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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dyHwang 님의 서재입니다.

토르의 망치를 찾아서 - 브라잇 동맹 3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완결

CindyHwang
작품등록일 :
2020.02.28 11:17
최근연재일 :
2022.02.04 15:10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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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수 :
17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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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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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 학과의 결투 - 3

DUMMY

다음으로 나온 세 팀은 별 특징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학에게 잡혀간 자도 있었고 팔이 부러진 자와 운 좋게 살아남은 자도 있었다. 점차 흥미와 재미가 사그라들어 좀 지루해질 무렵 어느새 7번째 순서가 되었다.


입구에 선 용사를 보니 바로 오렌지색 리본을 수염에 단 그 미치광이였다. 그는 무대로 나가기 전까지 옆의 카할에게 기분 나쁜 웃음을 연신 쪼갰는데 정말 미친 게 아닌가 싶었다.


“이번엔 자그마치 5년 내내 결투에 나온 용사와 처음 나온 용사로 이루어진 팀 ‘오렌지 리본과 초보동료’ 입니다. 사실 다섯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오렌지 리본이 과연 제정신일 수 있을지 잘 확신이 서지 않는군요. 그의 무기는 매년 바뀌었는데 올해 5번째로 들고 나온 무기는... 허 참, 독특합니다. 무기는 바로 ‘부드러운 빗질’!”


끝에 빗이 달린 지팡이를 각자 들고서 오렌지 리본과 초보 동료가 헐레벌떡 무대로 뛰어나왔다. 오렌지 리본의 눈에서는 광기가 무섭게 뻗어 나왔는데 가까이서 보면 이번에 또 지면 즉시 여기에 뼈를 묻어버릴 듯한 집념과 의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나 증오하는 학을 대하자 히스테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에 살짝 경련이 일고 입 옆으로 하얀 거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학도 그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저것을 먹으면 식중독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 바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대신 그의 옆에서 벌벌 떠는, 멀쩡해 보이는 초보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오렌지 리본과 동료가 다가오는 학을 향해 힘껏 달려가는 것이었다. 관람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점점 강해지는 북소리와 더불어 중계석에서도 용감한 그들을 응원하는 말들이 빠르게 내뱉어졌다. 경기장 내의 흥분된 분위기는 터지기 일보직전의 풍선처럼 팽팽히 고조되어갔다.


가까이 접근한 그들은 몸을 옆으로 낮추어 잽싸게 학의 긴 다리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리고 지팡이 끝의 빗으로 그것의 아랫배 털을 살살 쓰다듬었다. 간지러움을 참다못한 학이 꺼억꺼억 울며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비실비실 몸을 꼬아댔다. 학의 그런 모습은 관중들에게 처음이었기에 경기장 곳곳에서 또다시 커다란 환호와 찬사가 흘러나왔다.


어쩔 줄 몰라하며 몸을 비비 꼬던 학 옆으로 또 다른 학이 허공에서 무대로 내려왔다. 동료를 내버려 두고 오렌지 리본이 새로 등장한 학의 아랫배 밑으로 날렵하게 들어가 그것의 배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그것 역시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날갯짓까지 펄럭이며 꺼억꺼억 울어댔다. 너무 울었는지 그것의 눈에서 눈물이 질질 흘러내렸다.


그런데 이런, 무대로 또 다른 학이 내려와 착지를 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학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더 이상 서비스를 제공할 세 번째 용사는 없었다. 새로 온 학은 간지럼 때문에 맛이 간 두 마리를 고개를 갸우뚱하며 불그스름한 눈으로 이상스레 쳐다보았다.


이렇게 잘 되어가도 괜찮나 싶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런데 ‘운명’이란 것은 대부분 그렇듯이 가장 잘 나갈 때 그 꼴을 못 참고서 꼭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다. 오렌지 리본보다 덜 숙련된 빗질 기술을 가졌던 초보의 빗이 하필이면 지팡이 끝에서 핑 돌더니 퍽 하고 땅에 떨어진 것이다. 빗이 없는 지팡이로 아무리 부드럽게 쓰다듬는다고 해도 꾹꾹 찔러대는 형국이었고, 아랫배에 찌릿한 자극을 느낀 학의 눈빛이 단번에 홱 뒤집혔다.


‘이놈아, 아파!’라고 짜증을 내듯 학이 날카롭게 울부짖자 겁이 난 동료는 지팡이를 집어던지며 가까운 출구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앞길을 딱 가로막은 자가 있었으니 바로 세 번째로 내려온 학이었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부리로 그의 옷을 낚아채어 하늘 위로 붕 날아가 버렸다.


이제 오렌지 리본만이 두 마리의 학과 남겨졌다. 그는 열심히 빗질을 하였지만 다른 것이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에게도 만족을 주기 위해 뛰어가는데 그만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지팡이도 같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빗이 홀라당 빠지었다. 더 이상 그에게 비장의 무기는 없었다.


