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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안테나 님의 서재입니다.

푸른하늘의 학교 파괴 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TV안테나
작품등록일 :
2021.06.14 01:27
최근연재일 :
2021.06.20 09:0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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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52

작성
21.06.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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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쪽

6. 반역자.

DUMMY

6. 반역자.


차라락.

이것은 책장을 넘기는 소리.

스윽, 사각사각.

그리고 이건 연필과 볼펜으로 뭔가를 써 내려가는 소리.

“.....”

기대고등학교 2학년 3반, 창가 제일 끝자리 책상에 앉아 있는 나는 턱을 괴고 조심스레 반 전체를 바라본다. 자습시간이었기에 나도 한껏 분위기를 맞추곤 있지만, 나는 이 상황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들 제각각의 이유가 있겠지만, 정말 열심히도 뭔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쉽게 돌아오지 못할 거라 여겼던 이 책상이라는 곳에 앉아 있으니, 전에 있었던 학교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비록 명문은 아니지만, 선생님과 학생들은 성실하고, 나름 평범했다. 모든 게 뒤틀려 있을 정도로....

이전 학교는, 안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지도와 평판 높이기에만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로 인해 학교는 학생들에게 학업 우수라는 목표만을 추구하도록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학생들간의 경쟁은 잔인할 정도로 치열했다. 사실 이는 일부 학교에선 어딜 가나 있을 평범한 현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전 학교는 학교 부적응이나 성적 부진에 빠진 학생에 대해선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교권이 추락한 요즘 시대의 선생님들은 일부 학생들에 의한 학교폭력이나 일탈 행위를 방관으로 일삼았고, 단순히 경력과 평판만을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더욱이 학교 자체가 학교성적 외에 어떠한 재능도 인정하지 않았다. 학업성적이 우수하지 않으면 진로상담이나 생활지도를 받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선을 긋듯이 행해지는 특별반과 일반반에 대한 차별은 여러 학생들에게 질투와 이기심, 그리고 반항심만을 심어주었다.

“.....”

창밖의 푸른 하늘에 드문드문 피어있던 구름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곳이었지만, 그곳의 학생들 마음속은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한 돌무더기와 모래바람 뿐이었다.

그리고 2학년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벌어졌던 ‘그 일’로 인해 학교도, 친구도 나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무너뜨렸다. 결국 지금의 나에게 남은 거라곤 자신에 대한 혐오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순간에도 모든 감정이 극한으로 메말라가는 스산함이 나를 덮쳐온다.

딩~동~댕~동~

“아...!”

3반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자습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나는 망상처럼 퍼진 기억의 늪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자습시간이었지만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계획대로 나머지 시간은 각자 부서로 가서 차질없이 부 활동을 이행해주세요.”

교탁 옆에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아 있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곧바로 일어나 말씀하심과 동시에 펼쳐 놨던 서적을 품에 껴안는다. 학교 종소리와 함께 느슨해진 반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그제야 굳었던 몸에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당연히 부 가입을 하지 않았던 나는 갈 곳 잃은 얼굴로 그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자, 학생부장 선생님이 따로 말을 건넸다.

“신 청호 학생은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오후 활동을 위한 부 가입 이전에 학교 내 방침과 교칙, 교훈, 교화, 교목, 교조 그리고 연혁을 필히 외워야 하거든요. 더불어서 교장선생님의 자기계발서 ‘나 때는 아파도 청춘이다’를 오늘내로 정독하셔야 합니다.”

“....예?”

“그럼 유인물을 가져올 테니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그걸 지금 당장요..? 서, 선생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다급히 학생부장 선생님을 불러보지만, 어느새 학생들을 따라 교실 밖으로 향하던 선생님은 그대로 매정하게 문을 닫아버린다.

“....말도 안 돼.”

아무리 명문이라도 여긴 그저 학교일 뿐인데 연혁이니, 방침이니를 외우라는 지시는 당연히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도통 생각해보아도 자기계발서는 무슨 의도인 걸까...?

“하아, 난 여기 애들이랑은 다르게 완전히 수준 떨어지는 놈이라고요.... 아아...! 더 이상 모르겠다..!”

