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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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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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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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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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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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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패왕과 황소

DUMMY

슐리아와의 이야기는 유익했다.


그녀는 2년간의 정국의 흐름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몇 차례 좋지 않은 해프닝이 있긴 했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


“화이트레온이 결국......”


내 독백을 들은 슐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있는 지도위로 손을 얹고 입을 열었다.


“이유가 많긴 해.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패왕 때문이지.”


패왕.


마왕군과 인류의 사이를 떡하니 가로막은 새로운 세력. 수백에 달하는 거신병을 이끌고, 접경지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는 무시무시한 인물.


화이트레온의 이름이 지워진 이유는 그, 아니. 그녀. 패왕 레비에게 있었다.


“나는 패왕이 이끄는 거신병의 형상을 본 적이 있어. 미노타우르스의 모습이었지.”


그리고, 화이트레온을 점령한 이.

테리오스는 미노타우르스다.


마왕의 침공을 정면으로 막고 있는 패왕의 권속! 미노타우르스란 말이다.


게다가 테리오스는 화이트레온을 점령한 이후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쿠어어어!!

“...마침 시간이 되었네.”


바깥에서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괴성. 과거 알버트로 인해 오염되어버린 숲의 괴수들이 들고일어났다.


“테리오스는 패왕의 권속인 미노타우르스의 형상을 가졌으며.”


괴수의 무리는 언제나처럼 화이트레온을 향해 몰려갔다. 그곳에 있을 숙적 마왕의 주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몰려드는 괴수로부터 도시를 지켰지.”


그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마왕군이지만, 화이트레온의 백성은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흉측한 괴수들이 도시를 향해 밀려든다고 생각해보자. 인간 정도는 가볍게 도륙할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외형의 괴수들이.


그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을 안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아닐 것이다. 당연히 공포에 질리겠지.


심지어 백성들은 괴물이 그들을 해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모른다.


“마왕군의 군단장으로 알고 있던 존재가 괴물의 공세를 막아줬어.”


슐리아가 한 손을 펼쳤다.


“5년이나.”


다섯 손가락을 보여준 그녀는 손가락 세 개를 접으며 덧붙였다.


“그런 상황에. 2년전 나타난 패왕이란 초강자가 미노타우르스의 형상을 한 거신병을 데리고 다니는 거야.”


검지와 중지를 휘휘 저으며 거신병을 표현하던 슐리아는 갑작스레 두 손가락을 딱 붙이고, 화이트레온 수도 위를 점찍었다.


“나라 하나 생기기 딱 좋은 상황이지.”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슐리아의 손가락 끝을 향했다.


‘골든카우.’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화이트레온의 수도 ‘화이트레온’이 존재해야 하는 지점에 다른 글씨가 써져있다.


심지어 엄청 눈에 띄는 금색 글씨로 커다랗게 양각되어 있었다.


그렇다.


화이트레온 왕국은 내가 없던 2년 사이에 골든카우 공화국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놈 군단장 아니었냐?”

“그렇긴 한데. 다른 군단장과 달리 도시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었어. 그리고 그 군단장은 특히나 강하다던데 어떻게 몰아내겠어.”


하긴, 그 소 인간은 무척 강했었지.


정확히는 이 세계에서 본 존재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무력을 자랑했다.

걔보다 확실하게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자는 마왕밖에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본인도 만족하는 모양이야. 패고, 또 패도 금방 회복해서 덤벼드는 스파링 파트너가 생겼다나 뭐라나.”

“만나봤냐?”

“그럼. 그러니까 이렇게 잘 알지. 심지어 계약관계야. 나는 괴수들을 관리하고, 그는 괴수들에 맞서 싸우고.”


흔쾌히 대답한 슐리아는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나온 게이트. 내가 만든 거야. 새로운 괴수를 제작하기 위해서. 그런의미에서......”


그녀의 시선은 내 손에 고정되어있었다.


“엘릭서를 조금 제공해주면 안 될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슐리아는 미친 듯이 초점이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지.


“정말로. 정말 조금이면...... 앗!”

“쯧.”


나는 혀를 한 번 차고 손에 들린 병을 던졌다. 포션이 가득 담긴 병이 포물선을 그리며 슐리아의 품으로 날아갔고.


“이, 이것이.”


날아온 엘릭서를 낚아챈 슐리아는 홀린 듯이 엘릭서를 들어 올리더니 뺨에 갖다 대고 비비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은 건가?

무생물과 사랑에 빠진 것 같은 모습은 심히 보고 있기 찝찝하더라.

