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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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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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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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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158.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DUMMY

[로스 카운티가 이룩한 더블 우승. 그 전설의 한 일원이었던 소피앙 부팔이 이적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중입니다. 앙제 SCO에서 임대되었던 그는 일 년 동안 값진 활약을 펼치며 메인 트로피 두 개를······.]


하루를 쉬지 않고 계속 흘러나오는 성공담.


곧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할 예정이어서인지 부팔에 관한 이슈는 스코틀랜드를 넘어 잉글랜드 방송에서도 떠들썩하게 소비되는 중이었다.


[사우샘프턴이 영입 레이스에서 가장 높은 고지를 선점했으며, 다른 팀의 하이재킹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낙찰될 것으로······.]


“하아······.”


이를 지켜보며 한탄하는 남자가 있었다.


“저렇게까지 잘 나갈 줄은 몰랐는데······.”


톰 인스의 에이전트, 딘 커밍스는 뺨을 쓸어내리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은 그의 커리어에서 최대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로스 카운티를 거부한 에이전트라는 꼬리표와 함께.


[소피앙 부팔은 어마어마한 명성을 쌓았지만, 이런 기회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 시작이군.”


[델 레오네가 처음 지목했던 대상은 헐 시티에서 뛰고 있던 톰 인스였던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하지만 그는 스코틀랜드행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결국 부팔이 차선책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저 내용만 벌써 다섯 번째 듣는 것 같아.”


어쩌면 여러 번은 더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안토니오 델 레오네를 거부한 첫 선수로 기록되어 평생 남겨질 것에 비하면 이건 오히려 약과일 수도 있다.


로스 카운티를 버리고 이적한 헐 시티.


물론 당시엔 누구라도 수긍할 선택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팀을 두고 스코틀랜드로 날아갈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헐 시티도 유로파 티켓을 거머쥐었던 상황. 굳이 변방 리그로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팀이 강등되어 챔피언십으로 곤두박질 쳐버렸으니 얘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로스 카운티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꺾으며 본선 진출하는 놀라운 이변을 일으킬 동안, 헐 시티는 같은 플레이오프 예선에서 스파르타 프라하를 만나 일찍이 좌절을 맛보았다.


정작 헐 시티로 옮긴 인스는 소속팀에서 고작 7경기만 뛸 수 있었다.


감독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서 전반기는 노팅엄 포레스트로, 후반기는 더비 카운티로 임대 생활이나 전전해야만 했다.


똑같이 예선전을 치르며 시작했으나 한쪽은 탈락, 한쪽은 우승.


스코틀랜드로 갈 바엔 챔피언십으로 내려가는 게 낫다고 했던 선수는 정말로 챔피언십을 뛰게 생겼고, 그를 대신해 로스 카운티에 갔던 선수는 화려한 수상 이력을 커리어에 새기며 프리미어 리그 팀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선택 한 번으로 운명이 갈려버리고 만 거다.


본래대로라면 저 영예로운 자리를 자신의 고객이 누릴 수도 있었다.


그걸 쳐낸 것도 자신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래도 저걸 어떻게 예상해······. 저 조그마한 구단이 셀틱을 누르고 유로파 리그까지 우승하는 걸 대체 누가 알 수 있었겠냐고······.”


푸념을 늘어놔봤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기회다.


그저 선수를 더 좋은 곳에 보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는데. 굳이 잘못이 있다면 로스 카운티의 감독이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못 알아봤다는 것뿐이다.


부르르 -


커밍스는 호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끼고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확인하자마자 짧은 한숨이 나왔다.


“어······ 톰. 안 그래도 연락하려 했었어. 그러니까······ 더비 카운티와 미팅을 끝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 그쪽에서도 널 완전 영입할 의사가 있는 것 같아.”


[······.]


“이번엔 주장 보장도 확실히 약속받았어. 계약할 때 그 조항을 반드시 넣어달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거기도 챔피언십이죠. 강등된 헐 시티와 똑같은.]


“······그렇지.”


[딘. TV에서 로스 카운티 얘기가 끊이질 않아요. 부팔을 어떤 팀이 노리고 있다. 이런 소식들만 가득해요.]


“저기······ 당분간 TV는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때 선택을 잘했다면 방송에서 언급되는 게 내 이름이었겠죠?]


“······.”