결국 딱딱한 의자에 있는 대로 몸을 늘어뜨리며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교실 천장을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 교실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져갔다. 쳐질 대로 쳐진 몸을 일으켜 세우지 않고 나는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본다. 그리고 문득 눈에 들어온, 하얀 천장에 일렁이는 하얀 구체만을 응시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교실 밖 구조물에 일부 반사된 빛줄기가 들어온 것일 터였다.

“.....”

어느 순간 정각을 가리키는 시계초침 소리가 나의 정신을 일깨운다.

“...째자.”

누구보다 강렬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나는 망설임 없이 교실 뒷문으로 다가가 교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나선 눈치 보는 강아지처럼 고개만 빼꼼 내밀어 주변을 살폈고, 복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그대로 복도계단을 통해 스리슬쩍 건물 밖으로 벗어났다.

사실 나에겐 선생님의 말씀을 어겨가면서 소위 말하는 땡땡이를 치는 것이 난생처음이었다. 단순히 명문에 대한 시기와 반항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행동에 대한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그것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 따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별수 없이 이곳에 흘러들어 왔다고 여긴 나는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쳤다.

“하아. 나름 스릴 넘치기는 하는데, 왜 벌써 피곤하지?”

후일에 대한 걱정 따윈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의미 없이 학교를 배회하기 시작한 나는 오늘 하루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뻣뻣해진 목을 스스로 주물러 본다. 학교 밖을 벗어나도 당장에 지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였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넓고 넓은 학교라도 구경해두자, 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걸어 다닌다.

“....어라? 근데 여긴 어디지?”

그러다 잠시 후 앞과 뒤를 한 번씩 둘러보던 나는, 자신이 어디까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어느새 나는 빈 교실 가득한 외딴 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음, 그러니까. 내가 분명 한 층을 내려온 다음 구름다리로 옆 건물로 들어섰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제4 공원이라 적힌 곳을 지났고 그다음 소강당에 실내 운동장도 거쳤고, 그다음 갑자기 사람이 드물어지면서 쭉 걸어왔던 것 같은데....아, 그게 아닌가??”

워낙 2구역 부지가 넓은 탓도 있다지만 어이없게도 학교 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참 허탈할 뿐이었다. 머쓱해진 나는 아무렇게나 머리를 긁적였다.

“아, 뭐 어쩌겠어! 그래봤자 학교 안인데 어떻게든 돌아갈 수 있겠지.”

흠칫.

“....?!”

두 눈을 치켜뜨고 뻣뻣하게 굳은 목을 돌리며 뒤를 노려본다. 하지만 나의 뒤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바로 등 뒤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꺼림칙한 시선을 느꼈음에도 정작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조금은 겁이 났다. 다시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눈동자를 굴려가며 재차 확인한 나는 이내 걸음을 옮긴다.

“후우, 이제는 기까지 허약해진 건가....”

“히히.”

“으아아아!!!! 뭐야?!!”

나는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두 눈이 튀어 나갈 만큼 눈동자를 번쩍이며 뒤로 나자빠지려는 걸 겨우 버텨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던 창밖의 창가에 여자아이가 다리를 걸친 채 여유로운 자태와 작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 층이 아찔한 5층이라는 점도 생각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옅은 갈색 머리카락과 짧은 교복 스커트 자락이 가볍게 바람에 일렁인다. 검붉은 색의 리본 끈으로 한쪽만이 묶인 원 사이드업 머리를 하고있는 그녀가 그대로 창문을 열어젖히곤 체조선수처럼 창가에서 가볍게 복도로 두 발을 안착시킨다. 그러던 와중 스커트 끝자락이 풍선처럼 떠 오르지만 그녀는 가볍게 스커트를 손등으로 가라앉힌다.

“누, 누구야?”

창가에 앉아 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마주 서서 보니 고등학생이라 불리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신장이 도드라지는 귀여운 비주얼의 여학생이었다. 더욱이 싱글벙글 미소 짓는 모습은 초등학생처럼 천진난만해 보였다.

“네가 바로 소문의 전학생이구나? 맞지?”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집게손가락을 대뜸 날 가리키던 그녀가 흥미로운 눈동자로 내게 물었다. 아직 그녀의 일반적이지 않은 등장에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나는 애써 침착하게 그녀의 질문에 응했다.

