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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가 너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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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1.08 12:20
최근연재일 :
2024.01.11 10:56
연재수 :
7 회
조회수 :
967
추천수 :
27
글자수 :
38,461

작성
24.01.08 14:57
조회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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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이 기분에 축구를 하는구나

DUMMY

“후반전엔 수비적으로 가자. 2점 차이면 왠만하면 안 져.”

“그래. 우리 수비 좋잖아.”

“할 수 있어.”


오합지졸이 의기투합하며 손을 합쳤다. 성규가 소리쳤다.


“하나, 둘, 셋.”

““5반 화이팅!””


잔뜩 상기된 얼굴로 포지션을 잡는 선수들.

나는 조용히 준호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다른 친구들보다는 준호가 발재간이나 시야가 제일 좋아 보여서였다.


“이따 공 잡으면 앞으로 찔러 줘.”

“파고들게?”

“응.”


성규가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못믿겠다는 눈초리.

나는 성규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야. 어차피 2:0이잖아. 속는 셈 치고 주라니까.”

“아, 알았어.”


성규는 운동은 잘 하는데 유약한 성격이다. 확실하게 지시를 해 줘야 말이 먹힌다.

창원이를 슬쩍 바라보니 날 바라보며 엄지 손가락을 세우며 입모양으로 말한다.


-네가 최고야.

-오냐.


나도 대답해줬다.


-삐익


휘슬이 울리고, 후반전이 시작됐다.


“이판사판이야! 달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공을 넘기고 전방으로 달리는 6반 공격수들.

스트라이커 뿐만 아니라 윙포워들도 그냥 골대 앞으로 달려가는 게 가관이다.

상대편 주장이 공을 길게 걷어 찼다.


‘뻥축구.’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수준 낮은 경기에서 가장 효과적인 게 바로 저 뻥축구니까.

골대 앞에서 난전을 만들고, 몸으로 비벼서 골을 넣는 게 사실 5반과 6반 최고의 전략이었다.

솔직히 축구보다는 미식축구나 피구에 가깝다.


‘우리반은 내 덕에 뻥축구를 면했지만.’


공은 아슬아슬하게 여러명의 발을 오가다가 튕겨져 나왔다. 쓰로인을 하고 코너킥을 차 대다 보니 공은 패널티 박스 안에서만 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센터백 한 명의 머리에 맞은 공이 그대로.


-철썩


골대로 들어갔다.

자책골이다.


“아, 아아아악!”


자책골을 넣은 센터백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우리반 선수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골대를 바라보고.


“크흐흐흐. 병신.”


6반 주장이 킬킬대며 공을 얼른 주워서 센터 써클로 뛰어갔다.


“괜찮아. 아직 한 골 앞서고 있잖아.”


역시 주장이군. 성규가 센터백을 일으켜 세우며 팀원을 다독였다.


“정신 차려. 한 골 더 넣으면 돼.”


그러더니.


“줄 데 없으면 한국대한테 보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나한테 줘 봐.”


아무래도 내가 너희들보단 나을 것 같으니까.


-삐익


휘슬이 울렸다. 미드필더와 수비진은 공을 몇 번 돌리다가 마법처럼 상대에게 공을 헌납했다. 묘한 기시감에 머리가 어지려워지려 할 때, 다행히 성규가 태클로 턴오버에 성공했다.


“달라붙어!”


주장의 허접한 지시에 6반 선수들이 덕지덕지 달라 붙었다. 허둥지둥대던 성규가 공을 뻥 걷어 찼다.

낙하 지점으로 달려간 내 발에 공이 달라 붙었다.


“한국대 새끼, 막아!”


6반 승냥이들이 우르르 달려 들었다.

창원이를 슬쩍 바라봤다. 이미 앞선 두 번의 공격 때문인지 6반 수비수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지역방어를 버리고 대인방어로 돌아선 모습.


‘영리하네.’


6반 수비수들이 동작은 굼떴지만 머리 회전이 빨랐다. 확실히 우리반보다 한 수 위로 보였다.

미드필더들이 날 압박해 들어왔고 나는 공을 슬쩍 준호에게 흘렸다.


“으잉?”


당연히 공격수에게 찰 줄 알았던 상대가 벙찐 순간, 나는 앞으로 내달렸다.

준호가 다이렉트 패스로 공을 내게 밀었다. 나는 공을 트래핑한 채로 앞을 바라봤다.

바로 그 순간.


‘...와우!’


처음 보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드넓은 운동장과 골대, 골키퍼.

수비수 셋을 몰고 다니는 창원이와 내게 달려오는 두 명의 미드필더.

뭐라 표현해야 할까.

몇 번 해봤던 축구 게임을 하는 기분이랄까?

눈 앞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 기분에 축구를 하는 건가?’


나는 앞으로 드리블했다. 상체 균형 이동만으로 한 명을 벗겨낸다. 곧바로 발이 공에 다가오는 순간 공을 툭 차고는 달렸다.

남은 건 수비 세 명.


“달려!”


