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ve****** 님의 서재입니다.

VEGA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vega3333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6
최근연재일 :
2022.06.30 23:55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3,628
추천수 :
251
글자수 :
249,945

작성
22.06.05 08:10
조회
46
추천
3
글자
10쪽

최선의 선택과 삶의 본질 (4라운드 끝)

DUMMY

29. 최선의 선택과 삶의 본질



6번 할아버지는 생강차를 받았고, 8번 아저씨에게는 막걸리가 도착했다.

9번에게는 식혜. 10번에게는 믹스커피가 도착했다.

딱 소주 한 잔을 하고 싶던 참이었는데, 나에게는 반가운 메뉴였다.

나는 소주 잔에 한잔을 따라 들이켰다.

들이키는 순간 환하게 웃던 2번의 얼굴이 잔 위로 떠 올랐다.

갑자기 2번과 투닥거리면서 했던 대화들과 뺨에 입을 맞췄던 기억들이 떠올라 나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

2번은 말했었다.


[내가 너 찜했으니 우리 베가에서···

아니면 여기서 혹시 살아서 나가게 되면 그때는···]


‘이렇게 빨리 떠나버릴 줄 알았으면 2번이 했던 그 말에 대한 대답을 그렇게 모질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 왜 그렇게까지 냉정했던 걸까···‘


2번이 하고 있던 말을 막으면서까지 사나운 대답을 해버렸는지 후회가 되었다.


‘나도 2번에게 마음이 있었나?’


그렇다고 지금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라고 표현한다면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2번에게 혹시 내 마음을 모르는 사이 다 빼앗겨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늘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 아이 같은 싱그러운 미소는 2번을 더욱더 빛나게 했었다.

내가 소주를 벌써 반 병 비우고 있을 때 8번 아저씨가 나를 부르며 말했다.


“3번. 마셔 달라고는 안 할 테니까 말로만 설명해줘 봐.

막걸리가 뭐지?

뭔가 시큼한 냄새가 나는데?

좀 상한 것 같기도 하고···“


“아 시큼한 냄새는 발효주라서 그래요.”

그럼 이게 술이라는 얘기야?

“네 도수는 와인보다는 낮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8번이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면 나는 이번 라운드가 마지막이겠어.“


나는 뜬금없이 마지막이라는 8번 아저씨의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게다가 이번은 보너스 라운드라고 했는데.


“무슨 얘기에요 아저씨?”


“도수랑 상관없이 이건 술이잖아.

나는 종교 때문에 술을 먹지 않아.

이건 평생을 지켜온 내 신념이라고.“


그 순간 6번 할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정말 행운의 음료가 걸렸어. 생강 향을 잘 못 느끼더라도 목구멍과 혀에서 매운 것을 먹었을 때와 같은 따끔따끔한 미세한 통각이 느껴졌어.

이 음료는 진짜가 맞을 거야.

9번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이번 라운드는 아주 가볍게 넘어가겠어요.

식혜. 이 음료는 멕시코의 ‘오르차타‘랑 비슷해요. 스페인이 원조이지만 우리나라는 쌀로 만들기 때문에 이 음료랑 더 비슷하죠.

이 둥둥 떠 있는 쌀을 갈아서 시나몬을 첨가하면 딱 오르차타 일 것 같네요.“


10번이 말했다.


“방금 바리스타가 가루를 넣은 작은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넣어 저어 주었어.

한 모금을 마셨는데.

이건 달면서도 정말 맛있는 커피의 조합이야.

커피의 향은 거의 나지 않아서 이것이 진짜 커피인지는 확신을 못 하겠어.

하지만 정말 맛있다고.“


내가 말했다.


“그건 우리 동네 어르신들에게 가장 인기인 커피예요.

중독성 있는 달달한 맛이 그 커피의 매력이죠.”


8번 아저씨가 물었다.


“10번. 그 커피 다 마시지 말고 한 모금 남겨둬.”


10번이 당황했다.


“하지만 서로 힌트를 줄 우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음료를 마시지 말라고 했던걸요?”


8번 아저씨가 막걸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이 테스트 음료인 술을 마셔보지 않을 거야.

그러면 탈락하게 될 테니, 이왕이면 그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고 싶어.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건 모두 알고 있지?“


6번 할아버지가 설득하듯 물었다.


