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일반소설

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3.18 20:47
연재수 :
202 회
조회수 :
1,077,025
추천수 :
33,696
글자수 :
1,864,586

작성
22.12.10 20:34
조회
1,506
추천
50
글자
26쪽

169. 스코티시 레벨이 아니다 (2)

DUMMY

“그는 굉장히 원칙적인 사람이에요. 감독님이 부임하고 나서 정말 많은 게 바뀌었어요. 우선 10시였던 훈련 집합 시간이 9시로 줄었죠. 그동안은 10시 넘어서 출근하는 인원도 있었는데, 이제 안 됩니다. 무조건 9시. 어기면 벌금을 물어야 해요. 점심은 반드시 팀원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식사하도록 정해졌죠. 경기 다음 날에 하루 휴식을 부여받는 것도 폐지됐어요. 컨디션도 회복 훈련을 통해 구단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면서요.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필요했던 건데 당시엔 어땠겠어요? 대부분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 반발은 며칠 만에 가라앉았어요. 부임한 다음 날, 우리가 본 게 뭔지 아세요? 누구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구장에 훈련 기구를 홀로 배치 중인 감독님이었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리더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주는데 감히 거역할 수 있겠어요? 그 이후 아무도 규칙에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죠.” - 수비 전담 코치 ‘크리스 리들(Chris Riddle)’ -


*******


[ Daily Express ] 애버딘도 햄던 파크의 제물이 되다


[ Scottish Sports ] 개막 후 4연승, 거침없는 로스 카운티의 상승세


[ BBC ] 카운티 신드롬은 여전히 뜨겁다


[ Football Focus ] 더 저돌적으로 변화한 앤드류 톰슨의 스타일


[ Daily Mail ] 블랜차드의 최종 선택 시간이 다가오는 중



[다음 경기 상대는 던디 유나이티드입니다. 개막전 이후 던디 FC 팬들은 이 순간만을 벼르고 있었을 텐데요. 과연 던디 유나이티드는 로스 카운티에 받았던 치욕을 돌려주고, 웃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똑같이 수렁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될까요?]


상위 스플릿 그룹에서도 밑바닥인 6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체면을 제대로 구긴 던디 유나이티드.


보드진은 임시로 소방수 역할을 맡았던 사이먼 도넬리에게 정식 계약서를 내밀지 않기로 결정했고, 도넬리는 감독 대행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본직인 수석코치 자리까지 반납하며 던디를 떠났다.


떠나려는 건 본인의 의지도 컸지만, 보드진 역시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여겼는지 붙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상 상호합의하에 헤어진 거라 볼 수 있었다.


이후 위기의 던디 유나이티드를 구원해 줄 인물을 모셔 오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제일 원했던 건 시즌 도중 부임해 강등권에 처박힌 세인트 존스톤을 바짝 끌어올렸던 라이언 고드프리였으나.


눈치 빠른 세인트 존스톤은 던디 측에서 접근하는 걸 알자마자 급료를 대폭 인상한 재계약을 제시하며 그를 지켜냈다.


수많은 리스트를 물색하며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소모했음에도 진전이 안 되자 보드진은 계속 미뤄두었던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셀틱이 쓴 방식. 과거 영웅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저 그런 클럽에 지나지 않았던 이곳에 영광의 씨앗을 처음 심었던 전설적인 감독 짐 맥클린.


그가 1993년에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로 던디 유나이티드는 끔찍한 성적을 거두다 2년 만에 강등의 수모를 겪었다.


간신히 올라온 뒤에도 중위권과 하위권을 오르내리며 맥클린의 흔적이 희미해져 갈 때쯤. 2000년대 중반기에 나타나 떨어지는 이 팀의 명성을 회복시켜 준 두 인물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2006년부터 삼 년간 팀을 잘 이끌다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스코틀랜드 대표팀을 맡으러 떠났던 크레이그 레빈(Craig Levein).


2013/14 시즌에 강등됐던 킬마녹에 대뜸 취임하더니 뛰어난 지도력으로 승격을 이뤄냈고, 다시 프리미어십 무대에 돌아온 상태다.


