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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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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3.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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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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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60. 로스 카운티의 이적 시장은 (2)

DUMMY

[ Glasgow Press ] 총알 장전한 셀틱, 목표는 제임스 블랜차드



측근들과 친언론을 통해서 의도적으로 퍼뜨린 소문은 삽시간에 스코티시 일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 Daily Mail ] 블랜차드는 셀틱의 최우선 타깃이 될 것



제임스 블랜차드.


작년에도 관심을 두던 대상이긴 했으나 절실히 원하는 선수까진 아니었다.


단지 크리스 커먼스의 잠재적인 후계자로서 셀틱의 위상을 이용해 뛰어난 신예를 미리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


그래서 데려오면 좋고, 아니어도 별 타격은 없던 수준이었는데.


그 대상이 일 년 만에 놀랍도록 성장하여 이제는 총력을 기울여서라도 영입해야만 하는 그런 거물급이 되었다.


누군가는 플루크 시즌이었다며 혹평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딱히 촉망받았던 루키도 아니고, 스물두 살까지 임대와 리저브 생활만 반복하던 무명의 젊은 선수가 정식 데뷔하자마자 갑자기 그런 스탯을 쌓아 올리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어쩌다 요행이 크게 따라줬기에 일시적으로 반짝할 수 있던 활약이었다고 치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블랜차드는 그 발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 해에 더욱 대단한 시즌을 보내며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셀틱의 태도가 180도 돌변한 건 말할 것도 없는 일. 제안을 한두 번 던지다가 일찍이 철회했던 그때와 달리 진심으로 선수가 원하는 조건을 최대한 들어줄 요량인 것 같았다.


당시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한 재능 수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깍듯이 대접하여 모셔 와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까.



[ Daily Mirror ] 셀틱의 피터 로웰 회장은 블랜차드의 열렬한 팬


[ Scottish Sports ] 셀틱의 감독은 현재 공석이기에 영입 작업은 멈춰있는 상태지만 블랜차드만은 예외다



그리고 그에게 셀틱이 미쳐 있을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


단순히 팀의 전력 상승 외에도 상징적인 영입이 되기 때문이었다.


“현재 프리미어십을 대표하는 팀은 로스 카운티입니다. 그럼 프리미어십을 대표하는 선수는? 열이면 아홉은 제임스 블랜차드라 하겠죠. 빼앗긴 리그 타이틀과 최고의 팀이라는 칭호를 다시 탈환하기 위해서라도 셀틱은 최고의 선수를 손에 넣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할 겁니다.” - 축구 평론가 ‘그렉 코너(Greg Connor)’ -


만장일치로 선정된 프리미어십 올해의 선수. 국내를 넘어 유럽 무대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과감하게 뽐냈던 선수.


유로파 리그 8강 나폴리전에서 대역전 골을 터뜨린 바이시클 킥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였다.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이 슈퍼스타가 셀틱의 상징인 녹색과 흰색의 가로줄 무늬 유니폼을 입게 된다면 그동안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의 마음을 붙잡는 데 성공할 수만 있다면 말이지만.


“챔피언스 리그와 유로파 리그. 여기서 끝난 얘기 아닐까요? 심지어 블랜차드에겐 첫 챔피언스 리그잖아요? 꿈꿔왔던 최고의 무대에서 뛸 기회를 버리고서 굳이 유로파 리그를 뛰는 셀틱을 간다고요? 글쎄요.” - 반 셀틱 평론가 ‘딘 맥팔랜드(Dean McFarland)’ -


“블랜차드는 작년에도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는 셀틱을 거절하고 로스 카운티에 잔류한 선수예요. 내가 보기엔 시간 낭비 같은데 그냥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현명할 겁니다.” - 하일랜드 풋볼 라디오 진행자 ‘콜린 피콕(Colin Peacock)’ -


이적설이 터진 후 베팅업체들은 곧바로 ‘블랜차드가 셀틱을 갈까?’라는 주제로 도박꾼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남는다’가 절반을 넘어버렸다는 것이다. 보통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선수가 셀틱과 연결되면 이적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블랜차드가 앞서 완강한 의지를 보인 적 있었고, 로스 카운티가 이미 셀틱에 제대로 한 방 먹여줬다는 점을 반영하여 뜻밖의 결과가 나온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압도적인 베팅률로 기울어진 건 아니었다.


