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격투 (18) 52억 따서 체육관 법인 전환
어쩌다 초능력자
41화
우리의 뇌는,
없는 것을 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듯이,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인지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이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시간은 딱 한 가지였겠지만,
미래의 시간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행위자의 행동에서 따라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에
미래를 보았다고 해서,
그 미래를 한 가지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곤란하다.
간혹 예언자들의 예언이 서로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용배 선생님께서 1분 후 미래를 보았다고 얘기해 주시지만,
지금 이 경기를 바꿀만한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제용배 선생님께서 내게 말한다.
“표홍주가 아이 페이크를 쓰고, 자네가 계속 거기에 말려들고 있었네.”
격투기에서 아이 페이크는 아주 중요한 전술이다.
가령, 내가 로우킥을 찰 때마다 상대 선수의 허벅지를 보면,
상대 선수는 내가 로우킥을 찰 때마다 허벅지를 본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인지하게 된다.
처음 몇 번 그렇게 상대 선수에게 인지시켜주다가
상대방의 허벅지를 보면서 하이킥을 차는 것이다.
이런 스킬은 이미 모든 선수들에게 기본이다.
공이 울리고 2라운드가 시작된다.
제용배 선생님 말대로
표홍주는 내 허벅지를 보면서 로우킥을 찬다.
표홍주는, 내 눈을 보면서 몸통을 가격한다.
또한 관중을 보면서 원투스트레이트를 날린다.
또한 레프리를 보면서 사이드킥을 찬다.
또한 천장을 보면서 어퍼컷을 날린다.
자꾸 딴 데를 보면서 나를 공략하는 것이다.
아이 페이크는 경기 도중 어쩌다 한 번 쓰는 것이지,
이렇게 경기 내내 정신없이 쓰는 것은 완전 변칙인 것이다.
녀석이 이렇게까지 변칙 선수였나 싶었다.
나는 계속 녀석에게 가격당한다.
나는 녀석의 공격에 계속 말려들다가, 순간,
아!
홍주 이 녀석이 ‘사팔뜨기’ 초능력자임을 직감한다.
딴 데를 보면서 나를 가격하는 ‘사팔뜨기’ 초능력자.
깨달은 순간,
나는 녀석과 거리를 두고 왼쪽으로 계속 돌면서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껏 녀석의 눈알과 행동이
엇박자인 것을 끊임없이 데이터화해서 기억한다.
가령, 녀석이
눈을 보면 바디블로우
관중석을 보면 원투스트레이트
레프리를 보면 사이드킥
천장을 보면 어퍼컷,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코페르니쿠스식 전술의 전환을 생각해낸다.
녀석이 나를 보는 것은, 녀석이 딴 데를 보는 것이다.
그것은 곧, 녀석이 나를 시야에서 놓쳤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때가 기회가 되는 것이다.
녀석이 내 다리를 보며 테클 들어오는 척하면서 롱훅을 날린다.
흔히 있는 페이크여서, 나는 적절하게 방어한다.
녀석이 관중을 보면서 원투스트레이트를 친다.
아까 겪었던 공격방식이어서, 나는 적절하게 방어한다.
여전히,
양쪽 세컨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기를 한다.
경주승이 ‘슬립’ 초능력을 쏘면,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부젤라를 분다.
두선영이 ‘욕설’ 초능력을 쏘면,
한의리가 ‘욕설방어’ 초능력으로 상쇄시킨다.
순간, 녀석이 나를 보면서 원투스트레이트를 날린다.
이때다.
이 상황이, 녀석이 나를 시야에서 놓친 것이다.
나는 두 팔로 철벽 가드를 하고,
녀석의 원투스트레이트를 도리어 머리로 들이받으며,
이어서 녀석의 목덜미를 향해 오른발 하이킥을 날린다.
정확히 녀석의 턱에 꽂힌다.
녀석은 눈이 녹듯 천천히 다운이 된다.
나는 쓰러진 녀석에게 달려가 팔꿈치 파운딩을 한다.
주먹으로 파운딩을 하면
오픈핑거글러브에 삽입된 칩이 작동되어 빗나갈 수 있으니
팔꿈치로 공격하는 것이다.
녀석의 눈탱이가 시퍼렇게 멍들고 찢어지도록
녀석의 눈탱이에다가 죽어라고 팔꿈치 파운딩을 한다.
경기 내내 ‘사팔뜨기’ 초능력으로 나를 괴롭혀 온
녀석의 눈탱이가 진짜 미웠다.
레프리 스탑으로 이렇게 경기가 끝났고,
이렇게 승리했고,
이렇게 52억의 배당금을 챙겼다.
***
일요일, 오후 9시. 지하 1층 체육관.
서경순 선생님, 연영선 선생님, 제용배 선생님, 나, 김민선, 배아사코, 유미, 이억기, 한의리, 까메오, 사이먼, 가펑클 모두 체육관 매트에 빙 둘러앉아 있다.
간단히 과자와 음료수를 먹고 회의를 한다.
나는 모두에게 말한다.
