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실수
41. 실수
장물아비는 크게 미소 지었다.
애송이와 생각지도 못한 큰 거래를 하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얼마나 돈이 급한 건지 원래 가격에 이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에 물건을 넘겼는데, 사실 사정 따윈 자신에게 중요하지 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 와중에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오게 되는 이문뿐.
장물아비는 몸을 숙여 카운터 아래 금고에서 대량의 현금다발을 꺼냈다. 이 정도 되는 현금을 꺼냈으니 오늘 장사는 접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즐겁기만 즐거웠다.
애송이에게 받은 물건을 처분하면 이따위 작은 금고 따위 단숨에 채울 수 있을 테니.
장물아비는 그토록 걱정거리였던, 아들 결혼식 비용과 노후 자금을 한 번에 해결하게 된 것이었다.
장물아비는 다량의 현금다발을 철장 넘어 애송이에게 넘겨주었다. 애송이는 돈다발을 세지도 않고 가방에 욱여넣었는데,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급해 보였다. 설마, 훔친 것일까? 이 바닥에서 20년 동안 장물을 취급한 자신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애송이가 돈을 다 챙겨 떠나려고 하자, 장물아비는 인사했다.
“고맙네. 다음에도 또 거래했으면 좋겠군. 루카스.”
허나, 무례하게도 애송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장물아비는 그러려니 하며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하였다. 아주 운 좋은 날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루카스는 왼쪽 옆구리에 돈다발이 든 가방을 꽉 끼고 골목 사이를 뛰어갔다. 저번에 데이브에게 받은 원석을 이렇게 쓸 줄이야.
혹시 모를 강도나 도둑에게 대비해 오른손에 트렌치 나이프를 끼고 품 안에 숨겼다. 방금 전 자신이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저도 모르게 계산했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떨쳐버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고, 당장 얼마나 손해를 보건 돈이 필요했다. 친구들을 설득할 돈 말이다.
한 거지 소년이 루카스의 앞을 막았다. 루카스는 발로 걷어차지 않는 대신 그 옆을 돌아갔는데, 그때, 다른 거지 소년이 쥐새끼처럼 다가와 루카스의 가방을 노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쥐새끼 같은 것들!’ 발끈한 루카스는 품 안에서 나이프를 꺼내 폼멜(칼자루 끝부분) 부분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긴장과 두려움이 터진 것이었다.
앞을 가로막던 거지 소년은 저 멀리 도망쳤고, 건물 사이에서 지켜보던 거지들도 루카스의 사나운 얼굴과 흉악한 트렌치 나이프를 보고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루카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런 쓰레기들을 구하려는 데이브의 행동을...... 그리고 그런 데이브를 돕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길!” 스스로의 모순에 루카스는 짜증을 느끼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부디 자신의 도박이 성공하기를.
저녁 시간. 성문은 닫히지 않았고, 루카스는 성벽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 후드로 얼굴을 가렸다. 루카스는 눈에 띄지 않는 곳을 골라 몸을 숨기고 약속 시각인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밤이 되었으며, 루카스는 약속 장소인 버려진 폐건물에 도착했다.
진흙타운 구석에 있는 이 폐건물은 역병 걸린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며 아무도 오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건달, 양아치들이 모이는 아지트로 전락하게 되었다.
루카스는 여기서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났는지 기억났다. 잔인하고, 무식하며, 우정보다는 잇속에 관심이 많은 놈들이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 가장 필요한 녀석들이었다.
싸구려 횃불이 여러 개 켜진 폐건물 안에는 서른 명가량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청부 폭력, 강도, 도둑질, 빈집털이, 청부 강간, 살인 등등 하루하루 범죄로 먹고사는 녀석들뿐이었다. 돈만 준다면 가족도 팔 악당들.
루카스는 그런 악당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끝이라는 것을 깨닫고 애써 강한 척 당당히 모습을 내비쳤다.
건물 안에 루카스가 들어오자 마뜩잖아 하는 눈빛이 번뜩였다. 그도 그럴 게 루카스는 이쪽 바닥에서 손 떼고 채집꾼이 되었으니까. 상당수가 속으로 루카스를 겁쟁이에 배신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만약, 루카스 역시 약해졌다고 생각하면 이들은 자신이 데이브에게 했듯이 자신을 때려눕히고, 돈을 빼앗아 갈 게 뻔하였다.
루카스는 새삼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존재였는지 깨달았다.
“왜 너 혼자뿐이지? 난 분명 데이브를 데리고 오는 건 줄 알았는데.” 한 녀석이 말해다. 놈은 두꺼비의 의뢰를 받아 데이브를 넘기라고 루카스에게 처음 제안한 녀석이었다.
루카스는 그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그들 틈으로 들어가 먼지가 쌓인 탁자 위에 가방을 쿵 하고 떨어뜨렸다. 소음이 울리고, 먼지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모두가 집중하자 루카스는 단숨에 기선을 잡을 요량으로 거칠게 운을 뗐다.