그래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짜증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안 팔려.’


엘릭서가 안 팔린다. 하나도.


수요가 없다.

공급은 많은데.


가격을 줄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


[가격을 조정하실 수 없습니다. 상품 ‘엘릭서’의 시장점유율이 부족합니다.]


점유율 부족하다고 퇴짜맞았다.


‘부자의 꿈은 멀고 멀구나.’


나는 인벤토리를 슬며시 열어보았다.



[인벤토리]


[엘릭서(생명의 숨결) x 122]

.

.

.



다 팔면 오천만이 넘는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숫자의 엘릭서가 눈에 들어온다.


“후우.”


무척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부활하기 위한 길은 이 길이 전부가 아니니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붉은 보석이 내 눈에 들어왔다. 촉수괴물 알버트와 현자의 돌의 모습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역시 배울 점이 많아.’


현자의 돌은 내 능력을 나와 다른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위이잉!


...그중에서도 저것만큼은 꼭 배워야 했다.


나는 현자의 돌이 뿜어내는 운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붉은 입자가 달라붙은 모든 것들이 과거의 모습을 되찾는 모습을.


‘입자가 눈에 보여서 그런가? 알기 쉬워.’


탁자 모서리에 장식된 조각을 붙잡고,


빠각!


힘을 주어 부러뜨렸다.


허무하게 부서진 나무 조각을 손위에서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부러진 부분에 끼워 맞추었다. 그리고 능력을 발동했다.


*


“작전은 뭐지?”

“...군대를 이용해 패왕의 눈을 돌리고 우리는 흩어져서 파고든다.”


푸른 천막 아래 진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막 안의 간부들은 그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군대 정도로 패왕을 속일 수 있겠나?”

“그럴 리가.”

“그럼 아무 소용 없지 않나.”


희망찬 발언에 끼얹어진 차가운 부정에 천막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그 분위기를 참지 못한 것일까?


비범한 근육을 지닌 외팔의 남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너무 걱정 마라! 너희 앞에 있는 그놈은 용사! 방법이 있으니까 말을 꺼냈겠지.”


그에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풀렸다.


“하긴, 용사님이시니 방법이 있으시겠지.”

“그 무시무시한 리치도 쓰러뜨리신 용사님이시니......”

“하지만, 저분도 패왕에겐......”

“닥치게나! 패왕은 논외일세.”


무거웠던 만큼 변화도 극적이었다. 도르무가 분위기를 환기한 순간부터 천막 내부엔 저마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에 용사. 김호수는 눈썹을 크게 꿈틀거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패왕을 따돌리기 위한 방법!!”


후웅!


천막을 뒤흔드는 김호수의 목소리에 실내는 다시금 적막을 되찾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됨을 느낀 김호수는 품에 손을 넣으며 입을 열었다.


“바로 이것이다.”


그의 손에 딸려 나온 푸른 구슬.

이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용사가 이렇게 호언장담을 하는 것일까?


“그게 무엇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푸른 수염의 남자가 먼저 나서 푸른 구슬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법사답게 벌써 뭔가를 느꼈나 보군.’


김호수는 푸른 수염과 눈을 마주치더니 그를 향해 구슬을 던졌다.


“아.”


엉거주춤한 자세로 구슬을 받아든 남자는 조용히 마력을 일으켜 구슬을 탐색했다.


“이, 이건!?”


탐색이 끝난 것일까?

마법사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그에 김호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것은 게이트. 게이트 마법이 깃든 구슬이다.”


멸망한 화이트레온.


이제는 골든카우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얻어낸 커다란 수확. 김호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과거를 떠올렸다.


그놈은 대체 누구일까? 화이트레온 근처에서 만났던 거지꼴을 한 남자.


그저 ‘닐’이라고 불러달라 말했던 그 남자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게이트에 관한 기술을 제공해왔다.


처음에는 경계심이 들었다.


이계에서 5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나는 예전처럼 바보가 아니니까.

대가 없는 호의에 그대로 넘어갈 정도로 멍청한 놈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닐의 실력은 진짜였다.


행동력 또한 뛰어났지.


나의 경계에 대한 닐의 대답은 행동이었다. 닐은 자신의 발명품을 직접 시연해가며 나를 유혹해왔지.


그는...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닐의 눈에 서린 열정.

뜨겁게 열정을 불태우며, 세상을 구해달라 피를 토하며 외치는 닐의 시선을......


나는 외면 할 수 없었다.


“그래. 이거로군... 이것이라면 패왕의 영역을 넘는 것이 가능할지도......”