이젠 어쩔 도리가 없다는 판단이 재빨리 서자 그는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까운 출구를 놔두고 하필 먼 입구로 향하는 것이었다. 진짜 이때 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 기록을 위해, 그리고 관중 여러분을 위해,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먼 길로 우회하는군요. 용사들이여, 그를 본받으시오! 오렌지 리본, 어서 달리시오, 달려!”


아무것도 모르는 해설자가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그때, 오렌지 리본의 앞과 뒤가 학들에 의해 가로막혀버렸다. 죽음을 직감한 그는 표현 그대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기에 이른다. 괜히 5년 내내 학과 결투를 벌이며 그동안 경험과 내공을 안 쌓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암튼 정말로 기막힌 생존 비법이었다며 몇 년 후 딥언더니아의 신문기사에까지 언급되었다는 점을 미리 한번 적어나 본다.


갑자기 오렌지 리본의 눈동자가 뒤집히고 몸에 심한 경련이 일더니 하얀 거품이 입 안 가득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앞을 가로막은 학이 기겁하여 살짝 옆으로 길을 비켜주는 것이었다. 그는 경련으로 몸을 비비 꼬면서 거품을 입 안 가득 문 채 안전하게 입구로 들어왔고 바로 기절해 쓰러졌다. 하지만 기록은 여태까지 나온 것들 중 가장 좋았다.


“33분 50초”


경기장이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호응으로 들썩거리었다. 해설자는 소라 마이크를 입 앞에 댄 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 결투의 흥을 더욱 돋웠다.


“학이 음식재료의 신선도에 꽤나 신경을 쓴다는 걸 오늘에야 깨달았는데.”


이안의 농담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마침내 그들이 나갈 순서가 되었던 것이다. 마음을 담담히 가지려던 노력은 다 물거품이 되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중구난방 꿈틀대는 것을 수진은 느낄 수 있었다. 옆에서 카할은 계속 침만 꼴딱꼴딱 삼키었고, 이안도 어느새 긴장된 표정으로 허공을 주시하였다.


“오렌지 리본은 6번째로 올해도 살아남았군요.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았지만 어쨌든 대단합니다. 기록도 가장 좋군요. 과연 그가 올해 ‘학과의 결투’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까요?

자, 다음 팀은 ‘카할과 친구들’로서 오늘 출전하는 용사 중 가장 나이들이 어리답니다. 허허, 이런 곳에서 삶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이른데 말이죠.. 그들의 무기는 우.. 엥? 여기 앉은 이래로 이런 건 처음 보는데요. 그들의 무기는 바로 ‘우정과 용기’랍니다. 이게 무슨 허파에 바람 들어가는 소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랍니까? 아마 숨겨둔 비장의 무기가 있겠지요? 아님 어린것들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던가요.”


종소리가 운명의 순간을 알리기라도 하듯 그들에게 너무나 크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들은 느릿느릿 경기장 무대로 나아갔다. 결투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이 참여했고, 또한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이 관심을 끌었는지 여기저기서 열렬한 박수갈채와 응원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관중석 정 중앙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은 스톰펌 왕의 얼굴은 긴장이 되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도저히 못 볼 것 같아 눈을 감으려 해도 궁금하긴 한지, 양쪽 눈을 감았다 떳다를 반복하였다. 옆에 같이 앉은 샤를르 리 역시 애꿎은 망토 자락만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카할과 친구들은 학에게 조금 못 미쳐 걸음을 멈추고 서로 거리를 둔 채 띄엄띄엄 섰다. 그리고 어젯밤까지 열심히 연습했던 동작을 취하였다. 등은 하늘을 향하고 최대한 몸을 작게 만들어 웅크리고 앉았던 것이다. 이들의 이상한 자세를 본 관중들이 웅성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발을 동동 굴러댔다. 당겨진 활시위처럼 주위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되어갔다. 안타까운 그들이 마구 손을 휘저으며 온 몸을 흔들어 고함쳤다.


“어서 일어나, 얘들아! 웅크리면 안 돼!”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학들을 자극시켰는지 이게 웬 떡이냐 라는 식으로 아이들에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마리씩 커다란 발톱으로 한 명씩 낚아채서는 경기장 위로 쑥 올라갔다. 큰 몸집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던 이안의 걱정 역시 기우에 불과했다.