[아니다. 나오기는 하네요. 로스 카운티의 제안을 거부한 선수로. 헐 시티에서 뛴 내 기록까지 까발려지면서 갔더라도 부팔 만큼은 못 했을 거란 조롱까지 받고 있어요.]


“톰, 그게······.”


[왜······.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지 않았던 거예요?]


“······응?”


[로스 카운티에 갔으면 이 망할 지옥을 굴러다닐 필요가 없었잖아요!]


“나도 저렇게 잘할 줄은 몰랐지. 승격된 지 삼 년밖에 안 된 팀인데······.”


[누구는 사우샘프턴, 에버튼, 심지어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데. 그런 이적설이 뜰 때마다 얼마나 비참한지 알아요?]


“······.”


[더 견딜 수 없는 건 저 기회가 나한테 있었다는 거죠. 차라리 제안이 오지 않았다면 상관없었을 텐데. 헐 시티를 선택하면서 모든 게 망가졌다고요.]


“근데 스코틀랜드를 죽어도 가기 싫어했던 건 너잖······.”


[다음에 얘기해요, 딘. 지금은 도저히 더비 카운티에 관한 얘기를 할 기분이 아니에요.]


“······그래. 우선 푹 쉬고 마음을 추스른 뒤에 다시 얘기해 보자.”


[갑자기 화내서 미안해요. 인터뷰 요청하는 기자들 때문에 많이 예민해진 상태라서······. 다음에 봐요.]


“아냐. 나도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니까. 다음에 봐.”


통화를 마치자마자 한 번 더 한숨이 길게 새어 나왔다.


서로 사과하며 매듭짓긴 했지만, 둘 사이에도 약간의 응어리가 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건지.”


커밍스는 어두운 얼굴로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집어 들었다.


분명 손에 쥔 건 캐러멜 마키아토였지만 어쩐지 입 안에선 쓴맛이 났다.


*******


이탈리아, 로마, 축구 연맹 본부.


“그러면 어디 각자 의견들 내보시오.”


상당히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가 권위적인 태도로 의자에 앉아 좌우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콘테의 후임자로 누가 좋을지.”


그는 이탈리아 축구 협회장 카를로 타베키오(Carlo Tavecchio).


축구 연맹 FIGC(Federazione Italiana Guioco Calcio)의 고위직 인사들을 불러 모아 차기 감독 후보를 논하려던 참이었다.


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맡은 안토니오 콘테(Antonio Conte)가 내년에 치러질 유로 2016 대회를 마지막으로 사임을 고려 중이라는 뜻을 넌지시 내비쳤기 때문이다.


가급적 그를 잡는 게 최고겠지만, 차후 다가올 일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이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


그러나 지금의 연맹은 썩어 문드러졌다.


‘의견이 아니라 원하는 답이겠지.’


부회장직에 있는 로렌초 토스카노(Lorenzo Toscano)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콘테가 떠난다면 프란델리를 다시 복귀시키는 게 최우선 아닐지.”


“대표팀이 제대로 쇄신하려면 이젠 확실한 우승 청부사가 필요하죠. 지금이야말로 카펠로를 우리가 써볼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지겨운 이름들이다.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체사레 프란델리(Cesare Prandelli).


대체 언제 적 우승 청부사인지 러시아 대표팀에서도 괄목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해임된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


진심으로 그들을 선임하잔 것인가?


2010년대도 중반부에 접어들었는데 아직도 90년대에 사는 듯하다.


“우승 청부사라면 적어도 여기선 리피가 먼저 거론되어야지요.”


그나마 마르첼로 리피(Marcello Lippi)를 꺼내는 게 나을 정도다. 그나마.


“우리의 마지막 월드컵을 들어 올리게 해준 감독이 아닙니까?”


2006 FIFA 독일 월드컵 우승을 끝으로 축구 강대국 이탈리아의 영광은 점점 빛이 바래지고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광속으로 탈락했던 리피 말이요? 분노한 국민이 그에게 썩은 토마토를 던지겠다고 한동안 난리 피웠던 건 잊은 겁니까?”


“그쪽이 추천하는 프란델리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건 마찬가지잖소? 둘 중엔 우승이라도 해본 감독이 더 낫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실패한 그 둘보다는 카펠로를 선임해보는 게······.”


한때 전술의 나라, 감독의 나라로 불렸던 이탈리아는 옛말이다.


회의를 할 때마다 입에서 오르내리는 건 항상 똑같은 이름들뿐.


