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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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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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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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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56. 14/15 시즌 종료

DUMMY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렸던 유로파 리그 결승전. 로스 카운티가 세비야를 꺾고 우승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렸습니다.


모두가 예상했던 우승 후보는 많았지만, 그중에서 스코티시 챔피언을 고른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요?


이 선수들이 유럽 대항전에 발을 내디딘 건 이번이 최초였습니다. 처음 참가한 시즌에 트로피까지 거머쥐는 대기록을 달성했죠.


그러니 어찌 선택할 수 있었겠습니까? 토너먼트는커녕 본선 조별 리그 진출만으로도 대성공이라 자축하던 분위기 속에서 말입니다.


이전엔 로스 카운티라는 팀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 나라의 국민도 그랬죠.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이름이 되었으며, 심지어 궁금해하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이 패기 넘치는 전사들은 어디서 왔는가? 돌연 혜성처럼 나타난 그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서요.


무관심 혹은 의식도 못 했던 시선들이 확 달라져 버린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혹시 아십니까? 사실 이들은 정말로 전사가 맞습니다.


예. 비유의 표현을 쓴 게 아니라, 말 그대로요. 정확히는 그 피와 기상을 이어받은 후예라고 하는 게 더 낫겠군요.


전부 다 봐놓고서 얘기하는 거라 터무니없을 순 있겠습니다만, 어쩌면 이 결과는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프리미어십의 판도를 뒤집었을 때부터 우리는 알아챘어야 했어요.


로스 카운티······.


딩월시를 연고지로 삼은 자그마한 규모의 팀이며, 딩월시는 하일랜드에 속한 소도시. 그리고 하일랜드 지방에 있는 그들을 보통 고지대에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하일랜더(Highlander)’라 부르죠.


단순히 거주민을 뜻하는 이 단어에는 그 외에도 또 다른 의미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데요.


중세 시대. 그 시기의 하일랜드는 대검 클레이모어를 휘두르며 싸우는 최정예 전사들의 지역으로 유명했습니다. 강대국이었던 잉글랜드도 두려워할 만큼 위용을 떨쳤던 군대였죠.


특별한 수식어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들의 지역을 본뜬 ‘하일랜더’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요.


이 전설은 워낙 유명하여 스코틀랜드 역사에 기재된 것은 물론, 영국 밖으로 퍼져나가 외부인들마저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일랜더······ 영어권 발음으로는 하이랜더.


벌써 눈치챈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1986년. 미국에서는 불사신들의 검투를 다룬 영화를 제작했었죠.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며 쓰러뜨린 상대의 힘을 흡수하는, 모든 불사신을 제거한 단 한 명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갑자기 영화 얘기를 왜 하냐고요? 영화 제목이 하이랜더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곳. 하일랜드의 이름을 제목에 쓴 거죠.


당시에 흥행했던 그 영화 덕분에 하일랜더는 또 하나의 의미가 생겨나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되었습니다.


······최후의 전사라는 강렬한 이미지로 말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하셨겠죠.


과거 불굴의 용사들이 아래에 잠들어 있는 이곳 하일랜드.


로스 카운티는 이 땅을 연고지로 삼은 팀 중에서 가장 유명해졌고, 셀틱의 왕관을 차지하면서 명실상부한 스코티시 최고의 팀으로 등극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볼프스부르크, 나폴리, 세비야 등 숱한 유럽의 강팀들을 하나둘 물리치며 기어이 정상에 올라섰죠.


비슷하지 않습니까?


모든 불사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유일하게 살아남은 하이랜더 전사. 모든 유로파 팀들과의 싸움에서 이겨 유일하게 살아남은 로스 카운티.


명성이 드높은 팀과 마주해서도 물러서지 않는 투지는 잉글랜드 대군 앞에서도 용맹함을 떨치던 그들의 기개를 보는 듯했습니다.


전 오늘날, 하일랜더를 정의하는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보았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로스 카운티. 현생에 태어난 최후의 전사들을 우리는 목도한 겁니다.


