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 생존자 수색(2)
“대형 유지하고 다가오는 것들은 뭐가 되었든 모조리 사살한다.”
나는 당장이라도 대열을 이탈해 가연씨와 영웅씨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빠져나가게 된다면 공격전인 A 대열의 후방이 완전히 뚫려 버리게 된다. 우리에게는 K7 소음기관단총은 없었지만 사스마타가 있었다. 이것을 이용해 달려온 러너를 제압하고 가연씨의 권총으로 끝장내면 되었다.
우리 민간인 삼인방은 사스마타를 앞으로 뻗어 어둠을 뚫고 달려들 러너를 대비했다. 그때 사방에서 러너와 워커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특전사 대원들은 신속하게 처리하기 시작했지만 느리지만 머리가 아니면 죽지 않는 튼튼한 워커 뒤에 교묘하게 숨어 접근하는 러너들 때문에 점점 거리가 좁혀졌다.
후방도 상황이 안 좋긴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예상대로 한두 마리의 러너들이 대열을 돌아 후방의 민간인 3인방에게 굉음을 내며 곧바로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러너의 상체에 사스마타를 끼우자 영웅씨가 러너의 다리에 사스마타를 걸더니 괴력을 내어 러너를 넘어뜨렸다. 그러자 가연씨가 권총으로 바닥에 엎어져서 허우적거리는 러너의 머리통을 쏴서 확인 사살을 하였다. 뒤늦게 뛰어온 녀석도 같은 방법으로 처리했다. 가연씨가 소리쳤다
“이제 실탄은 2발 남았어요!”
나는 급하게 조끼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가연씨에게 건네 주었다. 문제는 이제 권총 소리 때문에 워커고 러너고 몰려오는 건 한순간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슬슬 빠져나가야 한다. 나는 박민웅 대위에게 소리쳤다.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개죽음뿐입니다. 빨리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해요!”
그러자 박민웅 대위는 나를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이대로 진압하면 된다고! 갈 꺼면 혼자가!”
도대체 박민웅 대위가 뭘 위해 그리고 뭘 믿고 이토록 고집을 피우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나와 박민웅 대위가 실랑이하는 와중에도 곳곳에서 러너들의 찢어지는 절규 소리가 들려왔다. 내 생각보다도 더 많은 러너들이 있는 듯했다.
박민웅 대위의 말대로 우리라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우리가 도망가면 여기 있는 특전사 대원들은 뒤가 뚫려 전멸이다. 박민웅 대위 이 자식은 우리가 못 갈 걸 알고서 더 고압적으로 구는 듯했다.
그때 잠시 정적이 우릴 감쌌다. 멍청한 몇몇 워커가 우릴 향해 걸어오고 있긴 했지만 러너들의 공격이 확실하게 멈추었다. 분명 녀석들의 찢어지는 절규 소리로 유추하건대 녀석들은 더 많을 텐데.. 근데 어째서 공격을 멈춘 거지?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때 박민웅 대우가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봐봐 진압하면 된다니까?”
그때 우리의 전방에서 러너들이 끔찍한 절규를 뱉으며 물밀 듯이 몰려서 뛰어오기 시작했다. 특전사 대원들은 사격을 시작했지만 앞에 녀석이 넘어지면 뒤에 녀석이 그 시체를 밟고 계속해서 뛰어왔다. 아무리 사격술이 뛰어난 특전사 대원이라 한들 계속해서 몰려오는 러너의 파도에는 속수 무책이었다.
대열 맨 앞에서 대열을 이끌던 척후병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러너들 속으로 사라졌다. 그다음은 뒤의 2명.. 또 그 뒤의 2명.. 이쯤 되자 대열을 지키고 있던 특전사 대원들도 대열에서 벗어나 물러서기 시작했다. 박민웅 대위가 욕지거리를 뱉으며 대열을 유지하라 꽥꽥 소리 질러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원초적 공포가 특전사 대원들을 덮쳐 버린 것이다. 대열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자 민간인 3인방은 너 나 할 것 없이 사스마타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무빙워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민웅 대위와 특전사 대원들도 우리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우리가 들어왔던 길은 청소를 하며 들어온 터라 다행히 장애물은 없었다. 우리는 어둠 속을 후레쉬 빛에 의지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뒤에서는 간간이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박민웅 대위에 대한 혐오감이 치솟아 올랐다.
이윽고 지하상가 입구까지 달려온 우리는 유리문 너머로 넘어가 유리문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러너들과 씨름하며 간신히 유리문을 잠갔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가연씨 뿐이었다. 가연씨가 괜찮은지 그녀를 붙잡고 한참을 그녀의 몸을 훑어본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가연씨도 내 몸을 구석구석 살피더니 내가 무사한 걸 확인하자 이내 우리는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일단 한시름 놓자 박민웅 대위가 쌍욕을 하며 헬멧을 집어던졌다. 그러더니 자신의 왼손을 부여잡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내가 다가가 그의 왼손을 확인해보자 그는 어느새 왼손을 좀비에게 물려 살점이 뜯겨있었다.
과거 김건혁 상사는 아주 미세한 이빨 자국에도 감염되어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박민웅 대위에겐 유감이지만 박민웅 대위의 상처는 빼도 박도 못한 감염이었다. 나는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박민웅 대위를 쳐다보자 그는 욕지거리를 뱉으며 말했다.
“차량으로 돌아간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특전사 대원들은 다시 A자 모양 대열을 만들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뒤에서 유리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길 기도하며 대열을 따라갔다..
차량에 도착하자 박민웅 대위는 나를 부르더니 자신의 손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감염이 확실한 거죠?”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러게 말 좀 듣지 그랬냐고 한소리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애써 참고 담담히 대답했다.
“네.. 이전에 이것보다 경미한 상처로도 감염된 사례가 있었어요. 유감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박민웅 대위는 별안간 오른손을 뻗어 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벌목도를 뽑아 들었다. 나는 그가 벌목도를 가지고 무엇을 할지 예상하였지만 말리지 못했다. 이윽고 그는 바닥에 손을 집고 벌목도를 자신에 손목에 대보며 연습하는가 싶더니 과감하게 자신의 손목을 내리찍어 손을 절단해냈다. 그러더니 의무관을 불렀다.
“의무관! 토니켓 가져와!”
그러자 토끼 눈이 된 중사 한 명이 품속에서 검은색 지혈대를 꺼내며 그에게 달려가 지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연씨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점심에 먹은 것을 게워냈다.
박민웅 대위의 빠른 치료를 위해 우리는 서둘러 터미널로 돌아갔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중에 순찰차에 탄 우리 민간인 3인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충격이 큰 듯했다. 우리가 터미널에 도착하자 터미널 플랫폼에는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우리를 기다렸는지 신태성 대위가 나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신태성 대위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말했다.
“한씨! 생각보다 늦어져서 걱정하던 참이에요. 별일 없으셨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박민웅 대위는 두돈반에서 내려 의무관의 부축을 받으며 의무대로 급하게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신태성 대위는 표정이 어두워지며 우리 민간인 3인방을 급하게 훑어보았다.
우리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자 그제서야 신태성 대위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보고 경험했던 모든 일을 신태성 대위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신태성 대위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치더니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저런 멍청한 새끼..”
- 작가의말
감염된 부위를 절단해버리는 클리셰를 사용해보았습니다! 박민웅 대위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태풍 바비가 북상하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자님들 잘 예방하셔서 부디 태풍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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