매년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이 축구판인데도 세대교체를 등한시하며 익숙한 얼굴만 내세우려 하니 발전할 턱이 있나.


감독 선임부터 이 모양인데 전선에 나가는 선수들이 점점 고여 가는 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옛 명성에만 기댈 작정입니까? 저는 알베르토 자케로니를 한 번 선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


“뭐요? 자케로니? 일본에서도 성과를 내는 데 실패한 감독을 여기에 앉히잔 겁니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반복되는 탁상공론.


아마 지나가는 행인이 듣는다면 귀를 의심할 것이다. 이탈리아 축구 연맹의 최상층 직책들이 나누는 대화가 맞냐면서.


사실 거론되는 후보군이 처참한 이유가 있었다.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로베르토 만치니(Roberto Mancini), 유벤투스의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Massimiliano Allegri), 이번 시즌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내려놓은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현 대표팀을 맡기에 제격인 대상들은 이미 제안을 거부한 지 오래다.


우선 종사하고 있는 클럽에 집중하고 싶다거나 잠깐 휴식기를 가지고 싶다거나 사유는 다양했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공통된 부분이 존재했다.


연맹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에 엮이기 싫어서.


다시 말해 여러 자국 감독들이 대표팀 자리를 고사하는 건 무의미한 말싸움에 빠져 있는 저 족속들 탓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거절한 건 아니었다. 이탈리아를 되살리는 고된 작업에 동참할 의사를 가진 자들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리빌딩의 귀재 클라우디오 라니에리(Claudio Ranieri), ACF 피오렌티나에 부임한 뒤로 삼 년간 쭉 4위를 놓친 적 없는 빈첸조 몬텔라(Vincenzo Montella), 작년에 SS 라치오 지휘봉을 잡고 3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스테파노 피올리(Stefano Pioli) 등.


충분히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명단이었지만, 연맹의 대부분은 선임하는 걸 꺼려했다.


적어도 유벤투스에서 세 번이나 스쿠테토를 들어 올렸던 콘테만큼의 성공을 거둬야 아주리 군단을 이끌 자격이 있다는 소리나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두 차례 연속으로 월드컵 조별 리그 탈락의 수모를 경험한 마당에 자격을 운운할 여유가 대체 어디 있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어도 모자랄 판인데 저들은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현역 거물들은 대표팀 자리를 원치 않고, 수락할 가능성이 있는 재능들은 연맹에서 탐탁지 않아 하니 남은 이름들은 빤할 수밖에.


여전히 이탈리안 명장들은 꾸준하게 배출되고 있건만 이곳에 선임할 수 있는 재목은 없다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상황인가?


“그래서 확실한 대안을 말해보란 말입니다! 다 안 된다고만 하면 진행이 됩니까?”


“그게 그리 쉽게 결정할 사안이오? 당신처럼 아무 이름이나 내뱉진 않겠다는 겁니다!”


한숨만 나오는 광경.


진짜로 갈아치워야 할 건 저들이다. 연맹 내부에서도 이토록 단합이 안 되고 있으니 대표팀이 어찌 잘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숙청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건.


“그럼 다음은 토스카노 부회장의 차례요. 의견을 들어봅시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저 남자다. 문제를 곪아 터지게 만든 축구 연맹의 최고 책임자.


2007년부터 시작된 악몽이다.


이탈리아 축구협회의 전권을 휘어잡은 지안카를로 아베테(Giancarlo Abete)의 끔찍한 임기를 거쳐 2014년 그 자리를 이어받은 카를로 타베키오.


스포츠에 문외한인 정치꾼들이 개입하면서 이탈리아 축구는 몰락했다.


AC 밀란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당시 연맹의 부회장이었던 전문가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Demetrio Albertini)를 제치고 공동 부회장 타베키오가 회장직에 올라선 것은 정치적인 커넥션이 분명 존재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에 신물이 난 알베르티니는 회장 선거에서 패배하자마자 연맹에서 물러났고, 그 자리를 이어받아 올라온 토스카노는 전임자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중이었다.


여기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일부도 능력보다는 연줄을 잘 타서 자리 잡은 쓰레기들.


축구에 정치가 묻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베테와 타베키오 둘이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부회장은 아직도 가스페리니를 추진해야 한다고 보는가?”


지안 피에로 가스페리니(Gian Piero Gasperini). 이번 시즌 중하위권 팀 제노아 CFC를 6위로 이끄는 역량을 발휘해낸 감독.


