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이더스의 능력을 쓰고 있는 작가 의리로간다입니다.
요번 제 소설이 2015년 7월 12일부로 유료화가 됩니다.
솔직히 유료화보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사정상 유료연재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현재 저는 직장을 다니지 않고 할머니를 간병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연세가 86(주민등록증 78살)살이시다 보니 노화로 인하여 각종 병이 생기셔서 작년만 해도 병원을 두 번이나 한 달 가까이 신세를 보내야 했습니다. 올해도 2월에 병원 입원했다가 퇴원을 하셨습니다.
그 후부터 할머니께서 많이 악화되셔서 일반적인 생활을 못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호전이 되셔서 거동을 하시고 계시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생기는 골다공증, 동맥경화, 심부전증, 알츠하이머, 뇌혈관 손상, 허리디스크, 피부병 등 병도 다양합니다.
특히 알츠하이머. 저희 말로는 치매라고도 하는데 이게 육체적 치매랑 정신적 치매 두 개가 있는데 집 밖에 나가실 때는 항상 제가 휠체어를 끌고 가야 합니다. 또한, 인지 능력이 과거보다 떨어지셔서 밖에 못 나가게 합니다. 물론 할머니도 밖에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 하루의 시작은 할머니 아침을 차려드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평일에는 나라에서 보내주시는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 아래 아침 점심을 해결하지만, 아주머니가 떠나고 나서부터는 제가 옆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간혹 새벽마다 소변을 보실 때 방 한쪽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에 제가 옆에서 부축해드리고는 합니다.
제 일과는 새벽에 할머니가 소변을 자주 보시기에 부축하는 일입니다. 대소변 뒤처리를 하고 이틀에 한 번꼴로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야 했고 한 달에 3번꼴로 대형병원에 가셔서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시고 계십니다. 또 복도를 왔다 갔다 걸어가는 운동을 할 때 곁에 붙어있고요. 그나마 지금은 혼자서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중 반은 제가 일으켜서 화장실로 데리고 가거나 방에 설치한 간이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볼 때도 많습니다.
힘드냐고요? 솔직히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할머니와 저의 생활 차이입니다.
할머니 대변을 닦는 일이나 목욕시키는 일, 식사를 차려드리거나 요리를 하는 일은 괜찮습니다.
할머니한테 일하지 말라고 말을 해도 생전에 움직이셨던 습관 때문이신지 이것저것 참견하거나 직접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설거지가 문제인데요.
신경을 쓰지 말라고 말을 해도 알츠하이머 때문에 까먹고 설거지하다가 허리 아프셔서 누우시고. 대화해서 앞으로 절대 안 하겠다고 약속을 받아도 7일이면 까먹고 또 하시고.
저번 주 토요일은 진열대 뒤쪽에 있던 식초를 꺼내시다가 앞쪽에 있는 유리병이 떨어졌는데 그게 할머니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부딪혀서 압박 골절로 반기부스를 하는 상태입니다. 식초는 왜 꺼내느냐고 물어보니 자신도 왜 꺼내는지 모르겠다고 대답을 들으면서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리고 버럭버럭 화를 냈습니다.
왜 다치냐고.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요양원에 가라고. 할머니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내가 있는 건데 왜 그렇게 사고를 치냐고. 할머니도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요양원에 보내라고 말을 꺼내자 그게 자신의 몸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할 말이냐고 또 싸웠습니다.
저녁이 되고 밤이 돼서는 할머니에게 사과했습니다. 제발 다치지 말라고. 다치면 나도 힘들고 할머니도 힘들다고. 그러니 아프지 말라고만 했습니다.
할머니는 죽어야 안 아프지 하면서 잠들었습니다.
현재는 호전되다가도 다쳐서 다시 악화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할머니 잘못은 아닌데 소리를 친 제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속이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도 쌓인게 많았나 봅니다.
아프지 않게 하려고 곁에 있는데 부상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다른 문제라면 가족과 친구들입니다. 소설을 써온 지 15년.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글쓰기가 대학 졸업 후에도 여전합니다. 현재 제 나이는 30입니다.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나이입니다.
가족들은 더 늦기 전에 취직을 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더는 할머니 때문에 희생하지 말라고. 할머니는 요양원에 보내고 너는 취직을 하라는 게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가족과 친구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서 알았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여유만 된다면 모시고 살고 싶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는 것을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전 지금 할머니 옆에서 24시간 붙어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항상 옆에 있죠.
할머니한테는 몇 번 요양원 이야기를 꺼내면 처음에는 가겠다고 하시다가 앞으로 이곳에 다시는 못 온다고 하시면 안 가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다가 할머니한테 진실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할머니. 나 할머니 죽으면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아.
할머니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집이 부자인 것도 아니고, 내가 영원히 젊은 것도 아니잖아.”
그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면 답했습니다.
“그래. 내가 죽으면 너에게 남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차라리 돈이라도 있으면 너한테 줄 텐데.”