셀틱 측에서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가 크긴 하죠. 근데 프로 선수는 자신에게 매겨지는 몸값과 급료도 중요하거든요. 그게 근소한 차이면 몰라도 두 팀의 주급 규모는 상당히 벌어져 있어요. 셀틱이 엄청난 조건을 내걸면 결국엔 간다고 봅니다.” - 전문 도박꾼 ‘개빈 머독(Gavin Murdoch)’ -



[ Daily Mail ] 블랜차드의 주급은 1,800 파운드(약 300만 원)으로 추정



현재 로스 카운티에서 최고 주급을 받는 선수는 리 월리스.


그는 레인저스가 4부 리그로 파산 강등당한 여파로 인해 거액의 주급을 삭감했었고, 로스 카운티에 와서는 3,000 파운드(약 500만 원)를 받고 있다.


“던디 유나이티드에서 2,500 파운드를 받던 게리 맥케이 스티븐이 셀틱으로 이적해서 6,000 파운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팀 내에서 주급 하위권에 속하죠. 안타깝게도 로스 카운티는 이렇게 줄 수 없어요.” - 스코티시 스포츠 해설자 ‘롭 맥케나(Rob McKenna)’ -


셀틱의 최고 주급자는 스콧 브라운으로 무려 25,000 파운드(약 4,250만 원)를 받는다.


3,000 파운드와 25,000 파운드. 액수로만 봐도 현저히 느껴지는 격차.


로스 카운티에 많은 것을 내주며 여러모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셀틱이 여전히 강력하게 내세울 수 있는 무기였다.



[ Daily Mail ] 블랜차드가 셀틱을 간다면 18,000 파운드(약 3,000만 원)의 주급을 받을 수 있다



본래 받던 것의 열 배가 늘어나는 액수.


어마어마한 주급 인상이었지만, 셀틱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꺼이 더 높은 협상에 응할 의향까지 내비쳤다.


오기만 한다면 기존 베테랑 멤버들에 못지않은 대우를 약속한 것이다.


“블랜차드는 이 시대 최고의 스코티시 선수입니다. 또한 그가 더 성장할 재능이라 믿습니다. 영입할 수 있는 방안만 있다면 우리는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셀틱의 회장 로웰이 직접 나서며 언급해 기정사실화 되니 블랜차드 이적설은 떠도는 루머에서 실체가 있는 사가로 급진전되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 BBC ] 셀틱, 제임스 블랜차드를 향한 7.3m 파운드 준비



공식 비드가 제출되면서 블랜차드 사가는 가속화되었고, 사람들은 셀틱이 정말로 영입에 진지하다는 걸 확인했다.


7.3m 파운드(약 123억 원).


유로파 리그 우승으로 획득한 7.1m 파운드(약 118억 원)를 약간 넘어서는 금액으로 제시한 건 일종의 과시용 퍼포먼스였다.


로스 카운티가 쉽게 만져볼 수 없는 그 돈을 셀틱은 이적료로 거뜬히 내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셈이다.


심지어 초기 비드. 협상하기에 따라서 숫자가 몇 번은 더 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 Daily Mail ] 블랜차드의 이적료는 8m 파운드(약 135억 원)까지 불어날 수도 있다



선수도 구단도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안.


이쯤 되니 코웃음만 치던 팬들도 조금씩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블랜차드를 지키자는데 통일되었던 의견은 점차 분열되었다.


이 정도 액수면 셀틱에 넘겨주고, 좋은 대체자를 구하는 게 낫다. 그동안 데려왔던 선수들처럼 알짜배기를 또 찾아서 채우면 된다는 쪽과.


블랜차드는 대체 불가능한 선수다. 유로파 리그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을 전부 잊었느냐. 영입에 실패하면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 거냐는 쪽.


“개소리야! 다들 블랜차드가 해준 걸 전부 잊은 거야? 다들 기억력이 금붕어냐고! 셀틱 유니폼을 입은 그에게 된통 깨져봐야 정신 차리겠어? 난 그 꼴 죽어도 못 봐!”


골수팬인 조지 맥도넬은 당연하게도 반대파였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외부보다 내부에 있을지도 모른다.


태생이 가난한 구단이었던 로스 카운티. 과연 저 거금을 단호하게 거절할 배짱이 있을까?



“론 딕슨 이사가 블랜차드를 팔아야 한다고 성화입니다.”


“그렇습니까.”


“토니, 당신 의견이 중요해요. 물론 그를 지키길 원하겠죠?”


코너 단장의 물음에 델 레오네는 서류를 보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쩌면 그 사람과는 더 적대적인 관계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특유의 능청스러운 성격으로 구단 관계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이탈리안이었지만, 딕슨 이사만은 예외였다.


