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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톤 님의 서재입니다.

전역날 이계로 납치당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팩스톤
작품등록일 :
2020.10.24 21:23
최근연재일 :
2021.03.05 18:05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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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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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99,515

작성
21.02.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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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국군 - 2

DUMMY

“그곳?”

“히익!!”


박사의 도주극은 너무나도 쉽게 끝났다.

그가 수풀을 헤치고 나오자마자 눈앞에 서 있는 남자. 박사는 대경해 주저앉았다.


“치, 침입자!!”


그의 앞에 선 인간은 제국군이 무조건 후퇴를 결심하게 한 남자였으니까.


“그 구슬은 뭐냐? 소중해 보이는데.”

“이, 이건 안 돼!”


한성이 구슬에 관심을 가지기 무섭게 박사는 전신으로 구슬을 감쌌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보주만큼은 빼앗겨선 안 된다.


이것과 떨어진다면 그는 죽음보다도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빼앗을 생각이면 날 죽이고 가져가!”


박사는 결사의 의지로 구슬을 품에 안았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박사를 향해 다가갔다.


제 목숨보다 소중한 물건이라......


왠지 짐작이 간다.


“그거였구나?”

“으으......”


한 발자국씩 가까이 다가갈수록 박사의 떨림이 가속화되었다.


거품 물고 쓰러져 있는 제국군과 달리 그의 동작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네가 움직일 수 있는 이유가.”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사의 떨림도 함께 멎었다. 박사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이다.


“날 죽이지 않을 생각이구나......”


돌연 박사의 눈에 결연한 감정이 떠올랐다. 일말의 희망을 품은 박사는 품에서 소도를 꺼내 들더니.


자신의 목을 향해 힘차게 찔러 들어갔다.


어딜.


착.

“흐압! 놔라! 이거 놕!”


자살시도는 나로 인해 미수에 그쳤다.


챙그랑!


그가 들고 있던 단검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후욱! 후욱!”


숨을 미친 듯이 몰아쉬는 박사.

공기를 들이켤 때마다 그의 눈에 이성이 돌아온다. 이제 흥분을 가라앉힌 것일까?


마지막으로 숨을 고른 박사가 말했다.


“내게서 뭘 원하지?”


이리저리 간볼 필요는 없지.


“정보국 소속이냐?”


나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박사는 내 말을 듣더니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나를 위해 산다.”

“...어쨌든 정보국은 아니라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는 박사에 고개를 한번 으쓱한 나는 조용히 카르투스에게 연락했다.


‘카르투스. 제 3제국군의 부유석을 비활성화해줘.’

-응? 국장에게 연락하지 않는겐가?

‘어. 혹여나 걔한테 알릴 생각 마라.’

-음... 알겠네. 하기야, 그자에게도 뭔가 있었던 것 같았지......


나도 뒤늦게 깨달았었다.

국장에게 뭔가 있었다는 사실을.


국장과 헤어지고, 서쪽 도시로 달려오던 때 카르투스가 번역기를 넘겨줬었다.

정보국의 번역기를 자기 나름대로 개조해봤다나 뭐라나.


그 결과물이 내가 쓰고 있는 번역기다.


-이곳은 다 끝났다. 3세에게서 돼지를 끌어냈으니. 그쪽은? 도망자는 잡았나?

“어. 이 사람은 그냥 우릴 보고 도망치는 연구원이더라.”


개조된 번역기. 이것이 내가 미르셀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이유다.


헌데, 국장과의 대화는 어떠했는가?



‘어서 오시오. 지상에서 온 방문자여. 기다리느라 지쳤다오.’


그의 응대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번역기를 쓰고 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국장은 지상의 언어를 통해 나를 맞이한 것이다.


물론. 언어 하나 때문에 국장을 수상하다 느끼는 것은 아니다.

정보국 국장씩이나 되는 이가 지상의 언어를 알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테니까.


내가 수상하다 느끼는 점은 그의 태도.


‘응? 그걸 어떻게 알았소?’

‘무, 무엇이오! 대체 어떤 방법이.’

‘역시! 당신이 제국의 구원자......’


경악한 기색을 내비치는 국장의 모습들.


의식의 저편에서 따로 떨어져 있던 국장의 모습들이 서서히 겹쳐진다.


그렇게 구성된 하나의 얼굴은.


세상 모든 것들을 속이는 기만자였다.


깨닫고 보니 냄새가 술술 올라왔다.

그의 언행에 담긴 의미가 뇌리를 스쳤다.


‘놈은 자신의 행동을 조절했다.’


나의 행적을 조절하기 위해서.


놀라는 척.


여유로운 척.


흥분한 척.

국장은 스스로의 행동을 완벽히 조절함으로써 내가 착각에 빠지도록 유도했다.