몬텔라와 피올리를 제안한 게 기각된 뒤로 눈여겨보고 있던 인물이었으나.


“그를 선임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는 것엔 변함없지만, 이번엔 다른 후보를 추천해보고자 합니다.”


“그게 누구요?”


토스카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진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로스 카운티를 지휘 중인 안토니오 델 레오네입니다.”


“안토니오 델 레오네?”


“처음 들어보는군.”


어떻게 축구 연맹 임원이라는 작자들이 유럽에서 가장 급부상하고 있는 이름조차 모를 수 있는 거지?


“이번에 유로파 리그를 우승한 감독입니다. 로스 카운티 같은 소규모 팀을 이끌고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뤄냈죠.”


“로스 카운티는 어디 팀이오?”


“······스코틀랜드 팀입니다.”


“스코틀랜드?”


역시나 회장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다른 이들도 떫은 표정을 드러낸다.


“스코틀랜드는 좀······.”


“거기서 잘해봐야 뭐 있겠어요?”


토스카노는 속으로 부글거리는 걸 참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스코틀랜드라는 면만 본다면 미덥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유로파 리그를 우승한 감독입니다. 그 스코틀랜드 팀으로요.”


“유로파 리그 우승이라······. 그건 좀 놀랍긴 하군.”


“대진 운이 좋았던 것도 아닙니다. 볼프스부르크, 나폴리 등 여러 강팀을 물리치고, 결승에서는 지난 시즌 챔피언인 세비야를 꺾으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죠. 아무나 해낼 수 없는 겁니다.”


“으음.”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토스카노는 오늘을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하며 더 강경히 밀어붙이기로 했다.


“그 감독의 축구를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습니다. 팀 전원을 합해도 마렉 함식 한 명의 몸값에 절반도 못 미치는 선수들로 나폴리를 몰아붙이던 그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거지? 나폴리는 우승 후보이지 않았소?”


“압도적인 체급을 극복하고 결과물까지 일궈낼 수 있던 원동력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감독은 현대 축구 전술의 흐름을 잘 꿰고 있고, 팀을 짜임새 있게 만들 줄 압니다. 나폴리전 이후 제가 꾸준히 로스 카운티를 관전하면서 느낀 감상입니다.”


“부회장이 그 팀의 경기를 챙겨봤다는 거요?”


“예. 그리고 볼수록 확신이 들었죠. 자국에서도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 우승을 해냈으니까요. 참고로 그들은 우승과는 전혀 거리가 먼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국 리그와 유로파 리그를 전부 제패한 것이죠.”


“허어, 믿기지 않는군.”


“이런 사례는 축구 역사를 통틀어서도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델 레오네라는 감독이 그만큼 보기 드문 능력자일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쇠락해가는 이탈리아 대표팀을 구제해 줄 인물로 적격이라 생각합니다.”


“흠······.”


“그러고 보니······. 이번 유로파 리그 우승팀이 생소한 곳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은 것 같긴 합니다.”


“어쩐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 것 같았는데. 그 감독이었네요.”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던 임원들이 하나둘씩 나서며 거들었고, 협회장의 얼굴은 솔깃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프로필이긴 하군.”


토스카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통하는가? 그동안 제안해왔던 후보들을 전부 무시하며 한 귀로만 흘려왔던 저 인간을 회유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타베키오의 말이었다.


“저 델 레오네라는 자는 어떤 위치에 있소? 팀에서 전권을 쥐고 있나?”


“······예? 알아본 바로는 꽤 영향력이 큰 편으로······.”


“역시. 그렇다면 전권을 요구한 건 감독 본인이오? 그곳엔 전문 디렉터나 분담하는 인물이 아무도 없는 거요?”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그게 특별히 중요한 사항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중요하지. 여기서는 서로 협업할 줄 알아야 하니까.”


회장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만일 타협하지 않고 끊임없이 마찰을 빚을 사람이라면 연맹에게 그리 좋다고만 볼 순 없소. 설령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토스카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떠올려보면 콘테가 대표팀을 그만두려는 것도 연맹과 자주 부딪치며 다퉜기 때문이었지.


그게 아니라면 모처럼 좋은 분위기로 순항 중인 배에서 선장이 내리고 싶어 할 리 없을 테니까.


연맹은 그를 붙잡을 의지조차 없고 말이다.


“자, 그럼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았으니 내 차례인가?”


회장이 꺼드럭거리며 입을 열었다.


