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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


[공책]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Rue des boutiques obscures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Rue des boutiques obscures ]


rue-obscures.jpg

파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diano 저 / 김화영 역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트와 헤어지는 순간부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책 소개와 리뷰에 항상 나와 내 리뷰에서 만큼은 피하고 싶지만, 이 책을 함축하고 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구절. 


 

 

오래 전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기 롤랑(Guy Roland)이라는 이름의, 이름도 과거도 국적도 확실치 않은 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행...

 

 

과자상자 속 낡은 사진 한 장은 바스라진 기억의 실마리가 되어 주인공을 과거라는 부정확하고 변형되기 쉽고 모호한 안개 속으로 이끌어간다. 자신이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와 자신의 애인이었을지도 (어쩌면 아닐지도) 모를  한 여자. 그러나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기억... 중심부로 접근해갈 수록 나른한 전개 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예상하고 있었던, 가장 아픈 장면에 맞닥뜨려야만 기억이 돌아올 것만 같았던, 바로 그 부분에서 주인공은 기억의 일부를 환하게 되찾게 된다.


책에서 작가는 전쟁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위험과 긴박감, 어떤 사람들에겐 보호막 역할을 해주었던 위장여권과 망명 등에 대해 마치 필터를 낀 것처럼 한 발 물러서서 간접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호텔 카스티유, 캉봉 가. Hotel Castille, Rue Cambon.

페드로 맥케부아, 하워드 드 뤼즈, 게이 오를로프, 드니즈..

그리고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


 

과연 나는 누구였고 누구일까?


어쩌면 그 대답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페드로라는 이름조차 가짜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혈혈단신의 기억상실자가 재구성해낸 과거는 단편적이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이름들, 더구나 같은 인물의 다른 이름들, 국적들은 모두 이 책을 통틀어 섬광처럼 번뜩인 단 하나의 사건에 다가가기 위한 암호였을지도 모른다. 기억상실을 가져오게 만든, 드니즈에 대한 그날의 후회 가득한 슬픈 사건에 접근하기 위한...



 

 

과거를 더듬다가 쉼표처럼 돌아오는 C. M. 위트 흥신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린 채 ‘위트의 권유로’ 흥신소의 사립탐정 일을 시작했다는 것, 니스로 떠난 위트 역시 자신의 과거를 잃었던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위트가 흥신소를 그만둔 뒤에도 적극적으로 기 롤랑의 과거 찾기를 도와주는 것으로 보아, 기 롤랑과 위트가 과거에서 만나게 될 줄 알았다. 

그런 일은 결국 벌어지지 않았지만, 아직도 기 롤랑, 아니 페드로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하워드를 찾아다닌다.







콩님 리뷰 따라가기 

https://blog.munpia.com/horrorvacui/category/293596/page/2/post/44167


(사실 읽은 지 좀 되는 소설인데 소설 내용보다 아플 때 비몽사몽간에 읽었던 기억이 더 선명합니다... 그래도 일치하는 책 발견에 기쁜 마음으로 리뷰 적어봅니다.)


(참고로, 흥신소라는 단어를 이 책에서 처음 접했어요. 어쩌면 다른 곳에서 들어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우 낯선 단어였지요. 흥신소? 훔.. 바로 사립 탐정소를 말하는 것이었답니다.) 




댓글 8

  • 001. Lv.30 온연두콩

    16.05.13 01:0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002. Personacon 이웃별

    16.05.13 10:4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003. Personacon kkaje

    16.05.13 17:03

    흐억, 이 소설 읽었을 때 읽는 내내 가슴 아픈 느낌이었는데 결말도 역시나 가슴 아팠어요. 너무 슬퍼서 용서할 수 없는 소설 종류예요. 흐어엉. ㅠㅠㅠㅠ

  • 004. Personacon 이웃별

    16.05.13 20:01

    네... 먹먹한 마음으로 읽다가..
    마지막에서 강렬한 슬픔으로 가슴을 맞은... 흐어엉 ㅠㅠㅠ

  • 005. Personacon kkaje

    16.05.14 15:47

    이 소설 생각하다가 급 우울해져서 신나는 노래 듣고 있었어요. XDDD

  • 006. Personacon 이웃별

    16.05.17 21:52

    https://blog.munpia.com/ddorangkkaje/category/272203/page/14/post/58177#COMMENTS

  • 007. Lv.6 심상연

    16.10.10 01:31

    참 좋아하는 소설이에요.. 김화영님의 번역도 믿고 보는 편이구요^^

  • 008. Personacon 이웃별

    16.10.11 00:33

    심상연님. 안녕하세요^^ 느리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순간을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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