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채집꾼과 위대한 마법사
00. 채집꾼과 위대한 마법사
한 남자가 진흙 골렘에 둘러싸여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데이브’. ‘도시 던전’의 성벽 밖 ‘진흙타운’에서 살고 있었다.
‘데이브’의 삶은 비교적 평범했다. 진흙타운 태생답게 어린 나이 부모를 여의고, 안면이 있는 집에 들어가 그곳의 예비 데릴사위로 얹혀살았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그는 여느 진흙타운의 젊은이들처럼, ‘채집꾼’으로 위험한 미지의 땅에 들어가 벌레와 약초, 모험가들이 버린 부산물을 개미처럼 주워 적게나마 돈을 벌었다.
물론, 그 얼마 안 되는 돈은 예비 장인인 ‘이반’에게 전부 뺏겼지만 말이다.
허나, 데이브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푼돈을 벌어온다고 자신을 무시하고 괄시하는 이반의 아내와 아들, 사촌, 조카 심지어 약혼녀인 ‘레이첼’도 원망하지 않았다.
왜? 데이브는 그런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데이브는 무시와 괄시를 당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감사했다. 어릴 적 갈 곳 없는 자신을 받아줬으니까. 또, 조금만 더 있으면 레이첼과 정식으로 혼례를 올려 진짜 가족이 될 터였으니까. 그렇기에 데이브는 그런 사소한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부모를 일찍 잃은 그는 누구보다 가족을 원하였으니까.
가난과 질병, 범죄가 만연한 진흙타운은 비참한 곳이었다.
‘던전’의 어느 빈민가보다도 두, 세 단계 처참한 그 끔찍한 곳은 아이와 노인조차 보호를 받지 못했으며, 음식과 약이 늘 부족해 고통과 생존의 위협에 노출됐었다.
‘인사이더(성벽 안 사람을 지칭)’들은 늘 자신들(아웃사이더)을 두발 달린 쥐새끼처럼 취급하였데, 그럼에도 데이브는 진짜 가족이 생겨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허나, 아무래도 그 말은 거짓말인 듯싶었다.
지금 데이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진흙 골렘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십여 기가 족히 넘을 거 같았는데, 그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혀와 데이브를 붙잡으려고 했다.
근래 돈 들어갈 곳이 많아 평소답지 않게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었다.
더 많은 약초를 캐기 위해 데이브는 익숙한 곳을 벗어나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으로 발을 디뎠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움직였으나, 어느새 방향감각을 상실하였으며, 이윽고 불길한 안개를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같이 진흙 골렘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데이브는 공포에 휩싸였다.
진흙 골렘 하나가 자신의 다리를 붙잡은 것이다. 흐느적거리는 진흙 인형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데이브를 붙들어 맺고, 이어 다른 골렘도 가세해 데이브의 육체를 구속했다.
그리고 다른 골렘이 달라붙었고, 또 다른 골렘이 달라붙었다.
그들은 하나의 진흙 덩어리가 되어 데이브의 몸을 감싼 다음, 데이브의 숨구멍을 막으려고 하였다.
진흙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데이브의 얼굴 쪽을 향해 기어 올라왔다.
데이브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브는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아무나 자기 좀 도와달라고.
허나, 잔혹하게도 또,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이 있을 뿐. 그 기괴한 침묵에 데이브는 죽음을 마주한 진정한 공포를 느꼈다.
도대체 누가 골렘을 여기 놔뒀고, 또 누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인가?
자신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말이다.
진흙이 얼굴까지 올라와 코와 입을 막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려던 그 순간 기적처럼 진흙이 멈추더니, 데이브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진흙 골렘들은 데이브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어딘가로 데이브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굴 앞이었는데, 입구에 도착하자 데이브를 짐짝처럼 던져버렸다.
굴은 생각보다 깊었다. 비탈길을 따라 데이브는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얼마나 굴렀는지 세상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억지로 일어나 내 주변을 살펴보았다.
굴 안에는 놀랍게도 주거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탁자와 의자는 기본이고, 천장에는 조악하게나마 가공석 등잔이 걸려있었다. 그 외에 다량의 책이 꽂힌 책장과 이상하게 생긴 기계 등이 있었는데, 특히 기계는 정체를 알 수 없을뿐더러 무엇인가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어 시선을 잡아당겼다.
데이브는 한순간 자신이 지옥에 온 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이곳은 천국 같아 보이지 않으니까. 그 순간 한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느님은 페니(동전)를 싫어하시고, 듀로(지폐)를 좋아하십니다. 형제 여러분.’
결국 자신이 벌을 받은 거라고 데이브는 생각했다. 그때, 어둠 사이에서 한 삐쩍 마른 노인네가 나타났다.
노인은 과거에는 훌륭했을 법한 낡은 옷을 걸쳤으며, 윗머리는 벗겨졌고, 흙먼지가 묻은 잿빛 수염을 지저분하게 길렀다.
피부는 어둠에 침식된 듯 탁했는데, 특히,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눈은 이상한 기운이 서려 있어 보는 사람을 절로 움츠러들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마디로 정신이 반쯤 나간 노인처럼 보였다.
정신 나간 노인이 말했다.
“누가 감히 내 땅에 허락 없이 발을 디디느냐.”
요란하고 이상한 말투. 위엄을 갖추려고 한 거 같기는 했지만, 목이 너무 잠긴 탓에 오히려 우스꽝스러웠다. 허나, 그럼에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내뿜었다.
데이브는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 당신은 누구시죠?”
그러자 정신 나간 노인이 목도리도마뱀처럼 팔을 벌리며 대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
이게, ‘데이브’와 ‘펠러’가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그리고 ‘진흙가재’의 시작이었다.
-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노란커피 입니다.
서둘러 쓰다 보니 당초 말씀 드린 것 보다 일찍 찾아뵙습니다.(칭찬해 주셔도 됩니다.)
일단, 벤자민 이야기로 찾아오지 못해 실망하긴 분들에게 사과의 말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전체적 이야기를 위해 새로운 주인공을 먼저 등장 시켰습니다.
(대신, ‘진흙가재’ 다음에는 벤자민의 이야기가 진행될 겁니다.)
진흙가재의 주인공은 채집꾼 데이브로 어떤 의미로는 벤자민과 반대편에 있는 인물입니다. 물론, 갈등을 빚을 수도, 협력할 수도 있지만요.
읽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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