팀의 발전을 생각하는 축구인의 마인드와 돈만 좇는 사업가의 마인드는 서로 상극이기 마련이니까.


둘이 접촉할 일이 많지는 않다는 게 다행스러울 뿐이다.


“돈에 좀 집착하긴 해도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닙니다. 내가 잘 설명하면 이해해 줄 거예요.”


축구에 관해선 한없이 가벼운 인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능력도 없이 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니다.


유명 주류 기업 테넌츠와 후원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데는 그의 도움이 꽤 컸고, 여러 보조 스폰서십까지 체결하면서 금전적인 이익을 많이 가져올 수 있었다.


로스 카운티의 성적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계약들이었지만, 어쨌거나 딕슨 이사의 공적이 아예 없다고 할 순 없는 부분들이다.


외딴곳에 위치한 이런 작은 구단에서 인재 한 명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 그가 팀에 계속 남아 있는 이유였다.


여기에 더블 트로피를 안겨주는 감독이 왔다는 것부터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지만.


“당신이 결정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따를 테니까요.”


“그러면 단장님은 이번 제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느닷없는 질문에 코너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블랜차드는 팀에 중요한 선수. 하지만 셀틱이 제안한 것도 엄청난 액수.


구단 운영을 맡은 단장으로서 쉽게 외면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 찰나의 머뭇거림으로도 뜻을 전달하기엔 충분했고, 감독은 씁쓸한 듯 아닌 듯 미묘한 웃음을 짧게 내비쳤다.


“아, 아닙니다! 돈에 잠시 흔들린 건 맞지만, 나 역시 블랜차드 선수와 그런 식으로 헤어지고 싶진 않아요! 지킬 수 있으면 지켜야죠!”


“괜찮습니다. 저도 이해하니까요.”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수락하십시오.”


이어 들려온 답변에 코너는 놀라며 되물었다.


“수락하라고요?”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다른 선수면 몰라도 제임스 그 녀석이라면 말이죠.”


감독이 말했다.


“이적은 사는 팀과 파는 팀, 선수 의사. 세 박자가 어우러져야 이루어지는 거래입니다. 하나라도 불협화음이 나면 성사될 수 없지요.”


“아······.”


“그 원리를 딕슨 씨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선에서 끊는다면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게 분명하니 이참에 확실히 하도록 하죠.”


코너는 새삼 둘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떠올렸다.


‘셀틱의 제안을 수락해도 어차피 의미 없다는 건가.’


감독은 선수가 떠나지 않을 걸 알고 있고, 선수는 감독이 자신을 보내지 않을 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액수를 더 올리라고 요구해보시죠. 아무리 그래도 제임스를 고작 8m 파운드에 사겠다니. 그 이상을 내놓으라 해도 셀틱이 흔쾌히 돈을 낼지 궁금해지는군요.”


“하하······.”


이탈리안의 농담에 코너는 그저 멋쩍은 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대표팀 훈련 캠프.


“여어.”


“어······ 왔네.”


리차드 브리튼은 배낭을 맨 채 라커룸으로 들어온 스콧 보이드를 보며 어색한 손 인사를 건넸다.


본래대로면 휴식기를 가진 뒤 프리시즌을 앞두고 빅토리아 파크에서 재회했어야 할 두 사람인데.


“트레이닝 복······ 잘 어울리네.”


“너도.”


국가의 부름으로 소집된 자리는 필드에서 숱하게 누벼왔던 그들도 긴장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더군다나 이번 훈련 캠프는 단순히 A매치 친선 경기를 치르려고 소집된 선수들이 아니니까.


UEFA가 주관하는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European Football Championship), 통칭 유로.


모든 유럽 국가들이 모여서 자웅을 겨루는 메이저 대회로 내년에 열릴 본선에 나갈 수 있는 조별 예선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동원된.


그 영광스러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거다.


어디 그뿐이랴.


“어? 먼저 와 있었네.”


“반가워요!”


“다 아는 사이인데도 여기서 보니까 느낌이 새로운데?”


뒤이어 들어온 선수들. 굉장히 낯이 익은 얼굴들이다.


최고 연령자임에도 두 사람처럼 국가대표에 처음 발탁되어 얼떨떨해 보이는 마크 브라운, 반면 경험이 풍부해서 여유로워 보이는 리 월리스, 스코틀랜드 U-21 대표팀에서 갑작스럽게 호출되어 성인 대표팀으로 올라온 에이든 딩월과 대니 패터슨까지.


