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키릴장막 아케이드 - 6
길이 끝나자 양탄자들은 손님을 땅에 내려주고는 바닥에서 유턴하여 되돌아갔다. 그들 앞으로 커다란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상점, 베이커리, 식당, 카페, 호프, 약국, 사진관 등으로 가득 찬 광장은 밀집된 가게들에서 나오는 조명만으로 주변을 훤히 밝히고도 남았다.
또한 활기찬 시장인 이곳은 막 잡은 생선처럼 생동감으로 팔딱팔딱했다. 카페와 식당에는 동맹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때 이른 아침을 먹기도 했다. 빗자루와 양탄자를 파는 가게와 캠핑 도구를 파는 가게도 여럿 보였는데, 가격을 두고 흥정하거나 때로 흥정이 격해져 서로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수진이 고개를 들었다. 저 앞 광장 끝에 세워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새 청동상이 눈에 쏙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까마귀와 비슷해 보이는데, 놀랍게도 발이 세 개였다. 그녀는 다시 세어보았다. 정확히 세 개였다. 청동 까마귀는 입을 크게 벌린 채 곧 하늘로 비상하려는 듯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이었다.
광장을 통과하는 내내, 지원과 히든벅, 이안은 이곳의 분위기에 별 흥미가 없는지 눈길 한번 옆으로 주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러나 수진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나 신기하고 재밌어 보이는 것들이 주변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침 약국 앞을 지나치는 중이었다. 약국의 벽과 기둥에는 그곳에서 파는 약들을 소개하는 전단지들이 다닥다닥 빼곡히 붙어있었다. 그런데 소화제나 감기약 같은 일상적인 것들 외에도, 과자처럼 알록달록한 모양의 약 그림들과 그 옆에 써놓은 설명들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제일 먼저 그녀의 관심을 끈 것은 벽 한가운데 붙인 ‘오맙소사그만’이란 약이었다.
가장 잘 팔린다는 베스트 제품을 의미하는 파란별 훈장이 왼쪽 가장자리에 붙어져 있는 전단지에는 한입 크기의 네모난 붉은색 젤리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 옆으로 다음과 같은 설명이 함께 적혀있었다.
[‘오맙소사그만’은 갑작스러운 충격이나 끔찍한 상황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계속 편안한 심리적, 육체적 상태를 유지시키는 복합안정제. 특히 심장 약한 분이 공룡 두개골 탑승 전에 복용하면 도착할 때까지 심장마비 없이 마치 내 집처럼 편안한 심리상태를 보장함.
단 이 약을 먹은 후, 하루 종일 사과를 먹으면 안 됨. 사과를 먹으면 약 기운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딸꾹질을 하기 때문임.]
다음으로 그녀의 눈에 띈 것은 오른쪽 기둥 중간쯤에 붙은 안약 전단지이었다. 올빼미 머리 모양의 분홍색 뚜껑이 달린 투명 유리병 안에 노란색 액체가 들어있는 그림이었다.
[당신의 눈을 밝혀주는 ‘올빼미 안약’.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기 5분 전, 이 안약을 양쪽 눈에 넣으면 불빛이 없이도 낮처럼 훤히 볼 수 있음. 효력은 대략 3시간.
단 부작용은 안약을 넣은 후, 진짜 올빼미와 5초 이상 눈을 마주치면 안 됨. 5초를 넘기면 올빼미가 달려들어 당신의 눈알을 뽑아갈지도 모름. 만일 그런 사태가 발생했을 시, 본 약국과 제약회사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함.]
본디 어둠을 싫어하는 수진은 즉각적으로 이 안약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사야겠다 결심하고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일행에게 좀 빌려야겠다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뿔싸,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약국을 기웃거리는 사이 그만 그들을 놓치고 만 것이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그녀가 냅다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거의 울음을 터트릴 듯 고개를 마구 돌리는데, 한쪽 구석의 허름한 사진관에 앉아있는 제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그가 자신을 구하러 온 백기사라도 되는 양, 그녀는 후다닥 그리로 달려갔다.
제이는 하얀 벽을 등지고 조그만 나무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뭔가가 못마땅한지 인상을 팍 쓴 채 앞에 둥둥 떠 있는 카메라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카메라 뒤에 선 사진사 역시 똑같은 표정으로 뭐라고 구시렁대자, 제이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제이는 다가오는 그녀를 발견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어이, 왜 혼자 돌아다니니?”
“일행을 놓쳐버렸어요. 아무리 봐도 찾을 수가 없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이런 혼잡한 곳에선 찾기 힘들어. 서로 길이 엇갈릴 수도 있고. 아마 다들 아케이드 밖으로 나갔을 거야. 출구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저리로 나가. 그게 제일 빨라.”
세 발 달린 새 청동상을 지나 보라색 커튼 앞에 길게 서 있는 줄들을 그가 손으로 가리켰다. 그녀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그만 자신을 바라보던 사진사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는 엄청 화가 난 상태였다. 그녀는 제이에게 왜 그러냐고 슬쩍 눈짓으로 물어보았다.
“내 여권 사진을 다시 찍으려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
갑자기 사진사가 꾹꾹 참았던 울분을 확 터트리며 짜증이 난 목소리로 그녀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분은 입국심사를 퇴짜 맞으셨어요. 사진이 너무 안 웃겨서요. 이것 보세요. (그가 제이의 여권 사진이 붙은 면을 그녀에게 보여준다.) 너무 멀쩡하고 멋있잖아요. 마치 영화배우 프로필 사진처럼 말이에요. 이러면 백 퍼센트 통과 못하죠. 그래서 사진을 찍으러 저의 가게에 오셨는데, 웃긴 표정을 지으시라고 아무리 요청을 드려도 도무지 응하시지를 않는 겁니다. 분장도 절대 사양만 하시고요. 벌써 20분째 이러고 있어요.”
“이봐요. 나도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요. 최대한 웃긴 표정을 짓고 있는 거라고요.”
“말도 안 돼! 당신은 계속 사진기를 노려보고 있잖아요! 이보세요, 얼마나 무서우면 사진기가 이렇게 덜덜 떨겠어요? 에고 불쌍한 것.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아예 찍어드릴 수가 없어요. 그럼 고객님은 영원히 퇴짜를 맞아 아케이드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요. 때마침 숙녀분이 오셨으니 고객님 사진 찍는 것 좀 도와주세요. 네?”
그녀는 자신의 끔찍한 사진이 눈앞에 떠올랐다.
'참내, 어떻게 여권 사진이 웃겨야 하는 거지?'
그녀는 결국 처절하게 애원하는 그로 인해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우선 제이에게 최대한 웃긴 표정을 지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눈을 크게 치켜뜨고, 입술을 꽉 다문 채 숨을 참았다. 사진사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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