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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가 너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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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1.08 12:20
최근연재일 :
2024.01.11 10:56
연재수 :
7 회
조회수 :
970
추천수 :
27
글자수 :
38,461

작성
24.01.09 17:53
조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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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양학 우승

DUMMY

회전을 잔뜩 먹은 공이 수비수의 키를 훌쩍 넘는다.

파 포스트를 향해 날아간 공은 한참 높아 보이지만.


‘들어간다!’


차는 순간 느낌이 왔다. 그리고 그 느낌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강력한 회전에 공이 뚝 떨어지며 골대를 흔들었다.


“어어?”

“에에엥?”

“들어갔다고?”


모두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분명히 나가는 공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연습을 많이 했지.’


예선전 후 달리기 대신 연습했던 게 바로 프리킥이었다.

아무런 변수 없이 승기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으니까.


“...흐흣.”


쉽다. 골 넣기가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싶었다.

1반 골키퍼는 공이 나가는 줄 알고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키는 180cm 넘는 커다란 놈인데도 말이지.


“우오오오오! 한국대!”

“한국대! 한국대!”

“국뽕이 차오른다잉!”


응원 소리와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씨발, 방금 저게 뭐야?”

“한국대 저 새끼, 선출 아냐?”


6반 선수들이 툴툴대는 소리와.

아랑곳하지 않고 칼 같이 경기를 진행하는 성재쌤.

센터 서클에서 1반의 공격이 시작됐다.

그리고.


‘작전이 바뀌었네.’


내게 붙었던 미드필더 두 명이 사라졌다.

당연한 거다. 선제 실점을 했으니 전반에 만회골을 넣지 못하면 갈피를 잡기 힘들겠지.

그리고 그건 내게 기회가 찾아올 거란 말.


“수비에 집중해!!”


준호가 목청 터져라 소리쳤다. 수비수들이 엉덩이를 골대 쪽으로 끌어오고, 상대 공격수들이 서서히 압박을 해 온다.

그리고.

잘 파고 든 1반 윙포워드의 땅볼 크로스를 다이렉트 슈팅으로 연결한 공이.


-터엉!


골대에 맞고 튕겨져 나왔다.

달려가서 터치라인 밖으로 나가기 직전 공을 잡고, 라인을 따라 아슬하게 공을 치고 들어간다.

대인 마크를 하던 선수가 대놓고 경로를 방해할 때.


-툭


어느새 다가온 준호에게 공을 툭 밀고 터치라인 밖으로 달렸다. 리턴 패스를 받고 패널티 박스로 공을 치고 들어간다.


“저, 저 새끼 막아!”


1반 주장이 피를 토하듯이 소리쳤다. 그 순간.

왼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툭 밀었다.

부드러운 쓰루패스.

빙글 회전하는 공을 향해 주장이 발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고.


“크흐흐!”


어느새 수비와 거리를 벌리며 들어간 창원이의 발 밑에 공이 정확히 굴러 들어왔다.

창원이의 눈이 희번뜩하게 빛났다.


“뒤져라아!!”


그리고.


-철썩


스코어 2:0으로, 전반전이 마무리됐다.



*



“야, 미친! 이 정도면 이미 다 이긴 거 아니냐!?”

“워오 워어 워어어~”

“둥! 둥! 둥! 둥! 최! 강! 오! 반!”

“물 마셔요 물 마셔. 담임쌤이 오늘 콜팝 쏘겠다!”

“크흐흐흐! 얘들아, 잘 먹을게!”


5반 응원석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내빈석에 앉은 사람들도 서서히 수근대는 분위기였다.


“축구부는 출전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게. 이상하네.”

“축구부가 아니라는데요?”

“클, 클클클!”


순간 양복을 차려 입은 대머리 아저씨가 침을 튀기며 말문을 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엘리트 축구부가 아니면 절대 저렇게 못 차지. 암.”

“흐음. 그런가요?”

“당연하죠. 저건 백프로 선수로 뛰어 본 학생입니다. 선수가 아니면 저런 킥력이 절대 안 나오죠. 안 그런가요, 한숙희 교장선생님?”


내빈석 뒤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뿔테 안경을 쓴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폭소를 터뜨렸다.


“오호호호호. 위원장님도 참. 농담도 잘 하셔라. 저 친구는 한국대예요, 한국대!”

“한국대?”

“그렇다니까요. 이과 전교 일등이어서 별명이 한국대예요. 아빠가 춘흥건설 상무예요, 상무! 오호호호!”