평소 같이 한솥밥을 먹던 팀원들.


로스 카운티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세웠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같은 소속의 여섯 명이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최상위들의 자리에 집결하다니. 그것도 국가 대항전과는 연이 잘 닿지도 않았던 팀이었는데 말이다.


잠깐. 일곱 명으로 정정해야겠다.


“참, 너도 있었지? 반갑다. 뉴스로 소식은 접했어.”


“로스 카운티에서 인사 나누기 전에 먼저 이렇게 만나네.”


열렬한 환영 속에서 수줍게 머리를 긁적이는 한 선수.


“존 맥긴입니다. 다들 반가워요.”


“그래. 만난 김에 내가 귀중한 정보 하나 알려줄게. 저기 둘 말이야. 우리 팀 주장과 부주장인데 최고 실세는 한 명뿐이거든? 주장한테만 잘 보이면 돼. 그러니까 저기 저 사람은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 알았지?”


“까분다, 에이든.”


빅토리아 파크 라커룸에서 흔하게 보았던 풍경. 그게 스코틀랜드 대표팀 훈련 캠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건 뭐 로스 카운티 향우회도 아니고.”


브리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노련한 그도 대표팀 경험은 처음이라 낯선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이들과 함께한다면 별문제가 없을 테니.


하지만 카운티 신드롬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게 퍼져 있는 듯했다.


“오오, 말로만 듣던 하일랜드의 유명 인사들이잖아? 유로파 리그에서 펼친 활약은 잘 봤어!”


친근하게 말을 걸며 다가오는 두 선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팀 본머스에서 뛰고 있는 맷 리치(Matt Ritchie)와 에버튼의 스티븐 네이스미스(Steven Naismith)였다.


“세비야 상대로 보여준 경기력은 굉장히 감명 깊었다고.”


“여기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걸?”


“하하, 너무 부담 주면 자신 없는데.”


프리미어 리그와 국가 대표. 한때는 아득히 높은 위치에 있어 우러러보기만 했던 선수들과 이렇게 나란히 서서 대화를 나누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도 친화력이 뛰어난 보이드와 딩월이 있어서인지 초면의 다른 선수들과도 금방 친해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과 맞닿은 브리튼.


“······.”


둘은 짧은 침묵을 지킨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이렇게 보는군.”


“그러게.”


시즌 내내 충돌할 때마다 치열한 중원 다툼을 벌였던 상대. 프리미어십에서 꾸준히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상대.


로스 카운티가 기어이 왕좌에서 끌어내린 그 셀틱의 주장이자 대들보.


스콧 브라운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비록 적이었고, 각자의 팀으로 돌아가면 다시 칼을 겨누게 되겠지만.”


“이번만큼은 동료로군.”


브리튼이 대꾸하며 손을 맞잡았고, 브라운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함께할 동료지. 잘해보자고.”


“나 역시 잘 부탁해. 여기선 새파란 신인이나 다름없으니.”



어느 정도 모두와 인사치레가 끝난 뒤 로스 카운티 향우회는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핵심 주제는 역시 블랜차드에 관한 건이었다.


“제임스가 정말 떠날 것 같아?”


“모르지. 자기 우상을 닮아서 속내를 도통 알 수 없는 녀석이니까.”


“근데 감독님이 우리 팀에 남아 계시잖아?”


“그래서 안 떠날 거라 보긴 하는데.”


“돈을 어마어마하게 준다면서요?”


“그건 좀 세더라. 난 그래도 레인저스 출신이라 준다 해도 거절하겠지만.”


“으으, 답답해. 아직도 제임스와는 연락 안 돼?”


“그게······ 쭉 연락이 없었는데 어제 이걸 보내오긴 했어.”


브리튼이 폰을 꺼내서 내보인 화면에는 열심히 재활 훈련 중인 블랜차드의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다들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했고, 보이드는 거의 목을 90도로 꺾은 채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뭐, 어쩌라는 거야?”


“글쎄다. 그래서 나도 너희들에게 한 번 물어본 거지.”


“제임스 나름의 표현 방식이 아닐까? 어디로 떠날 일 없으니까 묵묵히 재활 훈련에만 몰두하겠다는 걸 알리고 싶은 거지.”


“그럼 그냥 말로 하라 그래! 나 안 간다는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스콧의 반응도 이해는 가지만, 마크 말도 일리 있는 거 같아.”