내 외침에 창원이가 앞 공간으로 달려갔다. 수비 둘이 따라붙고 하나가 내게 붙는다.

패스 하는 척 하다가 공을 접어 한 명을 따돌리고.

그대로 공을 때린다.


-촤아아아악


가볍게 감겨 들어간 공이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 좌측 상단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느꼈다.


나는 축구 천재였다.


“우와아아아악!! 이 미친새끼!”


창원이가 나를 다시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아예 무릎 아래를 잡더니 위아래로 잡아 흔들었다.

그러자 우리쪽 필드가 한 눈에 들어왔다.

광인처럼 괴성을 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드는 우리반 선수들과.

넋이 나가서 바닥에 주저 앉은 6반 살쾡이들.

골대에서 방방 뛰는 비누손까지.


생전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



3:1로 경기는 끝이 났다.

죽일 듯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6반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교실로 들어갔다.

이제 6반 복도는 못 지나가겠는데?


“야, 이제 내가 너 형님이라 부른다.”

“큭. 나 잘했냐?”

“미친. 잘 한 정도가 아니지. 너 같은 놈 처음 본다. 그동안 왜 축구는 안했냐?”

“공부하느라.”

“...아, 맞다. 너 전교1등이지?”


현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우리학교 급식은 괜찮은 편이다. 오늘은 밥에 새우튀김 두 개, 샐러드와 된장국이다. 현우와 함께 자리에 앉았는데 뭔가 식판에 툭 놓였다.

···새우튀김?


“한국대. 고맙다.”


다른 한 명이 지나가며 새우튀김을 툭 놨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대박.”

“미친 존재감.”

“MOM.”


순식간에 새우튀김이 수북이 쌓였다. 20개는 넘어 보였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하나를 집어 먹는데 건너편에서 6반 주장이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크흡.”


그 때 마법처럼 물컵이 앞에 놓였다. 주장 성규였다.


“야, 한국대. 너 뭐야?”

“뭐가 뭐야?”

“너 선출이야?”


선출? 선수 출신?


“뭔 소리야. 난 수출이야.”

“...?”

“수행평가 출신.”


큽. 얼른 물을 삼키고 보니 현우와 성규가 질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개그엔 재능이 없네.”

“유머까지 잘하면 그게 사람이냐.”


다행히 인간미를 심어주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성규가 의자를 끌어 당기며 내게 속삭였다.


“오늘 오후에 연습할 건데 같이 할래?”

“아니. 나 공부해야 돼.”


내 칼같은 대답에 성규가 당황할 때 현우가 끼어들었다.


“너 달리기 하는 시간에 잠깐 하고 가면 되겠네.”

“달리기?”

“아. 한국대 학교 끝나고 집에서 공부하기 전에 달리고 들어가거든.”

“아, 진짜? 그래서 체력이 좋았구나. 얼마나 달리는데?”

“2km.”


내 말에 성규가 다시 당황했다.


“2km를 달린다고?”

“응. 매일 루틴이야. 중학생 때부터.”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6학년 때부터 공부할 때 체력이 부족해서 시작한 달리긴데 2km 정도가 적당해서 매일 달린다.


“너, 너 진짜 못하는 게 없구나?”


성규가 질린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난 조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대답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 밖으로 탁 트인 운동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그 느낌은 뭐였을까?’


공을 잡고 상대 진영으로 달릴 때의 기묘한 느낌.

날 붙들고 끌어내리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것 같았다.

나는 성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하고 가지 뭐.”


탁.

성규가 남은 새우튀김 하나를 내 식판 위에 올렸다.



*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좀 늦었네?”


현아가 손에 쥐고 있던 걸 휙 던졌다. 이온 음료였다.


“땡큐.”

“유어 웰컴.”


그러더니 휙 지나간다. 중2병 걸린 여중생 치곤 그래도 고분고분한 편.


“오늘은 표정이 좋아 보이네?”


엄마가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말했다. 나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축구했거든요.”

“축구? 웬일로?”

“아.”


나는 오늘 느낀 기분을 말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어차피 체육대회 끝나면 그만할 텐데. 굳이 뭘 말해.


“체육대회 종목이 축군데 뛸 애가 없어서요.”

“오호.”


엄마가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입을 오무렸다.


“내가 말했잖아. 젊었을 때 운동 진짜 잘했다니까?”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였다.


“일찍 오셨네요?”

“그래. 오늘은 회사가 좀 일찍 끝났네.”


아빠는 춘흥 건설회사의 상무다. 아무래도 간부다 보니 회식도 잦고 일이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별 일이 없었던 모양.


“아들. 축구 그런데 재미 들리지 마라. 나도 왕년에는 영입 제의 같은 거 받고 그랬었는데. 이거 봐라. 잘 하는 거 하니까 이렇게 회사에서 잘 나가잖아?”


팬티 바람으로 나온 아빠의 상의에는 춘흥 건설의 마크가 큼지막히 박혀 있었다.

나도 안다.

대한민국에선 공부가 최고지.