“그, 그래. 제대로 맞췄네. 근데 언제부터 창문 밖에 있었던 거야?”

“나? 난 네가 오기 한참 전부터 밖에 있었지.”

“하하하, 거짓말이지? 분명 창밖엔 아무도 없었는데...”

“그거야, 너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시야 밖에 숨어있었으니까? 히히.”

숨을 곳도 마땅치 않은 창 바깥에서 숨어있었다고? 설마 특기가 닌자라도 되는 걸까?

하지만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얼굴로 한껏 눈웃음 짓는 그녀의 입에서 거짓말을 내뱉고 있을 거라는 의심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1학년도 거치지 않고 바로 2학년으로 전학을 왔다는 건 그만큼의 실력과 능력이 있다는 거겠지!? 이거 완전 기대된다! 혹시 능력이 뭐야? 나한테만 가르쳐 줄 수 있어?”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 한껏 들뜬 어린아이처럼 과장된 몸짓과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당혹스러웠다.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능...력...?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재주 같은 건 내게 없는데.”

“에이, 거짓말!”

그러자 키 작은 그녀가 나의 바로 턱밑까지 다가오더니 여전히 고개를 기울이며 세심하게 날 올려다보았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속으로 화들짝 놀란 나는 항복의 의미로 양손을 들어보지만, 그녀의 호기로운 눈빛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소년, 한순간이지만 우리의 기척을 알아차렸지 않나.”

“....?!!”

그 순간 나의 바로 왼쪽 귀 옆에서, 때려 박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느낄 정도로 묵직한 목소리가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리고 그제야 무언가가 나의 등에 붙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으아!! 뭐야! 뭔가가 내 등에...!!”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등 뒤에 붙은 게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무작정 손부터 휘저었다. 그러자 나의 등에 달라붙어 있던 정체불명의 작은 생명체가 내 손을 피해서 뛰어오르더니 복도 창가에 착지한다.

창가에 서서 나를 마주하고 있는 그것은 3등신 크기의 곰 인형이었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입꼬리 한쪽을 파르르 떨었다.

“대..체..저게 뭐야?”

살아서 유연히 움직이는 곰 인형을 가리키며 제발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그 곰 인형은 동물 따위가 아니었다. 확실하게 인형 특유의 인위적인 털과 플라스틱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그런 곰 인형의 눈에선 총명하고도 강한 생기가 내게 전해져왔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 대체, 저게 뭐냐고?!”

“이봐, 소년. 아무래도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내 소개를 해야겠군. 보시다시피 몸은 이런 상태지만 나는 과거에 지옥의 이인자 ‘벨제붑’과 맞먹었던 악마, ‘아블모즈’라고 한다. 그리고 한낱 인형이라고 함부로 여기지는 않는 게 좋을 거다.”

작고 귀여운 외형의 곰 인형의 눈엔 부라릴 눈동자 자체가 없음에도 아블모즈라는 곰 인형이 두 눈을 번뜩이는 시늉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곰 인형을 옆에서 지켜보던 그녀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곰 인형의 부드러운 머리에 손을 올려놓는다.

“하지만 지금 이름은 쿠요미야. 귀요미에서 따온 아주 귀여운 이름이지.”

“크흠, 이봐. 그런 권위 떨어지는 이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으응? 하지만 아브라카다브라처럼 케케묵은 이름보다 쿠요미가 훨씬 귀여운걸~.”

“틀렸어! 아브라카다브라가 아니라 아블모즈! 단 4글자인 이름을 왜 못 외우는 거냐?!”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말과는 다르게 워낙 작은 몸으로 그녀의 손아귀에서 발버둥 치는 곰 인형의 모습에서 악마를 연상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에이, 이제부터라도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은 버리고 쿠요미로 하자니까.”

“싫다! 자고로 지옥의 군주라면 그에 걸맞은 이름을 가져야 하는 법! 그리고 또 틀렸다!”

최대한 일그러뜨린 얼굴로 쿠요미라는 곰 인형이 소리치지만, 그런 모습마저 사랑스러운지 그녀는 곰 인형을 껴안고 자꾸만 얼굴을 비빈다.

