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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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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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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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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167. 개막전 첫 경기 그리고

DUMMY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바로 추진했어야 하는 건데.”


존 프리먼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들의 성공이야 의심치 않았지만, 그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달성할 거란 생각까진 못 했거든요.”


“하하······.”


닐 스튜어트는 엉거주춤하게 앉은 자세로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직 선수들이 출근하지도 않은 이른 아침. 한산해야 할 클럽 하우스가 느닷없이 어수선해진 건 외부에서 촬영팀이 방문한 까닭이다.


오늘부터 진행할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모인 일행이었다.


일 년간 로스 카운티의 시즌 전체와 그 속에서 흘러갈 스토리를 카메라로 빠짐없이 담아낼 방대한 스케일의 다큐멘터리 말이다.


저명한 축구 매거진, 포포투 소속의 담당 기자 존 프리먼과 편집장 크리스 무어의 주도하에 기획되고 있던 야심 찬 프로젝트.


에든버러에서 제일 잘 나가는 프로그램 제작사인 73 필름과 협업하여 일회성이 아닌 다부작을 만들 예정이라 하니 거는 기대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전국에 퍼진 카운티 신드롬을 등에 업은 흥행 예감과 뒤따라올 돈 냄새를 어느 정도 맡았기에 추진한 거겠지만, 프리먼을 통해서 꾸준히 이어왔던 좋은 관계 덕에 구단 측에서도 흔쾌히 승낙할 수 있었다.


금전에 엮이는 거야 사업의 일환이니 당연한 것이고, 무엇보다 로스 카운티로서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클럽의 이름과 위상을 한층 드높일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특정 대상을 집중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니까.


마리 코넬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온종일 호들갑을 떨었다. 로스 카운티를 위해서 최상급의 마케팅을 손수 해주겠다는데 홍보 매니저라면 혹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기어이 대런 코너 단장을 재촉하는 그녀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다른 언론이나 방송사에서도 치솟는 로스 카운티의 주가에 군침을 흘리며 이용해 먹고 싶어 했지만, 포포투는 이 팀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한참 전부터 진가를 알아보고 사전 작업을 착실히 해왔었다.


선점했던 효과를 마침내 보게 된 셈이다.


“이쪽은 앞으로 함께할 짐 말린(Jim Malin) 씨입니다. 촬영 총괄이죠. 앞으로 여기서 오랜 기간 지내게 될 테니 잘 부탁해요.”


“영광입니다! 로스 카운티의 다큐멘터리를 우리 손으로 담을 수 있다니 정말 환상적이에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드리죠!”


“예······. 감사합니다.”


스튜어트는 멋쩍게 악수를 받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기대만큼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죠? 모처럼 다큐멘터리까지 찍어주시는데 제대로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일리 있는 걱정이었다. 작년은 그만큼 말도 안 되는 대성공 시즌. 규모가 작은 팀이 그 기세를 이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물론 이탈리안 감독이 존재하는 이상 불가능은 없겠지만, 스튜어트는 자신만만하게 단언할 수 있는 성격까진 못 되었다.


“괜찮습니다. 그것 또한 다큐멘터리니까요.”


프리먼이 대답했다.


“순탄하게만 간다면 오히려 무미건조해질지도 모르죠. 뭔가 우리가 예상 못한 시나리오로 흘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이미 사람들은 언더독이 기적을 일으켰던 과정을 목격했어요. 그것에 매료된 팬들은 성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로스 카운티 그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할 겁니다.”


“으음······.”


“어떤 흐름으로 가더라도 문제없단 얘기죠.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더블 크라운 우승 신화를 일구어낸 기적의 팀, 로스 카운티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함이니까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물론 저는 로스 카운티 팬 중의 하나로서 올 시즌도 기대하고 있지만요.”


프리먼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더니 촬영팀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럼 세팅은 완료된 것 같고, 한마디 가볍게 해주시죠. 지금부터 쭉 로스 카운티의 시즌 흐름을 찍을 건데, 중간중간 인터뷰를 끼워 넣으려면 최대한 많은 자료를 모아둘 필요가 있거든요.”


“로스 카운티의 다큐멘터리라면 감독님의 인터뷰가 우선이지 않을까요? 이 팀의 주체는 사실상 감독님이나 다름없는데······.”


“아니요.”


프리먼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를 하지 않을 겁니다.”


