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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도시 던전3: 까마귀와 뱀들의 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21.01.25 01:00
최근연재일 :
2021.04.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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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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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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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86. 수여식

DUMMY

포그곤트 가문의 한구석에 세워진 탑. 벤자민은 그곳으로 올라가 한 낡은 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기계적으로 무감각하게 문을 두들긴 다음 문을 열었다.


똑. 똑.


예상대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벤자민은 마음먹었던 대로 멋대로 문을 열었다.


낡은 문이 끼익 열리자 벤자민은 자그마한 방과 그곳에 앉아 있는 한 우울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독한 술을 연거푸 마시고 있었는데, 벤자민과 비슷한 나잇대로 보였으며, 오랜 칩거 생활로 기다랗게 자란 머리카락과 수염이 눈에 띄었다.


그의 이름은 브레딕트 포그곤트. 베넷의 장남이자, 벤자민의 아버지였다.


벤자민은 아버지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안녕하셨습니까?’라는 형식적인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브레딕트 역시 멍한 눈으로 벤자민을 바라볼 뿐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벤자민은 코로 숨을 깊게 내뱉고는 허락도 없이 아버지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틀 전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 들었다.”


“다행이군요. 들으셨다니.”


“왜...? 내가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냐?”벤자민은 손을 저었다.


“아뇨. 어차피 죽은 어머니 초상화나 붙잡고 청승 떠느라 못 오신 것이 뻔할 텐데요.”


그 순간 시체 같던 브레딕트는 눈에 핏줄을 세운 채 탁자를 쾅 내리쳤다. 술병이 떨어지며 쨍그랑 깨졌는데, 안타깝게도 벤자민은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절망적으로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왜? 혹시 다른 이유인 건가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


“네 어머니가 누구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느냐?! 누구 때문에!”


“하아.... 저 때문에 돌아가셨죠. 절 낳다가 말이죠. 말도 못 하던 아기일 때부터 들은 이야기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지껄이는 거냐...!”


술에 취한 아버지는 비틀거리는 손으로 의자팔걸이를 꽉 쥐었다. 앙상한 손에 핏줄이 도드라졌는데, 그것만으로 그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벤자민을 증오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내를 빼앗은 이 저주받은 아이를....


“예, 아버지. 알고 지껄이는 겁니다. 어머니가 절 낳다가 돌아가셨죠. 아버지는 그로 인해 평생을 애도하셨고요.... 그런데 아버지 제가 진심으로 궁금해 그러는데 제가 죄송해야 하는 겁니까?”


어미를 죽여 태어난 자식의 입에서 나온 믿기지 않는 그 말에. 브레딕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버지를 조롱하거나 화를 나게 해드리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진심으로 궁금해 묻는 겁니다.... 저 역시 한때 저로 인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고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문득 열다섯 살쯤 되니 의문이 들더군요. 제가 그토록 잘못한 게 맞나 싶어서요.”


“너로 인해 어미가 죽었는데! 내 아내가 죽었는데! 잘못한 게 없다?!”


“예, 제 기억이 맞다면 전 단 한 번도 절 낳아달라 아버지나 어머니께 부탁한 적이 없거든요. 전 단 한순간도 제가 원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너..... 이-!”


“-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죠. 제가 태어나 불행했다느니, 절 왜 낳았냐고 따지는 게 아니니. 전 절 낳아준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전.... 사는 게 꽤 즐겁거든요.”


벤자민이 굳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진심입니다. 전 사는 건 즐겁거든요. 정말로요. 배울 것도 많고, 맛있는 음식, 술, 사람들, 경쟁 등등.... 즐거운 것투성이입니다. 무엇보다 태어난 덕분에 누님들을 만날 수 있었잖습니다. 이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 말입니다. 그 점은 아버지와 어머니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리 불경하게 지껄인다는 말이냐?! 역시 넌 그때 죽였어야 했어...! 네가 태어났을 때 죽였어야 했다고!”