······하하, 이거 너무 심취했나요? 그래도 여기에 자리한 분들 모두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얼굴인 것 같네요. 그만큼 올해 겪었던 것들이 굉장한 기적의 연속이었다는 거겠죠.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얘기가 길어지면 축제를 방해할 것 같으니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영화를 보면 목숨을 건 사투 끝에 살아남은 불사신이 승리를 선언하며 내뱉는 말이 하나 있는데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로스 카운티 선수들. 아니, 최후까지 생존한 하일랜드 전사들에게 그 대사를 전달하며 축사를 이만 마치겠습니다.


······.


There can be only one!

(오직 한 명만이 존재할 수 있다!)


-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장 스튜어트 리건(Stewart Regan) -


*******


협회장의 연설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휘파람 섞인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어마어마한 군중들이 몰려든 인버네스 공항.


스코티시 챔피언이 귀환해 고국의 땅을 밟기 전부터 진작 이곳에 집결한 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 무수한 인파 속에는 조지 맥도넬을 비롯한 친구들은 물론이고, 피터 블랙과 숫사슴들 역시 자리해 있었다.


포포투의 존 프리먼을 포함해 각종 언론 매체의 기자들 또한 모여들어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러댔다.


로스 카운티를 후원하는 스폰서 업체들과 각 유명 기업의 주요 인사들도 참가하여 올해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날 최대 이벤트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하일랜드의 주민들뿐만 아니라 에든버러, 글래스고, 애버딘 등 전국에서 몰려온 스코틀랜드인들. 잉글랜드, 웨일즈 등에서 건너온 영국인들. 전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까지.


평소 한산했던 하일랜드의 광활한 광장이 틈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꽉 들어 차 있었다.


붐빈다거나 바글바글한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그리고 사람들 위에서 수없이 나부끼는 깃발들. 숫사슴의 마크가 새겨진 군청색 깃발들이었다.


로스 카운티가 주인공인 축제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이렇게 많은 수가 휘날릴 수 있던 건 서포터즈인 숫사슴들이 대량으로 제작하여 무상으로 보급해준 덕택이었다.


환호 속에 섞여서 들려오는 묵직한 뿔피리 소리에 가뜩이나 들떠있는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선수들은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폴란드의 호텔에서 휴식하고, 다음 날에 귀환하여 바로 우승 퍼레이드를 진행한다는 계획은 프리미어십 사무국을 통해 미리 전달받았던 내용.


그런다 해도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6만 명의 셀틱 파크, 5만 5천 명의 나로도비 스타디온. 엄청난 수의 관중 앞에서 뛰었던 그 경기들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한 규모.


“나 또 귀에서 이명이 울리는 거 같아.”


그 웅장함은 강인한 멘탈의 주장마저 긴장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이제 로스 카운티의 우승 퍼레이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선수들은 모두 탑승해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건 승패가 걸린 시합도 아니고, 트로피를 두고 싸우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 트로피를 전리품으로 가져온 영웅들을 위한 환영식이니까.


지금 느끼는 감정은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리 코넬이 인버네스까지 가져온 첫 우승의 증표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트로피를 넘겨주었고, 신중히 받아 든 뒤 우승 퍼레이드 버스에 탑승하는 선수들.


열려 있는 지붕으로 올라가 자신들을 둘러싼 군중들을 둘러보며 손을 흔들자 그에 화답하는 환호성이 크게 터져 나왔다.


“준비됐어, 스콧?”


“물론이지.”


주장 리차드 브리튼이 유로파 리그 트로피를, 부주장 스콧 보이드가 자국 리그 트로피를 각각 잡아서 동시에 들어 올리니 우레와 같은 함성이 파도처럼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다.


더블. 한 시즌에 트로피를 두 개 획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칭호.


우승은 고사하고 생존에만 급급했던 구단이 꿈도 꾸지 못했던 것. 아직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지만, 그 업적의 산물이 저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우와아아아 -


곧이어 그 더블을 이룩하는 데 누구보다 큰 영향력을 끼친 장본인이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환호를 보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교주를 떠받드는 신도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토니, 이쪽 좀 봐줘요!”


나무 담장 위로 올라가 두 팔을 흔들며 헌신을 다해 어필하던 남자는 잠깐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으며.


이어진 여성 팬들의 찢어질 듯한 비명 세례는 세계적인 스타의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하였다.


