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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도시 던전3: 까마귀와 뱀들의 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21.01.25 01:00
최근연재일 :
2021.04.30 07:05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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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18,047

작성
21.04.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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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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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81. 가족

DUMMY

벤자민은 아나와 함께 사냥터가 내려다보이는 발코니로 갔다. 열댓 명은 족히 쉴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은 바람이 불어 쌀쌀했다.


“단둘이 여기 오는 게 정말 오랜만인 거 같네요. 변호사님... 보는 사람도 없으니 그냥 벤이라도 불러도 될까요?”


“편한 대로 부르시죠. 아나 아가씨.”


아나는 히죽 웃으며 발코니 난간에 몸을 기댔다.


“여기 처음 온 게 그리 오래 전도 아닌 것 같은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동의하시나요.”


“예, 동의합니다. 아나 아가씨가 요하네스 재무관님의 조카분이라는 걸 듣고 매우 놀랐지요.”


“아! 저도 기억나요. 변호사님이 놀란 표정 꽤 재밌었죠.”


“전 별로 재밌지 않네요. 놀라는 것에는 취향이 없어 가지고.”


“어머 전 재밌었는데, 여하튼 제겐 좋은 추억이었어요.”


말괄량이 아가씨처럼 웃는 아나를 보며, 벤자민은 히죽 웃었다.


“저도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에게 먼저 친구 제안을 받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혹시 친구는 사귀셨습니까?”


아나가 손가락을 턱에 대며 갸웃댔다.


“글쎄요?.... 벤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흠.... 아나 아가씨는 미인이시고, 똑똑하고, 매력적이니 생겼을 것 같은데요?”


아나가 꺄하하 웃었다.


“갑자기 너무 아부하시니 낯간지럽네요.”


“이런 들켰습니까?”


아나가 다시 한번 웃었다.


“정말 못되셨네요...! 그래도 대답하자면. 예, 친구를 꽤 사귀었답니다. 사교모임에 좀 나가니 다들 아는 채 해주더군요. 하긴,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전 물려받은 재산도 꽤 있고, 든든한 삼촌도 있으니까요. 어찌 보면 당연하지요..... 조금 재수 없었나요?”


“아뇨. 당당해서 보기 좋습니다. 진심으로요.”


“신기하네요. 제가 이리 말하면 다들 인상을 찌푸리던데. 최소한 제 고향에서는요.”


“가난이 죄가 아닌 것처럼, 부유한 것도 죄가 아니죠. 그저 어찌 행동하느냐가 중요하지. 전 당신의 당당함이 좋습니다.”


아나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정말.... 벤자민 씨랑 대화하면 답답하지 않고 명확해서 좋네요.”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재수 없다고 욕먹고 살았는데, 마음에 들어해 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혹시 친구분들은 어떤 분들을 사귀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을 쉬었다.


“별거 없어요. 어느 의원 혹은 사업가의 따님, 조카 등등... 아! 귀부인들과도 친해졌어요. 조금 통통한 분인데, 꽤 부유해 보이는 분이더라고요.”


“그렇습니까?”


“예, 아주 살갑게 굴어서 고마운데, 아무래도 자기 아들과 저를 연결해 주려는 것 같아요. 길더스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벤자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외국인 출신이긴 했지만, 막대한 재산과 국방성 재무관 요하네스라는 뒷배가 있으니 아내로 삼기 최적의 조건이긴 했다. 본인 자체가 아름답기도 했고.


벤자민이 물었다.


“어찌 대답하셨습니까?”


“여느 부잣집 아가씨처럼 삼촌에게 여쭤봐야 한다고 슬며시 뺐죠. 제가 쑥스러움이 많다고 말이죠.”


벤자민은 그래서 요하네스가 저번에 그런 질문을 했는가 싶었다.


“거절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꼬마 숙녀처럼 등 뒤로 두 손을 깍지 끼더니 빙그르르 제자리에서 돌기 시작했다.


“혹시 말하기 곤란하신 거면 굳이 무리해 대답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벤.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솔직히 말하기 약간 창피하달까요. 바보처럼 보이기 싫거든요.”


벤자민은 친구로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자세를 가다듬고 진지하게 말했다.


“아나 아가씨께서 무슨 말을 할지 모르지만, 절대 비웃지 않을 겁니다. 사람이란 각자의 생각이 있는 거고, 특히, 전 그런 문제로 누굴 놀릴 입장이 아니거든요.”


설득이 먹힌 것인지. 아나가 입을 열었다.