“....지금 내가 꿈이라고 꾸고 있는 걸까?”

나는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정신을 부여잡지만 넋이 나간 모습으로 혼자서 중얼거린다. 도저히 익숙질 수 없는 상황 탓에 나의 머리는 인지 부조화를 체험하듯 아찔해진다. 이해하려 할수록 그 끝은 오직, 혼돈뿐이었다.

그러자 내 앞의 곰 인형과 그녀가 되려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것은 나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무언의 표정과도 같았다. 심각하진 분위기를 눈치챈 곰 인형과 그녀가 서로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대활 나눈다.

“소년이 나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힘든가 보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게다가 저 바보 같아 보이는 눈을 보니 이곳에 대해선 일도 모르나 봐.”

“음, 곤란하군. 푸른하늘이 예상한 거랑 딴판이잖아? 그렇다면 어떻게든 설명을 해줘야....”

뻔히 들리던 수군거림 잦아들고, 인형과 그녀는 어느새 장난기 섞인 미소를 띠며 날 바라보았다. 괜스레 불길한 예감이 강렬히 나를 스쳤다. 이윽고 그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형식의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입 모아 말한다.

“짜잔, 지금까지 복화술이었습니다!”

“.....”

“....??”

그들의 어거지와 같은 활기참에 나의 두 눈동자는 생동감을 잃어버린 채 전력을 다해 정색한다. 차마 저들의 미소와 태연한 행동을 함부로 뭐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던 나는 굳은 얼굴로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 이런 나를 예의주시하던 그녀와 인형이 서로의 눈치를 보곤 또 똑같이 과장된 몸짓으로 능청스럽게 팔을 벌린다.

“짜잔~! 신기하고 재미난 복화술....”

“뒤늦게 이벤트였다는 듯이 포장해도 아무 소용없거든?! 게다가 복화술이라면 적어도 한 명만 말해야 정상이잖아!”

“아아...”

내 눈앞의 그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에 뭔가 오차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곤 벙찐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후우, 더 이상 설명 안해도 돼. 더 정신없을 것 같으니까.”

“어어? 잠깐만...!”

결국, 이들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함에 나는 그들에게서 뒤돌아선다.

“거기서 멈춰! 죽고 싶지 않으면..!”

“....???”

돌아가려는 나에게 그녀가 여전히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어째 대사는 골목길에서 마주친 일진과도 같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어째선지 아무런 동향도 없는 창밖을 잔뜩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그것은 쿠요미라는 곰인형도 마찬가지였다.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어. 벌써 시작된 것 같거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런 말썽꾸러기 같은 얼굴로 심각하게 말하는 거 안 어울리거든? 그리고 창밖에 뭐가 있다고 그렇게 노려보는 거야? 장난치는 것도 정도껏...”

“피해..!”

혼잣말처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녀가 갑작스레 자신의 양손으로 나의 가슴 한편을 강하게 밀친다.

“앗, 이게 뭐하는...?!”

콰과과곽!! 서걱! 서걱! 서걱!

영문도 모른 채 뒤로 몇 걸음 물러선 내가 그녀에게 미처 따지기도 전에 내 주변과 복도 전체가 무언가에 무차별적으로 강렬히 썰리며 날카로운 소음을 일으켰다. 한순간에 산산 조각난 유리 파편들이 복도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내가 디디고 있던 복도와 천장을 중심으로 건물 일부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이 모든 게 찰나에 이루어졌고, 그 상황에서 나를 밀쳤던 그녀의 전신이 슬로우모션처럼 위로 떠 오른다. 가볍게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나를 여유롭게 바라보는 그녀를 응시한 채 비참히 바닥으로 추락하려던 찰나, 다행히도 그녀가 나의 손을 움켜쥐었다.

와르르륵! 쿠웅!

나를 지탱해주던 바닥들이 땅바닥으로 일제히 추락하며 아작나버렸다. 그걸 바라본 내가 다시 고개를 위로 돌려 그녀와의 얼굴을 마주한다. 절벽에서 서로 간에 손을 붙잡고 있는 영화 같은 상황에서 그녀가 친절히 내게 말했다.

