부수겠다는 결론은 심히 과격한 면이 다분했지만, 대체 이 세상 누가 저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모두 앞에서 진실하게 외칠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을 실현하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꿈에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당연한 듯한 현실의 이치에 당당히 맞서 자신의 이념을 부딪치는 무모함일 뿐인데도, 영문도 모른 채 나의 마음은 떨려온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다르게 운동장 한편에 모여 있는 학생들은 잔뜩 불편한 얼굴로 푸른하늘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몇 명은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몇 명은 혀를 차고, 나머지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눈썹을 찌푸렸다.

“선동하지 마라!! 이 배신자야!!”

“윤리를 벗어났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잘잘못을 떠나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데 왜 혼자서만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이런 쓸데없는 짓은 네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데 왜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는 거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학교가 그렇게 싫으면 혼자서 학교를 자퇴하던지 그만두면 되는 거잖아! 무조건 자기 말이 옳다는 듯이 편파적으로 말하네.”

“어휴, 진짜 의미 없다. 적어도 그렇게 불만이면 상식적인 선에서 정당하게 해결해야 하는 게 정상아냐? 학교가 맘에 안 든다고 멋대로 부수려고 하네. 미개하다 정말.”

딱 봐도 학생들 사이에선 푸른하늘을 옹호하거나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보였다. 확실히 나 또한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려 푸른하늘을 평가한 것이지, 이성적인면으론 그녀가 절대 옳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 자그마한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이곳에서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에 저런 무지막지한 실력을 지닌 그녀가 이렇게까지 학교를 거역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의 반발이 무섭도록 거세졌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얼굴로 아린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린, 아무래도 이런 난리를 피우면서 좋은 이목을 끄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을지도....”

“아니, 어차피 학생들 생각 같은 건 필요도 없어. 다시 말하지만 이건, 일방적인 선전포고야.”

아린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피우지만, 여전히 냉담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오히려 이 상황이야말로 딱 우리가 원하던 바야. 어떻게 말을 해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해줄 말은 사실 이것밖에 없지.”

그 순간, 푸른하늘과 아린의 입 모양새가 완벽할 정도로 똑같이 움직인다.

“그럼, 부순다.”

화악~!!

“....!!!”

푸른하늘 등에서 핏방울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붉은 기운이 봇물 터지듯 새어 나온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그녀에게 핏빛 날개가 돋아나는 것 같이 보여졌다.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으로 운동장에 붉은 날개에 의한 검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검붉은 아우라를 뒤집어 쓴 푸른하늘의 날개가 뒤로 젖혀지더니 그녀는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로 학생부장 선생님과 맞부딪힌다. 그 일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선생님은 반격할 틈도 없이 뒤로 튕겨 날아가, 형체만 남아있는 조회대를 들이박으며 조회대를 초토화 시킨다.

“크윽...”

학생부장 선생님이 산산조각난 잔해 속에서 힘겹게 고개를 든다.

콰광!!!

그럼에도 한 치의 쉴 틈도 없이 돌진한 푸른하늘은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가차 없이 목검을 휘두르며 또 한차례 장엄한 충격파와 흙먼지를 일궈냈다.

“....!!”

하지만 목도를 내려친 자리에 학생부장 선생님은 없었다. 엄청난 반사 신경으로 일찍이 자리를 벗어난 선생님이 큰 폭으로 거릴 벌리며, 처음 푸른하늘에 의해 일부 무너졌던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창까지 깨부수며 물러난다.

이를 눈치챈 푸른하늘이 이에 질세라 단 한 번의 발돋움과 말도 안 되는 가속으로 건물의 꼭대기 층에 막무가내로 파고든다. 그 순간에 일어난 충격과 등 뒤의 날개로 교실 하나가 시원하게 부서진다.

“미, 미친 거 아냐?! 이건 상황이 너무 심각하잖아! 선생님을 죽일 속셈이야?”

