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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dumpling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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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이번 세상의 악은 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빨리감기
작품등록일 :
2022.06.25 21:30
최근연재일 :
2022.07.05 23:33
연재수 :
6 회
조회수 :
256
추천수 :
5
글자수 :
31,848

작성
22.07.04 23:14
조회
28
추천
1
글자
8쪽

1. 20년 전, 비무연 (4)

DUMMY

밤이 깊었다.


나는 다른 후기지수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하고, 기거하고 있던 방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평소라면 나를 지켜보는 불쾌한 어떤 감시의 눈빛이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겠지만, 아마 오늘은 없을 것이다. 이틀째 식음을 전폐하고 면벽수행을 했던 사람이, 그날 당일 밤에 몰래 어디론가 빠져나가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비무연이 개최된, 문파란 문파는 모두 모여있는 이곳에서 경비나 보초를 세울 만큼 무당파가 사주경계가 철저한 문파도 아니다. 오히려 위험하거나 필요한 상황에서도 억지로라도 여유를 가장하며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무당파의 방식이다.


물론, 경비나 보초가 있더라도 내가 빠져나가지 못할 리는 없다.


나는 경공술을 약간 싣은 발걸음으로 조용히 비무장을 가로질렀다. 담을 넘기 위해 지나치는, 장로들이 묵는 안채에서 목소리들이 작게 들렸다.


"......그 천한 것이, 이번엔 무슨 영문인지......"


"......드디어 사형의 기죽이기가 통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것도 결국 어린 놈의......"


더 듣지 않아도 이미 알 것 같은 대화 내용이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었지만, 이미 이 맘때쯤부터 무당파의 장로들에게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중대한 관심사였다.


다른 문파들은 몰랐겠지만, 이 자들만큼은 내가 가진 힘을 직접 보았기에, 내가 현재 무림 최강의 후기지수이자, 후대에 천하제일인이 될 수도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자신의 반만큼도 살지 못한 아이에게, 참 치졸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하긴, 꼭 이자들 뿐 아니라 무림의 늙은이라는 것들이 가진 무공과 권력에 대한 욕심과 집착, 질투가 얼마나 강한지는 이미 지난 생애에서 충분히 느껴본 바였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필 그들이 혐오하고 무시하고 싶어하는 내가 그런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나는 창에서 보이지 않게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안채에 가까이 다가갔다. 장로들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놈이 예의랍시고 차리는 꼴을 보니 속이 아주 울렁거리더군요. 일장로님은 대체 어떻게 참으시는 겁니까? 정말 대단하신 인내심과 수완이십니다."


"태산 장로님의 인품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첨을 떠는 알랑거리는 말과 목소리에 많은 목소리들이 동조의 뜻을 내뱉었다. 그에 답하는 인태산의 목소리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허허, 대단할 일은 아니올시다. 그저, 그 놈을 참고 버텼을 때 우리 무당파에게 돌아올 것을 생각할 뿐이지요. 모든 것은 무당파를 위해서입니다."


"오오, 역시......"


"일장로님의 심계는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 쓴 웃음을 지었다. 혹여라도, 이 세상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걸로 끝이 났다. 설령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인태산은 무당파의 일장로, 즉 무당파의 장문인 바로 다음 위치이다. 그리고 현 무당파의 장문인은 인태산에게 조종당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인태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인자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가진 존경 받을 만한 무림인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실제로는 무당파와 그 무당파 내에서 입지를 가진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만을 생각할 뿐, 그 외의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자이다.


그의 겉모습이 인자해보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런 모습이 도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 역시 그의 그런 모습을 믿고 무당파에 들어오게 된 것이니까.


어찌 보면 자신에게 있어서만큼은 가장 현명한 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생에서도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무당파의 장문인이자 구 무림 구파일방 전체를 이끄는 위치에까지 올랐었다.


결국, 구파일방의 외면 하에 무림맹의 모두가 사파와 마교를 막아내기 위해 지쳐 쓰러지게 만든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다를 것이다.