“아, 정말 미안미안. 설마 네가 서 있는 곳이 무너질 줄은 몰랐지 뭐야.”

“괜찮은가, 소년? 그래도 직접 베이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야.”

그녀의 어깨 위에서 고개를 내민 쿠요미도 마치 이런 일을 숱하게 겪어 본 것처럼 차분히 말을 걸었다.

“그, 그런 여유 그만 부리고 빨리 나 좀 올려줘!”

후두둑.

“으응??”

아찔하게 매달려 있는 탓에 계속해서 오금이 저려오는데, 손을 잡은 그녀의 바로 머리 위 천장이 위태롭게 기울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와 그녀의 시선도 흙먼지를 쏟는 천장에 고정되었다. 지금 당장 나를 무사히 끌어올린다고 하더라도 무너지는 천장을 피해서 이곳을 벗어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금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씁슬한 얼굴로 보아 그녀도 결단을 내린 모양이다.

“너, 설마....?”

“아, 걱정하지 마. 여기서 놓는다고 절대 죽지는 않을 테니까.”

“무슨 소리야!! 여긴 5층이라고!!!”

후두둑, 콰드득!

설상가상으로 소녀가 디디고 서 있는 바닥 일부도 무너지면서 나와 그녀의 몸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케도 그녀는 나의 손을 놓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이젠 더 어쩔 방도는 없어 보였다.

“후후후, 괜찮다니깐? 어차피 이 학교엔 학생을 극진히 아끼는 수호천사가 한 명 있어서 말이야. 이번엔 복화술처럼 거짓말이 아니야. 그러니까, 살아서 나중에 보자.”

“에....? 에...?????”

“아, 그리고 다음엔 말이야...”

날 안심시키려는 건지, 날 놀리는 건지,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같이 그녀의 손에 서서히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통성명 꼭 하기.”

나와 그녀의 손이 완전히 멀어진다.

“으아아악!!!!”

아무리 허공에 허우적거려도 그 무엇도 잡을 수 없는 팔다리, 거기에 딱딱하고 차디찬 바닥에 부딪힐 거라는 압도적인 공포에 온몸의 신경이 터져나가는 기분을 만끽하며 나는 곧장 수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죽는다! 진짜 죽는다!! 설마 이렇게...!?

파앗, 와락!

“.....!!!”

그 순간, 어디선가 눈 깜짝할 새에 날아든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공중에서 나를 양손으로 껴안으며 날아올랐다. 초점이 어긋난 멍해진 눈동자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에 백색 빛이 아른거렸다.

“천사...?”

“무슨 소리하시는거죠? 전 학생부장 윤신아입니다.”

“에엥? 우앗~!”

천사라 믿었던 눈앞의 하얀 빛은 백색 메이드복의 학생부장 선생님이었다. 뒤늦게 돌아온 눈의 초점 때문에 학생부장 선생님을 천사로 착각한 것이었다.

나를 껴안았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가볍게 공중에 떠올랐던 선생님은 메이드 특유의 치마를 펄럭이며 무너지던 건물에서 벗어났다. 이어서 건물 근처 평지에 착지한 선생님은 아직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건물을 바라보며 가볍게 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No. 1001 신 청호 학생, 괜찮으신가요?”

“아, 네....괜찮네요.”

“그런데 얼굴이 왜 그리 붉은 건가요?”

“그건, 글쎄요...”

사실 공증에 떠올라 착지하기 위해 내려오는 순간부터 선생님의 폭신한 품 안에 안겨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지만 차마 입밖에 그 사실을 알릴 수도 없었다. 냉혈한 느낌이 다소 강했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나를 향해 의아하다는 시늉을 보인다.

“무튼, 외견상으론 별 문제가 없어보이는군요. 다행입니다.”

곧바로 나를 바로 세우고나서 선생님은 건물 잔해 속에서 묻은 먼지들을 가볍게 털어낸다. 자연스레 품에서 클리너까지 꺼내며 안경렌즈 위에 얹어진 먼지도 닦아낸다.

“아, 선생님! 전 정말 그대로 죽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원래는 아무도 없어야 하는 건물입니다만, 설마 거기서 신 청호 학생이 떨어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교실로 돌아가면 꼭 사유서를 쓰셔야 할 겁니다.”