“으, 으음. 그렇다고?”


대머리 아저씨가 입을 닫았다.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이 피식대며 웃었다.


“하여간, 위원장님 오버는 알아 줘야 한다니까요?”

“푸흐흐흣.”

“흐, 흐으으음!”


아저씨의 얼굴이 민망함에 붉게 물들어갈 때, 최길수가 내빈석으로 걸어왔다.


“교장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머, 감독님. 여긴 무슨 일이세요? 저기 저 한국대 축구 팀으로 뽑아 가려고?”


한숙희 교장의 말에 내빈들이 뒤집어졌다.


“푸, 푸하하하!”

“교장선생님, 농담도 기가 막히시네요!”

“위원장님하고 같이 가서 설득하면 되겠네요. 호호호!”


사람들이 배꼽을 잡으며 폭소할 때.

최길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



재밌다.

미치도록 재밌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게 됐다.


‘생각하는 그대로 되잖아?’


하프 타임에 음료수를 마시며 얘기했던 내용이 그대로 그라운드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중앙에서 볼을 소유하다가, 바깥쪽에서 윙포워드가 파고들면.


-툭


안쪽으로 패스를 연결한다.

살짝 띄운 패스가 수비수 발끝을 넘어가고.

다시 툭 차올린 로빙 슛이 골키퍼를 넘어 골대로 들어간다.


-삐이이익!


세 번째 골이 들어갔다.

그리고.


-투우욱


가볍게 공간으로 띄운 공이 패널티 아크 근처로 떨어지고.


-철썩


원바운드 슈팅으로 연결한 창원이가 괴성을 내질렀다.


“크오오오오오! 내가 최강의 스트라이커!”


여유가 생긴 우리팀 선수들이 키득대며 웃기 시작했다.

이게 양학인가.

한 번 무너진 무게추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고.

짧은 시간동안 두 개의 득점을 추가한 우리반은 6대 0으로 대승했다.



*



“한국대! 한국대!”

“오오, 나의 한국대시여! 제 콜팝을 받아주시옵소서!”

“저도 바치겠나이다!”

“축구의 신이시여. 이제 한국대가 아니라 메날두라 부르겠습니다!”

“메시, 메시!”

“날두, 날두!”


이게 고2의 광기인가.

책상 위에는 미친놈들이 바친 콜팝으로 가득했다.

쪽쪽 빤 손가락으로 치킨을 입에 넣으려는 놈들도 있어서 황급히 도망쳐 나왔다.


“으, 으으으.”


지저분했지만, 저 놈들이 하는 행동들이 묘하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마치 만화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

여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이래서 운동을 하는 거구나.’


보통 어떤 운동이든 두각을 드러내려면 엄청난 시간과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건 공부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에도 중학교 때 고교 수준 수학까지 이미 끝냈지만 계속 공부를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축구는 이렇게 쉬운 거지?”


정말 만화 속에서나 나오는 그런 천재가 나인 걸까?


“푸, 푸흐, 푸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고작 반대항 축구 수준에서 잘했다고 그딴 생각을 하다니.

너도 참 많이 순진한 놈이구나, 김현우.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 때.


“...김현우?”

“에?”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릿빛 피부에 짧은 머리를 단정하게 정돈한 건장한 중년 남자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한국대 김현우?”

“...네. 제가 그 김현운데요. 누구세요?”


뭔가 묘하게 낯익은 얼굴이긴 했다.

바로 그 때.

아저씨가 갑작스레 다가오더니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손을 빼려고 하는데 악력이 장난 아니다.


“현우야!!”

“아, 아파요!”

“어? 어어. 미안, 미안!”


아저씨가 미안하단 표정으로 황급히 손을 놨다.

그러더니 명함을 한 장 내민다.


“학교 학생에게 이런 거 내민 건 처음이다만. 나 축구부 감독 최길수라고 한다.”


최길수? 축구부 감독이라고?

그래서 낯이 익었구나.

축구부가 아침마다 운동할 때 본 것도 같았다.

그건 그렇고, 왜 내 손을 붙잡는 건데?


“무슨 일이세요?”


손을 주무르며 물었다.

너무 아파서 말이 곱게 나가지가 않는다.

감독님이 어버버대며 눈알을 굴리다가, 가까스로 한 마디를 꺼냈다.


“따라올래?”


싸가지 없게 대꾸했다고 얻어 맞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여 보였다.

‘감독실’이라 적힌 곳으로 날 데려간 감독님이 의자를 빼주더니.


“앉아.”


