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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novel


[시] 자화상

자화상

 

1

뉴스에서 한미 FTA 반대 시위 현장을 생중계해준다

카메라가 손에 촛불을 든 내 또래의 고등학생들을 비추고

나는 옆에 있던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덥진 않지만 불편한 옷을 벗어 버리고

팬티 한 장이 남았다

이른 계절에 나온 선풍기가 발치에서

끼익, 끼익, 덜 깬 잠을 떨치고

그 때마다 팬티 안이 선선하다

채널을 돌리려는데 문자 한 통이 온다

학생들은 불법 집회에 참여하지 말고 학업에 집중할 것을 당부합니다.

똥이 마렵다

 

변기에 앉자마자 모기가 엉덩이에 붙었다

화장실 벽은 사방이 손만 뻗으면 닿기에 도망갈 곳은 없다

퇴화된 꼬리를 흔들기 위해 힘을 주자

모기가 천장으로 도망쳤다

모기 소리는 이제 어느 쪽에서 들리는 지도 모르겠고

똥이 나오지 않아 일어설 수가 없다

 

2

이 나라의 비겁한 시인들은 왜 하나 같이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나

한 밤 중에 벌레들이 기어 나오고

잠결이었지만 꿈틀거렸다.

육첩 방은 내 나라,

퇴화되다 만 꼬리뼈가

다 쓴 연필처럼 뭉뚝하게 튀어 나왔다

어미를 찾아본다


- 월간 시와 표현 2016년 9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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