예전엔 상상할 수도 없던 장면이었다.


올드팬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던 로스 카운티가 알게 모르게 젊은 층 사이에서도 유행처럼 뻗어나가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


이탈리안이 더블을 의미하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자 모두 팔을 높이 들어 그 행동을 따라 한다.


스코틀랜드 전체가 안토니오 델 레오네라는 인물에 흠뻑 빠져들어 있었다.


“해리! 사람에게 아우라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나 봐! 그의 머리에서 눈부신 광채가 비추고 있어!”


“그건 저 감독 머리 뒤에 해가 떠 있어서 그래. 정신 좀 차려, 조지.”


맥도넬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이윽고 움직이는 퍼레이드 버스.


인버네스 공항에서 출발해 그들의 홈구장인 빅토리아 파크까지.


단순히 주행 시간만 계산해도 두 시간가량이 걸리지만, 팬들과 교류하며 천천히 진행할 경우 네다섯 시간은 족히 넘어설 거리였다.


프리미어십 사무국과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까지 발 벗고 나서며 지원해주기로 한 이번 카퍼레이드.


특별한 팀의 특별한 우승이니만큼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한데 모인 결과물이었다.


거기엔 협회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물론 앙숙 관계인 인버네스 측은 자신들의 땅에서 지역 라이벌이 축제를 벌이는 게 탐탁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협조해야만 했다.


만일 로스 카운티가 이를 단독으로 주도해 벌였더라도 거절하는 순간 전 국민에게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는 상황.


하물며 이 나라의 축구 협회장과 리그 사무국장까지 끼어든 마당이니 어떻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선심 쓰는 척하며 이미지라도 챙길 수밖에.


펑 -


지나가는 곳마다 소형 폭죽이 터지며 선수들을 축하했고, 누군가는 건물 지붕에 올라가 푸른색 연기를 피워 올렸다.


로스 카운티의 색에 맞춰 흩날리는 청염.


버스의 뒤를 쫓아가며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렬은 이대로 빅토리아 파크까지 함께 완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였다.


그러면서 점차 커져 가는 구호.


카운티 -

카운티 -


볼프스부르크와 맞붙었을 때 첫 울림으로 경기장을 뒤덮으며 로스 카운티의 존재를 알렸던 그 구호가 모여든 사람들의 입에서 나와 하일랜드 일대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에 심취한 선수들도 같이 입을 모아 구호를 외쳤다.


카운티 -

카운티 -


“아름다운 장면이야······.”


지켜보던 로이 베넷 구단주와 대런 코너 단장의 등줄기에서도 전율이 흐를 만한 장면이었다.


각 방송사에서는 앞다투어 로스 카운티의 우승 퍼레이드를 실시간 방영하였고, 패널들과 전문가들은 각자 한 마디씩 얹어놓는 중이었다.


“이보다 멋진 여정은 없었습니다. 로스 카운티가 세운 업적은 단순히 올해만 빛나는 게 아니에요. 영원히 기록으로 남아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쉴 겁니다.” - 더 스코츠맨, 로스 카운티 담당 기자 ‘제임스 맥렐랜드(James McLelland)’ -


“말했죠? 로스 카운티는 무적이라고. 우리를 그렇게 비웃던 나폴리도 챔피언이었던 세비야도 하일랜드 거인의 발아래 짓밟혔습니다. 제 감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요? 저 이탈리안 감독이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스코티시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을 거예요!” - 하일랜드 풋볼 라디오 진행자 ‘콜린 피콕(Colin Peacock)’ -


평소 호의를 보이며 팀의 성공을 빌던 이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고.


“환상적입니다.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로스 카운티는 스코틀랜드의 위상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영국 축구에서 가장 빛나는 한 해를 보냈어요. 올 시즌 유럽 대항전을 통틀어 8강 이상을 통과한 유일한 영국 팀, 더 나아가 우승컵마저 들어 올린 팀이니까요. 대단해요.” - 축구 평론가 ‘에릭 프레스턴(Eric Preston)’ -


“정말 놀라운 규모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스코틀랜드인이 전부 한 곳에 모여든 것 같아요. 이게 바로 카운티 신드롬이라는 건가요? 하긴 이걸로 놀랄 일은 아니죠. 스코티시 축구를 다루지 않던 이곳에서도 로스 카운티를 중계하고 있으니.” - 축구 전문가 겸 Match of the Day 진행자 ‘게리 리네커(Gary Lineker)’ -


중립적인 위치에서 바라보던 이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항상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며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이들은.


