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타기
퍽!쾅!
남자의 머리가 수박처럼 깨어지고, 살과 뼈가 사방으로 비상했다.
후드득!
안개처럼 사방으로 흩날린 남자의 피를 본 종말의 수호자들은 바로 침묵했고, 멀리서 그 장면을 목격한 다른 헌터들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이제호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진폭권,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이며, 그를 실망하게 한 적 없는 스킬이 다른 이들에게 확실한 우위를 보여주었다.
“멍청하게 아귀다툼을 버릴 거면 꺼져라, 나와 함께할 사람은 모여라.”
이들을 다 안고 가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강한자만 보면 벌벌 떨면서 뒤통수를 칠 생각하는 이들이 종말의 수호자이니, 거를 놈들은 걸러야 했다.
당황한 얼굴의 ‘빛의 성좌’의 헌터들, 하지만 이내 신색을 되찾고는 저들끼리 의견을 나눴다.
“저놈들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한데?”
“스케빈져들 아니야?”
스케빈저, ‘종말의 수호자’와는 또 다른 헌터들의 원수들, 던전에서 헌터들의 뒤통수를 치고, 강도, 살인을 업으로 하는 헌터들의 총칭이다. 던전 안에서의 살인은 웬만하면 모른 척하는 것이 불문율, 던전이 사라지면 증거나 시체도 남지 않기 때문에 괜한 살인멸구의 대상이 되기 싫으면 지키는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스케빈져가 상대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은원관계나, 분노에 대한 다툼이 아닌 금전적인 이유로 일어난 다툼은 언제든 대상이 변할 수 있기에 헌터들의 척살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스케빈져들이 저렇게 몰려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습니다. 보니까. 요즘 뉴스에 나온 종말의 수호자인가 종말의 고자인가 하는 놈들 아닙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이동하죠, 어차피 목적이 같다면 결국 만날 놈들, 괜히 벌써 힘 빼지 맙시다.”
“그런데 도전과제가 다들 같은 거 맞습니까?”
“황제릉의 황금옥을 지배해라 입니다. 다들 같은 거 맞지요?”
비슷한 듯 다른 빛의 성좌와 빛을 먹는 성좌의 도전과제, 목적은 같으니 금방 10개 정도의 무리가 만들어져 다툼없이 황색의 먼지 바람 속으로 들어갔다. 그중 가장 큰 무리는 이제호가 이끄는 종말의 수호자 무리였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황색의 먼지 바람 속에서는 강력한 빛과 바람, 불과 얼음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X발 이건 뭐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람 속에서 날아드는 망지원의 주먹과 영체 공격은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끔찍한 고통과 비참한 죽음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명의 헌터 중 순순히 죽는 이는 없었다. 특히 빛의 성좌에게 후원을 받는 헌터들은 영체 공격에 상당히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또한 종말의 수호자들은 기본적으로 독종들이라 그런지 달려드는 망지원들보다 더 지독하게 달려들어 싸웠다.
**
“으악 죽는 줄 알았다.”
먼지 바람을 빠져나온 종수가 외친 첫마디. 윤희도 거기에 동의하며 자리에 엎어졌다. 서진은 피칠갑을 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피는 중이었다. 주변의 풍경은 어느 틈에 가을날의 오솔길로 바뀌어 있었다. 붉은색, 노란색의 나뭇잎이 주렁주렁 달린 노령의 거목들이 오솔길을 감싸고 있는 풍경은 아름답다 말하기 충분했다.
망지원의 독기 가득한 울음소리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종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그는 더욱 놀랐다. 거기에 있던 먼지 바람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오솔길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환상을 얕잡아 보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한참을 고생하자, 환상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한 걸음도 움직이지 마.”
서진의 경고에 앞으로 나가려던 윤희는 그대로 멈춰야 했다. 어째서냐는 물음이 얼굴에 나타나자 서진은 땅을 발로 찼다. 당연히 휘날려야 할 낙엽이나 먼지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돌조각 하나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낙엽 속으로 사라졌다.