쭉 하향세를 그리던 팀을 일으켜 세우고, 상위권에 도약하며 팬들이 지금까지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는 위상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던 인물.


그러나 레빈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킬마녹에 남아 성과를 거두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두 번째 대상으로 선회해야만 했는데.


레빈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후 자리를 이어받은. 그리고 해당 시즌에 스코티시 컵 결승까지 올라가 트로피를 거머쥐며, 던디 유나이티드의 최근 우승에 일조했던.


현 폴커크 감독, 피터 휴스턴(Peter Houston)이 마지막 남은 구세주였다.


하지만 이 거래에는 보드진의 큰 결심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꼿꼿하게 유지해온 고개를 숙여야만 하니까.


휴스턴은 유능한 감독이었지만, 보드진과 잦은 마찰을 빚곤 했었다.


구단의 부채를 줄이고 싶은 단장, 주축 선수를 계속 팔아넘기면서 지원은 미약한 게 불만인 감독. 서로의 입장 차이로 인한 문제로 시작했지만.


끝에 가서는 감독 본인마저 급여 삭감을 요구받아 둘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고, 결국 갈라서는 수순을 밟아야만 했다.


레빈이 직접 인터뷰를 통해 휴스턴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며 지적할 때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던 보드진.


그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는 간단했다.


더는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데이비드 서튼 단장이 앙금을 풀고 먼저 휴스턴에게 다가간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보드진도 뼈저리게 깨달은 모양이죠. 감독 선임을 가볍게 생각하고, 어중이떠중이들만 앉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걸 말입니다.” - 던디 지역, 풋볼 라디오 진행자 ‘폴 콘웨이(Paul Conway)’ -


잭 맥퍼슨과 알란 윌슨. 휴스턴의 자리를 차지한 두 후임자의 거듭된 실패 이후 던디 유나이티드는 올해 강등권 후보 중 하나로 전망되었다.


짐 맥클린 이후 추락했던 과거의 그 전철을 똑같이 밟을 거란 얘기가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부채 탕감이고 뭐고, 강등되면 수입이 반토막 나버리는데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떻게든 프리미어십에서 생존하는 게 우선이었다.


확실하게 지원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며 유일한 희망에 매달린 보드진. 휴스턴 역시 던디에 아직 애정을 품고 있었기에 재결합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Scottish Sports ] 집결하는 프리미어십 클래식



언론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셀틱에 이어 던디 유나이티드까지. 거기에 킬마녹의 레빈도 포함하면 이번 시즌의 기대치는 최고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이뤘던 위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일랜드에서 발생한 거대한 돌풍이 없었다면 아마 영원히 일어나지 않았을 대사건.


이탈리안의 나비 효과가 프리미어십 판도를 뒤바꿔 버린 거다.


팬들 역시 이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휴스턴의 복귀는 충분히 반길 만한 소식이었다.


그때와 많은 게 달라지긴 했지만, 당시 우승했던 스코티시 컵 결승 상대가 로스 카운티였다는 점도 의미가 깊을 것이다.


던디의 악몽으로 자리 잡은 그들을 한때 꺾은 적이 있었던 감독이 돌아온 셈이니까.


*******


< 15-16 Scottish Premiership 5 Round >

던디 유나이티드 : 로스 카운티

2015년 8월 22일 (토) 15:00

태너다이스 파크 (관중 수 : 10,519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존 맥긴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낭만과 다르게 초반은 좀 삐걱거리고 있다만.”


존 프리먼은 던디 유나이티드 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4경기 1승 2무 1패. 그중 패배는 개막전에서 셀틱에 당한 것이긴 하나,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고 볼 순 없는 성적이다.


여기서 도약하려면 오늘 로스 카운티를 잡아내야겠지만, 과연 어떨지.


“어디 한 번 볼까.”


프리먼은 노트북을 펼쳐 들고 가볍게 손가락을 풀었다.


지난 네 경기 동안 차곡차곡 쌓여온 데이터, 일주일을 푹 쉰 주전들의 총출동, 관록이 쌓여 있는 피터 휴스턴과의 대결.