흐트러진 매무새를 정돈한 학생부장 선생님이 안경을 다시 착용하며 나를 바라볼 때, 그 순간 학교건물에 홀로 남겨졌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참, 선생님. 근데 저 말고도 같은 층에 여자애가 한 명 더 있었어요. 만약 대피하지 못했다면 위험할 텐데....”

“저 건물에 여학생이 있었다고요?”

“네...”

나의 말에 학생부장 선생님이 눈을 번뜩인다. 냉철히 두 눈을 빛내는 것이 괜히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실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방금 건물은 해당 시간에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건물입니다. 일단 확인은 하겠지만, 아마도 다른 의도를 지니고 그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그러고 보니 학교건물이 의문의 난도질을 당하기 전에 보였던 그녀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거기서 멈춰! 죽고 싶지 않으면..!’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어. 벌써 시작된 것 같거든.’

조금 전의 사태가 그녀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판단하는 것은 힘들지만 적어도 뭔가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근데 어떻게 건물이 무너진거죠? 꼭 뭔가에 베여나간 것 같았는데.”

“....”

하지만 학생부장 선생님은 대답이 없었다. 그 사이 선생님은 내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맹렬히 응시하고 있었다.

“신 청호 학생?”

“네?”

“신 청호 학생을 홀로 보내서 미안하지만, 교실로 먼저가 계세요. 도중에 다른 선생님이나 관계자분들을 만난다면 상황설명을 꼭 전해주시고요.”

“아, 네....”

“이 상황에 괜한 일을 떠맡겨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전 학생상담을 나가봐야 할 것 같네요.”

“학생 상담이요? 지금 말이에요?”

그 순간 구름에 가려진 햇볕이 온 세상에 드러나면서 하늘 아래 가려진 선생님의 표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어서 선생님은 특유의 미소를 내게 보여주지만 그것은 어딘가 슬픔이 묻어난 미소였다.

“정말 위험할지 모르니 어서 빨리 이동하세요.”

“....?”

학생상담이라더니 갑자기 왜 위험 타령을 하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선생님을 지켜보고 있자, 선생님은 건물 가까이 위치한 운동장으로 몸을 틀었다.

“이번에 만날 학생이 심각한 불량학생이거든요.”

“아...!!”

파스슥.

귀를 간질이는 수풀 소리가 나와 선생님의 발돋움에 맞춰 일어난다. 뒤늦게 눈치챈 사실이지만 나와 선생님이 서 있는 이 평지 근방도 무언가에 날카롭게 베인 자국으로 뒤덥여있었다. 해당 자국의 끝이 운동장 한편으로 이어져 있었다.

“.....”

한여름이 아닌데도 아직도 뙤약볕처럼 달궈진 뜨거운 운동장 한가운데, 그리고 바닥을 깊게 팬 흔적의 끝엔 이름 모를 한 여학생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강렬한 윤기의 진한 검은 머리, 그리고 양손으로 쥔 긴 목검을 땅에 디디고 서 있는 모습이 단번에 나의 눈길을 끌었다.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별 꾸밈없는 긴 머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선생님, 혹시 쟤가 그 불량학...생...아앗?!”

어느 틈엔가 사라진 선생님은 벌써 검은 머리 여학생을 향해 찬찬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매서운 기운과 함께 선생님의 등 뒤에선 형체 없는 분노의 아우라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런 선생님의 압도적 기운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서 있는 저 여학생은 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대체 무슨 이유에서부터, 어떻게 건물을 박살 낸 것인지까지 모든 게 의문투성이었다.

톡톡.

보드라운 솜털과도 같은 감촉이 나의 등 뒤 어깨를 두드린다. 이에 반응해 거의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포옥.

“아....”

갈색 털로 덥힌 곰 인형의 손바닥, 그리고 적당히 긴 손톱의 차가운 손끝이 나의 볼을 찌른다. 그에 맞춰 순진하고 어린 꼬마와 같은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적당한 길이의 갈색머리가 웃는 박자에 맞춰 흔들거렸고 그런 그녀의 어깨 위에 자연스레 서 있는 곰 인형이 가벼운 손짓으로 내게 인사한다.