“인정합니다. 제가 틀렸다는 것을요. 로스 카운티의 성공은 온전히 그들의 힘으로 만들어냈으며, 축하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감독의 존재가 컸고요. 저는 비현실적이라 생각했어요. 그만큼 말도 안 되는 마법이었죠. 하지만 결국 그는 성과로 증명해냈군요.” - 풋볼 전문가 ‘마이클 포드(Michael Ford)’ -


“더블. 누가 이 팀과 감독에게 비판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있다 하더라도 무의미한 일이죠. 델 레오네가 아닌 다른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면 로스 카운티로 더블은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 축구 평론가 ‘그렉 코너(Greg Connor)’ -


이때까지 해왔던 평론이 실언임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었다.


“저번에 그렇게 말했었죠. 그는 역사상 최고의 로스 카운티 감독이라고. 정정해야겠군요. 역사상 최고의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감독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요. 제가 이룬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 됐습니다. - 로스 카운티 전임자, 현 플리머스 아가일 감독 ‘데렉 아담스(Derek Adams)’ -


팀과 연관이 깊은 유명인들의 멘트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와는 고작 일 년만 지내봤을 뿐이에요. 하지만 전 로스 카운티의 성공을 확신했었습니다. 임대 신분만 아니었다면 그의 밑에서 더 많은 걸 배웠을 거예요.” - 블랙번 로버스 수비수 ‘얀 송고(Yann Songo'o)’ -


“번리에서의 생활은 만족합니다. 하지만 때론 아쉬워요. 그의 밑에서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뿌리치고 나온 저 자신의 선택이.” - 번리 미드필더 ‘로버트 퀸(Robert Quinn)’ -


델 레오네의 지도를 겪어봤던 선수들과.


“열일곱 살로 1군 데뷔했을 때 목표했던 꿈은 로스 카운티의 주장이 되어 팀을 이끄는 거였어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인버네스로 이적하기 전까진······. 당시에 델 레오네 감독이 있었다면 떠날 일도 없었겠죠. 끝까지 안 나가고 버텼다면 그의 선수로서 뛸 기회가 있었을까요? 기쁘면서도 아쉬운 감정이 교차합니다.” - 위건 애슬래틱 윙어 ‘돈 코위(Don Cowie)’ -


로스 카운티의 작은 역사에서 레전드라 칭할 수 있는 선수들도 오늘만큼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풀어놓았다.


그리고 이 기나긴 여정을 팀과 동행하며 꾸준히 지켜봐 준 팬들.


현장에 파견 나온 기자들이 열심히 뛰면서 인터뷰를 받아내는 중이었다.


“행복해요. 매우 행복한데 부끄러워요. 일 년 전으로 돌아가서 위대한 감독을 비판했던 제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어요. 왜 기존 멤버들을 두고 엉뚱한 선수를 쓰냐고 했었는데. 딩월, 블랜차드, 톰슨, 패터슨까지······. 이 젊은 영웅들이 해낸 것들을 보세요. 그들의 진가를 모르고 헛소리만 늘어놓은 꼴이죠.” - 로스 카운티 서포터 ‘테오 번즈(Theo Burns)' -


“사랑해요, 토니! 이렇게 말해도 그는 제 남자친구가 질투를 안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거예요! 왜냐하면 남자친구가 토니에게 더 미쳐있거든요!” - 로스 카운티 서포터 ‘캐롤라인 아네트(Caroline Arnette)’ -


“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해요. 그러니까······ 그를 사랑해요. 그 말밖에 생각나는 게 없어요.” - 로스 카운티 서포터 ‘조슈아 버넷(Joshua Burnett)’ -


영국 언론만 주목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산 파올로의 기적 이후 급격하게 관심이 늘어난 해외 언론들도 로스 카운티를 집중 조명하고 있었다.


셀틱이나 글래스고 레인저스의 우승이 연례행사였던 시절엔 언급하더라도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게 다였는데.