나의 다급한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린은 잔뜩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죽여? 선생님을?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네. 방금 상황은 오히려 푸른하늘에게 불리해졌다고. 오히려 당하는 건 푸른하늘일지도 몰라.”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러자 이번엔 곰인형 쿠요미가 아린의 설명을 대신 말한다.

“학교 내 어느 건물이든 청소도구함 정도는 다 구비되어있지. 그러니까 건물로만 들어간다면 선생이라는 자가 목봉 정도는 충분히 지닐 수 있다는 뜻이다.”

“목봉...?”

갑자기 윤 신아 선생님을 처음 만나던 순간 그녀가 목봉을 들고 서 있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쿠궁! 콰광!!

건물 속으로 난입한 그들이 벌써 격하게 맞부딪치는 소리가 건물 곳곳에서 새어나왔다. 건물 속 책상과 의자들이 부서진 교실의 창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과거 기대 고등학교 수석 졸업생이자 현 학생부장 윤 신아. 고교 재학생일 때부터 죽음의 봉술가라고 불렸었다더군.”

“.....!!”

쩌억!! 우지끈!!

교실 내 청소도구함 속에서 간신히 목봉 하나를 뽑아 든 학생부장 선생님은 양 손바닥이 저릿해질 정도로 막강한 푸른하늘의 공격에 대응해서 합을 맞춘다. 서로가 서로에게 착 달라붙어 난잡한 공격을 이어갈 때, 푸른하늘이 어거지로 선생님을 교실 바깥의 복도로 튕기듯 밀쳐낸다. 교실 밖 창가에 부딪히는 순간에도 득달같이 달려드는 푸른하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학생부장 선생님은 건물 내 복도를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거대한 날개를 그대로 핀 채 복도 쪽 창문과 교실 벽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푸른하늘이 그녀의 뒤를 쫓는다.

“....”

후웅! 와장창!

달려나가는 동안 잠깐의 고민과 함께 학생부장 선생님이 푸른하늘의 공격에 다시 맞서기 시작한다. 이번엔 푸른하늘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단 공격 사이의 빈틈만을 노리며 단타로 반격한다. 그러자 푸른하늘의 공격 패턴이 삽시간에 뭉개질 정도로 그녀의 노련한 공격이 연이어 성공하자, 푸른하늘은 당황하지 않고 공격 대상을 선생님에서 목봉으로 바꾼다.

콰지직!!

지붕이 훤히 뚫릴 정도의 위력으로 휘두른 목검이 목봉과 부딪치자, 목봉은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두 조각 나버린다. 그리고 이어서 들어 올린 목검을 빠르게 고쳐 잡고 세로로 내려치려는 순간, 학생부장 선생님은 곧바로 교실 창문에 몸을 날려가며 그녀의 공격을 피해낸다. 복도 절반이 푸른하늘에 의해서 정확히 두 조각 나버리더니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교실에서 목봉 하나를 다시 쥐어 든 선생님은 다시금 거칠게 들어오는 푸른하늘을 피해 바닥을 스스로 무너뜨려 아래층으로 달아난다. 또다시 뒤를 내어준 상태에서 복도를 내달리며 푸른하늘의 짧고 굵직한 공격들을 그녀는 아슬아슬 피해낸다.

“.....”

쿠구궁! 쩌억!!

전보다 더욱 빨리진 스텝으로 깊숙이 다가와 내려치는 푸른하늘의 목검을 피하고자 학생부장 선생님은 펄럭이는 치마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던 방향으로 몸을 구른다. 바짝 낮은 자세로 뒹구는 몸을 멈춰 세운 선생님이 자연스레 푸른하늘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

“.....”

느릿느릿, 그리고 요란하게 삐걱거리는 복도 위에서 어느새 그들은 서로를 향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어느 틈에도 상대에 대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노려보던 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자세를 취한다.

꾸욱!

그때 학생부장 선생님이 복도 한 편의 기둥 모퉁이에 숨겨놓은 버튼 하나를 과감히 누른다.

파앗! 촤르르륵!!

“....!!!”

