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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공돌이 주인공이 역사에 대해 오해와 편견이 있는 건 똑같네요. 조선 백자도 그 나름의 멋이 있고 조선이 장인을 천시하지도 않았으며 유통의 중요성을 알아 상업도 천시하지 않았죠. 태종과 세종의 화폐도입 실패 이유도 알고보면 기술발전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니란걸 알 수 있습니다. 면포 생산 늘어나도 그것이 화폐의 역할을 하기에 가치가 떨어지고 군사기술도 당대인들의 이해도와 숙련을 고려하듯...
한글도 현대의 한글과 차이가 나는등 주인공의 적응이 힘들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변은 건강을 파악하는 변 검사도 병행하기에 이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것 같은데?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증오하는자'님의 댓글이 워낙 예리하여 덜컥 겁부터 납니다.
조선시대의 여덟천민, 팔반사천(八般私賤)이라고도 한답니다. 모두 사천에 속하는 천민으로, 사노비 승려 백정 무당 광대 상여군 기생 공장(工匠) 등입니다.
세종때 천민 공장인 장영실이 있긴 했지만 그건 특이한 경우이고, 조선시대 사회전반적으로 천대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조선 백자는 화려한 명 자기에 대지 못했죠. 임란이후 일본 자기는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쳤다고 합니다. 임란때 일본으로 납치된 도공들은 조선으로 돌아가길 거부했다고 합니다. 조선에 비하면 일본에서의 대우가 워낙 좋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팔반사천이든 뭐든간에 진짜 천민인 노비는 언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풍수를 보는 지관이나 하늘을 보고 점치는 천문관, 장인들 및 의관 등은 중인으로 분류하므로 신량역천도 아닌거죠. 정약용의 팔반잡류들도 취지가 차별을 위한 '차별'이 아니라 국고로 직행하는 조세제도가 중간의 유희거리를 업으로 삼은 이들에 의해 부질없이 소비되는 것으로 어지러지는 것을 막기위한겁니다.
천민들의 기원은 여러가지지만 당장 여요전쟁으로 생긴 여진난민들이 고려에 들어오면서 차별받았고 이들이 여몽전쟁 당시 앞잡이가 되기도하는등 유목계 이민족들이 동화되지 못한경우가 있습니다. 천민도 천민끼리 싸우고요.
조선의 백자 문제도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소비층인 지도층은 깨지지 않는 놋그릇을 선호하였고 조일전쟁으로 도자기 무역이 박살난 것이 큰 이유죠. 아무리 잘 만들어도 수요가 박살나면 이유가 사라집니다. 성리학적 검소라든지 그런 이유가 있지만 그대신 나전칠기등 다른것들이 화려해진건 다른 이유죠.
결국 조일전쟁에서 조선이 확실히 이긴다면 그러한 무역루트는 어느정도 살 수 있고 아무리 지도층 수요가 낮아도 사회혼란이 적다면 조선 백자도 화려할 수 있습니다. 원역사에서도 충분히 화려한 도자기도 있었고 검소한 도자기도 높은 값을 치뤘죠.
근데, 백자는 결국 얼마나 순도의 흰색을 내느냐는것인데 본 차이나를 만들 수 도 없죠. 알다시피 소란 것이 조선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면요. 유럽이야 농사 가축으로 말이 쓰였고 차이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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