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키릴장막 아케이드 - 8
컴컴한 새벽하늘 아래, 신비한 키릴장막이 높은 담처럼 빙 둘러싸고 있는 푸른 평원이 펼쳐졌다. 제이의 예상대로 히든벅과 이안은 출구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이안은 또르르 달려와 성난 표정으로 그녀를 다그쳤다.
“제이가 와서 말 안 해줬으면 들어가서 너를 찾을 뻔했어. 제발 한눈 좀 팔지 마. 응?”
“알았어. 근데 지원 아저씨는?”
“양탄자 사러 갔어. 곧 올 거야.”
“양탄자? 아까 아케이드에서 보던 날아다니는 양탄자 말이야?”
“응. 이제부터 날아가야 하거든. 자동차로는 가기 힘든 곳이야.”
“광장 안의 상점들에서도 많이 팔던데?”
“그렇지? 너도 분명히 봤지? 근데 너무 비싸게 부른다고 그가 불평하더라고. 출구 밖에서 사는 게 더 싸다면서. 근데 비싸 봤자 얼마나 더 비싸겠어? 꼭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한단 말이야.”
그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대답했다. 예전 기억이 떠올라 그녀가 물었다.
“혹시 여행킷에 날아가는 기구가 들어있지 않을까?”
“아까 같이 몇 번이나 확인해 봤는데 없어. 너무 저렴한 것을 구입해서 날아다니는 것이 열기구밖에 없더라고. 그것은 너도 알다시피 이미 못쓰게 되었고. 역시 돈을 좀 줘서라도 괜찮은 것을 사야 된다니까.”
지원 아저씨를 기다리는 동안, 출구에서 동맹원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그들은 경비행기, 헬기, 자동차, 버스, 트럭, 오토바이, 자전거, 사륜마차, 양탄자, 빗자루, 롤러스케이트 등 별의별 이동수단을 타고 그곳을 떠났다.
초록색 피부를 가진, 맨발의 아쿠아니아인들이 절룩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어디선가 트럭이 달려와 뒤쪽에 놓인 수조 안에 그들을 태웠다. 물속에서 그들의 다리는 순식간에 붙더니 물고기 꼬리로 변하였다. 트럭은 구석에서 계속 대기했고 마지막 손님이 나오자 태우고 출발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세히 보니 아까 수진 옆에서 사진 때문에 퇴출당한 바로 그 뱀파이어였다. 그는 매우 급했는지 사진을 찍기 위해 받은 광대 분장을 아직도 지우지 못한 상태였다. 눈가에 판다곰처럼 푸른 멍이 크게 칠해져 있고, 입술 주변으로 초콜릿과 과자 부스러기가 잔뜩 묻어있었다.
“허버트~ 허버트~ 안 나왔나 보군. 여보시오, 여기 장사꾼 아무도 없소?”
그가 허공에다 크게 외치자, 저 멀리 쓰러진 나무 덤불 뒤에서 어떤 자가 고개를 위로 삐죽 내밀어 대답했다.
“주인은 지금 화장실 갔소. 내가 대신 가게를 지키고 있지요.”
지원의 목소리였다. 뱀파이어가 그쪽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동생이 마중 나온다 했는데 아마 오지 못하나 봅니다. 이동수단을 하나 사야겠는데요.”
“그럼 이리 와서 같이 기다립시다. 곧 주인이 올 거요.”
그는 그리로 갔고, 지원은 그의 분장한 얼굴을 가까이서 보고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가게라고 해봤자 덤불 옆으로 박쥐 몇 마리가 들어있는 나무상자와 둘둘 말린 고물 양탄자 두서너 개뿐이었다.
주인을 태운 양탄자가 돌아왔고, 뱀파이어는 박쥐 두 마리를 사서 양쪽 발밑에 한 마리씩 붙인 채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다. 지원은 역시나 가장 싼 양탄자를 그것도 한참 동안의 흥정으로 더 할인받아 구매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목격한 이안은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그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다.
수진과 일행이 탑승하자 양탄자는 덜덜거리며 평원 위를 날아갔다. 처음엔 그것의 신통치 않은 상태 때문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추락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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