“네? 하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전부 감독님 덕인데. 인터뷰가 빠진다면 문제 있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오늘의 로스 카운티를 만든 주인공은 분명 감독님이죠. 그래서 참여하지 않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안토니오 델 레오네란 인물은 신비주의로 남겨야만 하거든요. 그를 대변해주는 건 당신을 포함한 주변인들이 될 거예요.”


짐 말린이 끼어들며 덧붙였다.


“그게 이 다큐멘터리의 컨셉이에요. 감독님은 이야기의 중심인물이지만, 우리는 그를 멀리서 관찰하는 시점으로 촬영할 겁니다. 전국에서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람인데 단순한 접근 방식을 쓸 순 없죠.”


“아하······.”


스튜어트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넘어가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프리먼이 말했다.


“그러면 다시 가볼까요? 로스 카운티에 관련된 거라면 무슨 얘기를 해도 상관없습니다. 흥미로운 주제면 더더욱 좋고요.”


“막상 하려니 뭘 꺼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음······. 그가 부임했을 당시는 어떤가요? 당신이 처음 감독을 마주했을 때나 선수들과 첫 대면을 가졌을 때. 아니면 갑작스레 열렸던 그 주전과 후보 간의 연습 시합, 거기서 밝힐 만한 일화가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부임할 당시라······.”


스튜어트는 턱을 짚은 채로 생각에 잠기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볍게 심호흡하며 입을 열었다.



“선수들과 대면한 첫날부터 감독님은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어요. 셀틱을 잡을 각오가 되었느냐고. 우린 당황해서 할 말을 잃어버렸죠.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세상에 어떤 감독이 승격한 지도 얼마 안 된 팀에 와서 챔피언을 잡으려 하겠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의문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변하더니 점차 확신으로 굳혀졌죠. 이후 우리에게 남은 건 그를 향한 믿음뿐이었어요.” - 수석 코치 ‘닐 스튜어트(Neil Stewart)’ -


*******


잉글랜드 원정을 마치고, 로스 카운티가 귀국하자마자 한 일은 꼼꼼히 점검했던 선수들의 처분이었다.



[ The Scotsman ] 케빈 루카센, 75,000 파운드(약 1억 3천만 원)에 네덜란드 2부 리그의 NAC 브레다로 이적



거듭해서 보낸 임대와 프리시즌에서 계속 주어진 기회로도 결국 낙제점을 받았는지 루카센은 팀과 영원한 작별을 하게 되었다.


같은 소속의 팀원들이 열심히 금자탑을 쌓아나가며 역사를 만들어 가는 동안에도 그 속에 섞이지 못하다가 끝내 방출 통보를 받는 건 정말 비참한 일이었지만, 프로의 세계는 그만큼 냉혹한 법이다.


잉글랜드 원정을 앞두고 콜업되었던 크리스 켈리와 엘리엇 비스턴도 수준 미달 판정을 받았는지 다시 2군으로 내려가 훈련을 받게 되었다.


확실히 ‘델 레오네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첫 시즌의 콜업 멤버들이 왜 황금 세대로 일컬어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았나 보다. 두 명과 함께 올라왔었던 데미안 생클랜드는 여전히 1군과 함께 훈련받을 수 있었으니까.


열심히 뛰어다니며 거의 딩월에 버금가는 폐활량을 보여준 것이 감독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투박한 기술마저 닮을 필요는 없었겠지만.


프리시즌에 괜찮은 플레이를 보였던 필립 로스와 딜런 갈브레이스는 스코티시 하부 리그의 여러 구단에서 임대 문의가 쏟아졌으나, 감독은 전부 거절 의사를 전달하며 팀에 남기기로 결정했다.


적어도 갈브레이스는 임대로 좀 더 경험을 쌓게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직접 써보려는 것일까?


당장은 아메드 델샤드의 입지가 워낙 확고하고, 백업으로는 스티브 샌더스가 버티고 있기에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하겠지만, 후반기 스코티시 컵에서 제법 기용된 적 있으니 일단은 지켜봐야 할 일이다.


반면 로스는 생각보다 쓰임새가 많을지도 모른다. 이탈한 전력이 제대로 보강되지 않은 시점에서 전방의 좌우 중앙을 다 소화할 수 있는 범용성은 분명 큰 도움이 될 테니까.