“이 앞은 낭떠러지야.”
“끝내주게 위험한 환상이네요.”
서진은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전해지는 감각으로 벼랑의 끝을 찾았다.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천천히 벼랑 끝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저도 따라가야 하나요?”
종수가 아주 당연한 질문을 던지자 서진이 말했다.
“싫으면 여기서 죽던가.”
“형 막 날아다닐 수 있잖아요.”
“땅에서 살짝 뜰 수 있는 게 비행이라 생각하니?”
“그럼 뭐에요?”
“길고 긴 도약은 어떠냐?”
어이없는 대답이었지만 종수도 결국 서진의 뒤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윤희는 이미 서진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는 중이니, 혼자 남기 싫으면 빨리 절벽에 매달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사라지는 환상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이내 찾아오는 어둠은 기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리고 나타난 발아래로 보이는 100m는 되어 보이는 낭떠러지, 종수는 오금이 저렸고, 윤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야, 이건 환상이 아니다.”
“그건 더 좋지 않은 소식인데요.”
“아니야, 더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예?”
“옆을 봐봐,”
절벽에는 수십 마리의 망지원이 조용히 매달려 있었다.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린 놈부터, 한 손으로 절벽에 손가락을 박아 넣고 서진 일행을 향해 히죽 웃으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는 놈까지 다양했다.
‘어떡하죠?’란 질문을 종수가 던지기도 전에 서진은 망지원의 손놀림을 비웃을 정도로 빠르게 손과 발을 놀려 절벽을 내려가고 있었다. 윤희도 마찬가지였다.
“이 치사한 사람들아!”
“넌 왜 눈치가 없니?”
종수의 절규와 윤희의 타박, 그리고 열심히 위기를 벗어나려는 서진의 경주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 경주에는 망지원도 참여했다. 절벽을 두 손과 두 발로 내달려 ‘휙!’ 종수에게 날아드는 망지원 한 마리가 있었다.
“꺼져!”
살기 위한 인간의 의지는 눈치 없는 종수에게 놀라운 전투력을 부여했다. 번개처럼 내지른 발길질에 망지원은 허공으로 밀려나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뭐 영체화 해서 죽지는 않겠지만, 꽤 놀랐을 것이라 보았다. 윤희는 종수와 다른 선택을 했다. 과감하게 손을 놓아 자유낙하를 한다. 그리고 속도가 붙기 전에 과감하게 절벽에 손을 찔러 넣는 것이다.
우두둑!
“꺅!”
물론 손가락이 부러지고 손톱이 벌어지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녀의 독기는 서진도 소름이 돋을 만큼 대단했다.
“저런 무식한 여자를 봤나.”
영체화 하고 달려든 망지원 한 마리가 서진이 휘두른 오러소드에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졌다.
“영혼도 중력에 영향을 받나요?”
“영체화 하는 거지, 영혼은 아니니깐.”
“뭔가 설명이 되지 않으면서도, 이해는 되네요.”
보통 100미터 절벽을 내려가려면 숙련자도 한참이 걸리지만, 헌터인 그들은 뛰어난 완력과 무식한 유연성을 무기로 단 14분 만에 절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땅에 내려서기 무섭게 달려든 4마리의 망지원의 목을 떨군 서진은 일단 무식한 방법으로 절벽을 내려온 윤희를 살폈다. 그녀의 손은 엉망진창이었다.
“야 누가 이렇게 무식하게 하래? 손톱 어디 갔어?”
“그럼 근접전투를 못 하는 제가 어떻게 싸워요.”
“장난하냐? 완력이 400이 넘으면서 뭔 소리 하는 거야? 절벽에 손가락 박아넣을 힘은 있고, 달려드는 원숭이 목에다 손을 찌를 힘은 없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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