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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콘크리트를 비출 때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렛텐
작품등록일 :
2019.05.02 18:23
최근연재일 :
2019.07.08 23:02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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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글자수 :
172,380

작성
19.07.0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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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46화. 의미 (4월 17일)

DUMMY

== Date 04.17 ==


그렇게 정말 희한한 경험을 하고나니 뭔가 할 게 없어졌다. 어제자 일기도 다 써버려서 더 이상 뭐 글 쓸만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밥을 먹자니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자니 비는 세차게 오고... 그래서 가만히 거실 소파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재즈 음악을 듣고있자니... 이게 밖에가 어둡기도 하고 서늘하기도 하고 하니까 이게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꾸벅 꾸벅 졸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또 다시 내 자신 A과 내 자신 B가 서로 다투게 되었다.

내 자신 A는 '낮잠 자는게 뭐 어쨌다고? 그냥 푹 자버려~' 이러고 있고, 내 자신 B는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한다고? 너 그러다가 나중에 진짜 후회한다?' 이러고 있는데, 마치 만화에서나 볼 법한 천사와 악마가 옆에서 다투고 있었다.

꾸벅꾸벅 졸다보니 이거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 내 자신 B의 말이 맞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허비한다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좀 더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나는 결국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로가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어푸, 어푸,

흐아아.. 세수를 하고나니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듯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씻기지 않는 피로함...

아... 아무래도 오늘은 낮잠을 자지 않으면 안되려나... 싶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던 그 순간, 갑자기 4층에 피아노 학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아노 학원... 그냥 자고 싶은데 굳이 가야하나 싶었지만 차라리 자는 것에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피아노라도 치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내 귀에 속삭인 듯이 말이다.

...뭐, 어차피 팔도 다시 자라서 다시 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면 연습을 하고, 또 그렇게 피아노를 치고 나서도 졸리면 이제 그 다음에 낮잠을 자자. 그런 마음이 들었기에, 나는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 우산과 촛불, 라이터를 가지고 피아노 학원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피아노 학원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피아노 학원에 있는 모든 책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야 당연히 내가 그 피아노 가게에서 연습했던 그 곡의 악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여기 책장 뒤져보고~ 위에 있는 서랍장에도 뒤져보고~ 피아노 위에 올려져있는 악보집들 중에 그런게 있는지 둘러보고~ 그렇게 한 20분 정도 소비했으려나, 응. 없었다. 역시나 그 악보.

하긴... 피아노 학원이라고 해서 모든 학원이 모든 악보들을 구비해놓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쩔 수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일단 내가 외우고 있는 데까지 연습을 하고, 그리고 나서 이제 막힌다 싶으면 그냥 여기 학원에 있는 다른 악보들을 가지고 연습해야겠다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한 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 1시간 정도 쳤을 때였나, 왜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분명히 내가 피아노를 치고 연습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리 쳐봐도 재미가 나지 않았다. 아니, 조금 정확히 말하자면 피아노 치는 거 정말 좋아하고 재밌는데... 왜인지는 몰라도 그 순간 만큼은 정말 피아노를 치는 것에 대해서 싫증이 나려했다. 곡이 맘에 안들어서 그런가? 하는 마음에 여러 악보들을 펼쳤다가 접었다가하며 연습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문제는 아닌 듯 싶었다.

그렇게 나는 결국 피아노 치던 것을 멈추고 그냥 비가 내리는 창문 밖을 보기 시작했다. 눈 앞에 피아노가 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치지 않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그저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듣고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멍때리며 앉아있자니 내가 지금 왜 피아노를 치고 있는가에서 대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피아노를 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치고 있는가.

만약에 나를 위해 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의미가 있는 행동인걸까, 내가 이렇게 피 땀나도록 연습한다고 해도 과연 내 연주를 듣고 알아봐주는 이가 있을까, 내가 이렇게 연습하고 연주까지 완성한다고 해도 내가 소멸되고 사람들에게 잊혀져 버린다면, 아니. 어쩌면 나를 포함한 이 세계, 이 곳 자체도 잊혀져버린다면 과연 의미는 있는걸까.

하지만, 만약에 들어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내가 연주한 어떤 곡을 누군가가 잊지 않고 기억해준다면, 그 곡으로 인하여 누군가 한 명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으아, 머리 아파라. 요즘 따라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매우 부정적인 생각들 말이다.