팀은 위기일 수 있어도 본인에겐 좋은 기회가 주어진 거다.



시즌 레이스에 참가할 선수 명단은 모두 정리되었고, 남은 건 등번호 배정.


기존 멤버들은 각자 달고 있는 번호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해야 하는 건 이적생인 존 맥긴 한 명뿐이었다.


맥긴은 처음엔 7번을 원했으나, 그 번호의 주인이 누군지 알자마자 미련 없이 포기하면서 16번을 골랐다.


많은 변경이 이루어졌던 저번 시즌과 달리 금방 끝나버린 배정.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바뀌는 번호가 하나 더 있었다.


“부르셨나요?”


호출받은 앤드류 톰슨이 감독실에 들어왔고, 창가를 내다보고 있던 델 레오네는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더니 한쪽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14번에 만족하는 건 알겠는데, 싫지만 않다면 새 번호를 추천해주고 싶어서 말이야.”


“네. 어떤······.”


“자네와 굉장히 어울리는 번호인데, 시기상조란 생각이 들어 유보해뒀었지. 하지만 슬슬 때가 된 것 같군.”


감독은 들고 있는 종이를 톰슨에게 보였다. 등번호 제출 명단이었다.


“사실 기입은 이미 해두었네만, 어떤가?”


자신의 이름 옆에 적힌 번호를 확인한 톰슨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동안 너무 숙성시켜뒀어. 계속 공석으로 놔두기엔 아깝지. 이제 자네도 이 정도 부담감은 짊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부진 눈빛으로 대답하는 톰슨. 그의 목소리에서 책임감이 묻어나왔다.


등번호 하나로 선발이 정해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나름대로 감독에게 인정받았다는 증거니까.


이탈리안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오늘부터 앤드류 톰슨은 로스 카운티에서 공식 인증한 스피드스터로 거듭나게 되겠군.”


보통 팀에서 가장 빠른 발을 가진 선수에게 주어지는 11번.


톰슨은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된 상태였다.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개막 하루 전날, 안토니오 델 레오네의 컨퍼런스.


“잉글랜드 원정의 종합 성적이 3승 1무 1패입니다. 상당히 좋은 결과인데요. 어떤가요? 프리미어 리그 팀하고 붙어볼 만했나요?”


“아시겠지만, 프리시즌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게 좋습니다. 상대가 누구든지 말이죠. 무언가를 걸고 맞붙은 정식 경기였다면 결과는 다르게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로스 카운티가 질 거란 얘기는 아니지만요.”


“잭 마틴에 관해서 묻고 싶습니다. 안토니, 당신이 레프트윙 주전으로 선택한 게 잭 마틴이 맞나요? 왜 그를 왼쪽에 세우는 건가요? 그에게 고맙다는 건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거죠?”


“그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제가 만든 불합리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왔습니다. 팀에 이토록 헌신하는 선수를 계속 방치해 두기만 한다면 감독으로서 자격이 없는 거겠죠. 그를 활용하면서 기존 로스 카운티의 시스템까지 개선시킬 방안을 수차례 연구했고, 경기 도중 꾸준히 실험해 보았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꺼낼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빅토리아 파크가 증축 공사에 들어가면서 올 시즌은 햄던 파크를 홈구장으로 삼아야 하는데요. 거리가 멀어서 홈이라고 하기 참 모호합니다.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햄던 파크는 모든 스코틀랜드인이 동경하는 무대지요. 그런 성지에서 로스 카운티를 향한 팬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면 거리가 먼 것쯤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일 개막전 상대는 이번에 승격해 올라온 던디 FC입니다. 챔피언으로서 그들에게 프리미어십 레벨을 보여줄 텐데요. 무난하게 승리할 것 같나요?”


“섣부른 예측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죠. 다만 우리는 개막전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해뒀습니다. 더 많은 걸 투자한 팀이 승리의 보상을 가져가게 될 겁니다.”


“이건 그래도 확실하게 말씀하실 수 있겠죠? 이번 시즌도 로스 카운티의 리그 우승을 목표로 할 것인지?”


“······후훗. 물론입니다. 우리는 프리미어십 챔피언이고, 그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


[ Scottish Sports ] 개막전 만반의 준비 완료, 첫 경기 결과는 과연?