‘자신이 독실한 어둠의 신도로 보이도록.’


놈의 행동은 성공했다.

그의 정보국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나는 생각했다.


꿍꿍이를 알면 모를까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최대한 빨리 활동해 모든 변수를 부숴버려야겠다고.


국장이 수를 써서 귀찮아지기 전에 목적이나 달성하고 이곳을 뜨자고.


‘뭐, 손절이 답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애매하더라.

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모르겠거든.


그래서 하나의 기준을 정했다.


‘그는 제국의 구원자에 집착했어.’


그가 유일하게 집착하던 대상.


제국의 구원.


기준을 정했으면 생각을 해야겠지?


그래서 떠올려 보았다.


국장이 생각하는 제국의 구원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일지. 분신을 동원해 수집한 정보를 규합해 쭉 나열해보고, 그의 행적의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본 결과.


작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배역에 잡아먹힌 배우.’


평의회의 현자라는 거대한 배역에 삼켜져 그들의 가치관을 물려받은 배우.


그것이 바로 정보국 국장 ‘닐’의 정체다.


그렇기에 경계할 수밖에.


‘평의회는 국민을 위한다.’


정확히는 제국의 국민을 위한다.


‘나는 제국의 국민이 아니지.’


그는 나를 ‘지상에서 온 방문자’라 표현했다. 그가 나를 제국인과 동등하게 보았다면 그냥 ‘방문자’라 표했음이 옳다.


제국의 국민만을 사랑하는 현자는.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나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그에게 있어 나는 힘만 센 야만인에 불과할 테니까.


-끝났다네. 이제 빌리에게 지시하면 서쪽 도시가 비활성화될 것이네.


내 곁으로 날아든 빌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 위에 앉은 빌리는 내 손가락에 머리를 기대었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작은 새의 눈가를 쓰다듬었다.


“무엇이든 어설프면 이용당하는 법.”

-......


정보가 부족하면 이용당한다.

머리가 나쁘면 이용당한다.

착하기만 해도 이용당한다.


“당하며 살지 않는 방법은 있을까.”


이런 통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용당하지 않고 살 방법은 있을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있다.”


벌벌 떨던 것도 잊은 박사가 홀린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존나 쎄면 되지.”


나는 빌리의 머리를 톡 건드렸다.


쿠구구구구......


지진이 일어난 듯이 흔들리는 대지.


서쪽 땅 밑에서 청록빛 섬광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빛줄기는 어디에서나 보일 정도로 밝은 섬광을 흩뿌렸다.


대나무가 피운 꽃처럼.

자신이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려는 것처럼.


그와 함께 북쪽에서도 빛이 솟구쳐올랐다.


“저곳은... 총독부?”


박사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동쪽과 남쪽에서도 빛줄기가 올라왔다.


“내가 미노타우르스 2세를 얻은 순간.”


하늘섬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날 억누르던 사슬이 하나 풀려났어.”


미노타우르스 2세.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갔으면 그냥 크고 자원만 먹는 애물단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손에 들어왔다.


과거 손에 넣었던 물건을 얼마든지 불러낼 수 있는 나에게.


그 결과는?


마왕의 히든카드.


레이닉스의 108경비대 앞에 미노타우르스 2세 군단이 출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량전에 물량전으로 맞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나는 숨이 트였고.


전쟁터의 분신을 몇 명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고작 미노타우르스 2세라는 장난감을 하나 얻은 것만으로 이곳의 일이 너무나도 쉽게 끝났다. 그래서 아쉽다.


“3세가 무인로봇이었으면 최고였는데.”


병신 손에 들어가서 2세에게 제압된 것이지 3세의 위력은 아주 출중했다.


동력의 반도 못 끌어내는 2세와는 달리 100% 끌어올리는 것을 넘어서 50%나 더 증폭시키기까지 했으니까.


“큼. 크흠! 흠흠!!”

“뭐야? 사례들렸냐?”


박사가 갑자기 격한 기침을 했다.

관심을 달라는 제스처 같았다. 그래서 줬다. 아주 지그시 바라봐 주었다.


“혹시... 제국은......”

“망했지.”


4대 도시가 한순간에 날아갔는데 멀쩡할 리가 있겠는가? 제국은 황제와 같이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그 새끼도 곧 조질거다.


푸와아아!!


오 마침 기다리던 반응이 왔다.


하늘섬 정 중앙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저곳이 바로 황궁의 위치이리라.


불사연구에 반쯤 성공한 것이 빈말이 아닌 듯 다른 도시와는 격이 다른 마력이다.


그그르르스스스......


파워가 어찌나 강력했는지 무너질 듯 흔들리던 섬까지 안정될 정도였다.