“8번. 그래도 목숨이 달렸는데 딱 한 모금만 마셔보는 것은 어떤가?”


“어차피 최후의 1인이 되지 않는 한 저는 어떤 라운드에선가 죽게 되겠죠.”


아저씨의 말은 어딘가 시작부터 비관적이었다.

매 라운드 죽어갔던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 긍정적인 상태의 후보자는 없을 테지만···


“술 한 모금이 어떤 이에게는 아주 가벼운 것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평생 지켜왔던 종교의 말씀을 부정해 버리는 것이 되어요.

눈 한번 딱 감고 그런 신념을 잠깐 져버린다면 이번 라운드는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런 규칙들은 신과의 약속을 떠나··· 평생 내가 지켜온 내 인생의 철칙 같은 거였어요.

이번에 이 테스트 때문에 나와의 약속을 저버린다면, 내가 평생 지켜왔던 룰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아요.

이제까지 살아온 내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마지막까지 그런 불명예를 안고 죽고 싶진 않아요.“


모두 다른 삶의 철학과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져버리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8번 아저씨는 매일 화분에 물을 주듯 자신을 통제하며 삶의 본질을 가꾸어왔을 것이다.

그렇게 평생을 잘 가꾸어 온 아저씨의 삶의 원칙을 시들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최후의 갈림길이라고 해도 아저씨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걸으려 했다.

이는 우리를 이 시험에 꼭두각시처럼 세운 베가에 대한 복수이자, 아저씨의 마지막 자존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아저씨의 생각을 존중해 드리기로 했다.

우리는 한 명씩 돌아가며 아저씨와 포옹을 나눴다.

마지막으로 아저씨가 나를 껴안았을 때 덤덤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3번아. 네가 사막에서 나를 위해 목숨을 던졌을 때.

혹시 내가 마지막까지 남게 된다면 나를 위해 희생했던 너의 목숨 값까지 의미 있는 곳에 잘 쓰려고 했어.

그런데 이렇게 쉽게 가게 되어서 미안하다.

그리고 너는 그때 내가 말했 듯 꼭 살아남게 될 거야.

네가 아직 모르는 네 안의 용기가 너를 지켜줄 거야.”


아저씨는 그리고는 10번에게서 남은 믹스커피 한 모금을 받아 마셨다.

아저씨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웃고 있었다.


“아~커피 맛 달다~

마지막으로 마시는 커피여서 그런가? 정말 달달하니 맛있는데?

이게 바로 한국의 커피 맛인가?

기회가 된다면 서울에 꼭 한번 가고 싶었는데···

업로드가 되고 나면 베가에서 똑같이 재현한 '베가 서울' 로 가볼게···“


목걸이에서는 베가 로고와 함께 바늘이 목을 찌르며 움푹 들어갔다.


“지잉”

“으으윽”


바늘이 들어가는 그 순간 아저씨는 종교의 기도 방식대로 특정 방향을 향해 절을 하셨고, 그러다 숨을 거두셨다.


“흐······”


나에게 늘 용기를 주셨던 아저씨···

그래도 아저씨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치 있다고 여긴 것들을 단지 생존을 위해 가볍게 저버리지는 않았다.

이 시험에 참가하지 않은 자들이 이 상황을 본다면 고작 막걸리 한 모금 때문에 죽냐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생사의 길목에서 소신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명예롭고 용감한 일이었다.

나는 한국 방식대로 고인에게 절을 올렸다.

6번,9번,10번도 나를 따라 아저씨께 절을 했다.

아저씨는 베가 직원들에 의해 들 것에 실려 나갔다.

이브의 목소리가 들렸다.


“8번은 시험 중의 규칙을 어긴 관계로 탈락했습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습니다.

찰스가 주는 마카롱을 드세요.

진짜라고 생각하시면 블루베리 맛 가짜라고 생각하시면 딸기 맛을 드세요.“


철수가 우리에게 마카롱을 두 개씩 나눠주었다.

10번은 커피 향이 너무 약하다는 고민 탓에 딸기 맛을 고르려다, 마지막에는 블루베리 맛을 택했다.

결국 모두가 블루베리 맛을 먹었다.

이브가 말했다.


“역시 보너스 라운드라서 그런지, 모두 정답을 잘 맞추셨군요~”


철수가 나와서 인사를 했다.


