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유언
36. 유언
데이브와 루카스가 펠러의 굴에 다다르렀을 때, 루카스가 불편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데이브....... 어머니 때문에.”
“뭐가, 죄송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 돕고 싶다는 건데.”
“그 돈은........”
“당장 쓸데도 없었어. 일단 모아둔 거지. 펠러 님에게 필요한 음식은 다 샀고, 혹시 필요할 때를 대비해 모아둔 거야. 그러니까. 계속 마음 쓰지 마. 난 괜찮으니까.”
허나, 루카스의 마음은 더욱 불편해졌다. 데이브의 저런 모습을 보면 볼수록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어려웠기 때문인데, 선택은 단둘뿐이었다.
데이브를 두꺼비에게 팔아 목숨을 부지하던가, 거부해 자신은 물론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위험에 빠뜨리던가.
루카스는 머리가 쪼개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데이브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루카스에게 물었다.
“괜찮은 거야? 안색이 안 좋은데.”
“괜찮습니다. 아직 일이 안 익숙해........” 루카스가 그렇게 얼버무렸다.
데이브가 굴 아래로 내려왔다. 얼핏 봐서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무엇인가 달랐다.
다름 아닌 너무 조용한 것인데, 언제나 소리치며 맞이해주시던 펠러가 보이지 않았다.
“펠러? 펠러 님!!” 데이브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그를 찾았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자, 데이브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디 가신 걸까? 산책이라도 나가신 걸까? 하나, 펠러는 산책 따위 나간 적이 없었다.
굴 안은 평소보다 더 어둑적적했으며, 불길하기까지 하였다.
불안감으로 인해 데이브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펠러를 찾아 소리쳤다.
루카스도 데이브를 도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데이브! 여기!”
데이브가 서둘러 뛰어가자 쓰러진 펠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가슴을 부여잡은 채 엎드려 있었다.
“펠러 님! 펠러!”
루카스가 어찌할 바를 몰라 멀찍이 서서 바라볼 때, 데이브는 재빨리 달려가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도 창백했으며, 숨도 미약했다. 하지만 살아있다!
데이브는 간신히 이성을 붙들며 루카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루카스는 잠시 어버버 거리다가 데이브의 고함소리를 듣고 다시 움직였다.
“일단, 침대로! 조심히!”
데이브의 호통에 루카스는 퍼뜩 정신을 차리곤 억센 팔로 펠러를 들어 올려 그를 침실까지 옮겼다. 너무나 가볍게 들려 목각인형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순간, 데이브는 저번에 펠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것을 눈치챈 거였다.
데이브의 눈에 순간 펠러와 프랭크가 겹쳐 보이더니, 심장이 빠르게 뛰며,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젠장! 너무 겁났다.
그때, 펠러를 눕힌 루카스가 데이브의 어깨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해줬다.
“정신 차리세요! 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제 뭘 해야 하죠?”
그 순간 데이브는 자신에게 욕을 했다. 또, 바보처럼 굴다가 보낼 생각이냐고 쏘아붙였다.
데이브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을 뒤적거렸다.
“....어어, 일단, 깨끗한 천이랑 물을 가져와.......... 그리고 주전자에 물을 담아 끓이고! 어서 움직여!”
데이브의 재촉에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움직였으며, 데이브 역시 그 못지않게 서둘러 움직였다.
데이브는 그가 숨쉬기 편하게 자세를 고쳐주고, 대야에 물을 담아와 흙투성이인 펠러의 피부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얼굴, 손, 발 등을 먼저 닦아주었는데, 물수건에 묻은 때를 보고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굴 안에서 지냈는지 새삼 실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굴에서 지냈으니, 어쩌면 지금 같은 상황은 당연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데이브는 진즉에 눈치채고 뭐라도 제안해 볼 거라고 후회하였다.
몸도 닦기 위해 옷을 벗기자 갈비뼈가 드러난 몸뚱이와 시커멓게 물든 가슴이 보였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검게 물든 가슴이 힘겹게 오르락내리락하였다.