[ Football Focus ] 아직은 안정적인 느낌이 부족한 왼쪽 날개, 잭 마틴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 Daily Mail ] 셀틱은 여전히 제임스 블랜차드를 원한다


[ Daily Telegraph ] 블랜차드를 향한 에버튼의 관심이 구체화 되고 있는 중


[ Daily Mirror ] 던디 FC 감독 폴 하틀리, “우리 홈에서 치르는 경기,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



< 15-16 Scottish Premiership 1 Round >

던디 FC : 로스 카운티

2015년 8월 1일 (토) 15:00

덴스 파크 (관중 수 : 11,343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존 맥긴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진짜네? 잭 마틴이 왼쪽 선발로 나왔어!”


조지 맥도넬은 선발 명단을 확인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맥도넬의 펍에는 그의 친구들과 개막전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이 어김없이 모여들어 북적대는 중이었다.


빈 테이블 하나 없이 꽉 들어찬 모습은 이곳에서 점점 흔한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혹시나 연막을 친 게 아닐까 했는데, 아스날전 선발 그대로야.”


“내가 뭐랬어, 조지. 감독이 진짜 마틴을 쓰려는 거라니까?”


“아스날 상대로도 골을 넣었는데 개막전에 안 쓸 이유도 없지.”


케니 풀러와 마크 비어드의 말이었다.


이어 크레이그 던컨도 한마디 던졌다.


“얀손을 지켜서 다행이군. 저 선수가 로스 카운티 소속으로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는 건 꼭 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던디 FC? 저 건방진 놈들을 화끈하게 밟아주라고!”


“어르신, 던디 유나이티드 경기도 지금 동시에 진행 중인데요.”


“······셀틱과 개막전이라 별로 보고 싶지 않아.”


그는 던디 유나이티드의 오래된 팬이지만, 최근엔 로스 카운티 경기를 더 찾아보는 듯하다.



[휘슬이 울리며, 개막전 로스 카운티의 시즌 첫 경기가 시작됩니다!]


킥오프하자마자 입을 다물고 집중하는 펍 안의 관객들.


유로파 리그를 평정하고, 잉글랜드 원정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프리미어십 챔피언이 어떤 축구를 할까 모두 궁금했을 것이다.


[일단은 수비에 더 무게를 두는 던디 FC. 그들의 홈이지만, 상대가 로스 카운티인 만큼 과감하게 나가기는 부담스럽겠죠.]


조심스레 경기를 운영하는 홈팀과 서서히 탐색전을 펼치는 원정팀.


이런 흐름이라면 적어도 전반전은 느슨하게 흘러갈 확률이 높다.


[앞으로 찔러보는 패스. 델샤드가 빠르게 나와서 볼을 가로챕니다!]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


[이어받은 브리튼의 직선 패스. 맥긴이 받아 원터치로! 톰슨이 어느새 달리고 있습니다!]


맥긴의 왼발을 이용한 아웃프런트 패스가 던디 FC의 수비진 사이로 빠져나갔고, 대각선으로 맹렬히 질주하는 톰슨. 단번에 분위기를 전환하는 로스 카운티의 공격이었다.


[톰슨! 무지막지한 스피드! 순식간에 박스로 진입한 톰슨! 슈웃! 존 맥로린의 선방입니다! 하지만 매서운 공격 전개였죠? 골키퍼의 놀란 표정이 제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와. 들어가는 줄 알았어.”


“아니, 그것보다 톰슨이 저렇게 대담하게 들어가서 슛을 할 줄 아는 녀석이었나?”


숨죽이고 지켜보던 사람들을 흥분케 하고도 남을 장면이었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점점 거세지기 시작하는 로스 카운티의 화력.


[알렉산더 캐리. 두세 명이 앞을 막아서도 그의 패스는 정확히 전달됩니다! 좀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 볼을 받은 브리튼. 등진 채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수비가 무리한 반칙을 했군요. 프리킥이 주어집니다.]


[우측으로 치우쳐진 박스 외곽 지역. 아스날전에서 넣었던 프리킥 자리와 거의 비슷한 위치인데요. 당연히 캐리가 차겠죠?]


천천히 걸어가 볼을 줍더니 다시 세심하게 내려놓는 캐리.


[역시 키커는 7번, 알렉산더 캐리입니다.]


높이 띄워 올려서 공격 가담해 올라간 얀손이나 보이드의 머리를 겨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키커의 눈은 골문을 향해 있었다.


