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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꾼의 서재입니다.

이계의 몬스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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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꾼
작품등록일 :
2020.05.17 02:24
최근연재일 :
2021.01.1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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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8.2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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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새로운 준비

DUMMY

예륨의 수도.


루비아는 긴장한 채 우뚝 서 있었다.


붉은 융단으로 이루어진 황궁의 대전 한가운데, 사자의 군단이 그녀의 뒤에서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루비아 또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무릎을 꿇으려는 찰나.


“예법은 생략해도 좋소. 그대는 레시아의 뜻에 선택받은 성녀.”


루비아는 멈칫 놀라며 무릎 꿇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보았다.


수백의 가신들과 그사이에 이어진 단상 위를


거친 백발과 주름진 각진 얼굴.

근육질의 단련된 몸을 가진 노인이 옥좌에 앉아 있었다.


황금으로 된 황관을 쓰고, 온갖 값비싼 장신구를 착용한 예륨의 황제.


`카심 바하르.`


카심 황제는 루비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루비아에게 다가가 양손을 펼쳐 말한다.


“예륨에 온 것을 환영하오. 아르티오의 여왕이자, 레시아의 선택받은 성녀여.”


루비아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다름 아닌 예륨의 황제다.


아르티오가 작은 나라는 아니지만, 예륨과 비교한다면 소왕국에 불과했다.


한데, 예륨의 황제가 직접 일어나 반겨주다니?


“루비아 님.”


게다가 ‘님’까지 붙이며 극존칭을 한다.


예륨의 귀족들이 멈칫거리는 게 보였으나, 그들은 참견하지 않았다.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다.


영향력 있는 자도 지금 반하는 순간 목이 날아갈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카심은 부드럽게 미소 짓고 말했다.


“한밤중이지만 조용히 담소를 나누지 않겠소?


#


루비아는 긴장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넓은 황궁의 홀.


물이 흐르는 분수대와 유리로 된 천장이 밤하늘의 달빛이 비쳤다.


분명 황궁 안이건만, 녹색 식물과 알록달록한 꽃들이 조화롭게 자라나 있다.


‘대단해. 사막의 국가이건만, 어떻게 이런 정원을 가질 수 있는 거지?’


루비아가 정자에 앉아 두리번거릴 때, 예륨의 황제는 차를 마시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오?”

“네? 아, 네.”

“당연하오. 이곳은 얼마 전까지 칙칙한 돌덩이와 모래만 있던 연무장이었으니까.”


연무장?

이곳이?


루비아가 다시 한 번 놀란 눈빛을 하자 카심이 말했다.


“이 정원을 꾸민 게 누구 같소?”

“그건···.”


정원사가 아닐까?

오답이었다.


“게일이오. 성자 게일이 이곳을 이렇게 꾸몄지.”

“...”

“생명의 기운을 뿜으며 기적을 일으켰다오. 그리고 난 그 기적을 보고 반하고 말았지. 덕분에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소.”


카심은 쓰게 웃었다.


“종교란, 사람을 통제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도 어리석었소. 세상에, 진짜 레시아의 기적이 있을 줄이야!”

“그렇군요.”


루비아는 장담을 맞춰주면서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불편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예륨의 황제와 차를 마시는 것만큼은 긴장되었다.


“게일을 만나고 기적을 직접 체험했소. 그리고 대재앙 또한 목격했지.”


서방 국가에서 죽음의 역병이 발병했다.

그로 인해 황제는 동원령을 내리고 토벌을 하였으나,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게일이 나타난 후 예륨은 변했다.

망자들을 물리칠 방법을 알아냈으며.

신성한 힘으로 성수를 만들어 역병이 퍼지는 걸 막아냈다.


그뿐인가?

굶주려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내고.

지병을 고쳐주고.

또한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을 되살렸다.


게일이야말로 진정한 성자였다.


“그리고 루비아 님 역시 레시아께 선택받은 성녀라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구출하지 고민하고 있었소. 군대를 모집해 준비 중이었지. 하지만 설마 성검이 나타나고 천사님들이 내려오다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인지···!”


카심은 감탄하며 잡담을 했다.

루비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듣기만 했다.


억지 미소야 왕궁에서 항상 짓는 일이라 별거 없지만.


문제는 오랜 여행을 걸쳐 온 예륨 제국이기에 쉬고 싶었다.


지금도 눈꺼풀이 무거웠다.


“이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버렸군. 성녀님도 쉬셔야 할 텐데.”


카심의 말에 루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쉴 수 있는 걸까?


그때, 카심이 말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본론을 말하겠소.”


본론?


카심이 루비아를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천사님들께서는 우리 예륨을 배척하려는 것이오?”


루비아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배척이라뇨?”


갑작스러운 말에 루비아는 당황했다.

카심 황제는 조심스레 상자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천사님께서 주신 선물이오.”