전 유럽이 변방 리그의 중소 구단에 이토록 신경 쓴 적이 있었던가?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자국과 유럽 안팎을 들쑤셔놓은 팀이니까요. 그동안 해외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은 건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이 수준 떨어지는 리그여서입니다. 그렇게 인식되던 이유가 뭐였겠습니까? 자국에선 독식하고, 유럽에선 얻어맞기만 하던 그 팀 때문이죠. - 반 셀틱 평론가 ‘딘 맥팔랜드(Dean McFarland)’ -


스카이 스포츠라든가 유로 스포츠 같은 다국적 채널이 중계하는 것쯤이야 당연하다 볼 수 있었지만, 각 나라의 메이저 방송사들까지 이 축제에 관여하고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영국의 BBC부터 독일의 ARD, 스페인의 TVE, 프랑스의 TF1 등.


특히 이탈리아의 Rai는 마치 자국팀이 우승한 양 격하게 기뻐하며 축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아리고 사키, 파비오 카펠로, 마르첼로 리피, 카를로 안첼로티, 로베르토 만치니, 안토니오 콘테 등. 이 외에도 수많은 명장을 배출해 왔던 이탈리아에서 또 하나의 세계적인 감독이 될 재목을 보고 있습니다.]


아마 델 레오네가 그들과 동일한 국적이니 거기에 몰입한 듯했다.


“상대했던 나폴리, 명문 재건을 원하는 AC 밀란, AS 로마 등 여러 세리에 A 구단에서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사 여부를 떠나서요. 그가 보여준 능력은 이탈리아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 스카이 이탈리아 소속 기자 ‘잔루카 디 마르지오(Gianluca Di Marzio)’ -


“전 왓퍼드의 열렬한 팬이지만, 세컨드 팀으로 로스 카운티에 관심을 가져볼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에요. 그만큼 매력적인 구단입니다.” - 스카이 스포츠 저널리스트 ‘파브리지오 로마노(Fabrizio Romano)’ -


같은 나라 출신 기자들 또한 호의적인 반응 일색.


제2의 로스 카운티 팬덤이 다른 데서 대폭 늘어난다면 아마 이탈리아가 유력할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 경이 올드 펌을 깨고 애버딘을 정상에 올려놓았던, 위너스 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했던 그 시절에 미디어가 발달했다면 지금 보이는 만큼의 소란이었겠죠. 그때도 스코틀랜드 안에서는 난리가 났었으니까요.” - 스페인 축구 전문가 겸 BBC 저널리스트 ‘기암 밸라그(Guillem Balague)’ -


유럽처럼 중계까지 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시아와 아메리카 지역의 방송사에서도 핫이슈로 다루고 있었으니 로스 카운티가 일으킨 파급력이 얼마나 큰 건지 실감할 수 있었다.


“당분간 로스 카운티는 성역이에요. 수십 년간 이런 업적을 남긴 스코티시 팀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테죠. 괜히 카운티 신드롬이 생겨난 게 아니에요. 이젠 스코틀랜드 국민이 지지하는 모두의 팀이 됐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로스 카운티와 델 레오네를 건드리는 건 우리 기자들도 못해요. 어리석은 곳에서나 하는 짓이지.” - 데일리 미러 소속 기자 ‘앨런 닉슨(Alan Nixon)’ -


다른 언론사들을 자극하고도 남을 직설적인 발언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지금의 로스 카운티를 적으로 둘 수 있단 말인가?


특종을 위해서라면 구단과의 대립도 마다하지 않는 기자들마저 백기를 흔든 것이다.


그중에서는 진심으로 매료되어 델 레오네와 로스 카운티 쪽에 완전히 돌아서 버린 이들도 있었다.


기자이기 전에 그들도 스코틀랜드 사람이니까.


“젠자아앙! 웃기지 마! 빌어먹을!”


물론 어딜 가나 예외는 있다.


데일리 메일의 마이클 길버트는 경쟁 언론사 쪽의 기자가 자신을 지목하듯 내뱉은 말에 분개하며 날뛰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TV 화면에 대고 욕설을 퍼붓는 것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진행되는 승리의 퍼레이드.