발걸음을 떼려는 나에게, 인태산이 이어가는 말이 들렸다.


"그러니 장로 여러분께서도 힘드시겠지만 노력해주셔야 합니다. 아무리 그 놈이 사람 잡는 백정 출신이라 해도, 우리 무당파에게는 다행인 일입니다. 만약 그놈이 다른 문파에 가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휴, 생각만 해도......"


"저런 천한 놈을 받아주는 근본 없는 문파도 있겠지요. 우리 무당파 같은 긍지 높은 문파에 저 놈이 들어와서 다행이지."


그 말은 틀렸다. 첫째, 애시당초 날 이용할 목적으로 무당파에 들어오도록 이끈 것이 인태산이다. 둘째, 무당파는 구태하고 몰염치한 인간들의 소굴일 뿐 긍지 높지는 않다.


무공 앞에 모든 제자는 평등하다는 것은 무당파에서는 딱히 통용되지 않았다. 대놓고는 아니라도 은연 중에 출신에 따라 차별 대우 받고, 나 같은 정말 '천한' 출신은 대놓고 차별하니까.


"그러니, 저 놈이 다른 문파에 들어가거나 우리의 적이 되도록 성장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지금은 무당파의 무공만을 쓰도록 규율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저 놈의 본래 검과 상극인 우리 무당파의 검 안에 천한 놈에게 걸맞지 않은 재능을 가둬놔야지요."


인태산의 말은 너무나 정확했기에 나는 소리없이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랬다, 저것이 바로 지금 이 나이대의 나를 얽매고 있던 '주박'이었다.


내 몸에 깃든 검의 능력은 무당파의 것과는 꽤나 상극이었다.


무당파의 검은 정확하고 간결한 검로를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어떤 문파의 검보다도 연구된 역사가 깊고 무당파 자체의 세력이 강하기에 이미 틀이 충분히 짜여져 있는 검이다. 그렇기에 무당파에 입문한 제자들은 비슷한 정도의 수련을 쌓은 다른 문파의 제자들을 손쉽게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깃든 검의 재능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 무당의 검의 틀에 갇혀서는 그저 남들보다 강한 후기지수의 수준까지밖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 생에서 나는 몇 년 후에야 깨닫게 된다. 그 몇년은 사실상 버렸던 것이나 다름 없었다.


서연을 만나, 그녀의 자유로운 생각과 발상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던 것들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그리고 나를 지탱해줄 무림맹의 동료들이 없었다면 수십년이 지나도 깨닫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생애는 그 몇 년을 벌었으니, 모든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나는 다시 들키지 않게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가려는 목적지가 비무연이 열리는 이곳 사천과 가까운 곳인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인 곳이기에 만약 무당파 장로들이 가지 못하게 했더라도 어떻게든 다녀왔겠지만, 야밤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기에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수 있었다.


비무연 결승에서 내가 계획한대로 모든 일이 풀리려면, 지금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편이 좋다.


'사람 잡는 백정이라......'


이 나이대의 내 경공술은 다행히 상당한 수준이었기에, 순식간에 나는 무당파의 숙소가 멀리 보이는 곳까지 달려나갈 수 있었다.


'인태산. 이번 생의 나는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군. 네가 말하는 사람 잡는 백정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뛰쳐나갔다.


목적지는 백귀산.


인태산이 말했던 사람 잡는 백정, 중원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무림에서는 누구보다 유명한 암살자인 암귀들의 본거지.


그리고 나의 고향이자.


나의 하나뿐인 혈육.


어머니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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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년 전, 비무연 (4) 22.07.04 29 1 8쪽
4 1. 20년 전, 비무연 (3) 22.07.03 35 1 10쪽
3 1. 20년 전, 비무연 (2) 22.06.28 40 1 11쪽
2 1. 20년 전, 비무연 (1) 22.06.26 55 1 13쪽
1 0. 장례식 22.06.25 71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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