“아···.”


루비아는 상자를 보았다.

고급스러운 융단 위로 악마의 내장이 올려져 있다.


“예륨에서는···. 이건 경고라오. 지금은 거의 잊혔다시피 했지만, 아주 오래전, 각 부족이 전쟁을 할 때, 죄인의 장기를 뽑아 보내는 것으로 선전포고하였소. 근데 그것을 천사님께서 예륨에 이런 식으로 선물을 보낸다고 한다면···.”


카심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륨과는 척을 지겠다는···.”

“아, 아닙니다. 이건 그러니까···.”


루비아는 당황했다.


이건 노드인의 문화였다.


북방의 아일란스 섬.

그곳은 짐승이 매우 귀하다.

그리고 짐승의 장기를 뽑아다 상대 부족에 보내는 것으로 그 부족과 친한 관계를 맺겠다는···. 그런 문화가 있다.


그걸 루비아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악마의 장기는 정력에 좋다고 했다.

분명 황제에게 좋은 의도로 보낸 거겠지.


“그게 정말이오?”


루비아의 설명에 카심은 안도했다.


“물론입니다.”


그때였다.

병사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성자 게일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오, 그런가? 그럼 천사님들도···.”

“네, 하, 하지만···.”


병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악마들도···.”


그 말에 카심의 얼굴이 굳어졌다.


루비아와 카심이 급히 자리를 옮겼다.


황궁의 발코니로 향했고, 수도의 거리를 볼 수 있었다.


백성들의 함성이 들린다.

줄지어진 행진.


이웃 도시에서 온 집 잃은 카레아의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악마를 십자가에 고정한 채 행진 중이었다.


“악마들이다!”

“던져! 돌을 던져!”

“이 사악한 놈들!”


돌멩이가 던져진다.

악마가 돌멩이에 얻어맞아 검은 피를 흘렸다.


“검은 피다!”

“저주받은 피야!”

“불태워라! 불태워라!”


화가 난 군중들.

그리고 그들 앞에 낙타를 탄 채 묵묵히 다가오는 멀린과 게일.


“저것도 노드인의 전통이오?”

“...”


그 말에 루비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멀린은 앞을 바라봤다.

황궁의 문이 열리며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 뒤로 수많은 가신이 따라온다.


노인이 등장하자 조금 전까지 소리치던 군중들은 입을 다물었다.


화들짝 놀라며 노인을 보고 주춤주춤 자리에서 무릎 꿇었다.

그리고.


“미천한 신도가 레시아님의 사자, 대천사 멀린 님께 인사 올립니다.”


노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황제 카심이었다.


카심은 최대한의 예의를 지켰다.

꿇을 생각도 없었다.


황제야말로 신에게 선택받은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천사라고 달라질 게 없었다.

그때 상대방이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카심은 어리둥절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낙타에서 내리지 않은 채 고개를 뻣뻣이 새운 멀린을.


“...!”


카심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멀린을 본 순간 압박감을 느꼈다.


분명 상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건만.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무릎이 꿇릴 거 같았다.


그러다 문득, 카심은 분노를 느꼈다.


무릎을 꿇으려 하다니?

황제인 내가?


“누구냐.”


그때, 멀린의 말이 들려왔다.

카심은 말문이 막혔다.,


설마···. 나에게 말하는 것일까?

예륨의 황제인 나를 모른다고?


그럴 리가.

대천사가 되는 사람이 대제국 예륨의 황제인 자신을 모를 리가 없다.

이건 분명 불쾌함을 나타내는 징조였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가?`


“저는 예륨의 황제, 카심 바하르이옵니다.”

“그렇군.”


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낙타에서 내린 멀린이 카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카심이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멀린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물은 마음에 드는가?”


그 말에 카심은 십자가에 매달린 악마들을 바라봤다.


#


예륨의 가신들이 대전에 모여 있었다.


황제 카심은 옥좌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었다.


“이건 분명 선전포고입니다!”

“비아냥거리며 고문한 악마를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까!”


가신들의 말에 황제 카심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빠져 있었다.


예륨에서는 여러 전통이 있다.


그중 야만스럽다 하여 잊힌 300년 전의 전통.

각 부족에서 마찰이 있고 전쟁을 하기 전 선전포고로 죄수를 이용했다.


그들의 장기를 뽑아 보내면 싸우겠다는 뜻이었다.

또한 죄수를 불구로 만들고 산채로 보내면 교섭의 여지도 없이 모두 학살하겠다는 뜻과도 같았다.


지금에서야 각 부족의 부족장이나 늙은이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천사가 보내온 선물이 악마의 장기라니?

그리고 고문 중인 악마라니?


이건 생각할 여지도 없이 예륨과 전쟁을 하겠다는 거다.


