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키릴장막 아케이드 - 1
수진과 일행은 키릴장막을 왼쪽에 끼고서 계속 걸어갔다. 곧 매끈한 바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 지점에서만 납작한 디딤돌들이 바위 표면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데, 바닥에서 20센티 정도 뜬 채 일렬로 박혀있었다.
사람들이 그 디딤돌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한 줄에 많아야 네댓 명 정도였다. 다섯 번째 줄 마지막에 서 있던 이장이 그들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수진은 비어있는 열일곱 번째 돌 앞에 가 섰다. 그들 자체로도 딱 네 명이기에 뒤에 오는 사람들은 다음 줄로 넘어가야 했다.
그렇게 대충 삼십 개의 줄이 만들어졌다.
“띠링띠링~”
모차르트의 교향곡 ‘반짝반짝 작은 별’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안의 손가락이 위를 가리켰다.
“수진, 저기 위 좀 봐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장막의 꼭대기 위로 거대한 크리스털별이 세워져 있었는데 밤하늘에 은은하게 빛이 났다. 교향곡이 끝이 났다. 그러자 아름다운 광경이 그들 앞으로 펼쳐져 내려왔다.
크리스털별에서 흡수한 달빛이 강하게 반사되더니 아래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달빛은 바위 표면에 흩어져있던 수많은 크리스털 조각들을 깨웠고, 순식간에 빛의 뭉치들은 딱딱한 기차 트랙으로 모습을 변화시켰다. 꼭대기에서 시작된 달빛 트랙은 어느새 가장 아래 디딤돌이 있는 데까지 다닥다닥 빠르게 깔리었다.
“뿌우웅~뿌우웅~”
경적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투명하게 빛나는 기차가 장막 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박 모양을 닮은 크리스털 마차 30대가 나란히 붙어있는 기차였다.
“칙칙폭폭~칙칙폭폭~”
기차는 바위에 바짝 붙은 채 트랙을 따라 거침없이 내달렸다. 흡사 하얀 여자 목에 걸린 보석 목걸이 마냥 눈부시게 반짝이었다. 곧 그것은 디딤돌이 튀어나온 탑승구에 정확히 일치하며 멈춰 섰고, 작은 별 교향곡과 함께 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그들은 땅에 내려오자마자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드디어 아래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탑승할 차례가 되었다. 수진과 일행도 얼른 들어가 앉았다. 기차 칸의 실내는 앞뒤가 둥근 크리스털 벽으로 막혀있고, 긴 크리스털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설치되어 있었다. 수진과 이안, 지원은 한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히든벅은 커다란 덩치 때문에 반대편 의자를 혼자 독차지하였다.
교향곡이 끝나자 기차는 내려올 때와 반대로 꼬리 부분이 머리가 되어 거꾸로 트랙을 올라갔다.
15분 후, 키릴장막의 꼭대기에 도착하였다. 다시 교향곡이 들려오고 나서야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차에서 내렸다. 수진도 군중에 섞이어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뾰족한 바위 위에서 스스로 균형 잡고 서 있는 크리스털별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춘 채 그것을 감상하였다. 크리스털에서 내뿜는 빛이 옅어지며 아무런 조명도 없는 이곳을 신비롭게 밝혀주고 있었다.
이안의 재촉에 정신을 차린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을 땐 이미 군중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원과 히든벅도 보이지 않자 그가 알려주었다.
“다들 안으로 들어갔어. 어두워질 테니 우리도 어서 가자.”
잠시 후, 그는 어떤 표지판 앞에 멈춰 섰다. 어둠 속에서 뚜렷이 비치는 형광 초록색 글씨를 그녀가 소리 내어 읽었다.
“키릴장막 미끄럼틀, 19번 석실, 총 20분 걸림, 한 명씩 타시오. 타박상 주의”
표지판 바로 뒤로는 미끄럼틀 쇠바닥이 깔린 납작한 통로가 뚫려 있었다. 통로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이안은 놀이동산에 처음 놀러 온 아이처럼 잔뜩 들떠 외쳤다.
“이거 스릴만점에 굉장히 재미있다고 들었는데. 난 한 번도 타본 적이 없거든.”
그는 그녀에게 먼저 타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녀가 머뭇거리자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신이 먼저 갈 테니 따라오라는 말만 남긴 채 미끄럼틀을 타고 사라졌다. 그녀 혼자만이 그곳에 남게 되었다.
스릴을 마음껏 만끽한 이안이 19번 번호판이 붙은 석실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앞에 히든벅과 멀미를 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지원이 서 있었다. 이안 혼자서 오는 것을 보고 더 하얗게 질려버린 지원이 두리번거리며 수진을 찾자 이안은 태연하게 말했다.
“곧 따라올 거야.”
“그녀를 먼저 보내고 들어오셨어야지요. 혹시나 안 들어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미 꼭대기까지 왔는데 여기 말고 돌아갈 데가 어디 있겠소? 기다리면 곧 올 거요. 그리고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 그녀도 혼자 힘으로 해결을 봐야지, 언제까지 우리가 졸졸 따라다니며 돌봐줄 수 있답니까?”
히든벅의 냉정한 대답에 지원은 내심 놀랐지만 못내 걱정스러운 듯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집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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