“맙소사.........” 데이브가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펠러의 몸 상태가 이 정도로 나쁠 줄은 감히 상상조차 못 했다. 그의 지혜로운 모습에 가려져 그가 노인인 걸 망각하고 말았다.
데이브는 프랭크에게서 느꼈던 무력감을 다시 한번 맛보았다. 곁에 있음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펠러가 기침을 했고, 탁한 피를 토했다.
“펠러! 펠러!” 데이브가 외쳤다.
“....................... 펠러 님이라고 불러. 지렁이 놈아.” 펠러가 힘겹게 말했다.
그가 아직 강한 척할 기운이 있다는 사실에 데이브는 한순간 안도했다.
“이 정도로 몸이 안 좋으셨으면 말씀을-”
“-닥쳐!” 펠러가 분노에 차 소리쳤다.
“날 그따위로 바라보지 마....... 난 네깟 놈 걱정이나 받을 만큼 나약하지 않아.... 그러니 날 동정하듯 바라보지 마.... 모욕적이야.”
데이브는 펠러의 자존심을 위해 촉촉해진 눈을 닦아냈다. 펠러는 그런 데이브를 보며 힘없이 한숨을 쉬었다.
데이브는 펠러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주제넘게 입을 열지 않았는데, 그 침묵 사이 루카스가 따뜻하게 데운 주전자를 들어왔다.
데이브는 그 물을 수저로 떠 조금씩 마실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그마저도 힘든지 펠러는 기침을 하며 몸을 들썩거렸다.
“데이브.........” 그가 힘겹게 말했다.
“예, 말씀하시지요.”
“저 건달 녀석 좀 치워....... 거슬려. 엄청.”
이 순간에도 성질대로 고집을 피우는 펠러를 보며 데이브는 걱정과 기쁨을 교차로 느꼈다.
루카스는 다행히 별다른 불쾌함 없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나가버렸는데, 손짓으로 필요하면 불러달라고 말하였다. 데이브는 이런 배려를 고맙게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브와 펠러만 남게 되자 다시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들리는 거라고는 펠러의 거친 숨소리뿐으로, 그는 숨 쉬는 것마저도 힘겨워 보였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데이브.........”
“예. 펠러 님, 여기 있습니다.”
데이브가 눈알을 슬쩍 움직여 데이브를 한번 봤다.
“........ 참 기이하군. 너 말이야....... 내가 죽기 전에 여기 오다니. 그때도 그랬지.......”
데이브는 펠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도 그랬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나와 처음 만나려던 날 기억하나?”
데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억나고말고요. 죽을 뻔한 절 살려주셨죠.”
펠러가 잠시 뜸을 들였다.
“.............. 정확히는 그 반대야. 네가 날 살려줬거든.”
“예?” 데이브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자 펠러가 다시 확인 시켜 주었다.
“네가 날 살려줬다고...... 그날 난 자살하려고 했거든.”
데이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강인한 남자가 자살하려고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데이브는 쥐어짜듯 간신히 한 마디 물었다.
“............. 어째서?”
그 질문에 펠러가 피식 웃었다. 그러자 기침도 올라왔다.
“.... 어째서라........ 답하기 어렵군. 사람은 저도 모르는 이유 때문에 자살하기도 하는 법이라................ 길을 잃어서라고 해두지.”
“길을 잃었다니...... 전 무식한 놈이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쉽게 설명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게.......”
펠러가 그 말을 듣고 같잖다는 듯 웃었다.
“그 누구도 도울 수 없어. 오직 나의 문제거든. 이거 때문에 난 모든 걸 다 버렸어.............그러고 보니, 난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없구만?”
“.........예.” 데이브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좀 들어주겠나?”
펠러가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이라이트 부분이라 5분뒤 한편 더 나옵니다.
즐겁게 읽어주십시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