이보다 분석하기 좋은 타이밍이 없다.


매 경기 무시무시한 화력을 뿜어내는 로스 카운티.


유로파 리그 우승을 포함해 숱한 경기에서 얻은 풍부한 경험과 일 년간 꾸준히 성장한 선수들의 기량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걸 고려해도 설명이 안 되는 퍼포먼스다.


겉으로 쉽게 알아보기 힘든 무언가가 더 숨겨져 있다는 것인데.


갑자기 윙 포워드로 배치된 잭 마틴과 안토니오 델 레오네의 특성을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역시 전술뿐이지 않겠는가?


“우선 기본 포메이션은 4-1-2-3이 맞고······”


킥오프한 뒤 로스 카운티가 갖춘 진형을 보며 프리먼은 타자를 두들겼다.


올 시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전방 압박이다.


원체 압박량을 많이 가져가는 팀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크게 두드러져 보이는 변화다.


전보다 더 올라간 라인, 더 높은 강도의 압박.


수비진을 넘어 골키퍼 영역까지 위협을 가하니 상대 팀은 여유로운 볼 처리를 할 수 없게 된다.


예전에는 후방에서 쉽게 전진할 수 없도록 패스의 길목을 봉쇄하는 식의 압박이었다면, 지금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압박.


그리고 이건 최근 축구의 흐름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게겐프레싱(Gegenpressing).


독일어를 합성한 최상위 단계의 압박으로 볼을 뺏기면 물러서서 대열을 정비하는 게 아니라 즉각 달려들어 재차 볼을 빼앗는 접근 방식이다.


중위권에 머물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독일의 포식자 바이에른 뮌헨을 물리치면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단번에 유명해진 전술.


그 게겐프레싱을 이식했던 감독 위르겐 클롭은 유행처럼 뻗어나갔던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의 강력한 대항마가 되면서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리그 챔피언의 왕좌를 지키려면 제자리에 머무를 수만은 없을 테니.”


작년의 로스 카운티는 압박을 하더라도 라인을 적당하게 조절하면서 상대방을 어느 정도 끌어당긴 뒤 중앙 싸움을 유도하는 편이었다.


그래야 빠른 발을 가진 톰슨 같은 선수가 뒷공간을 파고들 수 있었으니까.


이제 견고하게 쌓은 수비 대형을 두고도 세밀한 공격을 펼칠 수 있는 팀이 되었으니 한 패턴에만 비중을 둘 필요가 없어졌다.


일 년 차에는 라인을 가라앉히고 요앙 아르킨의 체격과 롱볼을 이용한 역습 축구, 이 년 차에는 좀 더 올라가면서 공격적인 압박으로 볼을 탈취한 뒤 빠르게 침투하는 속공 축구.


삼 년 차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완성된 안토니오 델 레오네의 로스 카운티는 완벽히 주도적인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단 얘기다.


굳이 따진다면 이 팀은 볼을 최대한 많이 소유하려는 스페인식의 지배적인 운영보다 직선적인 전개를 선호하는 독일식 축구와 닮아 있다.


물론 로스 카운티가 세계를 뒤집어 놓았던 도르트문트의 경지까지 도달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 그 흐름을 따라가려 하고 있다.


게겐프레싱은 공격을 실패했을 때 다시 소유권을 가져올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상대 진영까지 압박할 수 있게 라인을 끌어올려야 한다.


“저렇게 미칠 듯이 압박을 가했던 경기가 작년에 딱 한 번 있었지.”


그때는 1차전 홈에서 세 골이나 내준 바람에 무조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얼핏 봐도 로스 카운티는 전방 압박을 이행하기 좋은 자원들이 많다.


딩월은 말할 것도 없고, 톰슨이나 브리튼, 케틀웰 등. 아직 돌아오지 않은 블랜차드까지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을 지녔다.


이번에 영입한 존 맥긴 또한 스테미나에 강점을 지닌 선수.


하지만 저 이탈리안이 게겐프레싱의 아류작으로 만족할 위인이겠는가?