힘차게 발을 내디디며 감아 차는 그의 왼발.


[알렉산더 캐리. 프리키이이익! 와아아! 들어갑니다!]


우와아아아 -


멋진 프리킥 골에 펍 내부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아스날전에서는 좌측 상단 구석, 이번에는 뚝 떨어지며 좌측 하단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는 프리킥!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 로스 카운티의 첫 득점은 알렉산더 캐리의 프리킥 골입니다!]


“캐리의 왼발은 정말 미쳤어!”


“어쩐지 들어갈 것 같았다니까!”


금발의 레지스타가 터뜨린 선제골은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던디 FC, 이제 반격해야 하는데요. 쉽지 않습니다. 원정팀의 전력이 너무 막강합니다.]


관중들은 로스 카운티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면 어떻게 되는지를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골을 허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


[계속해서 휘둘리는 던디 FC. 캐리의 반대편 전환 패스가 깔끔하게 들어갑니다. 톰슨을 누군가가 막아야만 하는데요!]


뒷걸음질하는 수비를 두고 안으로 파고들려는 듯 주춤대다가 오른쪽으로 치고 나가는 톰슨의 동작에 측면이 맥없이 허물어진다.


[아앗, 뚫립니다! 위험해요! 던디 FC의 측면이 완전히 노출됩니다!]


“잘한다, 톰슨!”


엔드라인 끝자락까지 도달한 그의 크로스가 낮게 깔리며 들어갔고, 발을 뻗는 수비와 몸을 날리는 키퍼마저 빠른 속도로 지나친다.


[톰슨의 크로스! 딩워어어얼! 들어갑니다! 슬라이딩 태클을 하듯 몸을 내던진 딩월! 볼과 함께 골문 안으로 같이 들어갔습니다!]


[그렇죠! 슛이 불안정하면 그냥 같이 들어가 버려도 되거든요!]


하하하 -


감탄사를 자아냈던 캐리의 우아함과 대조되는 딩월의 우스꽝스러운 득점에 펍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여간 재미있는 놈이라니까.”


“그래도 지칠 줄 모르는 저 에너지는 참 마음에 들어. 역시 미스터 딩월다운 골이야!”


[이건 톰슨이 거의 다 만들어냈다고 봐도 무방하죠? 말 그대로 수비를 깨부수는 그런 플레이였습니다.]


“톰슨 상대로 공간을 내주면 저렇게 되는 거지. 저 녀석이 치고 나가면 알고도 못 막는다고.”


“등에 11번을 달고 있으니까 더 늠름해진 것 같지 않아? 확실히 잘 어울리는 것 같네.”


어느새 대화의 주제는 화려했던 돌파 장면으로 옮겨갔고, 득점자의 이름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좀처럼 앞으로 전진을 못 합니다. 승격하자마자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던디 FC.]


두 점 차로 빠르게 앞서나갔음에도 공세는 그칠 줄을 몰랐다.


[로스 카운티의 전방 압박은 프리미어십에서 최상위권입니다. 심지어 나폴리도 저 압박에 고전했었죠.]


해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드는 딩월. 그를 피해 뒤로 빠지는 던디 FC. 미드필더가 잡은 볼은 다시 수비진으로 넘겨진다.


[계속되는 압박. 결국 골키퍼 쪽으로 재차 백패스를······ 어엇, 약간 짧은데요?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일찍이 얻어맞은 두 골과 끊이지 않는 압박에 정신이 혼미해졌는지 하지 말아야 할 패스 미스를 저질렀고, 수비 라인에 걸쳐 하이에나처럼 어슬렁대던 잭 마틴이 빠져나가며 볼을 잡는다.


[패스를 받으려고 나와 있던 맥로린 골키퍼. 황급히 뒤로 복귀하지만, 잭 마틴의 단독 찬스를 방어해야 합니다!]


“가자, 마틴!”


[우물쭈물하면서 망설이는 맥로린! 달려들지만! 가볍게 제치는 마틴! 아무도 없는 골문에 침착하게 굴려 넣습니다!]


“그렇지!”


“이게 잭 마틴이지!”


[폴 하틀리 감독, 심각한 표정입니다. 전반전에만 세 골을 연달아 내주고 말았는데요. 과연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듯 클로즈업된 하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만회는 고사하고, 추가 실점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던디 FC가 로스 카운티 진영에 넘어가 본지 한참 된 것 같은데요.]