브리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임스에겐 우리가 녀석이 떠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머릿속에 없을지 몰라. 왜냐하면 남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거든.”


블랜차드는 훈제 연어 요리를 무척 좋아한다. 그걸 먹을 수 있는 돈만 충분하면 나머지는 딱히 필요 없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런 그에게 막대한 주급을 줘봤자 통할지는 미지수.


차라리 아무나 먹어볼 수 없는 최상급 맛의 연어를 대접하는 게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해서 셀틱행을 택할 것 같진 않지만.


하일랜드에서 글래스고로 집을 옮기려면 이삿짐을 싸야 하는데 그건 그에게 매우 귀찮은 일이 될 수 있다.


축구와 관련된 게 아니면 몸을 움직이기도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게다가 그렇게 사족을 못 쓰는 연어 요리보다도 더욱더 좋아하는 존재가 로스 카운티에 남아 있지 않은가.


지독한 감독 바라기가 떠난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 그림이긴 하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더 방법이 없고,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화제를 좀 바꿔 볼까?”


브리튼이 말했다.


“대표팀 감독님이 에이든하고 대니를 좋게 봤나 봐. 성인팀에 불러준 걸 보면.”


“그러게. 에이든이 바로 뽑힐 줄은 몰랐는데.”


“······.”


자신에게로 포커스가 쏠리자 방금까지 활발했던 딩월은 갑자기 침울한 표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놀리지 않아도 돼요. 나도 내가 선발로 나가지 못할 걸 알고 있으니까.”


“응? 아니, 놀리려던 게 아닌데······.”


보이드는 되레 당황하고 말았다.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교체로 잠깐 뛰었던 게 전부고, 선발로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여기서는 어떻겠어요. 그냥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어본다는 정도에 만족해야죠.”


“······.”


“제가 그래도 체력은 자신 있는데 선발로 나간 선수들이 지치면 체력 안배용으로 여기저기 들어가서 뛸 순 있겠네요. 그렇게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영광이죠.”


“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보이드가 입을 열었다.


“깐족거리는 것도 얄밉긴 했지만, 저렇게 주눅 들어서 궁상맞게 구시렁대니까 더 꼴 보기 싫어.”


*******


2015년 6월 14일.


아일랜드, 더블린, 아비바 스타디움.


아일랜드를 원정에서 상대한 유로 2016 조별 예선 D조 경기.



[스코틀랜드 / 4-4-2]

FW : 에이든 딩월 / 리 그리피스

MF : 맷 리치 / 스콧 브라운 / 리차드 브리튼 / 숀 말로니

DF : 리 월리스 / 그랜트 핸리 / 스콧 보이드 / 앨런 허튼

GK : 마크 브라운



딩월의 생각과 달리 대표팀 감독 고든 스트라칸(Gordon Strachan)은 그를 곧바로 선발 명단에 올렸다.


“딩월에게 많은 득점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보다 많은 것들을 해주길 바랍니다. 그의 경이로운 에너지는 같이 뛰는 파트너와 좋은 시너지를 낼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신뢰하고 있음을 밝혔고,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서 증명했다.


예상치도 못한 선발로 나서게 된 딩월은 평소의 그답게 쉬운 찬스를 날려 먹기도 하고, 여러 바보 같은 실수를 보여주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감독의 기대에 보답했다.


가장 그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딩월, 뒤로 볼을 빼는 아일랜드 수비수들을 압박합니다. 박스 안까지 쫓아가는 딩월! 아앗, 압박이 통합니다! 볼을 뺏는 에이든 딩월! 골키퍼 옆으로 깔아 차는 볼! 들어갑니다! 딩월이 선제골을 만들어 냅니다!]


TV로 시청하던 국민도 환호했고, 대표팀을 따라 원정 직관하러 온 팬들도 환호했다.


아일랜드 홈구장에서 미스터 딩월을 외치는 구호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선수들은 이후 단단한 수비를 펼치며 골문을 지켰고, 선제골은 결국 귀중한 결승 골이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다시 자신감을 되찾은 딩월은 지나치게 까불다가 끝내 보이드에게 한 소리 듣고 말았다.


“역시 저놈은 깐족거리는 게 제일 얄미워.”


작가의말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이면 불금이네요.

한 주 잘 마무리 하시고

행복한 불금과 주말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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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775 42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32 37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21 39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28 41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886 42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4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897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2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37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98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3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62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46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192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7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47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40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5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40 50 27쪽
178 178. 승부욕의 화신 +3 23.04.22 1,268 50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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