세 명은 하늘 위로 날아올라 경기장 너머로 사라졌다. 번갯불에 콩 볶듯, 별똥별이 떨어지듯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관중석에서 미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잠시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이어 여자들과 아이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가슴을 내리치며 크게 통곡하였다. 충격을 받아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던 해설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은 후 소라를 입 앞에 갖다 대었다. 그의 무겁고 안타까운 어조가 합동장례식 같은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아, 그냥 이렇게 가 버렸군요. 아마도 방어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왜 ‘우정과 용기’를 무기로 썼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갔으니 덜 외롭겠지요? 저 빌어먹을 학들이 앗아간 가여운 영혼들을 위해 우리 잠시 눈을 감고 묵념의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모두 묵념!”


경기장 꼭대기에서 악단이 북소리를 약하게 깔아주는 동안 사람들은 떠나간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눈앞의 광경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목격한 스톰펌 왕과 샤를르 리가 서로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 연극의 무서운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슬퍼하는 사람들 사이에 덤덤하게 앉은 채, 영혼이 아닌 그들의 무사귀환과 안전을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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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13. 차가운 이별 - 2 22.01.07 18 0 11쪽
44 13. 차가운 이별 - 1 21.12.03 24 0 9쪽
43 12. 지하무덤과 레이디 포터리 - 7 21.11.19 20 0 12쪽
42 12. 지하무덤과 레이디 포터리 - 6 21.10.22 23 0 8쪽
41 12. 지하무덤과 레이디 포터리 - 5 21.10.01 27 0 10쪽
40 12. 지하무덤과 레이디 포터리 - 4 21.09.09 28 0 8쪽
39 12. 지하무덤과 레이디 포터리 - 3 21.08.27 30 0 9쪽
38 12. 지하무덤과 레이디 포터리 - 2 21.08.06 34 0 8쪽
37 12. 지하무덤과 레이디 포터리 - 1 21.06.18 30 0 8쪽
36 11. 망토를 두른 남자와의 만남 - 4 21.06.04 35 0 10쪽
35 11. 망토를 두른 남자와의 만남 - 3 21.05.14 31 0 7쪽
34 11. 망토를 두른 남자와의 만남 - 2 21.03.05 24 0 7쪽
33 11. 망토를 두른 남자와의 만남 - 1 21.02.10 30 0 8쪽
32 10. 루시 (Lucy)가 두발로 뛰다. - 4 21.01.22 67 0 8쪽
31 10. 루시 (Lucy)가 두발로 뛰다. - 3 21.01.08 28 0 8쪽
30 10. 루시 (Lucy)가 두발로 뛰다. - 2 20.12.25 36 0 9쪽
29 10. 루시 (Lucy)가 두발로 뛰다. - 1 20.12.11 30 0 8쪽
28 9. 암탉이 울면 벽이 열리리라. - 2 20.11.28 34 0 7쪽
27 9. 암탉이 울면 벽이 열리리라. - 1 20.11.20 31 0 7쪽
26 8. 해골 계단 20.11.14 28 0 12쪽
25 7. 발로르의 생일잔치 - 6 20.11.06 29 0 7쪽
24 7. 발로르의 생일잔치 - 5 20.10.23 24 0 9쪽
23 7. 발로르의 생일잔치 - 4 20.09.30 29 0 9쪽
22 7. 발로르의 생일잔치 - 3 20.09.05 32 0 9쪽
21 7. 발로르의 생일잔치 - 2 20.08.29 32 0 10쪽
20 7. 발로르의 생일잔치 - 1 20.08.14 44 0 10쪽
19 6. 과보족 마을 - 4 20.08.07 52 0 6쪽
18 6. 과보족 마을 - 3 20.07.24 28 0 8쪽
17 6. 과보족 마을 - 2 20.07.17 29 0 11쪽
16 6. 과보족 마을 - 1 20.07.09 3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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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5. 사기꾼 레빌 - 3 20.06.26 36 0 10쪽
13 5. 사기꾼 레빌 - 2 20.06.19 46 0 9쪽
12 5. 사기꾼 레빌 - 1 20.06.12 30 0 8쪽
11 4. 요툰하임 - 2 +2 20.06.05 42 1 5쪽
10 4. 요툰하임 - 1 20.05.29 34 0 10쪽
9 3. 진달래 해적선과 제임스 후크 선장 20.05.15 42 0 10쪽
» 2. 학과의 결투 - 3 20.05.08 33 0 10쪽
7 2. 학과의 결투 - 2 20.04.30 51 0 10쪽
6 2. 학과의 결투 - 1 20.04.17 75 0 9쪽
5 1. 학 쫓아버리기 축제 - 5 20.04.10 41 0 6쪽
4 1. 학 쫓아버리기 축제 - 4 20.04.03 42 0 8쪽
3 1. 학 쫓아버리기 축제 - 3 20.03.27 43 0 9쪽
2 1. 학 쫓아버리기 축제 - 2 +2 20.03.20 60 1 10쪽
1 1. 학 쫓아버리기 축제 - 1 +4 20.03.13 11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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