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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콘크리트를 비출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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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텐
작품등록일 :
2019.05.02 18:23
최근연재일 :
2019.07.08 23:02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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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2,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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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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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4화. 꽃구경 (4월 9일)

DUMMY

-- Date 04.09 --


자, 메뉴 선정 먼저 해볼까.

일단 도시락 통이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1층에는 밥, 2층에는 반찬, 3층에는 후식으로 먹을 것들, 이렇게 구성하면 되겠지.

흐, 내 손으로 도시락을 싸게 되는 그런 날이 올줄이야...

원래 어디 피크닉이라던가 소풍이라던가 어디갈 때에는 그냥 김밥이 제격인데... 아무래도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생각보다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여건이 안 될 뿐더러 무엇보다 지금 김이 없다. 물론 대형마트에 있긴 한데, 그걸 먹었다가는 건너면 안될 강을 건너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서 김밥을 싸는 것 보다 그냥 밥과 반찬, 이렇게 싸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싸보려고 한다. 솔직히 뭐가 더 효율적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앗, 이야기가 샜다. 메뉴 선정... 일단 1층에는 밥을 넣는데, 기름이랑 소금이랑 해서 살짝 간을 한 밥을 넣는다. 밥은 백화점에서 가져온 밀봉된 밥이고 이 기름은 참기름인가 들기름인가 뭔진 모르겠는데 뭔가 향은 꼬소꼬소한 냄새가 나는게 밥이랑 해서 먹으면 맛있겠지 싶어서 넣는다.

그렇게 1층 밥은 됐고, 다음은 2층 반찬.

반찬은 대형 마트에서 가져온 레토르트 데리야끼 치킨, 미트볼, 소세지... 엥? 이거밖에 없나? 랄까, 전부 고기 가공류... 쓰읍, 뭔가 채소라던가 과일같이 좀 비타민이 들어있는 놈도 먹고싶은데...

백화점에서 가져온 것 중에 반찬으로 할 만한게 없으려나? 흠... 피클있고... 오, 오리훈제 발견! 그 외에 남은 것들은... 피자, 크림치즈 프레첼 그런 거 밖에 없네... 어쩔 수 없지. 뭔가 신선한 채소류가 없는게 아쉽긴 하지만 그냥 이렇게라도 싸가야지. 좀 이따가 도시락 까먹다가 정 채소가 먹고싶으면 옆에 자라있는 잔디나 뜯어먹든지 해야지...

흠흠, 3층 디저트칸에는 무얼 넣을까 하다가 아까 봤던 크림치즈 프레첼, 그리고 소형 머핀 2개를 넣었다.

자자, 이제 메뉴 선정도 다 했으니 잠시 일기장을 내려놓고 나는 준비를 하러 가야겠다.


흐으, 겨우 도시락도 다 쌌고 설거지라던가 뒷정리도 완벽하게 끝냈다.

이제 돗자리랑 도시락이랑 이온음료까지! 아, 앉아서 그림 그릴만한 것들도 가져가면 좋으려나. 그럼 종이에다가 연필... 잠깐만, 그러면 이것들 다 어떻게 들고가지...? 흠...

그렇게 이것들을 다 어떻게 가져가나 생각의 늪에 빠졌다. 도시락이랑 돗자리 빼고 다 냅두고 가? 아니면 차라리 두 번 왔다갔다 할까? 뭔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캐리어같이 뭔가에 넣고 끌고 다닐 수 있는게 필요한데...

음? 넣고 끌고 다녀?

아 맞다, 생각해보니 대형마트 쇼핑카트가 있었지? 나 참, 대형 마트에 널리고 널린게 쇼핑카트인데 그게 지금에서야 생각나다니, 나도 참...

그러면은 카트에다가 도시락이라던가 돗자리라던가 실어야겠다.

그리고 또 뭐 실을만한게 있으려나... 흐음...


그르르르륵, 그르르르륵,

나는 쇼핑카트를 끌며 아까 봤던 그 벚꽃나무가 잔뜩 펴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고작 3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바람이 많이 불었나본지, 잔디밭 위에 떨어져 있는 벚꽃잎이 마치 춥디 추운 한겨울에 소복하게 쌓인 눈 마냥 한가득 쌓여있었다.

벚꽃나무 바로 옆에 쇼핑카트를 세워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도 꺼낸 다음에... 나무를 등대고 푸딩이를 앉혔다.

응? 왜 푸딩이를 데리고 왔었냐고? 그야 당연히 혼자서 꽃구경하면 너무 외로워서... 뭔가 그래도 푸딩이가 있으면 그냥 외롭지 않지 않을까 해서 데려왔다. 굳이 쇼핑카트를 끌고 온 이유도 이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찌됐든 푸딩이까지 앉혔으니, 도시락을 까먹어볼까? 하며 도시락을 까기 시작했다.

솔직히 돗자리 앉자마자 도시락먹자~ 하는게 좀 너무 내가 돼지같이 느껴져서 그렇긴한데,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꽃구경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일단 밥 먼저 먹자구.


드디어 곧 밥 먹을 생각에 콧노래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렇게 흥얼흥얼거리며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는데, 세상에.