버튼을 누르자, 바닥과 지붕을 포함한 벽들이 삽시간에 일정 간격으로 열리더니 그 속에 숨은 각가지 목봉들이 탄알 장전되듯 푸른하늘을 겨냥했다. 이미 몸을 앞으로 내디딜 대로 내디딘 푸른하늘 입장에선 이미 펼쳐진 목봉의 덫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학생부장 선생님을 향해 푸른하늘이 탄식과도 같은 신음을 흘렸다.

“아....”

쿠과광!! 쿠구궁! 쾅~!!

푸른하늘과 학생부장 선생님이 건물에 들어가서 시끄럽게 건물을 박살던 소리 중 가장 강렬하고도 웅장한 소리가 운동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처음 푸른하늘의 검기로 3분의1 가량이 무너졌던 건물은 푸른하늘과 선생님의 2차전으로 다시 3분의 1이 날아가 버리고, 지금 일어난 폭발로 나머지 건물의 3~5층에 위치한 교실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음에 운동장에 나와 있는 학생들도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차, 이건 나의 실수..!”

잠자코 지켜보던 아린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볍게 누르며 눈살을 찌푸린다.

“이번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건물이 다 날아가 버렸다고.”

“아무래도 우리 학생부장 선생님이 건물에 있는 봉이란 봉은 전부 다 꺼낸 모양이네.”

아린 곁의 쿠요미가 곰 인형 특유의 보드라운 손바닥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흠, 분명 확인한다고 확인했었지만, 중간에 소년이 나타나면서 시간을 너무 허비했군.”

“그래, 맞아! 도중에 청호가 건물에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시간은 충분했는데!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바로 청호, 너야!”

범인을 지목하는 명탐정처럼 아린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자연스레 나는 그녀를 향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탓이라고??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원래 윤 신아 선생님은 학생 선도 및 위기상황 대응을 목적으로 건물 곳곳에 언제든지 자신의 무기가 될 수 있는 목봉을 숨겨두셔. 한 건물에 감춰진 목봉의 양은 적어도 300여개, 양이 많은 만큼 아주 위협적이지. 그래서 그 전에 미리 건물로 잠입해 그 장치들을 손볼 작정이었지만....”

“....깜빡했다?”

“까...깜빡하기는 누가 깜빡했다는 거야?! 다른 게 아니라 청호 너랑 노는 게 생각보다 꽤 재밌어서, 잊어먹은 거뿐이라고!”

......그게 깜빡했다는 말이랑 뭐가 다른 거야??

궤변까지 늘어놓으며 얼굴을 붉히던 아린이 계속해서 투정을 부렸다.

“으으..!! 어쩔 수 없었다 뭐. 원래 저 건물은 학생들이 드나들지 않는데, 하필 네가 있어가지고 잊어먹을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이건...불가항력이야!”

“그, 그래. 충분히 알았어...”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데다 잔뜩 뿔이 난 아린을 어르고 달래보지만, 이미 심기가 불편해진 아린은 분을 삭히지 못한다. 그런 아린의 어깨를 쿠요미가 토닥거린다.

“에휴, 이번 건도 별수 없는 건가.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푸른하늘이랑 꼬박 밤을 새워서 만든 계획인데, 허무하네.”

“.....”

선전포고라고 못 받아뒀음에도 푸른하늘과 아린이 의외로 다른 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고심했다는 말에서 그들이 극단주의 성향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뭐, 그렇다고 학교를 파괴한다는 자극적인 목표가 희석되지는 않겠지만.

쿵!! 콰앙~!!

“....!!!”

그때, 건물의 잔해더미가 일으킨 연기 속에서 푸른하늘이 운동장 쪽으로 요란하게 넘어왔다. 별다른 상처도 없었지만, 푸른하늘의 화려하던 붉은빛 날개는 찢겨서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날개가 서서히 옅어져만 간다.

“서, 선생님은...?”