프리먼이 4-1-2-3을 ‘메인’이 아니라 ‘기본’이라 칭한 것은 로스 카운티의 진형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격수 세 명이 최전방에 포진한 4-1-2-3 포메이션.


체계가 잡힌 압박 시스템에 상대는 버티지 못하며 급하게 걷어내고, 로스 카운티가 세컨드 볼을 쉽게 확보한 뒤 공격을 계속 이어 나간다.


앞선 네 경기에서 볼 수 있던 흐름들이었다. 던디 유나이티드도 이 방식에 고전하며 크게 밀리는 중이었다.


프리먼은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로스 카운티의 저돌성에 위축되어 상대가 최후방으로 밀려났을 때. 점점 수세에 몰려 공격진까지 수비 하러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


중앙 미드필더에 위치한 맥긴이 좌측으로 빠지면서 위로 올라간다.


그러면 상대 팀 수비수를 한 명씩 전담한 수준의 극단적인 전방 압박 형태가 만들어지는데, 일반적이라면 위치상 우측 포워드에 해당하는 톰슨이 오른쪽 영역을 담당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딩월이 오른쪽으로 빠지고, 톰슨이 센터백을 압박하고 있다.


정리하면 맥긴과 딩월이 좌우를, 마틴과 톰슨이 중앙을 압박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거다.


잭 마틴이 최전방 골잡이 유형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어쨌건 올 시즌 공식으로 표기되는 포지션은 레프트 윙.


그렇다면 결국 센터백을 윙어들이 마크한다는 것인데. 이 역시 어디서 본 것 같은 그림이다.


“나폴리전에서 썼던 그 수법이야.”


일회성으로 소모하려던 작전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서 추가로 연구한 건지, 애초에 계획하고 있던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것은 산 파올로의 기적을 이뤘던 4-2-2-2 진형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점이다.


아예 중앙에만 밀집하여 풀백의 오버래핑 활로를 열어줬던 그때와 다르게 측면 영역을 부지런히 커버하면서 적극적인 견제를 하고 있었지만.


“당시엔 무조건 득점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 일부러 허점을 드러내면서 유인해야 했지만, 지금은 밸런스도 생각해야 하니까.”


이러한 압박 대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형성될 경우 상대는 로스 카운티의 페이스에 완전히 끌려가 버린다.


소위 그물망 축구라고 불리고 있는 지옥의 원사이드 게임이 시작된다.


그 튼튼한 그물망의 정체가 바로 좌우 2선으로 나뉜 맥긴과 딩월이다.

던디 유나이티드전 01.jpg

맥긴의 활동량이 훌륭하다면 딩월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왼쪽을 장악하는 데에는 맥긴이 뛰는 양으로 충분하다. 딩월은 그 이상을 뛰면서 오른쪽뿐만 아니라 중앙, 심지어 전후방까지 넘나들고 있다.


혼자서 광범위한 영역을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어디든 안 보이는 곳이 없어. 한 명이 세 명분의 몫을 뛰는 느낌이야.”


맥긴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딩월까지.


이렇게 활동 범위가 넓은 둘이서 공간을 점령해버리니 상대 진영인데도 던디 유나이티드의 주황색보다 로스 카운티의 군청색이 더 눈에 들어올 지경이었다.


일대일로 대치해도 금방 이대일 혹은 삼대일의 구도가 되어 수적 불리함을 안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뒤에서는 캐리와 브리튼이 적절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세컨드 볼을 계속 내주게 되고, 그러니 중앙선 한 번을 제대로 넘어가질 못하는 것이다.


요행을 바라고 내지르는 롱볼은 대부분 얀손과 델샤드의 머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정도로 잘 갖춰진 압박을 풀어 나오려면 개인 능력으로 뚫어내고 전진하거나 더 완성도 있는 조직력과 빌드업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현재 던디 유나이티드는 그 정도의 레벨이 아니다.


스코티시 리그 전체를 통틀어서 봐도 과연 그런 팀이 있기는 할까?


“그나저나 저 정신 나간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프리먼은 만약 딩월이 다른 지도자에게 발견되어 키워졌다면 아마 포지션을 변경했을 거라 생각했다.


