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던전

아침이 콘크리트를 비출 때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렛텐
작품등록일 :
2019.05.02 18:23
최근연재일 :
2019.07.08 23:02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5,821
추천수 :
87
글자수 :
172,380

작성
19.07.03 06:57
조회
33
추천
0
글자
7쪽

47화.

DUMMY

정말 행복했었다.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을 때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웠던지.

엄마 아빠와 같이 놀러온 푸른 들판, 저 지평선 너머까지 푸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또 그 날은 얼마나 날씨가 좋았던지.

엄마가 싼 도시락을 다 함께 나눠먹고, 아빠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던, 그 순간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했다.

그 때까지만해도 나는 언제나, 항상, 영원히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계속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8살이 되던 해에, 이 푸른 들판의 잔디들은 점점 시들어갔고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언젠가는 다시 푸른 들판을 볼 수 있겠지, 언젠가는 다시 푸른 들판 위에서 다시 엄마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넘어갔다.


14살이 되던 해에, 이 들판 위의 잔디는 전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들판위로 알 수 없는 아스팔트 도로 하나만에 놓여져있었다.

어디 쪽으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도로, 그 아스팔트 도로를 쭉 따라가다 보니 풀만 가득했던 그 들판 위에는 어느샌가 여러 콘크리트 건물들과 공장들이 하나 둘씩 세워져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건물들, 의미를 알 수 없는 공장들이었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않아 그 의미를 알게되었다.


그 해는 17살이 되던 해, 콘크리트 건물들과 심한 매연이 뿜어져나오는 공장들의 이름은 모두 똑같았다. 이름은 '안전한 미래' 또는 '행복한 생활'. 이것들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 이름들을 가진 콘크리트 건물들을 짓기 위해서 들판을 갈아엎고, 그 이름들은 가진 공장에서 제품을 양산하기 위하여, 또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으로 인하여 점점 하늘은 어두워져 갔기에, 날이 가면 갈 수록 우리의 햇빛은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19살이 되고, 이제 세상에서 들판이라는 존재는 사라졌다. 그저 땅, 그 위로 건물. 그 뿐이었고, 여태까지 공장들에서 뿜어져 나온 매연들 때문에 더 이상 우리는 햇빛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건물들의 불빛만 가득한 이 곳, 이 세상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세상 속에서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이 곳에서 잘만 버티면 다시 그 푸르고 푸른 그 들판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고, 푸른 들판에서 뒹굴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라고 말이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려도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푸른 들판을 보지 못하고 이대로 영영 살아가는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도시의 모든 불이 나가버렸다. 마치 누군가가 도시의 두꺼비 집을 내려버린 것 처럼 말이다.

어두움 속에서 겨우 도시의 불빛으로 인하여 앞을 볼 수 있었던 건데, 그것마저도 없어져 버렸으니 나는 앞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끝 없이 펼쳐진 이 어두운 지평선의 한가운데, 땅도 어둡고 하늘도 어두운 이 곳은 왠지 모르게 정말 고요하다. 마치 아무런 생물도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런 고요함과 고독함 속에 나는 버티지 못하고 그냥 무작정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공간에서 뛰고 또 뛰었다. 근데 막상 생각해보면 내가 왜 뛰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도 없는 이 어둡고 고독한 이 세상 속에 탈출구가 있기를 바랬던걸까? 앞으로 무작정 달려가다가 장애물에 부딫혀서 다칠지도 모르는데?

그러한 리스크를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뛰고 또 뛰었다. 뭔가 달리다보면 앞에 뭔가가 있겠지. 뭔가 달리다보면 다른 일이 일어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말이다. 뛰고, 또 뛰고, 계속 뛰었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뛰고 또 뛰었음에도 나는 아직 여전히 어두운 이 공간이었고, 뛰다가 멈췄을 그 때의 느낌은 마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느낌말고는 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뛰고 또 뛰고, 숨이 가파서 제대로 몸도 못 겨눌 정도로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여전히 이 어두운 세상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에, 나는 더 이상 뛰고 싶지 않게 되었다.