“소년, 이거 어떻게든 살아서 보니 감회가 새롭구먼, 그치?”

“전혀 그렇지 않...”

“푸하하, 어떡해! 이걸 동시에 두 명한테 당했어! 혹시 이거 세계최초는 아닐까?”

여전히 생기발랄하게 웃어대는 키 작은 그녀가 운동장 조회대 외곽의 쇠 울타리에 앉아 발까지 구르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5층 건물이 무너지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었던 나에게 장난을 친 건 조금 괘씸하다 여겼으나, 한편으론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미안하지만 너, 지금 그렇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멀쩡한 건물이 무너졌다고! 아무래도 저기 서 있는 여자애가 한 짓 같아. 학생부장 선생님이 불량학생이라고 하면서 위험하게 가버렸는데 혹시 아는 거 있어?”

그녀라면 분명히 이 사태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이 아린.”

“....??”

“내 이름이야. 어차피 지금 네가 궁금해하는 거 다 설명하려면 만만치 않단 말이야~. 일단 우리, 약속은 지켜야지?”

그녀가 나의 코앞에 자신의 손을 내밀어 보인다. 아무래도 악수를 청하는 모양인데, 세상 어느 누가 악수하자고 손을 얼굴 앞에 들이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적당히 어색하게나마 손을 마주 잡는다.

“....신 청호.”

“좋았어! 헤헤”

악수를 끝낸 아린은 여전히 좋아라, 폴짝폴짝 뛰더니 조회대 근처 계단에 아무렇게나 엉덩일 깔고 앉으려 했다. 그때 타이밍 맞춰 쿠요미가 손수건을 깔아준다. 아린은 같이 앉으라는 듯이 옆자리 맨바닥을 가볍게 두드린다.

“청호, 일단 넌 아주~~~ 운이 좋은 거야!”

“....왜?”

나도 나란히 계단에 앉자, 몸까지 파르르 떨어가며 해대는 특유의 과장된 리액션과 함께 아린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일단 여긴 말이야. 교내 규칙과 방침만이 절대적인 곳이야. 선생님을 포함해서 학교 내 누구도 교칙을 거역할 수 없고 거기에 아무도 의문을 품을 수 없어. 하지만 지금 여기, 개교 역사상 처음으로 절대 교칙에 의문을 갖고 모든 걸 부정한 반역자가 한 명 있지.”

“반역자..?”

“그래! 덕분에 학교 내에서 최초로 정학 처리당한 학생, 그게 바로 쟤야!”

나의 눈길은 황급히 운동장으로 향한다. 목검을 쥔 여학생과 학생에게 몇 보 앞까지 다가선 학생부장 선생님이 보였다. 그리고 우연히도 불어오던 바람이 잦아든다. 차분히 가라앉은 머릿결 사이로 여학생의 눈매가 드러났다. 부드럽고도 아찔한 눈매, 멀리서 보아도 절대 두려움이나 망설임 하나 없을 올곧은 모습과 깊게 출렁이는 검붉은 눈동자, 그녀는 확연히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짐작게 했다.

“학교 최초의 반역자와 학교 규범에 목숨을 다 바치는 학생부장 선생님의 승부! 이걸 직접 지켜볼 수 있다는 건 행운 중의 행운일 수밖에 없지! 후후훗.”

더욱더 열을 올리는 아린과는 대조적으로 나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져만 갔다. 결국 운동장에 있는 여학생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학교 건물까지 박살 내던 이 상황에서 그 이상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도 태연한 아린을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마, 말려야 돼. 무슨 방법이 없을까?”

“헤에, 무슨 말이야. 너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을 한 것 같은데? 그거 다른 지역의 조크 같은 거야?”

“너야말로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너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학생이 학교를 테러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 다른 선생님, 아니 적어도 경찰이던 군대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대체, 여긴 어떻게 되먹은 학교인 거야.”

“음, 조금 놀랍군.”

홧김에 뱉었던 말에 반응한 건 아린이 아니라 그녀의 어깨 위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쿠요미였다. 거기에 아린은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더니 나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하고 찔러댄다.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로 왔구나?”

“....??”

“으이구, 지금 상황 파악 못 하는 건 바로 너야~.”