브레딕트의 말은 면도칼처럼 벤자민의 심장을 찔렀다. 하지만 이미 굳은살이 박인지라 벤자민은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자신을 저주하는 아버지의 말 따위... 그 어떠한 고통도 주지 못했다. 슬프게도 말이다.


“..... 죽어야 한다라 그 이야기도 정말 오랜만에 듣네요. 뭐,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열다섯 살이 넘어가니 지치더군요. 애도하는 것도, 자책하는 것도..... 물어보죠.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절 낳은 걸 후회하십니까?”


난생처음 해보는 벤자민의 질문에 아버지 베네딕트는 처음으로 동요를 보이며 멈칫했다. 그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사실 대답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뭐가 됐건 저 나름 대로 대답을 찾았거든요. 의외로 쉬운 문제더군요.”


“..... 그게 쉬운 문제?”


“예, 어머니께서 이상적인 어머니답게 절 원망하지 않는다면 저 역시 비생산적은 자책은 그만두고 열심히 살아가는 되는 거고, 만약, 어머니께서 절 원망하신다면.....”


벤자민은 말꼬리를 잠시 흐렸다.


“....... 그따위 여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제 인생을 살면 되는 거더군요. 사실, 어머니란 응당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베네딕트 포그곤트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마법 지팡이를 꺼내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오랜 칩거 생활과 과음으로 그의 모든 행동은 어설퍼 벤자민에게 손쉽게 제압됐다.


“너?! 너?!!”


벤자민은 빼앗은 아버지의 지팡이를 한쪽으로 던져버린 다음 아버지를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뼈와 가죽뿐인 늙은이라 저항다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벤자민이 그에게 속삭였다.


“.... 만약, 당신께서.... 당신께서 한 번이라도 제게 아버지다운 행동을 해주셨다면 저도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겠죠?”


“나, 나는....”


“오해하지는 마세요. 제가 여기 찾아온 이유는 할아버지의 유언 때문이니.... 이후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은 하지 마시고,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제 어머니만 붙잡고 사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죽으십시오.”


브레딕트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벤자민은 물러났다. 새삼 다시 본 아버지가 몹시도 왜소해 보였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고용인들이 서 있었다.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출신이라 그런지 모두 억센 팔뚝과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앞서 말했던 대로, 여러분의 일은 아버지의 시중을 드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술이 먹고 싶다고 하면 술을 드리면 되고, 식사를 하고 싶다 하시면 음식을 챙겨드리면 됩니다.... 단, 아버지를 감시하고 제게 주기적으로 아버지의 상태를 보고 하셔야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고용인들은 벤자민에게 고개 숙여 대답을 대신했다. 벤자민은 바로 이동해 아버지 방에서 좀 떨어진 방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모여있는 사촌 누님들이 보였다.


초췌한 앤드리, 걱정스러운 앤젤라, 생각에 빠진 아델라, 각오를 다진 듯한 아실리아, 뚱한 표정의 앰버, 음침한 듯한 애비, 결심한 앤, 믿음을 가진 얄리샤.


상복은 벗은 그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벤자민을 바라봤다. 벤자민은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전부 밀어내며 솔직하고 단순하게 입을 열었다.


“.... 누님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난 오늘 정식으로 가주가 되자마자 던전으로 갈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혹시 괜찮다면 누님들도 나라ㅇ-”


벤자민은 말을 하다 멈추고 말았다. 앤드리 누님을 비롯한 알리샤 누님까지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게 아닌가?


갑작스러운 그녀들의 행동에 벤자민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던 차 앤드리가 입을 열었다.


“오늘 새로운 가주가 탄생하는 기쁜 날.”


앤젤라가 말했다.

“당신은 수많은 노력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였으며.”


아델라가 말했다.


“위험한 도전을 통해 자신의 용기를 증명했으며. ”


아실리아가 말했다.


