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월요일 오전 4시 18분

글사잇길


[글사잇길] 기다리다.

<기다리다.>


추워요

너무 추워요

날 안아줘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숨이 막혀요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시야 속에서

그대가 없어요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럽지만

괜찮아요

그대도 함께 하리라는 걸 알거든요

어서와줘요

저 약속의 호수에서 기다리는

순백의 신부가 이렇게 애 닳고 있잖아요


나와 함께 하기로 했잖아요

제 손을 잡고 같이 가기로 했는데

왜 이리 늦는 거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꼭 바로 온다고 했잖아요

왕자님처럼 나를 안아주고 사랑한다 속삭였잖아요

날 찾기 어려운 건가요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제발 와줘요 제발요

내 발이 얼어서 가질 못하겠어요

손을 뻗고 싶어도 굳어버렸어요

목 깊숙한 곳까지 진흙과 물이 가득하네요

아직은 괜찮아요

마법처럼 모든 게 해결될 거에요


땅거미가 지고 있어요

일곱 번째 황혼이에요

죽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귓가에 사랑한다 속삭이고 싶어요

모닥불보다 따스한 그대 품 안에서 잠들고 싶어요

마법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왜 얼굴도 비치지 않나요

머리 위로 달이 오기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다쳣나요 길을 잃었나요

괜찮아요 이해할게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어요

차갑지 않아요 달빛이 이렇게나 따뜻한걸요


분명 그럴만한 일이 있는 거겠죠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돼 죽을 거 같아요

이미 죽었지만요

가기 전에 얼굴 한번 보고 싶어요


거짓인 거죠

지금까지 다 꿈인 거죠

꿈이라고 해줘요

자고 깨면 포근한 이불에서 일어나는

너무도 깨고 싶은 악몽인거죠


내 손을 잡지 마요

가엾은듯한 표정 짓지 마요

가증스러워요

울지 마요

그 얼굴 찢어버리고 싶으니까

내 얼굴에 서린 얼음만 아니었다면

당장에 물어뜯었을 테니까요


새로운 반지

새하얀 신부복

향긋한 부케

행복한 미소


내 손이 움직인다면

그대의 두 눈을 뽑아 짓이겨 버리고

내 폐부 가득한 물만 아니었다면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울부짖었을 거야

내 모든 걸 내던져

당신을 피투성이로 만들 거야

얼어버린 턱일지라도

모조리 뜯어 삼킬 거야

살점이 흩어져

행태도 사라져

까마귀 떼에게 먹히길.





-오마쥬로서 전민희 작가님에게 바칩니다.-


댓글 0

  •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7 글사잇길 | 희생 20-05-22
6 글사잇길 | 기사 20-05-21
5 글사잇길 | 기억 20-05-21
4 글사잇길 | 쉼표 *4 20-05-21
3 글사잇길 | 고개 20-05-21
» 글사잇길 | 기다리다. 20-05-19
1 글사잇길 | 몇 개의 끄적임 *2 20-05-19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