카심은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루비아 여왕과 대천사가 직접 예륨에 방문하실 리가 없다.’


전쟁 선포를 하는데 천사장이 직접 예륨에 올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불타던 도시, 카레아를 구해줄 이유가 없었다.

분명 뭔가 오해가 있을 거다.


‘혹시 무릎을 꿇지 않은 것에 불쾌감이라도 느낀 것일까?’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는 예의를 지키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겨우 그걸로 선전포고라···.

오만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전에 그자가 정말로 천사가 맞습니까?”

“맞습니다. 모습을 보니 분명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까?”

“독특한 외형에 피부색, 그리고 긴 귀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뿐입니다.”

“하지만 악마들을 잡아온 걸 보지 않았습니까? 듣자하니 이웃 도시 카레아가 악마들에게 습격당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악마들을 제압할 정도라면···.”

“그건 성자 게일 님의 공이겠지요. 분명 순수하신 게일 님을 속인 사기꾼···.”

“조용.”


카심의 한마디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카심의 날카로운 눈빛이 신하들을 바라봤다.


“누가 감히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


신하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카심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혹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꾼은 아니다. 위압감부터가 달랐으니까.’


천사라는 건 거짓이 아닐 터.


‘어떻게든 그분의 불쾌함을 풀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만약, 만약에···.”


가신들이 고개를 들어 카심을 바라봤다.


“천사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전쟁을 선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그거야···.”


서로 눈치를 봤다.

레시아 신을 섬기는 예륨이다.

말을 잘못하다간 이단죄를 묻게 된다.


“솔직하게 말하라. 죄를 묻지 않겠다.”

“...화, 황제 폐하께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두 가지?”

“레시아 님의 뜻에 따라 대천사의 심판을 받거나 혹은···.”


신하는 마지막 말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심은 그 뜻을 알고 있었다.


‘저항해 싸운다인가.’


사실 천사들을 이곳에 끌어들인 이유는 간단했다.

게일마저 기적을 선서해 예륨을 이롭게 하였다.

그럼 천사들이 대거 예륨에 살게 된다면 얼마나 큰 대제국으로 성장하겠는가?


분명 견제 대상인 크로스트 교단은 더는 예륨을 건들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천사들을 이용하려 했건만.


‘만약 전쟁을 하게 되면 승산이 얼마나 될까?’


카심이 곰곰이 생각할 때였다.

대전 문이 벌컥 열렸다.


“황제 폐하!”


원래라면 예를 갖추어야 할 예륨의 귀족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얼마나 급한지 다리가 걸려 바닥에 엎어졌다.


“무슨 일이지?”


카심이 눈살을 찌푸리며 귀족을 쳐다볼 때, 귀족이 외쳤다.


“하, 항구에···. 기, 기이하게 생긴 괴물들이 배를 타고···!”




오타 맞춤법 지적해주시면 감사드립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작가의말

좋은 주말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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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에필로그 - 마지막 전쟁 (완) +42 21.01.17 1,122 64 10쪽
61 아벨 +46 20.11.29 1,052 60 9쪽
60 아벨 +20 20.11.01 1,152 56 9쪽
59 아벨 +22 20.10.09 1,424 65 9쪽
58 아벨 +18 20.09.28 1,461 70 11쪽
57 아벨 +16 20.09.18 1,621 75 11쪽
56 침략 전쟁 +13 20.09.15 1,587 76 10쪽
55 침략 전쟁 +10 20.09.12 1,689 80 12쪽
54 침략 전쟁 +18 20.09.09 1,713 82 12쪽
53 침략 전쟁 +18 20.09.07 1,789 89 10쪽
52 새로운 준비 +34 20.09.05 1,932 106 13쪽
51 새로운 준비 +16 20.09.02 1,940 93 10쪽
50 새로운 준비 +13 20.08.31 1,921 103 14쪽
49 새로운 준비 +21 20.08.27 2,067 113 10쪽
» 새로운 준비 +7 20.08.25 2,104 94 12쪽
47 웨어울프의 자손 +11 20.08.23 2,227 98 13쪽
46 웨어울프의 자손 +11 20.08.21 2,207 101 11쪽
45 웨어울프의 자손 +13 20.08.18 2,273 106 10쪽
44 웨어울프의 자손 +19 20.08.16 2,349 113 13쪽
43 웨어울프의 자손 +16 20.08.13 2,393 122 11쪽
42 웨어울프의 자손 +14 20.08.11 2,461 115 11쪽
41 또 다른 어둠 +13 20.08.09 2,555 110 13쪽
40 또 다른 어둠 +15 20.08.07 2,586 112 11쪽
39 또 다른 어둠 +17 20.08.05 2,698 109 13쪽
38 또 다른 어둠 +13 20.08.04 2,766 114 11쪽
37 또 다른 어둠 +13 20.08.01 3,001 10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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