“쇄신해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부회장이 새로운 인재를 찾으려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나 또한 전적으로 동의하고.”


“······.”


“국가를 대표하는 감독을 선임하는 데엔 여러 가지 요건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팀 내 최고의 선수를 잘 다룰 줄 아는 게 가장 중요하오. 그러려면 선수 간에 연관성이 어느 정도 닿아 있어야 하지.”


순간 엄습하는 불안감.


“축구는 골을 넣는 스포츠 아닙니까? 결국 최고의 선수란 최전방에서 골을 넣는 공격수. 과거엔 우리도 훌륭한 공격수가 많았지요. 하지만 그 역대 계보가 끊겨버렸소. 연달아 실패한 원인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지.”


“과연! 회장님께서 제대로 꿰뚫어 보신 듯합니다.”


간신배들의 알랑거림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가 신난 얼굴로 계속 말했다.


“이탈리아를 대표할 차세대 공격수는 이러나저러나 치로 임모빌레 아니겠소? 애석하게도 아직은 부진함만 거듭하고 있으나, 그가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엔 다들 동의할 거요.”


“······.”


“현 주전인 그라치아노 펠레는 서른 살에 접어들었고, 언제까지고 그를 중요할 순 없는 노릇. 결국 젊은 피를 가진 그가 대표팀의 운명을 결정지을 테지. 토리노 같은 팀에서 득점왕까지 해낸 확실한 재능이니까.”


“부정하진 않겠습니다만, 그를 다룰 확실한 감독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부회장의 질문에 이를 드러내며 웃는 타베키오.


“물론. 토리노에서 득점왕을 해낸 건 대단하나, 그 역량을 끌어올린 건 감독의 공이 아니겠소? 따라서 임모빌레를 지도한 적 있는 토리노의 벤투라가 대표팀 감독에 적격일 것으로······.”


“안 됩니다!”


토스카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회장은 당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지안 피에로 벤투라(Gian Piero Ventura). 감독 생활 대부분을 하부 리그에서 보내다가 세리에 A에 올라와서도 중소 구단만 맡아본 게 전부.


토리노에서 거둔 그의 최고 성적은 2013/14 시즌 7위이며, 올 시즌은 9위로 마감. 정리하면 특별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감독.


카펠로나 프란델리의 재선임 보다 더 경악스러운 발언이었다.


왜냐하면 그냥 이탈리아 리그에 있는 아무나 데려와서 앉히겠다는 소리나 다를 바 없으니까.


“벤투라는 빅클럽을 한 번도 이끌어 본 적 없는 감독입니다. 임모빌레를 지도해봤다는 이유로 그를 선임하려는 건······.”


“부회장이 말한 그 델 레오네란 사람도 빅클럽 경험이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니오? 고작 스코틀랜드 팀이나 운영해 본 수준으로······.”


“유로파 리그 우승이 있잖습니까! 그는 여러 유럽의 강팀을 상대하며 쌓은 경험이 있지만, 벤투라는 그런 우승 경력조차 없습니다!”


“이거 참······. 토리노로 7위를 한 걸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닌가? 하위권 팀으로 그만큼의 성적을 낸 게 쉽진 않을 텐데.”


“다시 말하면 득점왕을 보유했음에도 7위에 그쳤죠. 그것부터 대표팀을 맡을 레벨까진 안 된다고 봅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논쟁.


회장의 심기가 불편해지고, 부회장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며 점점 공기가 험악해지자 사태를 파악한 임원들이 허겁지겁 나서서 수습하기 시작했다.


“하하, 너무 과열된 것 같습니다.”


“우선 좀 진정하심이······.”


토스카노는 자리에 앉아 가볍게 심호흡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나치게 말씀드린 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벤투라 선임은 세심하게 고려하셔야 합니다. 자칫하면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타베키오는 큼큼거리며 헛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델 레오네 감독이 무조건 연맹과 마찰을 빚을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그 증거를 찾아오면······.”


“그건 알아서 하고, 그때 가서 얘기합시다.”


듣기 싫다는 듯 무성의하게 휘휘 내젓는 손놀림.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찾아온다면 생각은 해보겠소.”


“······.”


방금 대화로 토스카노는 깨달았다.


이미 논외 대상이 되었다는걸. 증거를 찾아와도 그는 듣는 척만 하면서 넘겨버릴 게 분명했다.