뚜두룻 뚜두두~ 뚜껑 열겠습니다~ 하나... 두울... 세엣...! ...에? 으악, 뭐야 이거...


반찬을 담아놨던 통 안에 있는 반찬들이 전부 뒤죽박죽섞여서 짬뽕이 되어있었다.

도시락 반찬통도 그렇고 머릿속도 그렇고 완전 카오스 그 자체... 이걸 어쩜 좋나 싶었다.

그렇다고 이 아까운 것들을 안 먹을 수는 없는데... 싶었다.

아니, 그나저나 이게 막 잡고 부여 흔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짬뽕이 되어버린거야-??

그 때는 기껏 힘들게 만들었는데 다 흐트러져서 멘탈에 금이 살짝 갔어서 그냥 화나기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오는 길에 쇼핑카트가 심하게 덜그덕 덜그덕댔던 것 같다. 아마도 그게 원인이었겠지. 아마도...


흐유... 어쩔 수 없지. 그냥 밥이랑 넣고 다 비비는 수 밖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반찬통에다가 밥을 다 때려박았다. 어차피 지금 미트볼 소스랑 데리야끼치킨 소스가 반찬통을 다 잡아먹어가지고 이렇게 먹으나 저렇게 먹으나 똑같을테니까, 그냥 차라리 비벼먹기로 한 것 이었다.

밥이랑 스까스까해서 한 입 딱 먹으니까, 응 생각하는 그 맛 맞다. 딱 생각했던 그 맛이었다.

그래도 다행인게 밥에 넣은 기름의 고소한 향이 이 카오스한 맛을 전체적으로 밸런스있게 잡아주었고, 간간히 씹히는 피클이 마치 김치같은 역할을 해주어서 뭔가 이렇게 단조롭고도 질리는 맛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찌저찌 싸온 도시락을 다 먹고나니까 노곤노곤해지면서 뭔가 벚꽃향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 했다. 아니 애초에 벚꽃에 무슨 향기가 있던가...? 흠...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이게 노곤노곤하니까 벚꽃나무 그림그리겠다고 가져온 종이도 내팽겨쳐버리고 그냥 딱 자고 일어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에 이런 포근하고도 개운한 느낌, 오랜만인듯 싶었다. 그냥 그 순간 만큼은 너무나도 행복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꿈과 낭만이 있던, 학업에 치이지 않던, 그런 순수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 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왠지 모를 편안함을 만끽하며 누워 있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저녁 7시를 넘어가기 시작했고, 연분홍색이던 벚꽃들은 노을지는 태양의 찬란한 주황색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기에,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가져온 짐을 쇼핑카트에 싣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일 당장 벚꽃이 진다고해도, 내년의 언젠가는 다시 벚꽃이 피어나겠지.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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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독일 쾰른 왔습니다 (~7/16까지 휴재) 19.07.12 32 0 -
55 외전 5. 누군가의 기억 IV 19.07.08 35 0 7쪽
54 49화. (4월 20일) 19.07.06 32 0 7쪽
53 48화. 쳇바퀴 (4월 18일) 19.07.05 35 0 7쪽
52 47화. 19.07.03 34 0 7쪽
51 46화. 의미 (4월 17일) 19.07.02 37 0 7쪽
50 45화. 개비 (4월 17일) 19.06.30 69 0 7쪽
49 44화. 천둥 (4월 16일) 19.06.28 67 0 7쪽
48 43화. 19.06.27 114 0 7쪽
47 42화. 옥탑방 (4월 15일) 19.06.26 42 0 7쪽
46 41화. 상가 (4월 15일) 19.06.24 47 0 8쪽
45 40화. 어제 (4월 15일) 19.06.22 56 0 7쪽
44 외전 4. 누군가의 기억 III 19.06.21 56 0 7쪽
43 39화. 유리파편 (4월 15일) 19.06.20 60 0 7쪽
42 38화. 어제라는 이름의 마약 (4월 14일) 19.06.19 58 0 7쪽
41 37화. 허공 (4월 14일) 19.06.18 73 0 7쪽
40 36화. 생명선 (4월 14일) 19.06.15 58 0 7쪽
39 35화. 누군가의 기억 II 19.06.15 56 0 7쪽
38 34화. 꿀 (4월 14일) 19.06.14 126 0 7쪽
37 33화. 라면 (4월 14일) 19.06.13 59 0 7쪽
36 32화. 신체절단 (4월 13일) 19.06.11 58 0 7쪽
35 31화. 날붙이 (4월 13일) 19.06.10 28 0 7쪽
34 30화. 청개구리 (4월 12일) 19.06.08 96 0 7쪽
33 외전 3. 누군가의 기억 I 19.06.07 71 0 7쪽
32 29화. 동거 (4월 11일) 19.06.06 88 0 7쪽
31 28화. 토트 (4월 11일) 19.06.05 75 0 7쪽
30 27화. 첫 경험 (4월 11일) 19.06.04 104 0 7쪽
29 26화. 빛먼지 (4월 10일) 19.06.04 70 0 7쪽
28 25화. 진동 (4월 10일) 19.05.30 56 0 7쪽
» 24화. 꽃구경 (4월 9일) 19.05.29 53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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