아무것도 모르는 게 나라고?

볼을 찔러대는 아린의 당당함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곳에서의 나는 갑갑할 정도로 눈치 없고 아둔하며, 무지한 존재로까지 추락하는 듯했다.

“청호는 누가 옆에 없으면 안 되겠네. 심심하지는 않겠지만 설명할 게 많아도 너무 많아. 어? 저기 봐. 이제 시작한다!”

운동장에선 검은 머리 목검의 여학생이 목검의 끝이 하늘을 바라보도록 고쳐 잡았다. 그 비장한 모습에 고이지도 않는 침을 꿀꺽 삼킨 채 상황을 지켜봤다. 여태까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정면을 의식하던 여학생, 소녀의 몸이 빠르게 기운다.

파앗! 쿠쿵~!

잠깐의 순간, 학생부장 선생님 곁에 도달할 정도의 빠른 움직임으로 공기의 저항을 일으킨 소녀가 목검을 힘껏 선생님에게 휘두르자, 잠깐이지만 두 눈을 질끈 감게 만들 정도의 후폭풍이 휘몰아쳤다.

“야호~! 역시 대단해!!”

자신이 기대했던 싸움의 시작과 동시에 소녀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처럼 그들에게 즐거운 듯 소리쳤다.

살며시 일었던 운동장의 흙먼지 속에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소녀의 목검을 합장하듯 맨손으로 잡아낸 선생님이 보였다. 터무니없이 막강한 둘의 싸움에 놀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확신이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이리되면 어디서나 무능한 나 자신은 이전 학교에 있을 때와 다를 거 하나 없었다.

“야, 청호!”

“.....!!”

이 아린이 강제로 나의 옷깃을 잡아당긴다. 그 때문에 나와 그녀의 강제 눈 맞춤이 일어난다.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되니까, 꿍한 표정 좀 풀어! 네가 생각한 것보다 선생님은 훨씬 강해. 안 그랬으면 이곳 학교는 진작에 망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

그사이 학생부장 선생님이 붙잡고 있던 목검의 방향을 옆으로 흘려낸다. 하지만 그 뒤로 한 치의 빈틈없는 폭발적인 연계 동작으로 소녀가 목검을 휘몰아친다. 그 모든 공격을 학생부장 선생님은 단 맨몸으로 흘리거나 피해냈다.

“너도 여기 학생이라면 똑똑히 지켜봐,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혹여나 바보같이 막아 볼 생각은 하지 말고.”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지옥이다, 라는 말을 이전에 자주 듣곤 했다. 나 역시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 속으로 항상 되뇌던 말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진짜 광기이자 살벌한 전쟁터는 이곳에 있었다.

처음 이곳에서 느꼈던 괴리감은 단순히 낯선 학교에 전학을 와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확연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고방식, 곳곳에 느껴지는 이질감, 더욱이 평범하다고 절대 느낄 수 없는 이들의 비범함까지, 하나 같이 모든 게 내가 알던 상식과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비정상이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들에게 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하고 무능한 존재 그 자체였다. 이 사실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금 이 기분은 상당히 굴욕적이었다. 반 친구들의 눈빛과 세진이가 한 말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한다.

“세상에 미쳐도 이렇게 단단히 미친 곳이 있구나.”

“....??”

“아린, 하나만 물어보자.”

“응, 물어봐.”

아린이 잡아당긴 나의 옷깃을 놓자, 나는 어정쩡한 자세에서 원래의 자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 여자애는, 이름이 뭐야?”

이젠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야만 했다. 단순히 이곳에 전학 보내졌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대체 무슨 속셈으로 어머니가 전학을 권유한 것인지, 그리고 쉽진 않겠지만 이 미친 학교를 이해해버리고 싶은 뒤틀린 욕구와 호기심이 나를 일깨웠다.

쿠과광! 콰지직!

그사이 학생부장 선생님과 여학생의 난전은 더욱 거칠어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 둘의 표정은 절대 일그러지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치열한 공방으로 내가 있는 이곳 조회대까지 그 떨림이 전해져 오는 상황에서 아린은 한층 더 여유로운 목소리로 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Student number 01(제로원). 지상 최강의 전교 1등, 푸른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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