경기력 개선부터 시급한 상태. 홈팀의 안방에서 원정팀의 공격만 반복되고 있다는 건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전반전이 다 끝나가는 시간 동안 던디 FC가 기록한 슛은 고작 두 개. 로스 카운티가 넣은 세 골보다 적은 횟수였다.


유효 슛이 하나도 없다는 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많이 기울어진 시합이지만, 최악의 흐름을 벗어나려면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할 겁니다. 전술이든 동기부여든 말이죠.]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꺼낸 해설자의 멘트였다.


던디 FC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나왔는지 나름대로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펼치며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리 하킨스의 중거리 슛! 마크 브라운 키퍼의 정면으로 갔으나 좋은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쨌든 추격은 해야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전진해야만 합니다.]


앞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건 뒷공간이 넓게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 로스 카운티가 제일 좋아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캐리가 후방에서 볼을 잡고, 바로 길게 찌르는데요! 수비 뒤로 넘어가는 로빙 패스! 잭 마틴이 오프사이드 트랩을 허물고 들어갑니다!]


“오오.”


[수비와 거리를 벌려낸 단독 찬스! 잭 마틴! 멀티 골에 성공할 것인가!]


조금 전에 당한 기억 때문인지 섣불리 나오지 못하는 맥로린. 그런 그를 앞에 두고 깔끔하게 오른발 인사이드 킥으로 구석에 깔아 차는 마틴.


두 번이나 일대일 상황을 겪어야 했던 가엾은 골키퍼는 몸이 굳은 채로 우측 구석에 꽂혀 들어가는 걸 구경할 뿐이었다.


[들어갑니다! 깔끔한 마무리로 멀티 골에 성공합니다!]


“나이스!”


“역시 마무리 하나는 최고야!”


환호하는 펍 안의 사람들과 반대로 화면에 비친 홈팬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더 이상 못 보겠다며 미리 경기장을 나가버리는 관중들도 있었다.


어떻게든 쫓아가 보려던 던디 FC 선수들은 쐐기를 박아 넣은 마틴의 골에 열의가 꺾여버렸고, 다시금 전반전처럼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크게 리드한 점수 덕분에 평소보다 이른 후반 60분에 이루어진 교체.


이탈리안 감독은 딩월과 브리튼을 대신하여 리암 보이스와 대런 케틀웰을 투입했다.


그리고 후반 76분.


[맥긴이 뒤로 빠져들어 가는 월리스를 잘 봤어요. 패스를 받은 월리스의 높이 띄운 크로스! 리암 보이스의 헤더가 적중하며 또다시 그물을 흔듭니다!]


추가 골은 분명 기뻤지만, 초반에 넣었을 때와 비교하면 함성이 많이 잦아든 펍 내부였다.


일방적이다 못해 처참하기까지 한 경기 내용과 그에 못지않은 스코어.


작년에 다섯 골 이상을 넣은 건 통틀어서 세 경기밖에 없었는데, 올 시즌은 개막전 첫날부터 다득점이 나왔다.


전의를 상실한 상대에게 끝까지 일격을 먹이는 잔혹한 광경은 터지는 골 퍼레이드에 신났던 사람들도 머쓱해질 지경이었다.


심지어 맥도넬조차 적응하지 못해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


“······나 무서워, 케니.”


“어······. 어. 나도, 조지.”



=============================

< 던디 FC 0 : 5 로스 카운티 >

알렉산더 캐리(9‘)

에이든 딩월(14‘)

잭 마틴(17‘, 51‘)

리암 보이스(76‘)


=============================



[ Scottish Sports ] 박살 나버린 던디 FC, 침울한 덴스 파크


[ Daily Telegraph ] 충격적인 결과, 더 충격적인 내용


[ Daily Mirror ] 던디 FC 감독 폴 하틀리, “도무지 해법이 안 보이는 경기였다. 거대한 산사태를 맞닥뜨린 기분.”


[ BBC ] 개막전 첫 경기, 그리고 무자비한 로스 카운티


작가의말

어느덧 날씨가 추워지고 있네요.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tjgk09 님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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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3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0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6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8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2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6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2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2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3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6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5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56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67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09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3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1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3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3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99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6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7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1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68 5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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