학생부장 선생님은 1~2층밖에 남지 않은 건물의 잔해더미 위에서 푸른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등 쪽 허리춤에 여러 개의 목봉을 메이드복의 허리끈으로 단단히 고정해 놓은 상태였고, 다른 한 손은 유독 길쭉해 보이는 목봉을 들어 보였다.

평상시보다 더욱 매섭게 눈동자를 빛내던 선생님은 무척이나 느리지만 아주 육중한 기운이 서린 한 발을 큼직하게 내디딘다. 세상 모두가 그 순간을 숨죽이고 바라본다. 그리고 내려찍듯이 내디딘 한 발을 축으로 선생님은 손에 쥔 목봉을 푸른하늘에게 일직선으로 내던진다. 강렬한 발돋움으로 목봉이 선생님의 손을 떠나는 순간, 건물의 모든 층이 그 자리에서 바스러지듯이 갈라지며 거대한 흙먼지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눈으로 좇기도 힘든 선생님의 강력한 목봉이 정확히 푸른하늘의 왼쪽 날개를 관통해 운동장 한 가운데 박혀 들어간다. 온전히 그 충격을 받아들인 운동장이 크게 한 번 울렁인다. 생각지도 못한 강렬한 공격에 서 있던 내가 바닥에 쓰러질뻔했다.

푸른하늘의 붉은 날개는 흩날리는 꽃잎처럼 그 자리에서 완전히 소멸하였다.

“타임아웃. 아무리 해도 저 날개를 10분 이상 유지하는 건 무리였네.”

또다시 아린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이제 나로선 그들의 능력을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폐허가 되어 버린 건물 쪽에서 학생부장 선생님이 하늘 높이 뛰어오른다. 선생님이 치켜든 목봉에는 마치 아지랑이처럼 아련히 피어오르는 푸른빛의 기운이 일렁였다. 목봉은 하늘 속 파란빛과 어우러져 더욱 묘한 빛을 발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아린이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즐거운 듯이 외쳤다.

“가자!!”

으직! 쩌어억!!!

학생부장 선생님의 푸른 기운 목봉이 푸른하늘의 목검과 정확히 맞부딪치며 크로스 된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강력한 기운들이 운동장에 뒤엉킨다. 그 장엄한 모습에 아린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터뜨린다.

그 뒤로 선생님의 푸른빛 공격이 쇄도한다. 푸른하늘의 붉은 날개 다음으로 푸른빛 목봉이 바통을 이어받은 셈이다. 확실히 목봉을 쥔 학생부장 선생님의 모습은 전보다 더욱 강력하고 날카로웠다. 푸른하늘은 이에 대응해 움직임을 최대로 줄이며 오직 방어에만 전념한다.

콰직!!

수백 번은 내려칠 기세의 묵직한 목봉이 푸른하늘의 목검과 부딪히면서 두 조각 나버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선생님은 허리춤에 매어놓은 목봉을 꺼내 들어 다시금 공격을 이어갔다.

후욱~! 쩌억!! 후욱~!! 콰앙!!

어느 순간, 푸른하늘의 기세가 꺾여 그녀의 자세가 급속도로 위축되어갔다.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하는 푸른하늘은 자칫 한 방에 나가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퍼억~!!

굳세게 지켜 온 푸른하늘의 방어가 살짝 어긋나면서 그 틈을 통해 윤 신아 선생님의 공격이 먹혀든다. 그리고 그때 설상가상으로 푸른하늘의 목검에서 미세하게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작디작은 부스럼들이 떨어져 나왔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이례 없이 들어간 선생님의 공격에 푸른하늘의 몸뚱이가 크게 기울었고 그것은 바로 절체절명의 위기로 이어졌다. 순간을 놓치지 않은 선생님이 봉을 위에서 아래로 강렬히 내려친다. 하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은 푸른하늘이 흐트러진 자세에서도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낸다.

콰득..! 콰드득...!!

내려찍으려는 목봉과 그것을 막아서는 목검이 십자가처럼 겹쳐진 상태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온 힘을 다해 서로가 밀어붙인다. 하지만 푸른하늘의 목검에서 불안한 균열이 일었다.