“그 도전에서 승리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셨습니다.”


앰버가 말했다.


“그뿐 아니라 가문으로 돌아와 그 열매를 자비롭게 나누셨고요.”


애비가 말했다.


“그런 당신을 전대 가주인 베넷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인정합니다.”


앤이 말했다.


“그러니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이끌고, 거둬주실 수 있겠습니까?””


얼라샤가 말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영원한 사랑과 충성을 맹세하겠나이다.”


벤자민은 그녀들의 각오에 찬 목소리와 표정을 보고 한순간 말을 하지 못했다. 꿈꾸던 순간이 눈앞에 도래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랄까?


허나, 그것도 잠시. 벤자민은 품 안에서 커다란 보석함을 꺼냈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반지가 여덟 쌍 들어있었고, 벤자민은 그것을 그녀들에게 내밀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만약 여러분이 저와 함께 해주신다면 저 역시 당신들께 영원히 사랑과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웃기지도 않은 촌극. 그러나 그들은 소리 죽여 웃더니 이윽고 크게 웃음을 터트리곤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났다. 벤자민은 여덟 개의 반지를 하나씩 그녀들의 손에 끼워주고는 같이 방 밖으로 나가 홀로 향했다.


홀에는 작은아버지들과 작은어머니가 있었으며, 그 외에도 포그곤트 가문 혹은 벤자민과 친분이 있는 마법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벤자민을 보자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알랑대는 인사를 했다.


“축하드립니다. 벤자민 씨.”

“정말 축하드립니다.”

“훌륭한 가주가 되실 겁니다.”

“벤자민 씨. 축하드립니다.”


벤자민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곤 가장 상석에 갔다. 가문의 실질적 어른인 브랜트가 전통에 따라 선언했다.


“이제 포그곤트 가문의 가주 수여식을 시작하겠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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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후기 +49 21.04.30 1,544 62 2쪽
» 86. 수여식 +20 21.04.30 1,005 48 10쪽
86 85. 할아버지와의 대화 +19 21.04.29 844 55 10쪽
85 84. 복종 +22 21.04.28 783 49 14쪽
84 83. 증명 +30 21.04.27 779 44 14쪽
83 82. 마지막 습격 +22 21.04.26 779 49 12쪽
82 81. 가족 +15 21.04.23 773 45 11쪽
81 80. 아나 아가씨 +20 21.04.22 773 50 11쪽
80 79. 일대일 인터뷰 +12 21.04.21 731 49 11쪽
79 78. 발악 +18 21.04.20 761 49 11쪽
78 77. 요동 +14 21.04.19 783 46 13쪽
77 76. 발표회 +31 21.04.16 776 52 13쪽
76 75. 티켓 +10 21.04.15 743 53 10쪽
75 74. 손님. +8 21.04.14 785 49 15쪽
74 73. 본격화 +19 21.04.13 756 56 12쪽
73 72. 펠러 공법 +21 21.04.12 778 53 12쪽
72 71. 존 앤 베넷 +28 21.04.09 794 55 13쪽
71 70. 3자 거래 +27 21.04.08 720 47 12쪽
70 69. 총독의 호출 +17 21.04.07 786 52 13쪽
69 68. 마법사 펠러 +54 21.04.06 785 55 14쪽
68 67. 협력 +18 21.04.05 769 47 14쪽
67 66. 총성 +32 21.04.02 768 49 15쪽
66 65. 그럴듯한 이유 +16 21.04.01 774 44 14쪽
65 64. 팬들 +36 21.03.31 774 50 15쪽
64 63. 변호사와 채집꾼 +22 21.03.30 766 55 13쪽
63 62. 초대 +18 21.03.29 740 52 14쪽
62 61. 파티 그리고 손님 +20 21.03.26 777 52 13쪽
61 60. 파티 참석 전 +21 21.03.25 791 49 14쪽
60 59. M&C +24 21.03.24 781 5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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