저 활동량이야 유명해진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볼 때마다 신기할 따름이다.


공격수치고 빈약한 골 결정력과 상반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 겉보기에는 확실히 3선에 더 어울리는 자원이다.


하지만 적어도 델 레오네 밑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저 이탈리안 감독은 상대를 교란하길 좋아하며, 딩월은 거기에 최적화된 선수니까.


“얼추 정리하면 저 진형으로 세 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군.”


첫 번째는 잭 마틴의 활용.


원 스트라이커 체제에 부적합한 특성과 윙으로 어울리지 않는 프로필. 그래서 레프트 윙의 잭 마틴이라 하면 의아함이 앞서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저렇게 경기 중 변형되는 시스템이라면 언제든 투 스트라이커 체제를 만들 수 있다. 마틴에게 제일 잘 맞는 옷이 입혀지는 셈이다.


두 번째는 최전방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


좌우를 양분한 2선이 엄청나게 뛰어다니면서 다른 사람이 뛰어야 하는 공간까지 커버해주니 마틴과 톰슨은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어슬렁댄다는 건 아니고, 최소한의 압박 요구치는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마틴은 초기 때와 비교하면 활동량이 상당하게 늘었다.


이는 맥긴과 딩월의 미친 활동폭으로 인해 덜어지는 부담감, 선수들의 특성을 전부 파악하고 알맞은 환경을 조성해준 감독의 배려, 그런 감독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선수들의 노력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세 번째는 상대가 수비 라인을 올릴 수가 없다는 점이다.


마틴과 톰슨. 두 명의 라인 브레이커들이 전방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전진하기가 부담스러워진다.


톰슨의 뒷공간 침투 두 번에 나폴리는 수비수 둘을 퇴장으로 연달아 잃었었다. 그 위용을 던디 유나이티드가 모를 리 없을 터.


상대는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라인을 내리면 윗선과 간격이 지나치게 벌어지면서 로스 카운티의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을뿐더러, 캐리의 자유로운 볼 배급을 제어할 수가 없다.


후방의 캐리를 견제하려면 전체적으로 라인을 올려야 하고, 마틴과 톰슨에게 뒤를 내주는 꼴이 된다.


무엇보다 최악인 건 어느 쪽 하나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어중간한 라인을 유지하고 있을 때.


지금처럼 말이다.


우와아 -


캐리의 깔아 찬 패스가 수비진 틈새로 난 균열로 빠져나갔고, 침투하며 볼을 받은 마틴의 슛이 아쉽게 키퍼의 선방으로 막히며 밖으로 나간다.


“저런 흐름이 계속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실점하고 마는 거지.”


철썩 -


“······바로 당해 버리는군.”


뒤이은 캐리의 코너킥과 니어 포스트에서 잘라먹은 보이드의 헤더 슛으로 무너지고만 던디 유나이티드.


이제 점수를 만회해야 하는데도 선뜻 전진하기 망설여지는 것이 로스 카운티를 마주한 상대의 심정일 것이다.


그게 뜻대로 되냐는 것부터 문제일 테지만.


“또 시작인가.”


이때까지 상대하는 팀이 로스 카운티의 포위망을 왜 못 뚫어내느냐에 초점을 맞춰두고 분석했지만, 어쩌면 저게 더 핵심 장면일지도 모른다.


세컨드 볼을 따낸 로스 카운티가 어떻게 상대를 공략하느냐.

던디 유나이티드전 02.jpg

전방 압박을 가하던 맥긴이 자연스레 왼쪽에서 볼을 잡은 상황.


월리스가 즉시 오버래핑을 준비하고, 마틴이 패스를 받아주러 빠르게 달려온다. 뒤에서는 캐리가 줄 곳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퇴로를 마련해 둔다.


딩월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브리튼까지 가세할 준비를 하고 있다.


순식간에 모여드는 선수들. 맥긴을 중심으로 무수한 삼각형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패스 루트가 생겨나 선택지를 넓혀 준다.


맥긴은 여기서 오버래핑하는 월리스를 겨냥할 수도 있고, 마틴이나 딩월에게 볼을 건네주면서 연계 플레이를 시도할 수도 있다.