“전 서로의 배경을 보고 이리 재고 저리 재서 만나는 걸 별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보다는 뭐랄까? 좀 더 로맨틱한 만남을 원해요.”


벤자민이 잠시 침묵하자, 아나가 손을 흔들며 말을 덧붙였다.


“오해는 하지 말아요. 그게 나쁘다고 비난하는 건 아니니. 다만, 길더스에서부터 그런 일을 겪어서인지 좀 색다른 것을 원하긴 해요.... 이상한가요?”


벤자민이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해주시는 건가요?”


“예, 당연히요. 오히려 묻고 싶군요. 왜 제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아나가 한숨을 쉬었다.


“하긴, 벤자민 씨에게는 그럴 수 있겠네요.... 전 어릴 적부터 결혼은 현실이라고 지겹게 들었거든요.”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이라는 말을 안 듣기 위해 노력을 했죠. 능력만 입증하면 어떤 헛소리를 지껄여도 되거든요.”


“아.... 그렇겠군요. 당신답기는 하네요. 그래서 원하는 바를 이루셨나요?”


아나의 질문에 벤자민은 얼 마전 앤드리 누님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 원하는 걸 전부 얻을 수는 없더군요.”


“그래요?”


“예.... 인생이란 게 생각대로 안 되더군요.”


“슬프겠군요.”


“예, 하지만, 그게 세상 사는 묘미 아니겠습니까? 혹시 그 질문을 하려고 절 따라 부르신 것인지?”


“아뇨, 그건 아니에요. 두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


“두 가지요?”


“예, 일단 첫 번째는 그 마법 회사라는데 저도 투자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가능한가요?”


“마법 회사... 말씀입니까?”


“예, 혹시 문제 있나요?”


벤자민이 고개를 갸웃댔다.


“아뇨.... 문제는 없습니다.”


“그럼, 투자하고 싶네요. 재산이 많다고 그저 가지고만 있으면 안 되는 법 아니겠어요? 이리저리 굴러 불려야지.”


“저로서는 반가운 이야기네요. 이리 절 믿어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미안하지만, 그저 아는 사람이라고 투자할 만큼 저도 어리숙하지는 않답니다. 변호사님.... 저 역시 보고 판단하는 게 있어 이런 결정을 내린 거예요. 삼촌의 의견도 들은 게 있고요.”


“그럼, 더더욱 고마운 말씀이군요. 제 비전을 믿어주신다는 거니.... 두 번째 질문이 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아나가 야릇한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이건 답이 정해진 질문이나 다름없는데,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하는 질문이에요. 그러니 편히 대답해 주세요.”


“호... 뭐죠?”


“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벤자민이 침묵했다.


“............ 예?”


“여자가 용기 내서 묻는 거니 바보인척해서 빠져나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상처받거든요.”


“..... 혹시 요하네스 재무관님께서-”


“-아뇨. 이건 순전히 제 의지로 묻는 거예요. 삼촌께선 제게 이런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닐뿐더러, 저 역시 순순히 이런 일을 따르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다시 한번 창피함을 무릅쓰고 물어볼게요. 절 어떻게 생각하시죠?”


벤자민은 32년 동안 살며 한 번도 처해본 적 없는 상황이기에 어찌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혹여 실수해 요하네스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게 아닐지 걱정도 됐고.... 하지만 그러한 걱정은 아나 아가씨의 각오에 찬 눈을 보자 이내 잠잠해졌다.


“.... 솔직히 말씀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물론이에요. 전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함을 원하거든요.”


“아나 아가씨는... 거짓말을 안 보태고 제가 32년 동안 만난 사람 중 열 손가락에 들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아름다우시고, 지적이며, 유머도 있죠. 부유하고, 높으신 삼촌도 두고 계시고요. 하지만...”


“하지만이라... 여기서부터 본론이겠군요.”


“.... 하지만 전 아나 아가씨를 친구로서 좋아할 수 있어도 여자로서는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오해는 마시죠. 아나 아가씨 때문이 아니니. 문제는 오히려 제게 있죠.”


“사촌분들 때문인가요.”


“예.... 전 태어나자마자 그녀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녀들 역시 절 사랑해줬고요. 그 원인이 무엇이건, 그 과정이 어찌 됐건, 전 그녀들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 예상한 답변이긴 하지만, 막상 또 들으니 느낌이 이상하군요.”


“많이 이상했나요?”


“기분 나쁜 쪽으로 이상한 건 아니에요. 그저 현실성이 없는 느낌이죠. 이런 남자도 있나 싶어서 말이에요.... 만약, 저와 당신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면 이야기는 달랐을까요?”


