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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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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ga3333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6
최근연재일 :
2022.06.3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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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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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945

작성
22.06.1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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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텅 빈 미각. 악의 평범성

DUMMY

43. 텅 빈 미각. 악의 평범성



꼬불꼬불한 긴 계단을 내려가서 지배인이 철문을 열었을 때 우리는 함성을 질렀다.


“이야! 바닷 속에 들어온 것 같아.”


지하에는 모든 외벽이 유리로 둘러싸여 바다 속이 보이는 레스토랑이 있엇다.

부모님도 유리 너머로 보이는 상어와 열대어들을 보며 신기해 하셨다.


“이런 곳에서 밥을 먹으면 꼭 해저에서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겠어.”


“무얼 먹을까요? 촌놈은 봐도 잘 모르겠으니~ 가장 비싼 코스요리를 시켜 볼게요!”


금가루가 뿌려진 캐비어 요리와 랍스터가 나왔다.


“우와~~음식이 아니고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아요.”


이 작품은 감히 포크로 찍어 입에 넣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술적이었다.

디저트는 검은 송로 버섯으로 만든 초콜릿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재료들은 요리에 다 때려 넣은 것 같네.

모두 오늘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야.’


어머니는 황홀해하셨다.


“너무 환상적인 식사였어. 식용이라고 해도 요리에 귀한 금가루가 이렇게 많이 들어가다니 정말 놀랍구나.”


그새 직업병이라도 걸린 것인가?

음식을 먹으면서 오류를 감지했다.

후각 청각 미각 시각 촉각.

원래 이 오감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간접적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베가 세계의 원리는 꿈을 꾸면서 가상 세계에 접속하는 것.

아무리 가상 세계라고 해도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에 관한 것들은 새로운 감각을 완벽하게 제시해 주진 못했다.

특히 가상 세계에서의 미각은 실제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먹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먹어본 맛의 감각과 기억을 불러오는 정도였고, 가상 세계에서 난생 처음 먹어보는 음식의 맛은 불러올 수 있는 감각의 정보가 없었다.

나의 뇌 안의 부족한 미각처럼, 이 최고급 캐비어는 무언가가 텅 빈 듯 심심한 맛이 느껴졌다.

내가 먹어 본 적도 없던 캐비어의 맛의 정보를 나의 뇌와 미각은 끌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최고급 캐비어를 현실에서 먹어본 사람만이 가상 세계에서도 그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휴···.”


‘현실 세계에서 오감의 경험의 범위를 넓혀야 여기서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많아지는구나.

현실에서도 더 분발해야겠어!’


부모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셨다.


“시우가 피곤하니? 식사는 너무 훌륭했는데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나.“


“별일 아니에요. 이제 식사를 마치셨으면 숙소로 이동하시죠!”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의 숙소.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 방에서 나와 바로 에메랄드 바다로 뛰어들 수 있었다.

우리는 물속으로 들어가서 형형색색의 산호와 열대어들을 보았다.

어머니는 즐거워하셨다.


“저 니모 좀 봐. 말미잘 촉수 사이에 들어가서 나를 정면으로 화난 듯 노려 보고 잇어. 쬐끄만 게 정말 귀엽네.”


“엄마 평주의 봄 기억해요?

봄철에 꽃이 피면 들판이 정말 화사한 색으로 물들곤 했는데, 열대 식물에 비하면 채도가 아주 낮은 편이었더라고요.

베가 시험 때 열대우림을 가보고 알았어요.“


“열대우림도 다녀왔었어? 정말 대단했겠구나. 시우야.”


“그런데 오늘 보니까 바닷속 열대어들도 열대 식물만큼이나 알록달록 화려하네요. 평주 물고기랑은 달라요.”


베가 세계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각적인 대상을 늘 새롭게 제시해주었다.

그것이 이 회사가 가장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 것이다.

바이러스의 위험을 피해 실내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시각적인 욕구의 해소가 가장 중요했을 테니.