“알아요 저도. 축구는 무슨 축구에요. 그냥 재미지.”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2에 축구는 무슨 축구냐.

나는 음료를 쭉 들이키고 활기차게 말했다.


“씻고 올게요!”



*



다음 날 아침.

성규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수비 후 역습. 공은 백준호, 김현우, 최성규에게만 차는 거야. 알겠지?”

“옙썰!”

“걱정하지 말라고!”

“벌써 준결승이잖아? 가 보자고!”


나머지 선수들이 킥킥대며 소리쳤다.

대부분은 숙적 6반을 꺾은 데에 대만족 중이었다.

사실 오늘 경기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놈들은 거의 없었다.


‘상대가 ‘그’ 3반이니까.’


명실상부 충덕고 최고의 축구팀. 바로 그 3반.

그게 우리 준결승 상대였다.


“김제경 그 자식 경기 뛴다고 했지?”

“그렇다니까.”

“그게 뭐야. 완전 사기잖아?”

“체육이 괜찮다는데 뭐 어쩌겠어. 솔직히 성제쌤이 된다고 하면 문제가 없다는 거긴 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수긍했다.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게 김성제 선생님이다. 이전 경기만 해도 이름 잘못 썼다고 나를 경기에 집어 넣었잖는가.


“걔는 축구부 입부 예정이잖아.”

“아직 들어가진 않았다 이거지.”


문제는 이거였다.

충덕고는 엘리트 축구부가 존재한다.

당연히 엘리트 선수는 체육대회에 축구선수로 뛰지 못하는데 이 김제경이란 놈은 입부 ‘예정’이라서 가능하다는 것.


“에이, 젠장. 그럼 진 거잖아?”


한 명이 투덜거리자 성규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야, 임마. 솔직히 저쪽도 김제경 빼면 별다를 거 없어.”


그러더니.


“다들 기억해. 준호, 현우, 창원이. 세 명한테 뻥 차면 돼.”


선수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리에겐 어차피 그 전략 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상대도 그 전략밖에 없는 거 아닐까?



*



“감독님. 그냥 결승전 때 보시면 될 건데요.”


빡빡 머리에 피부가 잔뜩 그을린 학생이 말했다. 축구복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엔 충덕고 문양이 크게 박혀 있었다.


“지금도 보고 그 때도 보면 되지, 임마.”


충덕고 감독 최길수가 한시우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어차피 요즘엔 수업 시간에는 훈련도 못 하는데 이런 눈요기라도 해야지.


“저기 있네요. 저 큼지막한 놈입니다.”

“김제경이라고?”

“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선수 하다가 그만 뒀다고 합니다.”

“왜?”

“때렸다는데요?”


최길수가 피식 웃었다.

꼭 축구 하다 보면 그런 새끼가 있다. 지가 감독이라도 된 양 깝치는 놈들. 근데 중학교 1학년 때 때렸다고?


“누굴 때렸대?”

“선뱁니다.”

“개새끼네.”

“맞습니다. 그래도 실력은 좋습니다.”

“...흐음.”


최길수가 말없이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폭력 같은 건 개인 뿐만 아니라 팀 전체에 커다란 위험 요소다.

하지만.


‘실력이 확실하다면.’


그렇다면 감독으로서 얼마든지 커버를 칠 생각이 있는 최길수였다.


‘막말로 내 밑에서 폭력을 쓴 것도 아니고 말이지.’


한 번 지켜볼까?


-삐이익


병아리들의 킥오프에 최길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나는 등번호 10번을 달고 있는 선수를 바라봤다.


‘저 놈이 김제경이군.’


어렸을 때 선출에, 곧 고등 엘리트 축구부 입부 예정이라.

당연히 내가 상대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어차피 저 놈을 못 막으면 경기는 못 이기겠지.’


성규가 귀띔한 건 아니다. 성규는 전체적으로 수비에 집중하되 김제경을 눈여겨 보자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집중 마크가 필요해.’


그리고 그걸 내가 해 볼 생각이었다.

시합은 3반의 선공.


-삐이익


휘슬이 울리자마자 공을 건네받은 김제경이 달려들었다.

패스를 돌릴 필요도 없다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표정.

몸짓 한 번에 창원이가 나가 떨어지고.

준호의 가랑이 사이로 공이 새어 나간다.

그리고, 내가 뻗은 왼발에.


-터억


공이 붙들렸다.

균형을 잃은 김제경이 바닥으로 볼썽 사납게 나자빠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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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잡어인가 대어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1 24.01.11 119 6 11쪽
6 고교 레벨 +1 24.01.10 117 3 12쪽
5 양학 우승 +1 24.01.09 122 3 12쪽
4 균형이 무너졌다 +2 24.01.09 125 3 14쪽
3 나 이과 1등, 한국대야 +1 24.01.08 130 3 12쪽
» 이 기분에 축구를 하는구나 +1 24.01.08 152 4 13쪽
1 수행평가 시간에 해 봤죠 +1 24.01.08 20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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