“모두 닥쳐.”
루카스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금 자신의 상황을 아는 이가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하루도 채 안 지났으니.
“시간 아까우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나랑 같이 일하자. 너희 모두 다.”
루카스가 강하게 나가자 예상했던 대로 모두 주춤했다. 하긴, 주먹만큼은 루카스가 여기 있는 이들 중 가장 강했으니. 실제로 몇몇 때려눕힌 전적도 있었으며, 일도 여러 번 협업해 실력을 입증해 보였다. 그러니 자신을 쉬이 보지는 못할 터. 루카스는 용기를 얻었다.
“다짜고짜 사람 불러놓고선 무슨 소리야? 같이 일하자니? 그보다 데이브는 어디 있는 거지? 잡으러 가자는 거야?”
루카스는 이런 놈들을 상대로 설명하는 것 보다, 보여주는 게 낫다는 걸 알기에 말하는 대신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탁자 위에 쏟아냈다.
후두둑하고 지폐 다발이 탁자 위에 작은 산을 이뤘다.
돈에 민감한 놈들이다 보니 모두 놀라고 말았다. 이곳에서는 평생 못 볼 거금이 두 눈앞에 나타났으니 그럴만했다. 루카스의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정말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그 원주민 잡종에게 넘겨줄 생각이야?”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가 움찔거렸다.
“잠깐. 그럼, 정말 광산이라도 발견했다는 거야? 난 또 옛날 동화인 줄 알았는데.”
루카스는 놈들이 잔대가리 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몰아붙였다.
“일일이 설명해줄 시간 없어. 확실한 건 내가 엄청난 사업을 발견했다는 것뿐이지. 그런데 웬 도둑놈이 내 사업을 넘보고 있어. 제안할 게. 날 도와주면 너희 모두 부자로 만들어 줄게. 이 돈은 푼돈으로 보일 만큼.”
차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나,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는 생각에 루카스는 막 질러댔다. 일단 두꺼비부터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급작스러운 제안에 모두 머뭇거리면서도 상당수가 돈다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룻밤 술값을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녀석들이니. 조금만 몰아붙이면 될 것 같았다.
“평생 남들 시키는 하수인으로 살다 인생 끝낼 거야? 지금 바로 기회가 왔어!”
‘좀 넘어와라, 머저리들아!’ 루카스가 속으로 빌었다.
그때 반응이 왔다.
“설마 두꺼비를 치자는 거야?”
“물론!” 루카스가 단번에 대답했다.
진흙타운을 지배하며, 최근 거지 마을까지 세력을 확장한 그는 이곳에 살며 거슬려서는 안 되는 거물이었다. 그의 잔인함은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
“뭘 겁먹고 있어. 그런 잡종에게! 설마 다들 그런 잡종 밑에서 푼돈이나 받으며 개처럼 살 생각이야? 알아, 놈이 꽤나 많은 부하를 거느린 건. 하지만 우리도 다 합치면 수가 제법 되고, 놈의 조직 전체를 다 상대할 필요도 없어! 놈만 잡으면 돼! 그럼,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루카스의 말에 모두 소근 댔다. 필히, 고민스러울 터였다. 두꺼비와 싸우는 것은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한 일이지만, 동시에 더 없는 기회이기도 했다.
두꺼비만 잡는다면 여기 있는 이들이 진흙타운의 주인이 될 테니, 심지어 엄청난 돈벌이와 함께.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이만큼의 기회를 찾기란 앞으로 평생 없을 터였다.
누군가 질문했다.
“정확히 두당 얼마씩 떨어지는 거지?”
“구체적인 액수는 없어. 다만 너희들 욕심이 채워질 만큼 엄청난 돈을 벌 거라는 건 약속하지. 모두 부자가 되는 거야.” 루카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잠시 동안 침묵이 일더니, 한 녀석이 자신은 참가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그리고 뒤이어 다른 녀석도 뜻을 밝혔다. 하나 둘 늘던 게, 가속도가 붙더니. 이윽고 모두 손을 들었다.
전원 루카스와 뜻을 같이하기로 한 거였다.
루카스가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드디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생긴 거였다.
루카스는 흡사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이라도 되듯이 모두에게 소리쳐 말했다.
“이 돈은 계약금이라고 생각하고 너희가 가져! 내 약속하는데, 이 일만 성공하면 나가 너희 모두를-”
안타깝게도 루카스는 생애 첫 연설을 끝마치지 못했다. 친구들 중 하나가 몽둥이로 뒤통수를 후려친 것인데, 덕분에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루카스의 육체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고 말았으며, 그의 친구들은 루카스가 가져온 돈을 나누며, 루카스를 포박해 두꺼비에게 넘길 준비를 하였다.
- 작가의말
얼핏 보면 바보같은 모습일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 익숙한 결정을 하는 것 같아 이런 연출을 해보았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시길.
참고로 ‘도시 던전’은 뒤통수와 칼빵에 너도나도 한방인 평등한 선진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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