거대한 폭죽 소리가 연쇄적으로 터지더니 푸른색의 종이 꽃가루가 셀 수 없이 바람에 날리고, 다시 한번 사람들의 함성이 높아진다.


그제야 길버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며 TV를 끄고 말았다.


뒤틀린 심성을 가진 이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즐거운 하루였다.


서로 초면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응원하는 팀이 제각기 달라도, 거주하는 나라가 달라도 오늘만큼은 같은 길을 걷는 동지.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도 외치는 단어는 하나만 알면 충분했다.


카운티 -

카운티 -


어깨동무를 한 채 뒤따르는 세계인들의 행렬은 고층 건물 위에서 카메라를 최대한 당겨도 화면에 전부 담아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을 모두 하나로 묶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로스 카운티의 위인은 잠자코 바라보며 희미한 웃음을 짓고만 있었다.


“델 레오네 감독을 평가하면서 전술은 뺄 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전술가도 선수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실패하죠. 단기간에 팀을 장악하고, 원하는 대로 주무르는 걸 보면 진정으로 그의 무서운 점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 스코티시 스포츠 해설자 ‘롭 맥케나(Rob McKenna)’ -


*******


이른 낮부터 시작해 땅거미가 질 때까지 이어지던 이벤트가 마침내 끝나고.


빅토리아 파크에 도착한 선수들은 끝까지 환송해주는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모두 수고했다.”


감독이 말했다.


“폴란드에서 이미 다 꺼낸 얘기지만, 반복해도 지겨울 건 없지. 자네들은 훌륭한 시즌을 보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공을 거뒀다.”


“전부 감독님 덕분입니다.”


브리튼의 대답을 시작으로 선수들이 맞장구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 우승은 진짜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거죠.”


“세비야전을 뛸 때도 상황이 말씀하신 대로 흘러가는 걸 보면서 또 한 번 감탄했습니다.”


“감독님, 사랑해요!”


선수들의 존경심을 담은 발언과 마지막 에이든 딩월의 뜬금없는 고백에 델 레오네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 그래도 결과를 만드는 건 직접 필드를 뛰는 선수지. 자네들이 그만큼 잘 따라주었고, 열심히 뛰었기에 가능했던 거야.”


감독은 그렇게 말하면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두 개의 트로피를 보더니, 잠시 닐 스튜어트와 눈빛을 교환했다.


“뭐, 이런 날까지 잔소리를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그러고는 다시 선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오늘은 그저 이 순간을 즐겨라!”


“저희도 감독님의 선수라서 정말 영광입니다!”


“다들 귀가해서 푹 쉬고, 내일 시상식에서 만나지.”


“예!”


우렁차게 대답한 선수들은 코치진과 인사를 나누며 라커룸을 하나둘 나섰다.


“앤드류.”


톰슨은 거의 마지막에 나가려는 찰나 감독의 부름에 멈춰서야 했다.


“네?”


“어떤가? 이번 시즌. 자네는 만족스러웠나?”


“어······.”


톰슨은 곰곰이 생각했다.


고작 어시스트 두 개 말고는 별다른 활약도 없었던 데뷔 시즌에 비하면, 올해는 많이 발전했다.


제법 공격 포인트를 쌓았고, 승리에 일조한 경기도 많았다.


유로파 리그에서도 결승전에서 캐리의 결승 골을 돕지 않았던가?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톰슨은 감독을 올려다보며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만족스러웠습니다!”



< 14/15 시즌 종료 >



※ 기본 숫자는 선발 횟수, 괄호 안 숫자는 교체 횟수

1415 통산 기록 2.jpg

1415 부가 기록.jpg

“그런가? 난 아닌데?”


뜻밖의 대답이 날아오자 톰슨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네?”


“난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며 감독은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작가의말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말을 짓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됐지만
감독이 선언했던 대로 아직 끝은 아닙니다.
내용이 루즈하게 반복되지 않게끔 
신경 쓰면서 이야기를 써 나가겠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짱짱가 님
foir 님
모아두상 님
kjs1520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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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199. 대립 +5 24.01.25 779 32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2 34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06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0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46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56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17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0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2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51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62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05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59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87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69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16 40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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