“4명의 후보자 여러분~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게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6번 할아버지가 손짓하며 물었다.


“저기 찰스 양반?

여기 있는 딸기 맛도 이제는 먹어도 되는 거야?"


철수가 미소로 대답했다.


“네 미션은 끝났고 통과하셨으니 드셔도 됩니다.”


10번이 할아버지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아까는 후각 상실로 맛도 잘 못 느낀다면서, 뭘 그렇게 욕심을 내요?”


할아버지가 변명하듯 말했다.


“이제 방에 가면 또 알약만 줄 텐데···

이건 씹는 맛이라도 있잖아.“


나는 철수에게 질문을 했다.


“저기요···철수 매니저 님?


“네. 더 궁금한 사항 있으신가요?”


“아··· 네.

아까 두 번째로 나왔던 막걸리요.

그건 진짜였어요 가짜였어요?“


“아 그 음료만 딱 막걸리 향을 낸 무알콜 음료였습니다.

가짜였죠.

4번 후보자 님이 그런 선택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도 좀 안타까웠어요.“


“아···네···

그게···무알콜에 가짜 음료였다는 말씀이죠··· 하...”


방금 전 만해도 명예롭게 느꼈던 아저씨의 죽음이,

가짜 술이었다는 말에 갑자기 헛된 죽음처럼 느껴져 속이 쓰렸다.


'진짜 술이 아니었다면 드셔도 되었었네...'


이건 베가가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었을까?

극단적인 상황으로 사람을 몰아넣고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는 것?

어쨌든 아저씨는 마지막까지 베가의 뜻대로 놀아나시진 않았으니···

억울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최선의 선택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나도 삶의 기로에서 가치를 두는 것을 선택하고 명예롭게 죽을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오갈 때 다시 암전의 시간이 찾아 왔다.


* * *


우리는 다시 각자의 방으로 이동 되었다.

라운드를 거치며 많은 후보자들의 희생을 보았고, 이제는 몇 명 남지도 않았다.

하얀 방이 임시 수용소같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휴··· 단상 위에서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밧줄만 쳐다보는 사형수와 같은 신세야.’


다시 알약을 삼킨 채로 어둠 속에 몸을 맡겼다.


“꿀꺽”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VEGA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일반연재 후 연재 시간표 22.05.25 68 0 -
56 마지막 회 +10 22.06.30 33 5 12쪽
55 오르페우스와 조셉박사 +5 22.06.29 27 4 11쪽
54 현실과 가상의 전투 +5 22.06.28 30 4 10쪽
53 2주의 시간 +5 22.06.27 29 5 11쪽
52 할렘 +3 22.06.26 28 4 10쪽
51 보이드 군대 +5 22.06.25 27 4 10쪽
50 도주 생활 +3 22.06.24 32 4 10쪽
49 베가업로더실 +3 22.06.23 29 3 10쪽
48 헛된 시간들 +1 22.06.22 26 3 10쪽
47 대표의 개 +2 22.06.21 33 3 10쪽
46 서핑을 배우다 +6 22.06.20 29 3 11쪽
45 호흡소리 +5 22.06.19 34 3 10쪽
44 텅 빈 미각. 악의 평범성 +2 22.06.18 33 3 10쪽
43 에메랄드 빛 몰디브 +8 22.06.17 36 4 10쪽
42 김춘삼 +6 22.06.16 35 4 10쪽
41 수면실 +8 22.06.15 36 4 10쪽
40 시리우스 +4 22.06.14 35 2 10쪽
39 아버지를 찾다 +4 22.06.13 40 3 10쪽
38 베가워치 +4 22.06.12 37 3 10쪽
37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6 22.06.11 37 3 10쪽
36 디아나와의 첫 만남 +6 22.06.10 41 3 10쪽
35 병원에서 나오다. +7 22.06.09 40 3 10쪽
34 다시 병원으로 +4 22.06.08 42 2 10쪽
33 견우와 직녀 +2 22.06.07 39 2 10쪽
32 자업자득 +6 22.06.07 44 4 11쪽
31 5라운드의 시작 +6 22.06.06 42 4 10쪽
» 최선의 선택과 삶의 본질 (4라운드 끝) +4 22.06.05 47 3 10쪽
29 4 라운드 시작 +8 22.06.04 50 5 10쪽
28 3 라운드의 끝 +4 22.06.03 46 4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