콰직!!

그리고 마침내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학생부장 선생님의 목봉이 목검의 일부를 파고들었고, 이어서 힘을 이기지 못한 목검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장렬히 부서져 나갔다.

끝이다, 푸른하늘에게 목검이 없어진다면 목봉이 그대로....

“....뭐야?!”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금 전까지 평범하게 생겨 먹은 모양새에의 목검에서 한순간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이제 목검이 아니었다. 윤기가 흐른다고 착각할 정도로 말끔한 표면이 거울처럼 세상을 비춰낸다고 믿을 정도로 예리한 진검이었다. 껍질처럼 둘러싸고 있던 목검이 부서지면서 그 속에서 진검이 튀어나온 것이다.

마지막까지 푸른하늘의 반전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푸른하늘이 목봉을 옆으로 튕기듯 휘두르자 아무리 튼튼하던 목봉도 우스울 정도로 단숨에 베어져 버렸다. 그 순간, 어느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주춤거린다. 그리하여 눈앞의 목봉을 베어버리고 생긴 틈을 노려 푸른하늘이 두어 번 정도 허공에 칼을 휘두른다.

“....!!”

학생부장 선생님의 치맛자락과 어깨 쪽 소매가 삽시간에 베여나갔다. 만약 베이는 그 순간까지도 선생님이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분명 피를 봤을 것이다.

“아린! 이제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이젠 저 둘을 말려야 하는 거 아냐?!”

“.....”

“아린!!”

“말려...? 하하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너, 이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아?”

“제대로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잖아! 지금 그런 걸 따질 때야?”

“틀렸어!!!”

신경질적이게 윽박지른 아린이 과감하게 철봉 위에서 내려온다. 그대로 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살며시 일그러뜨린 눈으로 나를 아래에서 올려다본다. 아린은 거세게 날 쏘아붙인다.

“내 말 확실히 들어! 이건 학교의 운명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자들의 싸움이야! 충분하니까 물러서라고? 안타깝게도 고작 이 정도론 학교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

무엇 때문에 다들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오늘 전학 왔을 뿐인 나는 학교의 사정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대체 목숨을 걸어서까지 이 학교를 바꾸고, 지키고 싶은 게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더욱이 여기 수많은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단 한명도 이 싸움을 중재하거나 막아서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그들의 모습이 나는 너무나 두려웠다.

어느새 입안에서 묽어진 침을 뻑뻑해진 목구멍 속으로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아린을 향해 천천히 입을 뗐다.

“그래도.....”

“응?”

“난 이게 잘못된 거란 걸 알아.”

그리고 곧장 나는 학생부장 선생님과 푸른하늘이 있는 운동장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전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아린은 차마 날 말리지도 못하고 달려가는 나의 뒤를 향해 소리쳤다.

“에에? 어디 가는 거야? 이 멍청아!”

“저 소년, 혼자서 저 둘 사이에 끼어들겠다는 건가? 원래 전학생이란 건 겁이 없나 보지?”

망설임 없이 그들 곁에서 멀어지는 나를 쿠요미가 신기하단 듯이 바라본다. 그 모습을 같이 지켜보던 아린도 꾹 다문 입을 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이게 잘못됐다고? 후, 그렇지만 이를 어쩌나. 이 학교는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아도 고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젠데.”

‘막는다, 내가 막는다!’

아린과 쿠요미의 말들은 뒤로하고, 나는 오직 푸른하늘과 학생부장 선생님을 막을 각오 하나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들은 아직도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서로에게 질세라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절대 뒤섞이질 못하는 두개의 위압감이 날카로운 칼처럼 나의 전신을 섬뜩하게 만들었으나, 나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막는다. 내가, 막는다...!!

푸른빛과 빨간빛의 오라가 뒤섞인 두 개의 무기가 합을 맞추는 그 순간, 계속되던 충격에 푸른하늘의 진검과 선생님의 목봉이 부러져 버렸다. 그리고 나의 손이 반사적으로 그들에게 나아갔다.