달리는 것을 멈추고 나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서 뭔가 알 수 없는 불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보이는 어느 한 줄기의 불빛, 나는 도깨비불을 본 것 마냥 그 불빛에 홀려서 다가가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불빛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본 불빛은 다름 아닌 평범하게 불타오르는 한 불꽃, 그저 뭐 별 볼일 없는 불꽃이지만...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불꽃 사이사이로 뭔가, 그 때의 푸른 들판이 보이는 듯 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불꽃을 쳐다보고 있자니 저 어둠 속에서 어느 한 존재가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아서 입을 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하-? 뭐하고 있었어?' 라는 물음에 나는 그저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저... 불꽃을 보니까 뭔가 행복했던 그 때가 떠올라서 가만히 앉아 보고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 존재는 나에게 달라붙어 이 불꽃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가만히 앉아서 보고있던 불꽃은 사실 '이상(理想)의 문' 이라고 하는 것. 흔히 쉽게 말해 '탈출구' 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들어간 사람이 원했던, 아니면 들어간 사람이 바라거나 소망했거나 갈망했던 것, 또는 시간, 또는 곳으로 이동시켜주는 일종의 '문' 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문에는 크게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하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라는 조건, 다른 하나는 들어가기 전에 매우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들어갈 수 있다는 조건, 마지막 하나는 다시는 이 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조건으로 해서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을 내밀었다.


나는 이 존재의 말을 듣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이 문으로 들어가면 내가 지금까지 바라왔던, 원해왔던 그 푸른 들판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 그게 정답일까? 정말로 내 이상이 저 문 너머로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만은 안다. 지금 내가 저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나는 계속 이 어두움만 가득한 세계에 홀로 남아서 앞도 보지못하고 쓸쓸하고도 고독하게 살아가게 될 것을 말이다.

고심과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나는 결국 선택을 했다. 저 문 너머의 곳으로, 저 문 너머의 이상의 세계로 가는 것을.



== Date 04.18 ==


하지만 그 꿈에서의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들어가지 못했다. 왜냐, 그 존재가 그 문으로 들어가려는 나의 손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침이 콘크리트를 비출 때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독일 쾰른 왔습니다 (~7/16까지 휴재) 19.07.12 32 0 -
55 외전 5. 누군가의 기억 IV 19.07.08 35 0 7쪽
54 49화. (4월 20일) 19.07.06 32 0 7쪽
53 48화. 쳇바퀴 (4월 18일) 19.07.05 35 0 7쪽
» 47화. 19.07.03 34 0 7쪽
51 46화. 의미 (4월 17일) 19.07.02 37 0 7쪽
50 45화. 개비 (4월 17일) 19.06.30 69 0 7쪽
49 44화. 천둥 (4월 16일) 19.06.28 66 0 7쪽
48 43화. 19.06.27 114 0 7쪽
47 42화. 옥탑방 (4월 15일) 19.06.26 42 0 7쪽
46 41화. 상가 (4월 15일) 19.06.24 47 0 8쪽
45 40화. 어제 (4월 15일) 19.06.22 56 0 7쪽
44 외전 4. 누군가의 기억 III 19.06.21 56 0 7쪽
43 39화. 유리파편 (4월 15일) 19.06.20 60 0 7쪽
42 38화. 어제라는 이름의 마약 (4월 14일) 19.06.19 57 0 7쪽
41 37화. 허공 (4월 14일) 19.06.18 73 0 7쪽
40 36화. 생명선 (4월 14일) 19.06.15 58 0 7쪽
39 35화. 누군가의 기억 II 19.06.15 55 0 7쪽
38 34화. 꿀 (4월 14일) 19.06.14 125 0 7쪽
37 33화. 라면 (4월 14일) 19.06.13 59 0 7쪽
36 32화. 신체절단 (4월 13일) 19.06.11 58 0 7쪽
35 31화. 날붙이 (4월 13일) 19.06.10 27 0 7쪽
34 30화. 청개구리 (4월 12일) 19.06.08 96 0 7쪽
33 외전 3. 누군가의 기억 I 19.06.07 70 0 7쪽
32 29화. 동거 (4월 11일) 19.06.06 88 0 7쪽
31 28화. 토트 (4월 11일) 19.06.05 75 0 7쪽
30 27화. 첫 경험 (4월 11일) 19.06.04 103 0 7쪽
29 26화. 빛먼지 (4월 10일) 19.06.04 70 0 7쪽
28 25화. 진동 (4월 10일) 19.05.30 56 0 7쪽
27 24화. 꽃구경 (4월 9일) 19.05.29 52 0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