아니면 수비진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 뒤에서 대기 중인 캐리의 전환 패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오른쪽의 톰슨은 왼쪽에 비해 마크가 느슨한 상태다.


다른 선수가 볼을 받더라도 이미 주변에 생성된 수많은 삼각형 덕분에 패스 선택지를 고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서 수비 하는 시점으로 보면? 어떻게 공격해 들어올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운 상태.


사실 작년에도 보였던 로스 카운티의 패턴이다. TV에서는 ‘밀집과 전환’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소개한 적도 있었다.


그때의 로스 카운티 역시 경기력을 이렇게 압도할 정도는 아니어도 화력은 못지않게 강력했었고, 던디 쇼크가 발생했던 것도 이즈음이었는데.


“캐리가 도중에 장기 부상을 끊으면서 한동안 보기 힘든 패턴이었지.”


여기서 사소한 것 같아도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 잭 마틴의 변화다.


마틴은 원래 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삼각형을 만들어주기보다는 박스 안에 들어가 골잡이 역할에만 충실했었다.


감독의 지시였을 것이다. 일부러 연계 작업에 포함시키지 않고, 잘할 수 있는 것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그런데 지금은 패스 앤 무브의 일원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보이다가도 혼란을 틈타 기습적인 침투를 시도하면서 골잡이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그 패턴이 잘 드러난 게 파틱 시슬전에서 나왔던 골이다.


맥긴의 센스 있는 로빙 패스를 받아 넣었던.


늘어난 활동량도 모자라 저렇게 팀에 녹아들기까지. 잭 마틴의 안 보이는 노력이 얼마나 들어갔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작년에는 왼쪽에 과부하를 준 뒤 마크가 느슨해진 반대편으로 전환하는 게 주요 패턴이었다.


그의 노력 덕분에 ‘밀집과 전환’으로 정리할 수 있었던 플레이가 또 하나의 까다로운 패턴을 장착하게 된 셈이다.


이건 ‘밀집 속 침투’라 불러야 할까?


와아아 -


그때 팬들의 함성이 크게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캐리의 직선 로빙 패스, 마틴의 침투와 또다시 맞아떨어지며 교란을 일으킨 수비진 뒤로 빠져나간 것이다.


악착같이 쫓아가며 마틴의 앞을 가로막아서는 수비수. 그러나 그의 옆으로 돌아들어 가는 월리스까지 막아내진 못한다.


마틴의 패스를 받아 박스 안으로 진입하는 월리스. 빠르게 복귀하며 골문 앞을 촘촘히 메우고 길목을 봉쇄하는 수비수들.


크로스가 아닌 뒤쪽 대각선으로 컷백 패스를 내주는 걸 택한 월리스. 어느새 중앙으로 이동해 아크 서클 쪽에서 볼을 받는 맥긴.


슛 동작을 보며 몸을 던지는 수비수. 시늉만 하며 속임수로 벗겨내고,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깔아 넣어주는 스루패스.


매섭게 박스로 침투하며 볼을 받으려는 톰슨. 허둥지둥 달려드는 골키퍼.


삐익 -


그러나 볼이 아닌 톰슨의 발목을 잡아챘고, 주심은 가차 없이 페널티 스폿을 가리킨다.


브리튼이 페널티 킥을 성공하며 한 점 더 멀리 달아나는 로스 카운티.


어떻게 보면 잭 마틴의 침투 정도는 약과인 편이다.


톰슨은 최전방에 머무르다가도 상황에 따라 측면으로 빠지며 윙의 역할로 돌아간다. 뒤처져 있던 딩월이 갑자기 들이닥치며 공격수로 돌변한다.


좌측에서 풀어나가던 맥긴이 중앙으로 이동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변하기도 하며, 아예 과감히 들어가기도 한다.


하이버니언전에서는 박스 안으로 들어가 골문을 등지고 있던 맥긴이 케틀웰에게 토스해주며 득점을 돕기도 했었다.


톰슨을 마크하던 센터백이 측면으로 딸려 나갈 수도 없고, 맥긴을 마크하던 풀백이 중앙까지 쫓아갈 수도 없는 노릇.