“과연... 황궁인가. 네 도시의 동력이 일제히 사라졌는데 그걸 이리 쉽게 지탱하다니.”

“황궁에 대해 좀 알아?”

“알다마다. 전설적인 학자나 마공학자들이 즐비한 황궁은 나의 꿈이나 마찬가진데 모를 리가 없지. 뭐. 이젠 모든 것이 끝났지만.”


박사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주둔지를 바라보았다. 바위처럼 굳은 채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그의 눈은 씁쓸함으로 가득했다.


“저주. 빌어먹을 저주. 이 저주만 아니었다면 이런 곳에 숨어 살 이유도 없었는데.”


박사는 말없이 앞으로 걸어가 엎드린 병사를 앞으로 돌렸다. 병사는 거품을 문 채 간헐적으로 떨고 있었다.


“아, 까아 주우... 주우겨어주어어어......”


길게 늘어져서 알아듣기 힘들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저주에 사로잡힌 자는 1초가 1분처럼 느껴지게 된다. 감각도 아주 예민해지지.”


품에서 주사기를 하나 꺼낸 박사가 병사의 가슴에 찔러넣었다.


“쿨럭! 쿨럭쿨럭!”

“그것만이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허억...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으, 아... 가슴만이 아니야!! 작은 악마들이! 악마들이! 내 전신을 갉아먹고 있어!! 아아!! 떼, 떼어줘어!! 나, 난! 죽고 싶지 않아!! 아, 아닌가? 차, 차라리, 주, 죽는 게......”


횡설수설하던 병사의 얼굴이 천천히 편안해졌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봐라. 이것이 네가 우리에게 한 짓이다. 하루하루 저주를 피해 살아가던 우리를 절망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전적으로 너 때문...!”


“크헉! 후억! 후억!”

“카학! 사, 산 건가?”


박사의 눈이 돌연 커졌다. 병사들이 하나, 둘 의식을 차렸기 때문이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박사가 자신의 눈을 비벼보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방벽 밖에 노출된 제국인은 저주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랜 시간 제국에 전해내려오는 역사가 그를 말해준다.


그리고 여기가 어디인가!


방벽이 없는 장소이지 않은가?

저주를 피하지 못할 장소이지 않은가?


근데 왜?


“크윽... 이게 저주야?”

“진짜. 진짜 끔찍했어... 나, 난 그냥 돌아갈래... 퇴역, 퇴역......”

“야, 야. 정신 차려! 야! 너 아직 저주가 남은 거... 으윽! 머리가......”


왜 저 인간들은 저리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거지?


박사와 똑같은 제국인일 텐데.


박사는 잠시 눈앞의 현실을 거부했다. 그의 상식에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환상이라기엔 너무 현실적이었으니까.


“아.”


박사는 번개같이 고개를 돌렸다.


이 모든 것을 알만한 인물이 있었다.


“당신인가?”


그들의 기계병을 개미 밟듯 으깨고 도시에 들어온 침입자. 지하에 숨겨둔 병기를 노획해 여기까지 추격해온 현명한 자! 사대 도시의 방벽을 일제히 비활성화 시킨 자!


‘어쩌면 이자야말로...’


때마침 동이 트며 한줄기 서광이 지평선 끝에서부터 올라온다. 붉고 따스한 빛이 눈앞의 인간을 조용히 감싸 안는다.


박사는 감격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눈으로부터 뜨거운 눈물이 끝없이 흘러 내려왔다. 눈물은... 달았다. 달디달아서 혀가 녹아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제국의 구원자일지도 모르겠다.’


박사는 황홀함에 잠겨 머리를 숙였다.


나는 박사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이 새낀 또 왜 이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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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용사와 현자의 돌 21.02.23 229 3 11쪽
112 재회 +2 21.02.21 246 3 12쪽
111 미로 +1 21.02.20 188 3 13쪽
110 황궁 21.02.19 185 3 12쪽
109 제국군 - 3 +1 21.02.18 219 4 12쪽
» 제국군 - 2 21.02.17 192 3 12쪽
107 제국군 21.02.16 213 3 12쪽
106 해방 - 5 +1 21.02.14 237 4 13쪽
105 해방 - 4 21.02.13 213 3 12쪽
104 해방 - 3 +1 21.02.12 248 4 14쪽
103 해방 - 2 21.02.11 212 3 13쪽
102 해방 21.02.10 216 3 12쪽
101 고대인 - 4 +1 21.02.09 222 3 12쪽
100 고대인 - 3 +2 21.02.07 230 4 14쪽
99 고대인 - 2 +1 21.02.06 238 3 13쪽
98 고대인 21.02.05 262 3 13쪽
97 하늘섬 21.02.04 256 4 13쪽
96 반지 +1 21.02.03 237 3 13쪽
95 요리사 +1 21.02.02 26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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