에메랄드 빛 바다가 부서지는 듯 몇 번 파도를 칠 때, 서핑하던 모습의 디아나가 떠올랐다.


‘다음에 디아나를 만나면 시각 외의 다른 감각 체험에 대해서도 의논해보아야겠어. 도움이 될지도 몰라.’


돌고래 워칭 투어와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3일의 시간은 정말 금방 지나갔다.


‘처음 온 가족여행은 너무 좋았어.

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이 마치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야.

이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면 나아지겠지.’


나는 현실로 가기전 부모님께 인사를 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서 현실의 저와 엄마를 좀 돌보다가 다시 돌아 올게요. 집으로 가셔서 기다리세요.”


“그래 시우야. 우리도 너무 즐거왔다.

잘 다녀와.“


* * *


나는 72시간이 넘어가자 잠에서 깨어났다.

인큐베이터 뚜껑을 열고 한번 깊은 호흡을 했다.


“휴···”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비몽사몽 했다.


수면실 관리자가 나를 부축해주었다.


“박시우 님 여기 물 한잔 드세요.”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3일 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핸드폰을 확인했다.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많이 와있었다.


‘누구지? 평소엔 아무에게도 전화가 없는데···?‘


부재중 통화 리스트에는 모르는 번호들이 있었고 그중에 하나 담당 의사의 번호가 눈에 띄었다.

나는 서둘러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이 되기 전까지 그가 전화를 걸었을 만한 이유를 생각해보고있었다.

‘의사가 왜 전화했지?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겼나?

수술이 잘 되셧다고 했는데···

혹시 또 개인적인 부탁을 하려고 하는 거면 가만두지 않겠어.’


전화를 받는 의사의 목소리는 전처럼 들떠있지는 않았다.

[여보세요? 박시우님.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셨어요?]

“선생님, 제가 베가 수면실에 3일간 있느라 전화를 못 받았는데요. 혹시 무슨 일 있나요?”

[베가에서 연락이 갔었는데 연락을 안 받으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담당 의사였던 저에게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베가라는 말에 나는 다급해졌다.


“네 무슨 일이죠?”


[안타깝게도 업로드 도중 어머니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예상치 못 했던 일이라 잘 못 들은 것은 아닌지 다시 물었다.


“뭐라고요?!!!

사망하셨다고요? 저번에 수술이 잘되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대체 왜···”


[신체적으로는 이미 암 말기라서 오래 사실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어요.

제가 말씀드렸던 것은 뇌의 암 부분을 잘 제거해서 깨끗하게 업로드를 하실 수 있게 수술을 잘 마쳤다는 부분입니다.]


이 미친 의사. 어쩐지 중간에 잘한다고 했더니 예외는 없었다. 싸이코 같은 본색을 드러냈다.


“업로드요?! 업로드가 다가 아니죠!

저는 어머니 임종도 지키지 못 했고요. 마지막 말씀도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박시우 님 진정하세요. 마지막이라니요? 저는 시작이라고 봅니다.

업로드는 완벽하게 마쳤고, 이미 베가에서 어머니를 만나 뵈셨을 텐데요? 거기서는 잘 지내고 계시죠?]


지금 막 몰디브에서 가족 여행을 마치고 온 나는 그 말에는 부인하지 않았다.


“······.”


[박시우 님? 지금 듣고 계세요?

아유··· 이제 막 입사하셨으니 베가에서 어머니 모시고 호강시켜드리면 되죠.]


‘베가에서 그렇게 행복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어머니의 육체는 사망해 계셨다니···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의사에게 말했다.


“저는 모든 게 너무 지금 혼란스러워요, 선생님.”

[베가에서는 복지 혜택 그대로. 현실에서도 최고급 장례비용을 지불한다고 했어요.

일단 현실에서는 장례식을 먼저 치르시는게 순서이신 것 같아요.]


“장례식이요......?”