전방 요원들의 다채로운 위치 변화는 수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스위칭 플레이로 인해 자칫 무너질 수 있는 밸런스는 브리튼과 델샤드를 통해 맞춘다.


월리스가 윙처럼 올라가는 대신 델샤드는 내려가면서 얀손, 보이드와 함께 백스리를 형성한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어 당장 대형을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정돈되었을 때는 비대칭 형태의 3-1-3-3 혹은 3-4-1-2에 가까운 모습.


어떤 게 메인 포메이션이라고 정의내릴 수도 없고, 어떤 선수가 어떤 역할을 한다고 명확하게 말하기도 어려운 전술이다.


경기장 위에서 올려다보는 자신도 이러한데 정면으로 수비 하는 입장에선 패닉이 올 수밖에.



후반전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시작하자마자 공격수를 하나 빼고, 미드필더를 넣으며 중앙 싸움에 힘을 실어 본 던디 유나이티드였지만.


고작 그 정도로 맥긴과 딩월의 활동량이 만들어내는 수적 우위를 극복해내기는 무리였다.


맥긴과 공격적으로 올라온 캐리가 주고받는 패스 플레이에 현혹되어 월리스의 박스 진입을 놓치고 만 수비진.


골키퍼는 팔을 뻗어 먼 포스트로 향하는 월리스의 슛을 간신히 선방해냈지만, 떨어지는 세컨드 볼에 발을 갖다 대는 마틴까지 막아내진 못했다.


이후 던디 유나이티드는 중거리 슛으로 겨우 얻어낸 코너킥으로 만회 골을 넣으며 체면치레만 했을 뿐이었다.


“아무리 시대가 지났다지만, 던디 유나이티드의 명장인 휴스턴을 상대로도 이런 경기력이면······.”


프리미어십에선 아예 적수가 없을지도.


프리먼은 아까 전부터 몸의 떨림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오늘 분석한 내용을 하루빨리 정리해서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로스 카운티의 팬이기 전에 전술 칼럼니스트로서 도저히 흥분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한낱 스코티시 리그에 국한해서 볼 게 아니다. 이 시스템은 세계적인 무대에서나 볼 법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프리시즌이었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팀을 상대로도 쉽게 밀리지 않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더블 크라운의 경험을 쌓은 로스 카운티가 더 이상 스코티시 레벨이 아니라는 말은 최근에 지겹도록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새삼 느껴졌다.


감독 역시 스코티시 레벨을 한참 넘어섰다는걸.


프리먼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로스 카운티의 일정표를 확인해보더니 두 눈썹을 치켜올리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다음엔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나? 스코티시 레벨을 훨씬 웃도는 팀을 상대로 이런 주도적인 축구를 할 수 없을 텐데.”


그는 벌써 뒤에 있을 경기가 기다려지고 있었다.



=============================

< 던디 유나이티드 1 : 3 로스 카운티 >

스콧 보이드(25‘)

리차드 브리튼(PK 39‘)

잭 마틴(62‘)

+++++++++++++++++++++++++++++

션 딜런(81‘)


=============================


작가의말
대한민국이 원정 16강을 달성해서 기쁘네요.
벤투 감독과는 아쉽게 이별하게 되었지만
후임 감독을 잘 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매번 잊지 않고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럴수럴수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15/16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스포일러 주의) 23.01.14 546 0 -
공지 2014/15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스포일러 주의) +4 18.09.04 2,076 0 -
공지 연재 주기에 관한 공지입니다 +4 18.04.11 3,266 0 -
공지 독자분들께 공지 하나 드립니다 +11 18.02.08 5,460 0 -
공지 2013/14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9 17.12.19 18,392 0 -
202 202. 공간 싸움 (3) +5 24.03.18 402 31 25쪽
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592 38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02 36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46 32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00 34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775 42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32 37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21 39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28 41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886 42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4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897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2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37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98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35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61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46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192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7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47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40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5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39 50 27쪽
178 178. 승부욕의 화신 +3 23.04.22 1,267 50 2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