“요번 경기로 세금 공제하고 약 40억 정도, 통장에 입금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돈으로 이 건물을 사는 데 보태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세인트gym을 ㈜세인트gym으로 법인 전환하려 합니다. 이미 선생님들과 의논을 거쳤고,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이 체육관의 지분을 갖게 됩니다. 방금 카톡으로 보내드린 내용이 주주현황표입니다. 지분율은 기여도와 투자금으로 산정했습니다.”
주주현황표에 작성된 지분율은 이렇다.
민철 50%
연영선 14%
제용배 14%
서경순 3%
김민선 2%
유미 1%
배아사코 1%
이억기 1%
한의리 1%
까메오 1%
사이먼 1%
가펑클 1%
서경순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한다.
“잘했네. 법인 전환하고 건물을 사게 되면, 임대료가 세이브 될 뿐 아니라 임대수익금까지 생기게 되니, 저들과 싸울 안정적인 진지를 구축하는 셈이 되지. 그래, 법인 전환은 언제 하기로 했나?”
나는 답한다.
“다음 주 안에 법인 전환과 건물 매입 둘 다 가능합니다.”
까메오가 말한다.
“오, 관장님. 저한테도 주식을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나이지리아로 돌아 가야 하는데, 그래도 신경을 써 주셨네요.”
한의리가 내게 묻는다.
“그보다 관장님. 저쪽에 두선영이라는 새로운 ‘욕설’ 초능력자가 나타났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답한다.
“‘욕설’ 초능력자는 선천적으로 ‘욕설’ 유전자가 있어야 가능해. 그들은 ‘AGCT’ 염색체에 변이가 생겨 ‘A욕GCT’가 있는 구성원들이니 그 가족은 다 잠재된 욕설 초능력이 있는 거지. 세컨으로 나온 이유가 다 있는 거지.”
이억기가 내게 묻는다.
“그럼 경주승이 ‘슬립’ 초능력이 있는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답한다.
“예전에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 선생님 별명이 ‘인간 수면제’였거든. 그 선생님 수업은 모두를 잠들게 해. 심지어 열외 1명 없이 모두 자고 있는데도 꿋꿋하게 혼자서 수업을 마치셨다는 전설도 있으시지. 경주승이 그분 아들이야.”
이억기가 묻는다.
“네? 아니, 선생님 아들이라는 분이, 그래yes파에 들어갔단 말인가요?”
나는 간단하게 말한다.
“그 지구과학 선생님, 시험지 빼돌려서 학부모에게 팔아먹다가 걸려서 지금 교도소에 있어. 경주승도 ‘슬립’ 초능력으로 여자 성추행하려다가 걸려서 지금 집행유예 중이고······.”
배아사코가 말한다.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이는 건, 과학인 거 같아요. 아니 운명 같아요.”
제용배 선생님께서 말한다.
“이억기 자네는 저들의 초능력이 무엇인지 종류별로 모두 파악해주게. 그래야 우리가 미리미리 대비를 하지.”
이억기가 말한다.
“안 그래도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서경순 선생님이 말한다.
“내가 예상하기로는 모세희우fc를 상장하려는 건, ㈜모세희우 호텔이 법정관리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인 거 같아. 그렇게 되면 채권단은 손해가 막심하니까 손춘기의 말에 휘둘리게 될 거고. 손춘기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걸 막아보겠다며 채권단을 설득하겠지. ‘어차피 상장 폐지되면 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니 이자는 없는 것으로 해라. 대신 무상증자하여 채권을 주식으로 주겠다’며. 그렇게 채권단의 채권이 주식으로 전환되면, 자신들의 지분율이 줄어드니까, 모세희우fc를 상장, ㈜모세희우 호텔과 합병하여 자신들의 지분율을 원래대로 만들겠다는 심보지. 그러니까 채권단에게 원금과 이자는 안 주고 주식으로 조금 나누어 주겠다는 얘기인 거지. 우리는 이것을 막던가, 아니면 이것을 이용하여 우리가 ㈜모세희우의 최대 지분을 차지하거나 해야 하네. 이것이 진짜 싸움이지. 화끈한.”
모두들 멍하니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그러니까,
저들이 모세희우fc를 상장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선생님께서 예측하는 설명은 이렇다.
1. 목적은 채권단의 원금을 합법적으로 소각.
2. 이유는 채권단의 원금을 주식으로 전환하여 주게 되므로, 줄어든 지분을 다시 늘리려는 계획.
3. 방법은
1) 법정관리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흑자전환을 해야 하므로, 채권단에게 이자 탕감 요구.
2) 채권단의 원금을 주식으로 전환.
3) 무상증자하여 채권단에게 주식으로 주게 되면, 자연히 기존 대주주의 지분율이 줄어듦.
4) 그러므로, 모세희우fc를 상장하여 ㈜모세희우 호텔과 합병.
이렇게,
그놈들의 지분율은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고,
채권만 소멸시키려는 계획이라는 게,
서경순 선생님의 예측이시다.
이때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고 현관문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린다.
겁도 없는 녀석들이 지하 체육관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그래yes파 녀석들이다.
빈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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