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안기원 준위는 신태성 대위가 훈장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곤 타고 온 은색 SUV를 타고 돌아갔다.
한 달이 지났을까, 신태성 대위의 퇴원일에 맞춰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훈장 수여식이 있었다. 민팀장의 배려로 우리 민간인 3인방은 신태성 대위의 훈장 수여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브라보 중대원들 뿐이었지만 여단장이 직접 와서 신태성 대위에게 훈장을 수여하였다. 신태성 대위는 많이 긴장한 듯 보였지만 수여식은 무사히 끝났다.
기념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신태성 대위는 우리 민간인 3인방에게 어서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으레 군대식 사진 촬영이 그렇듯 마지막은 파이팅 포즈로 촬영을 마쳤다.
병상 생활을 하면서 살이 좀 붙은 신태성 대위는 홀쭉했던 볼에 적당히 살이 붙어 한층 더 건강해 보였다. 신태성 대위는 서둘러서 알파 중대가 있는 영등포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를 태워가기 위해 알파 중대 1호 차가 왔지만 신태성 대위는 순찰차에 타서 돌아가겠다며 순찰차 뒷좌석에 올랐다. 우리는 영등포역으로 돌아오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신태성 대위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물어보면 우리가 대답해 주는 식이었다. 신태성 대위는 오랜만에 중대장직에 복귀한다는 사실에 긴장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 들떠있는 것 같아 보였다.
영등포역에서는 신태성 대위의 복귀를 축하하는 소소한 파티가 있었다. 민팀장이 어디서 구해왔는지 시원한 맥주를 간부 병사할 것 없이 한 캔씩 나눠주며 신태성 대위에게 지휘권을 넘기기 전 마지막 명령이라고 말하더니 취하지 않는 선에서 즐기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다들 오랜만에 마신 술에 취기가 도는지 한 캔도 제대로 마시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취기가 돈 신태성 대위는 자신의 빈자리를 수습해 준 민팀장에게 참 고마웠다고 말하며 그를 끌어안아 주었다. 민팀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품에 안긴 신태성 대위의 등을 두드려 줬다.
대부분 자러 돌아간 새벽이 넘어간 시간 취기가 조금 가셨는지 정신을 차린 신태성 대위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엎어져 잠들어있는 2소대장을 보곤 내게 1소대장이 안 보인다는 말을 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얼어버렸다. 뭔가 이상하단 걸 눈치챘는지 신태성 대위는 내게 계속 1소대장은 어디 있냐며 물었다.
신태성 대위도 언젠간 알아야 할 사실이었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김포 공항 포위전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며 1소대장이 타고 있던 장갑차가 대전차무기에 피격당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신태성 대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내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더니 숙소로 절뚝거리며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지휘 통제실에는 숙취에 괴로워하는 간부들이 모여있었다. 신태성 대위는 민팀장에게 하루만 더 알파 중대를 맡아 달라라고 부탁했다. 민팀장은 흔쾌히 신태성 대위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신태성 대위는 우리 민간인 3인방에게 김포 공항에 데려달라 부탁했다. 나는 조용히 민팀장을 바라보았다. 민팀장과 간부들은 눈치챘는지 숙연한 분위기였다.
순찰차 조수석을 신태성 대위에게 양보하고 나는 영웅씨와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신태성 대위는 김포 공학에 가는 길에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나도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하늘은 매섭게 비를 쏟고 있었다.
신태성 대위는 쏟아지는 비도 아랑곳 않고 완파되어 까맣게 타버린 K200 장갑차 잔해를 보며 오열을 했다. 잔해에 앞에서 불편한 다리 때문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는 신태성 대위에게 다가가 조용히 어깨에 손을 올려 그를 위로했다. 신태성 대위는 어제 수여받은 훈장을 꺼내 잔해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아마 신태성 대위는 이때즘 전역을 마음을 먹은 게 아닐까 싶다. 신태성 대위는 서울 탈환 작전이 완료되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역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계엄령이 선포되었기 때문에 그의 전역은 반려되었다.
군은 서울 탈환이 끝나자 다른 도시들도 속속들이 탈환하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좀비들은 부패가 심하게 진행되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김포 공항에서처럼 무장한 폭도들이 저항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련한 군인들이 투입되어 저항하는 폭도들을 제압했다고 들었다. 아마도 민팀장과 그의 팀원들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난민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난민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한동안은 도시에 남은 시체 등을 정리하는 정비 작업에 민간인들이 투입되었다.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군인과 민간인이 함께 힘을 합치자 도시는 빠르게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겨울이 되었다. 도시 안팎으로 외톨이 좀비가 심심치 않게 출몰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이른 게 아닐까 싶었지만 정부는 서둘러서 계엄령을 해제했다. 계엄령이 해제되자 신태성 대위의 전역 요청도 받아들여졌다.
신태성 대위는 고향인 동해가 보이는 바닷가 마을로 내려간다고 말했다. 요즘도 잊을만하면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영웅씨는 그동안의 노고가 경력으로 인정되어 행정안전부에 새로 생긴 좀비와 관련된 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바쁜 것을 보면 아직 한반도에 좀비와 관련된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듯했다.
가연씨는 경찰 복직을 거절하였다. 완전한 민간인이 된 그녀는 입이 닳도록 말하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골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히키코모리 백수였던 나는 아무도 예상 못 한 재난사태에 본의 아니게 좀비 전문가로 활동했다. 이제 사람들에게 좀비 전문가는 필요하지 않다. 그동안의 노고의 보상으로 받기로 한 연금을 받으며 은퇴 생활을 즐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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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기도 회고록도 아닌 이상한 노트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나가니 가연씨가 두꺼운 이불을 두르고 대청마루에 있는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나는 내리는 눈을 감상하고 있는 가연씨 옆으로 가 앉았다. 가연씨는 미소 지으며 왼팔을 들어 두르고 있던 이불을 나누어주었다. 나는 그녀의 품에 안기며 그녀의 볼록해진 배에 키스를 했다. 그리곤 나를 내려다보는 가연씨의 입술에도 가볍게 키스하였다.
그녀의 품에 안겨 눈을 감고 있는데 가연씨가 나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눈을 뜨자 담벼락 너머 저 멀리서 절뚝거리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가연씨 품에서 나와 대문 옆에 기대 놓은 도리깨를 조용히 쥐어들고 대문을 나섰다.
- 작가의말
독자님들! 좋은 주말 보내셨나요?
2020년 여름부터 연재되었던 ‘좀비:전문가’가 4개월의 연재 끝에 막을 내렸습니다!독자님들 곁에 오래 머물며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학업과 일을 병행하다 보니 저 스스로의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독자님들과 소통과 조용히 오르는 선호작, 조회수를 보며 많이 행복했고 항상 큰 힘을 받으며 연재해왔습니다.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저는 늘 그랬듯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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