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이런 대장간 - 2
그의 시연이 끝나자 캠프 참가자들이 직접 해보는 실습시간이 되었다. 카할과 우란에게는 모루의 높이가 잘 맞았지만, 나머지에게는 꽤 낮아 허리를 많이 굽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들은 용광로 뒤집개 앞에 쭈르르 서서 꽂혀있는 쇠막대기 서너 개 정도 뽑아 살펴본 후, 가장 마음에 드는 크기의 것을 골라잡았다.
카할과 왕허준은 장검을 만들 수 있는 기다란 쇠막대기를,
우란 미스가와 안젤라는 중간 길이의 도끼용 쇠막대기를,
해마는 전복과 조개를 따기 위한 낫 전용을,
이안과 티앤 단까오는 단도용의 짧은 쇠막대기를,
수진은 이것저것 뽑아보다가 끝이 둥글게 덩어리 진, 가장 길이가 긴 쇠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국자를 만들어 할머니께 선물해 드리기로 결정했다. 할머니 집의 오븐에서 식탁 위까지 닿을 길이였다.
그녀는 모루 위로 가져온 쇠막대기의 끝을 집게로 겨우 받친 채 티앤 단까오가 추천해준 망치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마침 둘의 사이좋은 광경을 목격하고 난 후 이안이 굳은 표정으로 애꿎은 쇠붙이를 망치로 무섭게 때려댔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대부분은 처음 해보는 대장간 일이라 그런지 손이 무척이나 서툴렀다. 꼭 벼려야 할 부분을 놓치거나 벼리지 말아야 할 곳을 두들기거나, 손이 미끄러져 쇠가 아닌 모루를 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아까 뚝딱 칼을 완성시킨 블랙 아이런의 모습과는 천지 차이였다. 하긴, 괜히 최고 대장장이 명장이라 부르겠는가?
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들의 작업에 별 진전이 없었다. 그나마 카할이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떠올리며 작업한 덕분인지 그럭저럭 검 비슷한 모양이 나오고 있었다.
‘나도 이 방면에 소질이 있나 보지.’
혼자 좋아하며 “땡땡”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순간 옆을 지나치던 블랙 아이런의 평가에 그만 그의 기분이 확 잡쳐졌다.
“모양이 좀 이상한데. 날이 일정하지 않고 끝도 약간 휘어졌네. 혹시 갈고리를 만들던 중이었나?”
작업을 시작한 지 네 시간 정도 흐르자 점차 물건 같은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안은 생각했던 것만큼 모양이 잘 잡히지 않고 너무 세게 두들겨서 그런지 칼날의 두께가 무척 얇아졌다. 블랙 아이런이 지나가다 그의 것을 쓱 쳐다보더니
“이제 그만 해라. 더하다간 구멍이 뚫리겠어.”
라고 말하며 그의 망치를 빼앗아 가버렸다.
그런데 다른 모루들은 무심코 지나치던 블랙 아이런이 불현듯 멈추어 서는 것이었다. 그의 손에서 이안의 망치가 툭 떨어져 내렸다.
“오, 이럴 수가!”
그가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털이 수북한 손등으로 두 눈을 여러 번 비빈 후 뭔가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바로 티앤 단까오의 단도였다. 그는 잔뜩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넌 이번에 처음 해 본 것 아니냐? 근데 어찌, 솜씨가 너무 훌륭한데. 두 시간 전만 해도 제대로 되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단도의 생명인 이 완벽한 칼날, 일정한 칼등의 두께. 완벽해. 아주 완벽해. 다들 이리 와서 좀 봐 보렴.”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자, 참가자들뿐 아니라 다른 대장장이들과 풀무꾼들까지도 모두 일손을 멈추었다.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티앤 단까오의 모루 주위로 가득 몰려들었다. 딥언더니아 최고 명장의 칭찬은 정말 빈말이 아니었다. 그의 완성된 단도는 상점에서 파는 최상급 제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칼날이었다.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면 으레 어깨를 으쓱거리며 좋아할 텐데도 티앤 단까오의 표정은 이상스레 어두웠다. 그는 블랙 아이런의 계속되는 칭찬에도 불구하고 미소 한 번 짖지 않은 채 그것을 그대로 제출하였다. 마침 한 대장장이가 여러 개의 자루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하나를 건네받아 안에 집어넣고 겉면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아이들은 다시 제 자리로 되돌아갔다. 각자 자신의 작품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였다. 블랙 아이런은 돌아다니면서 뒤처지는 이의 작업을 도와주거나 충고를 건넸다.
그런데 그를 가장 괴롭히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다름 아닌 수진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욕심을 내어 자신의 키와 거의 엇비슷한 쇠막대기를 뽑았었고, 망치질하는 것조차 결코 쉽지 않았던 데다가 그녀의 손재주 역시 그리 썩 좋지 못했던 것이다.
막대기 끝의 뭉친 쇠 덩어리는 국자가 되어가기는커녕 모래 파는 삽처럼 쫙쫙 펴지고 있었다. 블랙 아이런은 결국 보다 못해 그녀를 옆으로 비키게 한 후 그녀의 집게를 대신 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국자를 만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데 그건 불가능하고. 음, 그래, 이런 긴 막대기에는 삼지창이 제격이지.”
그는 삽처럼 퍼진 그녀의 쇠를 석탄 속에 집어넣어 빨갛게 달군 후 모루 위에 얹어놓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머리를 가진 망치를 허리띠에서 꺼내 들어 쇠 윗면에서 두 개의 홈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거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땅땅 두들겼다.
곧 가운데 창이 양쪽 것보다 긴 삼지창이 완성되었다. 그는 가운데 긴 창이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었기에 거기서 작업을 끝내야만 했다.
그녀의 제품도 주머니에 넣어졌는데 전체가 너무 길어 삼지창 부분에서 조금 올라온 쇠막대기까지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다른 이의 것들도 이미 주머니 안에 들어갔다. 해마가 만든 낫, 안젤라와 우란이 만든 도끼 둘, 왕허준과 카할이 만든 장검 둘, 그리고 이안의 단도까지, 모든 작업이 다 끝이 났다.
다들 처음 목적한 대로 모양이 나왔는데 왜 자신의 것만 이렇게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실망하며 수진의 마음이 심란해졌다. 삼지창으로 국을 뜰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고기 굽는 포크로 써야 하나?
대장장이의 유쾌한 목소리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그는 그들을 어디론가 안내하였다.
“우선 배 좀 채워볼까? 그리고 아주 놀라운 장소로 데려다주지. 놀라지 마시라!”
Comment ' 0