아무래도 말로만 듣던 우울증... 비슷한거려나? 하긴, 정말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났는데 미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

내가 이 곳에 오고 나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사람이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백화점 무너져서 하마터면 백화점에 깔려 죽을 뻔 했지, 갑자기 하수구에 빠져서 나오지도 못하고 9시간인가 계속 답답한데에서 돌아다녔지,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서 팔 잘렸지, 어느 순간 경고도 없이 갑자기 땅이 한 순간에 가라앉아 버려서 집도 사라졌지, 언제나 투닥거리며 친하게 지낼 줄로만 알았던 놈도 어디론가 가버렸지, 자고 일어나니까 발에 유리파편이 박혀있어서 그거 빼낼려고 발 쨌지, 이젠 꿈에서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 어휴... 정말 스펙타클하기 짝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면 이미 미쳐버리고도 남았으려나?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다행히 우울증정도로만 그쳐서 다행이다. 뭐, 우울증도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라서 머리 아플 때마다 진통제같은거 먹으면 편안~해지지만 말이다.

휴, 그래도 이렇게 우울하고 머리아프고, 또 부정적인 생각들이 온통 머리를 헤매고 뒤집어 싸매고 있어도 마인드 컨트롤, 그래.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할 수 있는 연습을 하자. 그래, 응.

근데 어차피 곧 살 날 얼마 안남았는데 굳이 이걸 할 필요가... 아니다. 굳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려 하지 말자.

어차피 그렇게 생각해봤자 별 의미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왠지 모를 우울한 기분과 부정적인 생각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냥 오늘 피아노 연습은 여기까지하고 접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 쯤, 머릿속에서 어느 한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토트놈의 얼굴.


...그래, 그러고보니 토트놈에게 내가 연습한 이 곡을 들려준 적은 없었구나.

만약에 나중에 만나게 되어 내가 녀석을 앉히고 연주를 하게 될 날이 오게 되면 내가 열심히 연습한 이 곡으로 녀석의 코를 눌러줄테야.

오직 토트놈을 깜짝 놀래켜주겠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나는 다시 피아노 뚜껑을 열고 그 곡을 연습해 나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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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독일 쾰른 왔습니다 (~7/16까지 휴재) 19.07.12 33 0 -
55 외전 5. 누군가의 기억 IV 19.07.08 35 0 7쪽
54 49화. (4월 20일) 19.07.06 32 0 7쪽
53 48화. 쳇바퀴 (4월 18일) 19.07.05 35 0 7쪽
52 47화. 19.07.03 34 0 7쪽
» 46화. 의미 (4월 17일) 19.07.02 38 0 7쪽
50 45화. 개비 (4월 17일) 19.06.30 69 0 7쪽
49 44화. 천둥 (4월 16일) 19.06.28 67 0 7쪽
48 43화. 19.06.27 114 0 7쪽
47 42화. 옥탑방 (4월 15일) 19.06.26 42 0 7쪽
46 41화. 상가 (4월 15일) 19.06.24 47 0 8쪽
45 40화. 어제 (4월 15일) 19.06.22 56 0 7쪽
44 외전 4. 누군가의 기억 III 19.06.21 56 0 7쪽
43 39화. 유리파편 (4월 15일) 19.06.20 60 0 7쪽
42 38화. 어제라는 이름의 마약 (4월 14일) 19.06.19 58 0 7쪽
41 37화. 허공 (4월 14일) 19.06.18 73 0 7쪽
40 36화. 생명선 (4월 14일) 19.06.15 59 0 7쪽
39 35화. 누군가의 기억 II 19.06.15 56 0 7쪽
38 34화. 꿀 (4월 14일) 19.06.14 126 0 7쪽
37 33화. 라면 (4월 14일) 19.06.13 59 0 7쪽
36 32화. 신체절단 (4월 13일) 19.06.11 59 0 7쪽
35 31화. 날붙이 (4월 13일) 19.06.10 28 0 7쪽
34 30화. 청개구리 (4월 12일) 19.06.08 97 0 7쪽
33 외전 3. 누군가의 기억 I 19.06.07 72 0 7쪽
32 29화. 동거 (4월 11일) 19.06.06 88 0 7쪽
31 28화. 토트 (4월 11일) 19.06.05 75 0 7쪽
30 27화. 첫 경험 (4월 11일) 19.06.04 104 0 7쪽
29 26화. 빛먼지 (4월 10일) 19.06.04 71 0 7쪽
28 25화. 진동 (4월 10일) 19.05.30 56 0 7쪽
27 24화. 꽃구경 (4월 9일) 19.05.29 53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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