마법사로부터 구슬을 받아든 나는 그것을 움켜쥐고 힘차게 주먹을 치켜들었다.


“가능할지도 가 아니다! 가능하다!”


닐의 열정 가득한 목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구슬만 있다면! 패왕을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패왕이 지키는 영역 너머로 구슬 하나만 던지면! 그걸로 끝!’


기억 속의 닐의 열정을 빌려 나는 외쳤다.


“우리가 누구냐! 무시무시했던 군단장! 창백한 지휘자를 쓰러뜨린 자들이다! 그런 우리가!”


패왕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패왕이 지키는 영역 너머로 구슬을 던져두기만 하면 되는 일.

역대급으로 강력했던 군단장을 쓰러뜨린 우리가!


“겨우 한 명이 두려워 이곳에 숨어있을 터인가!”


그걸로 끝이었다.


천막 내부에서부터 열화와 같은 환성이 터져 나왔다. 환성은 밖으로까지 빠져나갔다.


와아아아아!!


주둔지 전체를 울리는 병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나는 손을 펼쳐보았다.


푸른 구슬이 비웃듯이 빛나고 있었다.


‘닐.’


결국, 나는 닐에게서 구슬들을 받았다. 그날 처음 만난 이에게서 푸른 구슬을 받았다.


‘방법이 없었어.’


김호수는 눈을 감았다.


눈만 감아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창백한 지휘자를 쓰러뜨리고, 당당하게 패왕의 영역을 밟았던 그 날.


김호수는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다.


‘나는 패왕을 이길 수 없으니까.’


5년만이었다.


그토록 처절한 패배는.


한성이 죽었던 날 숲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외모의 백발의 여성. 그녀 이후로 이토록 처참하게 패배해본 적이 없다.


펑퍼짐한 옷차림에 하얀 가면.

새하얀 머리칼과 토끼와 같은 귀를 가지고 있었던 패왕.


‘그녀는 강했다. 말도 안 되게.’


창백한 지휘자의 급소를 꿰뚫었던 필살의 일격은 패왕에게 닿지도 않았다.


데스웜에 각성에 생명력까지 개방해 혼신의 일격을 날렸음에도, 먹히지 않았다.


아니, 그것뿐이었다면 이렇게 절망하지도 않았으리라.


‘고작 손가락 하나.’


새하얀 검지 손가락.


나. 김호수의 모든 것이 담긴 일격을 패왕은 고작 손가락 하나로 막아 내었다.


그 뒤의 기억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패왕의 영지 바깥에 누워있었고, 숲의 광경은 그들이 침입하기 전과 똑같았으니까.



김호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였다. 그 시선을 싸그리 무시한 김호수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었고, 탁자 위에 그대로 뒤집었다.


후두두두두......


주머니 안쪽에서 수십의 푸른 구슬이 쏟아져나왔다. 그가 쥔 구슬과 똑같은 물건들이.


“어, 어!?”

“저게 저렇게 많았다고?”


사람들의 시선에 점점 기대감이 서렸다.


‘정말로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김호수는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출정을 준비하라!”


이글이글 불타는 김호수의 눈동자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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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마왕성 +1 21.02.26 211 3 12쪽
115 용사와 계곡 21.02.25 228 3 13쪽
» 패왕과 황소 +1 21.02.24 204 3 12쪽
113 용사와 현자의 돌 21.02.23 229 3 11쪽
112 재회 +2 21.02.21 246 3 12쪽
111 미로 +1 21.02.20 188 3 13쪽
110 황궁 21.02.19 185 3 12쪽
109 제국군 - 3 +1 21.02.18 219 4 12쪽
108 제국군 - 2 21.02.17 191 3 12쪽
107 제국군 21.02.16 213 3 12쪽
106 해방 - 5 +1 21.02.14 237 4 13쪽
105 해방 - 4 21.02.13 213 3 12쪽
104 해방 - 3 +1 21.02.12 248 4 14쪽
103 해방 - 2 21.02.11 212 3 13쪽
102 해방 21.02.10 216 3 12쪽
101 고대인 - 4 +1 21.02.09 222 3 12쪽
100 고대인 - 3 +2 21.02.07 230 4 14쪽
99 고대인 - 2 +1 21.02.06 238 3 13쪽
98 고대인 21.02.05 262 3 13쪽
97 하늘섬 21.02.04 256 4 13쪽
96 반지 +1 21.02.03 237 3 13쪽
95 요리사 +1 21.02.02 26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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