[지금 베가 타워 수면실이시라고 하셨죠? 안내 데스크로 내려가셔서 어머니 업로드와 장례식에 대해 문의해보세요. 친절히 잘 알려 줄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 의사 놈이 과연 악한 사람인지, 평범한 사람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이놈은 그냥 고용되어 자기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는 부류겠지.’

나는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구절이 떠올랐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이행한 사람들은 광신도, 사이코패스, 성격 장애자도 아니였다고했다.

그런 악행은 그저 상사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개념이다.

어떤 이들은 맡은 일만을 충실히 해오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최고의 악인이 되기도 한다.

이 의사가 나에게는 그런 평범한 악의 부류로 보였다.


‘본인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게 더 나뻐. 나쁜 놈.‘


나는 스스로도 경각심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살아가면서 내게 주어진 일과 삶에 대해 지속해서 의문을 던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 저런 평범한 악인이 되어있을지도 몰라.

늘 깨어있는 정신을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해. 도덕적 성찰도 필요하고.‘


나는 눈물을 흘리는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안내 데스크로 이동했다.


‘베가 세계에서라도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아무 희망이 없었던 상황보다 나았다고 생각해보자··· 엄마···흑흑···’


“네 시리우스 님. 수면실은 잘 이용하셨나요?

이번에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감사했습니다.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참고있는 눈물이 또 한 번 주르륵 흘렀다.


“어머··· 좋은 시간을 보내셨다면서 왜 눈물을... 괜찮으신가요?”


“저희 어머니가 베가업로더를 이용하고나서 돌아가셨어요. 암 말기 환자셨거든요···흑흑···”


친절해 보이는 이 안내원도 죽음에 대해 무감각한건 예외가 없었다.


“그래도 업로딩은 무사히 마치신 거죠? 제가 바로 디지털 업로딩 실에 연락해 보겠습니다.”


베가 계열사를 포함해 근무자들은 뇌의 어느 부분이 고장이라도 난 건지, 대부분 죽음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 사람들이 입사 지원을 한 건지, 여기서 근무하다 영향을 받은 것 인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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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오르페우스와 조셉박사 +5 22.06.29 2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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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2주의 시간 +5 22.06.27 29 5 11쪽
52 할렘 +3 22.06.26 28 4 10쪽
51 보이드 군대 +5 22.06.25 27 4 10쪽
50 도주 생활 +3 22.06.24 32 4 10쪽
49 베가업로더실 +3 22.06.23 29 3 10쪽
48 헛된 시간들 +1 22.06.22 26 3 10쪽
47 대표의 개 +2 22.06.21 33 3 10쪽
46 서핑을 배우다 +6 22.06.20 29 3 11쪽
45 호흡소리 +5 22.06.19 34 3 10쪽
» 텅 빈 미각. 악의 평범성 +2 22.06.18 34 3 10쪽
43 에메랄드 빛 몰디브 +8 22.06.17 36 4 10쪽
42 김춘삼 +6 22.06.16 35 4 10쪽
41 수면실 +8 22.06.15 36 4 10쪽
40 시리우스 +4 22.06.14 35 2 10쪽
39 아버지를 찾다 +4 22.06.13 40 3 10쪽
38 베가워치 +4 22.06.12 37 3 10쪽
37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6 22.06.11 37 3 10쪽
36 디아나와의 첫 만남 +6 22.06.10 41 3 10쪽
35 병원에서 나오다. +7 22.06.09 40 3 10쪽
34 다시 병원으로 +4 22.06.08 42 2 10쪽
33 견우와 직녀 +2 22.06.07 39 2 10쪽
32 자업자득 +6 22.06.07 44 4 11쪽
31 5라운드의 시작 +6 22.06.06 42 4 10쪽
30 최선의 선택과 삶의 본질 (4라운드 끝) +4 22.06.05 47 3 10쪽
29 4 라운드 시작 +8 22.06.04 50 5 10쪽
28 3 라운드의 끝 +4 22.06.03 4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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