하면 슬퍼하는 얼굴을 보자 이 짓도 못할 짓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럴 때는 할머니가 치매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도 많습니다. 인지 능력이 떨어질 뿐이지 할머니와의 대화도 몇몇 문제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그렇게 허락을 얻었지만, 막상 보내려고 하니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제 미래를 위해서 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모님들도 자신이 늙어서 더는 지내기가 힘들면 저희들 고생시키지 않게 요양원 들어갈 거라고 말들 하고 계십니다.
나중에 제가 할머니를 왜 요양원에 안 보냈느냐고 가족들을 원망하고 가슴에는 한이 생길 거라고 형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를 지금 보내도 한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결정한 게 유료화였습니다.
푼돈이라도 벌 수 있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저에게 필요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유료화에 대한 독자님들에 대한 변명이자 무직인 제가 가족들에게 하는 변명일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서 할머니 핑계를 대는 것일 수도 있고 직장이 없는 지금의 생활을 작가라는 이름으로 무마시키고 가족들을 인정하게 하려면 글을 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할머니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떠나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과거 중학교 2학년일 때 글을 쓰다가 욕을 많이 먹기도 했습니다. 그 후 충격을 받고 제 나름대로 중2부터 고3까지 공부하는 척 소설 하나에 모두 투자했습니다. 성적이 바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였죠. 그 후 대학교에 가서도, 군대에서 투고가 되었을 때에도 공책에다가 소재거리나 소설을 썼습니다.
회사도 다녀보고 공장도 다녀보면서 사회생활도 해봤습니다. 돈도 벌어보고 빚도 져보고 이런저런 생활도 많이 해봤습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면 저는 언제나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공장을 다녔을 때도 소설책을 빌려서 봤고 회사에 다녔을 때도, 대학교에 다녔을 때도, 군대 휴가나 외박을 나왔을 때도 책방에서 책을 보면 하루를 보낸 적도 많았습니다.
밤늦게 야간 공장에서 근무하고 집에 와서 식사하고 잠들기 전 30분 동안 글을 쓰려다가 책상에 엎드려 잘 때도 많았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글을 쓰고, 대학교 과제를 하는 틈틈이 제 소설을 썼습니다.
복권을 사서 당첨되면 24시간 책방을 운영하면서 글이나 편하게 써야지 하면 시시덕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했고 글을 쓸 때 힘들면서도 뿌듯했습니다.
즐독 했다는 댓글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고 오류 지적이나 맞춤법 지적에 쥐구멍에 숨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재미가 없다, 내용 전개가 느리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댓글을 보면 한숨을 쉬었습니다. 속으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외쳐보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과거와 비교하면 악플이 약하다는 게 위안거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제일 심하게 받아 본 악플은 각자 식칼을 들고 00시 00동에서 만나서 서로 찔려서 둘 중 한 명은 죽자는 쪽지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웃겨서 하하하하 웃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무서웠습니다. 쪽지를 삭제하고 아마 그 이후로 글도 삭제하고 안 올린 게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작가가 쓰는 글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라 더욱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떤 분이 쓴 글은 재미있고 어떤 분이 쓴 글은 재미가 없습니다. 근데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글은 이미 써졌습니다.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고 쏘아진 총알은 도로 탄창에 넣을 수 없습니다.
이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십오 년간 모아두었던 자료들과 설정들을 뽑아왔습니다.
유료화로 인하여 독자님들 중에 앞으로 이 작품 안봐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판단이기 때문에 붙잡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떠나가는 사람은 붙잡기 보다는 저와 세계를 공유하는 독자님들을 붙잡고 싶습니다.
댓글로 제 글을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름대로 제 소설에 뼈대를 구축했다는 생각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저만의 세계관을 만들었고 적을 부각했고 적과 싸워야 하는 대의명분을 더 확고히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이후의 글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겠습니다.
유료화로 인하여 독자님들 중에 앞으로 이 작품 안봐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판단이기 때문에 붙잡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떠나가는 사람은 붙잡기 보다는 저와 세계를 공유하는 독자님들을 붙잡고 싶습니다. 제가 만든 세계에 같이 빠져드실 분을 저는 원하고 또 원합니다.
예전 교수님께서 저에게 작가로서 최고의 영광이 뭐냐고 할때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백석이 쓴 북한에 대한 시를 읽고 북한이 그리워 백석공원에서 자살한 북한 실향민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죽는 독자보다는 제 세계를 공유하는 독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달라질 수도 있고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독자님들한테 돈을 받을 만한 작품을 쓰겠습니다.
가수는 노래로 말하고 작가는 글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글로 말한다고 하기에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그저 아무쪼록 좋게 봐주시고 잘못된 오류나 맞춤법이 있으면 알려주시는 대로 바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 생각과 제 마음을 그대로 글에 올렸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노력하는 작가보다 글을 끝까지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첨부-글은 40화까지 무료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40화까지가 제 소설에 뼈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41화부터 유료가 시작됩니다.
연재 주기는 일주일에 3편을 기본으로 하고 글이 써지면 하루에 한편씩 올리겠습니다.
현재 할머니의 간병도 하는 상황이기에 비상시 글을 못 쓰는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공지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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