“아마, 그럼 전 지금의 제가 아니겠죠. 던전에 간 것도, 황실 변호사가 된 것도, 지금 이런 일을 한 것도 전부 누님들 때문이니까요.”


아나는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작게 웃기 시작했다.


“그거 명답이네요.... 예, 당신 뜻 잘 았았아요. 그래도 우리 둘 좋은 친구로는 지낼 수는 있겠죠?”


“물론입니다. 그럼, 영광이지요.”


아나가 파티장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그럼 됐어요. 그냥 개운해지고 싶어 말한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벤자민.”



***



아나 아가씨와 짧고도 긴 대화를 나누고 벤자민은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앤드리 누님과 그녀의 남편 몰딘이 온 게 보였는데, 벤자민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곧바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오셨습니까? 누님. 매형.”


“베니.”


“......”


몰딘은 눈썹을 움찔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매형이란 단어에 놀란 것인가 싶었다. 하긴 여태까지 선배라고만 불렀으니.


벤자민은 내키진 않았지만, 앤드리 누님의 얼굴을 봐서 몰딘에게 더욱 살갑게 말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매형.”


“그래.... 환영해줘서 고맙네.”


뭔가 이상했다. 목소리가 묘하게 경직되고, 표정 역시 굳어있었다. 그런 벤자민의 생각이 들킨 건지 몰딘은 변명하듯 서둘러 말했다.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조금 긴장해서 그렇다네....”


“아.... 너무 긴장하지 마시죠. 반은 친목 목적이고, 나머지 반은 뛰어난 마법사와 연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이니. 폴켓 가문의 이름은 이미 유명하니 매형께서 원하신다면 좋은 투자자를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벤자민은 까칠한 대답을 한번 들을 각오로 한 말이었는데, 몰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감사 인사를 했다.


“그래, 고맙군.”


벤자민은 몰딘 선배의 온화한 태도에 약간 어안이벙벙했다. 누님하고 화해하고, 오고 싶다 하더니....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정말 심경에 무슨 변화가 온 게 아닌가 싶었다.


벤자민은 속으로 안도했다. 누님이 몰딘 선배와 화해해 다시 살려고 했다면 차라리 이게 나았으니.


그렇게 감상에 빠졌을 때 몰딘 선배가 내게 물었다.


“.... 무슨 할 말 있나?”


“아뇨.... 그저 앞으로 잘 부탁드리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제 가족이니까요.”


“그래, 그러지..... 우린 가족이지.”


작가의말

이제 금요일입니다. 모두 하루 잘 보내시고,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수달수 님. 응원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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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6. 수여식 +20 21.04.30 1,004 48 10쪽
86 85. 할아버지와의 대화 +19 21.04.29 844 55 10쪽
85 84. 복종 +22 21.04.28 783 49 14쪽
84 83. 증명 +30 21.04.27 779 44 14쪽
83 82. 마지막 습격 +22 21.04.26 779 49 12쪽
» 81. 가족 +15 21.04.23 773 45 11쪽
81 80. 아나 아가씨 +20 21.04.22 773 50 11쪽
80 79. 일대일 인터뷰 +12 21.04.21 731 49 11쪽
79 78. 발악 +18 21.04.20 761 49 11쪽
78 77. 요동 +14 21.04.19 783 46 13쪽
77 76. 발표회 +31 21.04.16 776 52 13쪽
76 75. 티켓 +10 21.04.15 743 53 10쪽
75 74. 손님. +8 21.04.14 785 49 15쪽
74 73. 본격화 +19 21.04.13 756 56 12쪽
73 72. 펠러 공법 +21 21.04.12 778 53 12쪽
72 71. 존 앤 베넷 +28 21.04.09 794 55 13쪽
71 70. 3자 거래 +27 21.04.08 720 47 12쪽
70 69. 총독의 호출 +17 21.04.07 786 52 13쪽
69 68. 마법사 펠러 +54 21.04.06 785 55 14쪽
68 67. 협력 +18 21.04.05 769 47 14쪽
67 66. 총성 +32 21.04.02 768 49 15쪽
66 65. 그럴듯한 이유 +16 21.04.01 774 44 14쪽
65 64. 팬들 +36 21.03.31 774 50 15쪽
64 63. 변호사와 채집꾼 +22 21.03.30 766 55 13쪽
63 62. 초대 +18 21.03.29 740 52 14쪽
62 61. 파티 그리고 손님 +20 21.03.26 777 52 13쪽
61 60. 파티 참석 전 +21 21.03.25 791 49 14쪽
60 59. M&C +24 21.03.24 781 5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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