그리고 따뜻한 보리차를 끓여서 내 앞에 턱 놓았다.


“먹어.”


-후르륵


마셨다.


“따뜻하네요.”

“그래.”

“.......”


“.......”


-후르르르륵


세상에.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니.

개탄스런 기분이다.

슬쩍 내 눈치를 보는 게 꼭 성규를 보는 느낌이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흐, 흐으음.”


다리를 반대로 꼰 감독님이 시선을 살짝 피하며 물었다.


“축구, 좋아하냐?”

“어···솔직히 축구 해본 적도 없고 월드컵 빼곤 본 적도 없어서요.”


감독님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속마음을 숨길 줄 모르는 전형적인 스포츠맨인가. 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해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그, 그렇지? 얼마나 재밌는 운동인데!”

“그래서요?”

“으, 으응?”


나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왜 부르셨냐고요. 대답을 안 해 주셨어요.”

“아. 축구부에 자리가 하나 비어서, 혹시 관심 있나 했지.”

“감독님. 저 이과 1등인 거 아세요? 우리 학교가 서울에서 손꼽히는 명문이라는 것도 아시겠죠?”

“그래, 안다.”

“저희 부모님께서 운동하는 거 싫어하는 것도 아시고요?”

“그래. 알아.”


감독님이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좋은 방법을 찾았단다.”




*



-어차피 방과후에 매일 운동하고 집에 들어간다면서. 그 때만 잠깐 볼 좀 차고 들어가는 건 괜찮지 않겠어? 시합 위주로 말이야.


최길수 감독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너도 궁금하지 않아? 네가 하는 그 플레이들이 어느 레벨까지 먹힐지 말이야.


눈빛과 말은 차가운데, 행동은 살짝 어버버하고, 그러면서도 핵심은 잘 짚는단 말이지.

솔직히 나도 궁금하긴 했다.

내 드리블과 패스, 슈팅과 시야가 더 높은 레벨의 시합에서도 먹히는지.


-당분간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마지막 말도 마음에 들었다.

엄마는 몰라도 아빠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거다.

완고함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빚으면 김석남, 우리 아빠가 될 테니까.


‘어차피 고등 선수 레벨에서 안 먹히는 수준이라면 감독님도 미련 없이 날 보내주겠지. 나도 그렇고.’


그렇다면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거다.

정식 입부도 아니고 말이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오오, 아들. 오늘 체육대회는 잘 했고?”

“네! 우승했어요!”

“오, 대단하네.너도 경기에 뛴 거야?”

“그럼요. 제가 제일 잘 했어요!”

“푸웁!”


현아가 마시던 물을 뿜으며 깔깔 웃어댔다.


“오빠가 운동을 잘 한다고? 푸하하하하!”

“야, 너 철들고 나랑 운동 한 적 없잖아?”

“범생이가 체육대회 한 번 나갔다고 꼬리 살랑살랑 흔들며 좋아하는 거 웃음벨이네. 크크크큭.”

“지는. 계주 달리다가 자빠져서 전교생 팬티 구경시킨 게 엊그제 같은데. 크큭.”

“이 씨발. 합!”

“엄마! 현아가 씨발이래요!”

“야, 김현아! 너 그 말버릇 좀 안 고칠래? 빨리 들어가서 공부나 해. 오빠처럼 전교 1등 해야지!”

“에이, 그깟 공부 잘해서 뭐해요! 흥!”


문을 탕 닫으며 들어가는 현아.

그리고 주방 정리를 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마음을 정리했다.


‘굳이 평화를 뒤흔들 필요는 없겠지.’


축구는 어차피 방과후에 잠깐 하는 거고.

재능의 한계가 명확해지면 그만 두면 된다.

게다가.


-나도 확신은 없다. 사실 너 같은 케이스는 처음 보는 거라서 말이지.


나도 최길수 감독님과 같은 생각이다.

확신은 없다.

그냥 확인해 보고 싶은 가벼운 마음이니까.


설마.

내가 진짜 축구 천재겠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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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잡어인가 대어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1 24.01.11 119 6 11쪽
6 고교 레벨 +1 24.01.10 118 3 12쪽
» 양학 우승 +1 24.01.09 123 3 12쪽
4 균형이 무너졌다 +2 24.01.09 125 3 14쪽
3 나 이과 1등, 한국대야 +1 24.01.08 130 3 12쪽
2 이 기분에 축구를 하는구나 +1 24.01.08 152 4 13쪽
1 수행평가 시간에 해 봤죠 +1 24.01.08 20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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