“그······ 저는 회장님 말씀에 동의하는데······. 벤투라 감독 선임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임모빌레를 제일 잘 다룰 줄 아는 감독인 건 맞지 않습니까?”


“도르트문트의 위르겐 클롭마저도 그를 제대로 써먹지는 못했죠.”


“그러니까요.”


마치 어린아이를 어르는 말투로 거드는 목소리들. 언짢아 있던 표정을 풀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타베키오.


“뭐, 후임자를 결정하기까지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추려 봅시다.”


현기증이 올라왔다.


‘원하는 답이 아니라 답은 진작 정해져 있었어.’


회장과 말다툼을 벌이지 않았더라도 델 레오네를 선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을 것이다.


토스카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협업은 그저 허울 좋은 핑계.


콘테처럼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고, 연맹을 고분고분 따르기만 할 꼭두각시를 원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자신들의 말을 잘 들으면서 성적도 괜찮게 낼 수 있는.


소름 돋는 건 그 적임자로 벤투라를 선택했다는 거다. 저 무지한 것들은 그가 정말로 대표팀을 맡으면 잘할 거라 믿고 있다.


‘다시 일어서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토스카노는 어쩌면 더 끔찍한 현실을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


스코틀랜드, 페이즐리, 세인트 미렌 사무실.


“좋아, 존. 너에게 들어온 제의는 세 군데야.”


세인트 미렌 회장 브라이언 콜드웰(Brian Caldwell)이 서류 세 장을 책상에 펼쳐 놓으며 말했다.


“하이버니언, 셀틱, 그리고 로스 카운티. 이렇게 세 팀에서 초기 비드를 해왔고, 그중 셀틱은······.”


“로스 카운티요.”


“······.”


곧바로 나오는 대답에 콜드웰은 당황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 그동안 네가 프로답게 행동했으니까 원하는 구단으로 보내주기는 할 건데. 아직 이 세 팀이 제시한 조건을 듣지도 않았······.”


“로스 카운티로 가고 싶어요.”


“아니. 들어 봐. 당장 선택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급할 필요 없잖아? 셀틱은 너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했어. 네가 개인 합의만 잘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거라니까? 그런데도······.”


“그래도 로스 카운티를 원해요. 즉석에서 꺼낸 말이 아니라 쭉 고민해왔던 답이에요.”


“······이런.”


콜드웰은 눈을 감은 채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봐, 존. 네 의사는 최대한 존중하고 싶어. 근데 셀틱이 제시한 이적료가······ 자그마치 두 배야. 다른 팀이 제시한 것에 두 배. 너도 알다시피 우리 팀 경영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잖아? 그래서······.”


“······.”


“솔직히 말하면 제안이 너무 좋아서 말이야. 너도 셀틱을 두고 로스 카운티를 가는 게 좋은 선택인지 한 번 재고해봤으면 해. 이번에 그 팀이 우승을 하긴 했지만, 또 한다는 보장은 없잖아?”


마음 같아서는 셀틱의 제안만 받아들이고 전부 철회하고 싶었지만, 일 년밖에 남지 않은 계약 기간으로 배짱 장사를 하기는 무리였다.


선수가 거절하면 다음 시즌에 자유 계약으로 풀어줘야 할지도 모르니까. 반응만 봐도 충분히 그럴 기세다.


콜드웰이 구단의 이익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선수를 설득하는 것뿐.


“어때? 셀틱이야. 다들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셀틱. 거대한 도시, 거대한 팀, 거대한 자본. 로스 카운티는 상대도 되지 않아. 괜히 잘못 선택해서 후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 네가 그곳에 간다면 분명······.”


“후회하더라도 제 마음은 변함없을 겁니다. 이미 결정했어요.”


“······.”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하아······.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콜드웰은 맥이 빠져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 설득은 어려울 것 같았다.


“당연히 셀틱을 고를 줄 알았는데, 로스 카운티로 가겠다니. 당황스럽네. 보내주기야 하겠다만, 네가 뭘 보고 가는 건지는 모르겠어.”


“단장님이 얘기하신 대로 셀틱을 가면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안락한 도시 생활을 누릴 수 있겠죠.”


존 맥긴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단지 전 축구 선수로서 더 성장하고 싶어서요. 그게 더 중요하거든요.”


작가의말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좀 더 빨리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짱짱가 님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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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44 36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1 32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4 34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08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2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48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58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19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1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29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5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63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06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0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88 4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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