“아..!!”

그때 나의 두 눈은 머나먼 기억 속의 푸르른 하늘과 마주한다. 그것은 가끔 꿈에서도 나타나 절실히 나를 비춰주지만, 아련하고도 슬픈 그런 하늘이었다.

푸른빛, 아니 푸른 섬광과도 같던 나의 손이 그들이 마주하던 무기를 동시에 붙들어 맨다.

“뭐야..?!”

“이건....!!!”

키이이이이잉~! 꽈과광!!!!

매끈한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귀를 잠식시키더니 이내 우리는 나란히 의문의 빛에 휘감기며 폭발과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여태껏 보지 못한 아찔한 빛의 충격에 나의 정신도 새하얗게 사라져갔다.

“....”

“하아...하아...”

“후우, 후우....”

주변은 이미 그을린 자국이 만연했지만 누구 하나 튕겨 나갈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다.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며 푸른하늘과 학생부장 선생님은 느리지만 거친 숨을 연신 내뱉었다. 말 한마디 오가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정확히 그들 사이에서 잠을 자듯 평온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모두가 말문이 막힌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모두의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전학생...?”

“...구면인가요?”

검붉은 눈동자를 일렁이며 나를 알아본 푸른하늘이였지만 학생부장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진 않았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금이 가면서 제 역할을 할 수 없게된 안경을 벗고, 잿더미로 뒤덮인 발을 움직였다.

“이 이상은 결판을 낼 수 없겠네요. 아무래도 다른 이가 말려드는 건 푸른하늘한테도 달갑지 않은 일이니 훈계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

서로의 무기도 남지 않은 데다 운동장은 방금의 충격으로 아수라장처럼 변해있었다. 결국 단순무식한 도그파이트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끼어든 나를 두고서 싸움을 지속하기엔 서로에게 승산도, 의미도 없었다. 이를 알고 있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먼저 물러난 것이었다.

“선생님...”

“....??”

멀어져가는 학생부장 선생님을 낮게 깔리 목소리로 부르자, 선생님이 고개만 뒤돌아본다.

“전학생이란 건, 원래 이렇게 무서운 건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후훗,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이 학교는 우리가 부술 겁니다.”

고개 숙여 나를 빤히 바라보던 푸른하늘이 고갤 들어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속내를 알 수 없는 작은 미소를 보였다.

“설마. 전학생을 혁명단에 가입시키겠다는 건가요?”

“그럼 좋겠지만, 사실 그럴 필요도 없어요. 왜냐면 학교를 부수는 게 전학생의 소원이니까.”

“무슨...?”

“같이, 소원을 이루겠다는 거죠.”

흐릿해져만 가는 의식 너머로 푸른하늘 그녀가 짓고 있던 온화한 미소는 머나먼 옛 기억 속, 맑은 하늘 아래 어머니에게서 보았던 따뜻한 미소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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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3. 푸른하늘의 일기.(완결) 21.06.20 18 0 9쪽
14 12. 밤하늘의 별. 21.06.19 23 0 49쪽
13 11. 괴담과 진실. 21.06.19 24 0 65쪽
12 10. 삼각관계. 21.06.18 17 0 31쪽
11 9. 천체관측부. 21.06.18 19 0 30쪽
10 8. No, 900. 21.06.17 13 0 41쪽
» 7. 푸른하늘과 혁명단. 21.06.17 19 0 28쪽
8 6. 반역자. 21.06.16 18 0 33쪽
7 5. 2학년 3반. 21.06.16 19 0 17쪽
6 4. 교무실. 21.06.15 16 0 7쪽
5 3. 새로운 학교. 21.06.15 16 0 7쪽
4 2.교문과 관리인. 21.06.14 17 0 9쪽
3 1. 남학생과 메이드. 21.06.14 18 0 10쪽
2 0. 보호수. 21.06.14 30 1 9쪽
1 프롤로그. 21.06.14 52 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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